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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김춘추의 정치적 위기와 성급한 외교 김춘추의 정치젹 위기와 성급한 외교 선덕여왕 11년 7월에 백제 의자왕이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의 성 40여개를 탈취하였다. 8월에 또 고구려와 공모하여 당항성을 취하여 당나라로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다. 이에 왕이 사신을 보내어 당태종에게 급한 사정을 고하였다. 이달에 백제 장군 윤충이 군사ㅡㄹ 거느리고 와서 대야성을 공격해 빼앗아가니 도독 아찬 품석과 사지 죽죽, 용석 등이 전사하였다. 겨울에 왕이 백제를 쳐서 대야의 일을 보복하려 하여, 이찬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군사를 청하였다. 처음 대야에서 패할 때 도독 품석의 처도 죽었는데 춘추의 딸이었다. 춘추가 듣고 기둥에 기대어 서서 종일토록 눈을 깜짝이지 않고 사람이나 물건이 그 앞을 지나가도 알지 못하더니 얼마 뒤에 말하기를, [슬프다. .. 더보기
간략하게 정리하는 삼국통일의 과정 삼국통일의 과정 1. 6c 신라의 성장과 백제의 부흥 노력 6세기에 신라가 성장한 배경은 551년 신라의 한강 점령입니다. 신라는 나제 동맹을 통해 공동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유역을 탈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흥왕이 백제 성왕을 배신하여 한강을 독차지했습니다. 본래 한강의 남쪽을 보장받기로 했던 성왕은 격분한 나머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흥왕을 공격하다가 관산성에서 왕이 전사하는 위기를 맞습니다. 이후 백제는 왕권이 약화되고, 연, 백, 사씨 등 8대성이 정치를 이끌어나가는 귀족체제가 됩니다. 신라는 한강유역을 차지하여 당항진에 당항성이라는 요새를 건축합니다. 이것은 곧 중국과의 직접 교통로를 확보함을 의미합니다. 신라의 한강유역 차지는 고구려, 백제로 하여금 여제동맹을 맺게 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 더보기
김춘추의 외교술 발전 - 고구려, 당에 대한 외교 김춘추의 고구려 외교 11년…7월에 백제왕 의자(義慈)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나라 서쪽의 40여 개 성을 공취(攻取)하였다. 8월에 또 고구려와 공모하여 당항성(?項城)을 취하여 당으로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어 당 태종(唐太宗)에게 급한 사정을 고하였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해 빼앗아가니 도독(都督) 이찬(伊瑗)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전사하였다. 겨울에 왕이 장차 백제를 쳐서 대야(大耶)의 일을 보복하려 하여, 이찬 김춘추(金春秋)를 고구려에 보내어 군사를 청하였다. 처음 대야에서 패할 때에 도독 품석의 처(妻)도 죽었는데 그녀는 춘추의 딸이었다. 춘추가 듣고 기둥에 기대어 서서 종일토록 눈.. 더보기
아비지와 황룡사 9층 목탑 설화 아비지와 황룡사 9층목탑 백제 의자왕 5년에 자장이라는 유명한 대사가 당나라로부터 불법을 연구하고 돌아와 대국통이란 직함을 띠고 불교를 융성시켰다. 그가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올 적에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얻어온 것이 있어 그것을 모시기 위하여 황룡사에 9층의 큰 탑을 세우려는 표방과 또 신라에서는 그러한 미술공사를 맡을 적임이 없기 때문에 백제의 기술자를 구하였는데 그가 바로 아비지였다. 아비지는 신라의 초청을 받아 신라에 가서 몇날 동안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비로소 공사가 시작되어 황룡사 법당 앞에 구층탑의 탑주를 세운 첫날밤 백제 본국의 도성이 온통 불바다로 변하고 그 속에서 사랑하는 처자들과 또 모든 백성들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 나오므로 아비지는 깜짝 놀라 깨어보니 그것은 서글프고도 이상한 .. 더보기
후백제 건국 이야기 사료 후백제 건국 이야기 견훤은 상주 가은현(경북 문경 가은) 사람으로 본래의 성은 이씨였는데, 후에 견으로 성씨를 삼았다. 아버지는 아자개이니 농사로 자활하다가 후에 가업을 일으켜 장군이 되었다. .... 신라 진성여왕 6년(892) 아첨하는 소인들이 왕의 곁에 있어 정권을 농간하매 기강은 문란하여 해이해지고, 기근이 곁들어 백성들이 떠돌아 다니고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에 견훤이 은근히 반심을 품고 무리를 모아 서울 서남쪽 주현들로 진격하니, 가는 곳마다 호응하여 무리가 달포 사이에 5천여인에 이르렀다...... 하고, 드디어 후백제 왕이라 스스로 칭하고 관부를 설치하여 직책을 나누었다. - 삼국사기 - 사료해석 : 신리 말기 호족들은 스스로 장군, 성주, 왕으로 칭하고 일부는 국가를 건국하였으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