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후기 호족세력의 대두 사료
백성들이 조세를 바치지 않았으므로 창고가 비고 말라서 국가의 재정이 궁핍했다. 이에 왕이 사자를 보내 독촉하니 이로 인해 사방에서 도둑이 봉기하였는 바, 원종, 애노 등이 상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삼국사기> 진성여왕 왕 l3년 봄에 백성들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자손들을 팔아서 생활하였다. <삼국사기> 헌덕왕 신라가 말년에 쇠약해져서 정치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흩어지며, 주현이 배반하고 귀부하는 자가 서로 반씩이 되는 한편, 도적들이 벌떼같이 일어나고 개미처럼 꼬여 들었다. <삼국사기> 궁예 진성왕 6년에, 아첨하는 소인들이 왕의 곁에 있어 정권을 농간하매 기강은 문란해지고, 기근까지 곁들여 백성들이 유망하고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에 견훤은 은근히 반역의 마음을 품고 무리를 모아 서울 서남쪽 주현들을 치니, 가는 곳 마다 호응하여 그 무리가 달포 사이에 5천여 명이나 되 었다. 견훤이 인심을 얻은 것을 기뻐하여 이르기를, "내가 삼국의 기원을 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 나고 후에 혁거세가 일어났으므로 진한, 변한이 따라 일어났다. 지금 내가 도읍을 완산에 정하고 어찌 의자왕의 오랜 분을 씻지 아니하랴." 하고 드디어 후백제왕이라 칭하였다. <삼국사기, 견훤> 궁예가 이르기를 "옛날에 신라가 당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기 때문에 옛 서울(평양)이 황폐해져서 풀만 무성하니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으리라.'하였다. <삼국사기, 궁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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