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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일

백제 멸망에 대한 사료 백제 멸망에 관한 사료 3월에 당 고종(高宗)이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소정방(蘇定方)으로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을 삼고 김인문(金仁問)으로 부대총관(副大摠管)을 삼아, 좌요위장군(左饒衛將軍) 유백영(劉伯英) 등 수군과 육군 30만명을 거느리고 가서 백제를 치게하고, 왕(무열왕)으로 우이도행군총관(?夷道行軍摠管)을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응원하게 하였다. 5월 26일에 왕이 유신, 진주, 천존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장에 다다랐다. 소정방은 내주에서 출발하니 전함이 천리에 뻗쳤는데 동쪽을 향하여 순류를 타고 내려왔다. 21일에 왕이 태자 법민(法敏)으로 병선 백척을 이끌고 덕물도(德物島)에서 정방을 맞게 했다. 정방이 법민에게 말하였다. [나는 7월.. 더보기
계백 장군과 화랑 관창의 이야기 계백장군과 화랑 관창 관창은 신라 장군 품일의 아들로 모습이 우아하였으며, 어린 나이에 화랑이 되어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 나이 16세에 말타고 활쏘기에 능숙하였다. 대감인 어느 사람이 태종대왕에게 관창을 천거하여 당나라 현경 5년 경신에 왕이 군대를 내어 당나라 장군과 더불어 백제를 칠 때 관창을 부장으로 삼았다. 황산 밑에 이르러 양쪽 군대가 서로 대치하자 아버지 품일이 말했다. [너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뜻과 기개가 있으니 오늘은 바로 공명을 세워 부귀를 얻을 때다. 어찌 용맹이 없을 수 있겠느냐?] 관칭은 [알았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곧바로 말에 올라 창을 비껴들고 적진에 곧바로 진격하였다. 망을 달리면서 몇 사람을 죽였으나 상대편 수가 많고 이쪽은 군사가 적으므로 볼모가 되었다. 산 채로 백제 .. 더보기
관창 이야기 관창 이야기 관창은 신라 장군 품일의 아들이다. 외모가 우아하여 젊어서 화랑이 되었는데, 남과 사귀기를 잘하였다. 열여섯이 되어 말을 타고 활쏘기를 잘하니 대감인 오느 사람이 태종대왕에게 관창을 천거하여 당나라 현경 5년 경신(태종무열왕 7년, 660)에 왕이 군대를 내어 당나라 장군과 더불어 백제를 칠 때 관창을 부장으로 삼았다. 황산벌에 이르러 양쪽 군대가 대치하자 아버지 춤일이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관창이 라고 대답하고는 곧바로 말에 올라 창을 빗겨들고 적진에 곧바로 진격하여 말을 달리면서 몇 사람을 죽였으나, 상대편 수가 많고, 우리 편 수가 적어 적의 볼모가 되었다. 볼모로 백제 원수 계백 앞에 끌려갔다. 계백이 투구를 벗기자 관창이 어리고 용기가 있음을 아끼어 죽이지 못하고 탄식하길, 하고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