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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해상왕 장보고와 청해진 관련 사료

해상왕 장보고와 청해진 관련 사료

장보고(張保皐)와 정년(鄭年)은 모두 신라 사람이나, 그들의 고향과 조상은 알 수 없다. 두 사람이 모두 싸움을 잘 하였는데, 년(年)은 그밖에 바다 밑으로 들어가 50이를 가면서도 물을 내뿜지 않았다. 그 용맹과 씩씩함을 비교하면, 보고(保皐)가 년에게 좀 미치지 못하였으나, 년이 보고를 형이라 불렀다. 보고는 연령으로, 년은 기예로 향상 맞서 서로 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모두 당에 가서 무령군소장(武寧軍小將)이 되어 말을 타고 창을 쓰는데, 대적할 자가 없었다.  

후에 보고가 귀국하여 대왕(大王)을 뵙고 말하였다. "중국의 어디를 가보나 우리 사람들을 노비로 삼고 있습니다. 청해(淸海)에 진영을 설하고 해적들이 사람을 약취하여 서쪽으로 데려 가지 못하게 하기 바라나이다." 청해는 신라 해로의 요지로 지금의 완도라 하는 곳이다. 대왕이 보고에게 군사 만인을 주어 청해에 진(鎭)을 두고 지키게 하니, 그후로는 해상에서 국인(國人)을 파는 자가 없었다.

(《三國史記》44 列傳4 張保皐)  

4월에 아찬(阿瑗) 우징(祐徵)이, 부친인 균정(均貞)이 죽음을 당했으므로 원한 있는 말을 하니, 김명(金明)과 이홍(利弘) 등이 이에 분노하였다. 5월에 우징은 화가 미칠까 두려워서 처자와 함께 황산구진(黃山口津)으로 달아나서 배를 타고 청해진대사 궁복(弓福)에게 가서 의지하였다.

(《三國史記》10 新羅本紀10 僖康王 2年) 

개성(開成) 2년 8월에 전(前) 시중(侍中) 우징(祐徵)이 잔병(殘兵)을 거두어 청해진으로 들어가 대사(大使) 궁복과 결탁하여 불구대천의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김양(金陽)이 소식을 듣고 모사(謀士)와 병졸을 모집하여 3년 2월에 해중(海中)으로 들어가 우징을 만나보고 함께 거사할 것을 모의하였다. 3월에 강병(强兵) 5천인으로서 무주(武州)를 습격하여 성 아래에 이르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항복하였다. 다시 나아가 남원(南原)에 이르러 신라군과 마주 싸워 이겼으나 우징은 군사들이 피로한 것 같아 해진(海鎭)으로 돌아가 병마를 쉬게 하였다. … 12월에 다시 출동하매 김양순(金亮詢)이 무주 군사를 데리고 와서 합류하였다. 우징은 또 날래고 용맹한 염장(閻長)·장변(張弁)·정년(鄭年)·낙금(駱金)·장건영(張建榮)·이순행(李順行) 등 여섯 장수를 시켜 병사를 통솔케 하니 군용이 매우 성하였다. 북을 치며 행진하여 무주 철야현(鐵冶縣) 북쪽에 이르니 신라의 주대감(州大監) 김민주(金敏周)가 군사를 이끌고 맞받아 쳤다. 장군 낙금·이순행이 기병 3천으로 저쪽 군중에 돌격해 들어가 거의 다 살상하였다. 4년 정월 19일에 군사가 대구(大丘)에 이르니 왕이 군사로써 항거하므로 이를 받아치자 왕의 군사가 패하여 달아나고 생포된 자와 목베인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이 때 왕이 허겁지겁 이궁(離宮)으로 도망해 들어가니, 군사들이 마침내 그를 찾아내 살해하였다.

(《三國史記》44 列傳4 金陽)  

문성왕(文聖王) 8년(846) 봄에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궁복(弓福)이 자기 딸을 왕비로 맞지 않는 것을 원망하여 청해진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 조정에서는 … 근심에 싸여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때 용장(勇壯)의 사(士)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무주인(武州人) 염장(閻長)이란 자가 와서 고하기를 조정에서 만일 자기의 말을 들어준다면 자기는 일개 병졸도 수고스럽게 하지않고 맨주먹으로 궁복의 목을 베어 바치겠다고 하였다.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염장은 거짓으로 나라를 배반한 양하여 청해진에 투항하니 궁복은 장사를 사랑하는 터라 아무 의심 없이 그를 맞아 상객(上客)으로 삼고 함께 술을 먹으며 환락하였다. 궁복이 취하자 염장은 그의 칼을 빼어 목을 벤 후에 그의 무리를 불러놓고 달래니 그들은 땅에 엎드려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 13년 2월에 청해진을 파하고 그곳 백성들을 벽골군(碧骨郡)으로 옮겼다.

(《三國史記》11 新羅本紀11 文聖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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