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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이사금

신라 이사금과 김수로 이사금 시대의 발전 음즙벌국이 실직곡구과 더불어 땅을 다투다가 왕(신라 파사이사금)에게 와서 결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왕이 이를 난처히 여겨, 금관국의 수로왕이 연세도 많고 식견도 깊이니 불러 물어보자고 하였다. 수로가 논의하여 그 땅을 음즙벌국에 속하게 하였다. 이에 왕이 6부에 명하여 수로왕에게 향연을 베풀게 하였는데, 다섯 부에서는 모두 이찬을 주로 삼았으나 한기부만이 지위가 낮은 자를 주로 삼았다. 수로왕은 노하였다. 노비인 탐하리에게 시켜 한기부주 보제를 죽이고 돌아갔다. 노비는 도망하여 음즙벌주 타추간의 집에 숨었다. 이사금이 사람을 시켜 노를 찾아오라 하였는데, 타추가 이를 보내주자 않자 군사를 일으켰다. 파사이사금 23년(102) 8월, 왕이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음즙벌국을 치니 그 왕.. 더보기
대가야와 사로국의 전쟁 대가야와 사로국의 전쟁 탈해이사금 21년(서기 77) 8월에 아찬 길문이 가야 병사와 황산진(양산 낙동강 나루터로 추정) 하구에서 싸워 천여급을 얻었다. 파사 이사금 15년(서기 94) 2월에 가야가 마두성을 에워싸자 아찬 길원이 기병 천명을 거느리고 차니 달아났다. 기마 이사금 4년(서기 115) 8월에 장수를 보내 가야를 치게 하고 왕이 정예병 만명을 거느리고 따르니, 가야가 성에서 나오지 않고 굳게 지켰다. 마침 장마가 와서 돌아왔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 사료해석 : 이 사료는 금관가야의 전성기에 사로국(진한 신라국)과의 전쟁을 담은 사료입니다. 금관국 가야가 적극적으로 사로국과 전쟁을 벌이려고 했던 이유는 아마도 다른 가야 소국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전쟁이라는 수단을 이용했었던 듯 싶습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