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9 기자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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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초의 포로였다 - 유일연(코리아 타임즈 기자) ... 4월 19일 하오 1시경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학생들의 장면을 보고는 분통과 전율 속에서 전 신경들이 마비되어 갈 듯하여 맥없이 속으로 울었다. 장작깨비와 민심 - 한성의(동아일보 부산주재기자) ... 4.19혁명을 이룩한 것은 물론 학생들의 고귀한 피의 대가이기는 하나, 그러한 혁명의 무기가 되고 방법이 되고 행동이 된 데모는 이미 3.1 독립운동때 세계적 침략의 원흉 일제에 항거한 순국선열로부터 물려받은 거룩한 전통인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3.15 정부통령 선거 전부터 치열해진 학생들의 데모는 바로 혁명의 전초전 이라고 보았다. 핏자욱 따라 - 김형만(조선일보 마산 취재 특파원) ... 배움의 전당을 저버리고 불의와 부정에 용감히 항거한 이 나라 학도들의 힘은, 12년 이승만 독재정권을 물리친 영원한 횃불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산사건 기사취재는 기자의 수난기였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한 것에 대하여 경찰은 그 출처를 강요하는가 하면 공공연하게 협박적 태도로 판을 치는 등 그들만이 사는 판국이였다. 암흑의 마산에서 - 정효정(연합신문 취재부장) 암흑도시로 화한 마산시가의 요소마다 작업복에 완전무장한 경찰관들...콩볶는 듯한 총성은 도처에서 메아리 쳤고 ... 선혈을 뿌리며 쓰러진 흔적만이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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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는 공산세력과 친일세력이 합작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역사에 관심은 많으신데 제대로 아는 사실은 하나도 없군요.
참 애석합니다.
이렇게 자국의 역사를 비하하고 패배주의적인 사관을 가지고 계시다니..
하루라도 빨리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십시오.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인데,
혹시 블로그를 하신다면 이런 말씀을 올리지 말아주세요...
4.19가 공산세력이 일으킨 것이면, 5.18은 이슬람 세력이 와서 테러한 것이겠네요.
4.19를 높이 평가하면 패배주의 사관이라...
그럼 4.19 혁명 때 죽은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먹다 미끄러져 죽었다고 해야 긍지높은 역사의식이 생길까요?
더 쓰기가 귀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