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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신라 6두품들의 활동 사료 - 7차 교과서

신라 6두품들의 활동 사료 - 7차 교과서

1) 무열왕이 즉위하자 당나라 사자가 와서 조서를 전하였는데, 그 가운데 읽기 어려운 곳이 있었다. 왕이 강수를 불러 물으니 조서를 한번 보고 해석하는데 의심스럽거나 막힘이 없었다. ......문무왕이 말하기를, "강수는 문장으로 자기의 임무를 다하여 중국과 고구려, 백제 두 나라에 의사를 잘 전달하였기 때문에 우호를 맺는데 성공하였다. 우리 선왕 (융포:무열왕)께서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한 것은 비록 무공이라 하지만, 또한 문장의 도움도 있었으니 강수의 공을 어찌 소흘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삼국사기> 강수

2) 신라는 당나라와 조공한 이후 항상 왕자를 보내 숙위를 시켰고, 학생을 보내 대학에 입학시켜 공부하게 하였다. 이들은 l0년을 기한으로 귀국케 하였으며, 계속 파견된 입학생이 100여 명에 이르렀다.  

<동사강목> 진성여왕

3) 최치원은 당에 유학하여 깨달아 얻은 바가 많았으므로 귀국하여 이를 널리 펴 보려는 뜻을 가졌으나, 그가 귀국했을 때는 난세가 되어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스스로 때를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여 다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은둔하여 책속에 파묻혀 세월을 읊으며 보냈다.

<사기>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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