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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국

고대 이전 동북아시아의 전투 형태 - (1) 청동기, 철기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의 전쟁 양식에 대하여 고대 이전 동북아시아의 전투 형태 (1) 청동기, 철기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의 전쟁 양식에 대하여 우리 민족, 그 기원에 대한 논쟁 자,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내용은 고대 동아시아의 전투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동아시아라고 하면 지금의 중국을 포함하고 있는 동북아시아부터 한반도, 일본열도까지를 다루어야 하지만,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기록이 일단 없고, 야마토 호족 연합 정권 이전의 일본에는 전쟁다운 전쟁에 대한 기사가 없기 때문이죠.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 일단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원시시대 만주와 요령지방, 그리고 한반도에는 어떤 계통의 민족이 살고 있었는지 일 것입니다. 일단,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 더보기
삼한은 고조선에서 나왔다. - 삼한의 역사 삼한은 고조선에서 나왔다 1. 삼한의 기원에 대한 신채호의 학설 삼한의 위치에 대해서는 자세한 역사적 기록은 없습니다. 한백겸은 동국지리지에서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지역이고,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 지역이라고 서술한 정도입니다. 중국 삼국지에는 변진은 잡거한다고 표현하여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삼한 78개국은 제각각 왕이 있고 통치조직을 갖춘 독립국이었습니다.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는 고조선이 과거 위대한 우리 시조 국가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선상고사를 적으면서도, 남쪽 진국의 역사는 상세히 적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우리의 과제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강조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신채호는 민족의 영광된 시기의 기원을 단군에서 찾았고, 단군으로부터 내.. 더보기
우리는 고조선, 고구려 역사에 취해 한반도 남쪽 <진국>의 역사는 묻어버렸다. 우리는 고조선에 치우쳐 진국을 잊고 있었다. 1. 알려지지도, 알려하지도 않았던 미지의 나라 진국 진국에 대해서 한번쯤은 짚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진국은 중국 사료에 이라고 나옵니다. 衆國이란 쉬운 말로 하면 무리 국가들이란 뜻이네요. 고조선이 북방에서 강성할 무렵의 역사를 우리는 자랑스럽게 배웁니다. 단군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단군의 영토가 평양과 황해도, 함경도 지방을 중심으로 멀리 만주를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넓은 지역을 다스린 자랑스러운 국가가 고조선이지요. 그런데, 그 자랑스러운 고조선이 우리의 뿌리로 자리잡고 있을 무렵, 남쪽 전라도, 경상도에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같은 남방의 원숭이들이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북방 영토를 중요하게 취급한 만큼, 남쪽 한반도의 .. 더보기
후한서에 나오는 삼한 기록 후한서 - 한 삼한 78개국 중 큰 나라는 만여호이고 작은 나라는 수천가이다.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땅을 합하면 사방 4천여리 이며, 동쪽과 서쪽이 바다와 접하니 모두 옛 진국이다. 마한이 가장 크르모 여러 나라가 함께 마한 사람을 진왕으로 삼으니 목지국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 땅의 왕으로 군림한다. 그 여러 나라 왕의 선대는 모두 마한 사람이다. - 후한서 동이열전, 한 - 사료해석 : 3한에 대한 후한서 사료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목지국의 사료 근거입니다. 더보기
알려지지 않은 삼한에 대한 중국측의 기록 3한에 대한 중국기록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하니, 사방 한 변이 가히 4천리 쯤 된다. 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중국)이다. 진왕이 월지국을 다스린다. 신지에게는 간혹 우대하는 호칭인 신운견지보안사축지분, 신이아불예구사진지렴이라는 칭호를 더하기도 한다. 이들 관직에는 위솔선, 읍군, 귀의후, 중랑장, 도위, 백장이 있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한에는 세종족이 있으니, 첫째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진이다. 삼한 땅을 합하면 사방 한 변이 4천여리로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으니 모두 옛 진국이라. 마한이 가장 강대하여 함께 그 종족을 추대하여 진왕으로 삼는데, 목지국에 도읍.. 더보기
위만조선 열전 위만조선전 위만이 왕이 되어 왕검에 도읍하였을 때는 마침 효혜, 고후(한나라 혜제왕 대 여후 섭정기)의 때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된 무렵이였다. 요동태수가 위만으로 외신(외번)을 삼아요새 밖의 만이를 막아서 변방에서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고, 만이의 군장들 가운데 천자께 들어가 뵙고자 하는 자는 이를 막지 말도록 하자고 아뢰니 천자가 이를 허락하였다. 이 때문에 위만이 군사의 위엄과 재물을 얻자 주변 소읍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땅이 수천리나 되었다. 위만이 왕위를 아들에게 전하고 다시 손자 우거에게 이르자 한나라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을 자못 많이 유인하였다. 또 일찍이 들어와 천자를 뵙지도 않으면서 진번 곁의 진국(한반도 남방의 중국, 3한의 모태)이 글을 올려 천자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