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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전쟁

(브로그 이전 _ 보호글처리) 혁명을 신념으로 믿고 죽어간 대문호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난 혁명이 내 신념이라는 것을 믿고 죽음을 택하겠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데카브리스트의 12월 반란이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한 한 시인은 평소에 이렇게 노래하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 말리니.... 그리고 얼마 후 러시아의 국민시인은 자국의 군인과 총을 들어 결투를 마친 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푸쉬킨이었다. 1장. 혁명은 끝났으나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이 유럽을 한바탕 뒤흔든 이후..... 나폴레옹이 유배되면서 유럽의 국왕들은 혁명이란 단어를 너무나 끔찍하게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국왕은 신이 선택한 존재이기에 국왕에게 칼을 겨눈다는 것은 절대 금기로 만들어야 했다. 유럽의.. 더보기
역사적으로 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길고 긴 대립과정 (1) 역사적으로 본... 와 의 길고 긴 대립과정 이 이야기에 나온 역사적인 이야기들과 법, 제도, 인물 등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라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해당되는 입장의 내용들만으로 씌여진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프랑스 혁명 : 자유부터인가, 평등부터인가... 서구 역사가들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을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찾곤 한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하면 을 떠올린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에서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실제, 근대 유럽의 자유와 평등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니였다. 프랑스 혁명을 처음 일으킨 것은 세력에 반발한 계급이었다. 그들은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인권선언을 발표하여 자본가들의 을 인정받으려고 하였다. 그러.. 더보기
1885년 조선의 중립화론을 주장하다. 1885년 조선의 중립화론을 주장하다. 1. 갑신정변 이후 정세 갑신정변 이후, 우리나라는 또 다시 청에게 정치적으로 종속되고 맙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이 모두 청의 개입으로 실패하면서 우리나라는 청에게 내정간섭을 심하게 받게 되죠. 그리고 일본은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청을 견제하고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조선과 지속적인 조약을 체결합니다. 일단, 임오군란 때는 제물포 조약을 통해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얻어냅니다. 갑신정변 때의 톈진조약으로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이 청군과 공동 출병, 공동 철수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냄으로서 최소한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청에게 밀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의 정치적 주도권은 아직 청에게 있었죠. 청은 을 납치하.. 더보기
러시아사 9 - 알렉산드르 2세 알렉산드르 2세(1855~1881) 알렉산드르 2세는 개혁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전왕대 크림전쟁의 비참한 패배를 구경하였기에 내정개혁의 필요성 및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모든 것을 시도하려고 하였습니다. 먼저 그는 유럽에 대한 여행을 완화하고, 정치범들을 석방합니다. 또 출판물에 대한 검열도 완화합니다. 특히, 그는 농노해방령을 내립니다. 이것은 모든 농민을 해방시키고, 각 농가는 일정한 토지를 할당받는 것으로서 러시아의 민중이 정말 오랜 시간 투쟁한 결과의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많았습니다. 왜냐면 종래 가진 토지는 이미 지주에게 빼앗긴 경우가 많았고, 새로 할당된 토지는 장기간 상환금이 부담되어 있는 토지라서 매입금 부담이 큰 것이었습니다. 또 할당된 토지가 농촌공동체(미르)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 더보기
러시아사 8 - 니콜라이 1세 니콜라이1세 19세기 러시아는 농노제적 후진사회가 계속되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는 이러한 러시아를 개혁할 방안을 찾았는데, 이것이 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내각제를 도입하여 새 관료조직을 마련하면 사회개혁을 될 것이다... 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을 토지 귀족이 오히려 독점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전제적인 지배는 계속되는데, 그 형태만 바뀌어서 토지귀족이 직접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토지귀족이 관료조직을 통해 국가를 다스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유럽의 자유주의 물결은 계속 러시아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일부 토지귀족과, 젊은 장교, 대학생 등의 지식인들은 농노제 및 전제정치 폐지를 희망하여 비밀결사조직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추진한 것이 데카브리스트의 난입니다. 이 난의 주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