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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항상 영웅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영웅은 하나의 상품이다. 박찬호를 보기 위해 미국 방송사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고, 박지성이란 영웅을 보기 위해서는 영국 방송사에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영웅에 길들여지기 까지 수십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수많은 지구 영웅들을 보면서 살아왔다.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심지어 일본의 아톰까지.... 반골적인 성향을 가졌거나, 빈미적인 성향을 가진 어떤 이들은 이 수입 영웅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고 한다. 그 슈퍼맨은 미국이란 나라를 이끌어가는 슈퍼영웅이지, 머털도사처럼 우리에게 친근한 영웅이 아니였으니까... |
지구영웅전설의 작가 박민규는 이러한 반골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게 통쾌한 웃음을 던져줄 수 있는 소설로 데뷔하였다. 이 소설은 소설인지 아닌지조차 애매할 정도의 플롯으로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 소설의 묘미는 패러디에서 만화적 요소로, 그리고 다시 삼류 애로틱 소재에서 하이 코미디로 넘나드는 작가의 일관된 사상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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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은 백인이 아닌 황인종 남자, 그것도 물건을 팔아먹기에는 턱도 없이 인구가 부족한 반쪽 짜리 나라 대한민국 사람이다. 하지만, 그 역시 슈퍼맨에게는 필요한 존재라고 한다. 냉전이 사라지고, 슈퍼맨은 공식적으로 죽었지만... 슈퍼맨은 살아있다. 그는 오늘도 <정의>를 위해 지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슈퍼맨의 힘은 20세기 초반에나 위대했으니까... 자본이 중요한 세상에서는 돈 많은 베트맨이 더 중요해졌고, 평온한 세상에서는 사람들에게 섹시함으로 어필하는 여잔사 원더우먼이 더 필요한 세상이니까...
그리고, 한국인 바나나맨도 소모품으로 필요한 세상이 왔으니까... 우스꽝스러운 영웅 바나나맨은 겉은 노란색이지만, 속은 하얀색이라는 이유로 영웅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영웅들이 정의를 위해 <빨갱이>라는 나쁜 무리들을 처단하면서, 누런 인종을 친구로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슈퍼맨이 가진 것은 절대적인 힘과 파워... 그리고 초능력이다. 초능력은 범접할 수 없는 절대성을 상징한다. 그것은 끝없이 뻗어나가는 20세기 미국의 절대성을 보여준다. |
이 책은 너무나 뻔한 답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주의 국가, 제국주의 국가의 속성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읽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아는 답들을 이렇게 속 시원하게 적을 수 있는 책은 이 책밖에 없으니까...
이 책은 노련한 소설가가 적는 치밀한 서사구조와 각종 은유, 직유, 대조, 영탄법... 어쩌구 하는 방식은 싸그리 무시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 담긴 것은 아주 단순한 과거, 현재 주인공의 시간 구조와 미국의 영웅들, 그리고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뿐이다.
그러나, 너무 재미 없는 다큐멘터리가 될 소재를 작가는 특유의 입담과 패러디로 끌고간다. 바나나맨은 죽었다 깨도 영웅이 될 수 없다. 그는 <백인>이 아니니깐... 하지만, 영웅들은 친구라는 말로 바나나맨에게 적당한 일거리를 준다.
베트맨은 평범하다. 슈퍼맨과 같은 초능력이 없다. 그러나, 그는 최첨단 무기로 적을 제압한다. 절대적인 힘보다는 자본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새로운 캐릭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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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설명하는 원더우먼의 이야기는 블랙코미디처럼 쑤욱~ 지나가 버린다. 야한 복장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꿔뚫어보는 원더우먼은 다른 영웅들과 달리 성적 호기심과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캐릭터이다. 군사독재 시절의 3s 정책이라던가, 007 시리즈의 본드걸이 생각나는 건 작가만의 생각이 아니였을 듯 싶다. |
바나나맨은 황색인종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은 영웅들의 친구다. 그런데, 바나나맨의 역할이 있듯이 영웅들 역시 모두 자기 역할이 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거대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바뀌어 가는 가에 따라 영웅들의 서열은 바뀌고, 새로운 영웅이 만화 회사에 의해 탄생하게 된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국의 영웅 헐크 호건이 이슬람 레슬러들을 제압했듯이, 미국의 영웅들은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에 의해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 영웅들은 끊임없이 우방에 수출되고 있다. 우방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어느 날, 바나나맨은 버림을 받고 정신병원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나, 바나나맨은 항상 영웅들과의 모험을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영어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지만, 그는 영웅과의 시간들을 추억으로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슈퍼맨이 돌아와 남기는 한 마디는 <잊고 살아... 우리는 친구야...>라는 말이지만, 그 한마디로 감격해서 바나나맨은 세상을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단 1가지 불만은, 이 소설이 박민규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좀더 많은 작품을 쓰고 난 뒤 이 작품이 나왔으면 결말이 이렇게 식상하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바다의 영웅 아쿠아맨은 전세계의 바다를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정보를 제공받고, 정보를 탐지하는 정보화 시대를 미리 예견한 영웅의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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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비판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대사로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미국은 그래.. 이런 성격의 나라야...>라는 뻔한 결론이 아니라 기발하고 창의적인 결론으로 약간은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난 소설같지 않은 소설인 이 작품을 강추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 영웅들은 어떤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그 영웅들의 한꺼풀을 벗겨보면 어떤 얼굴이 그 속에 숨어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