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불교와 정토사상 사료
원효는 언제나 술에 취한 채 방방곡곡 촌락을 누비며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다니며 불도를 전하였다. 이 때문에 뽕 따는 늙은이에서부터 무뢰배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고, 나무아미타불이라는 합장의 미덕을 알았으니, 원효의 교화가 참으로 컸다 하겠다. <삼국유사> 원효 왕이 백좌인왕경 대회를 설치하고 두루 덕이 높은 승려들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이 명망이 높은 원효를 천거하였으나, 여러 승려들이 그를 미워하여 왕에게 나쁘게 말하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효가 금강삼매경론의 소(불경의 주석)를 강론하는 날 왕과 신하, 승려 등 많은 사람이 법당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원효가 큰 소리로 "옛날 서까래 백 개를 구할 때는 비록 참가하지 못하였으나, 오늘 대들보를 눕히는 데는 나 혼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하니 여러 승려들이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 하였다. <송고승전. 원효> 정토의 근본 뜻은 본래 범부를 위하는 것이고, 겸하여 성인을 위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원효,유심안락도> 헛되고 헛된 논의가 구름이 달리듯하여, 흑은 말하기를 내가 바르고 남은 바르지 못하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내가 옳고 남은 옳지 못하다 하여, 드디어 그러한 형세가 강물과 같이 되었다. 원효의 속성은 설씨다. 그의 할아버지는 잉피공이다. 또한 적대공이라고도 한다 ... 그의 아버지는 담날내마이다. 원효는 처음에 압량군의 남쪽 불지촌 북쪽 밤나무골의 사라수 아래에서 탄생했다. 이때 요석궁에 과부 공주가 있었다. 왕은 궁리를 시켜 원효를 찾아 요석궁으로 맞아들이게 했다. 궁리가 칙명을 받들어 원효를 찾으려 하는데 벌써 남산으로부터 내려와 문천교를 지나오므로 만나게 되었다. 원효는 일부러 물 속에 떨어져 옷을 적셨다. 궁리는 성사를 요석궁으로 인도하여 옷을 말리게 하니 그 곳에서 머물러 있게 되었다. 공주가 아기를 배더니 설총을 낳았는데, 설총은 나면서 총명하여 경서와 역사책을 널리 통달했다. ... 원효는 이미 계를 범하고 설총을 낳은 후로는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일컬었다. 우연히 광대들이 놀리는 큰 박을 얻었는데,그 모양이 괴이했다. 성사는 그 모양대로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의 '일체 무애인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 난다.'란 문귀에서 따서 이름지어 무애라 하며 이내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 일찍이 이것을 가지고 많은 촌락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고 음영하여 돌아왔으므로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무리들까지도 모두 부처의 호를 알게 되었고, 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되었으니 원효의 법화는 컸던 것이다. <삼국유사> 권4 의해5 원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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