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I S T O R I A>

제 5회. 역사 문제 풀어보기...

2008년 9월에 올렸던 5회 문제입니다. 자동채점에 오류가 있어서 다시 수정해서 올립니다.....

1번 문제에 오류가 있어서 채점시 1번문제가 무조건 틀리게 나옵니다... 다른 건 다 수정했는데 1번은 수정이 안되네요... 점수가 90점이라면.... 100점이라고 생각하세요... ㅎㅎ

1. 다음 뮤직비디오를 보고 물음에 답하시오.

1. 위 영상은 독일그룹 <징기스칸>이 부른 <징기스칸>이다. 다음 중 가장 사실과 근접한 내용은?
① <칸, 한, 선우> 등의 명칭은 유목부족국가의 지배자와 관련있는 명칭이다.
② 징기스칸은 북송을 멸망시키고 중국대륙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③ 징기스칸이 죽은 뒤 그의 광대한 영토는 모두 막내 아들 툴루이에게 상속되었다.
④ 중국대륙에 <원>을 세운 것은 징기스칸의 아들은 차가타이였다.
⑤ 제베는 징기스칸의 스승이였다.

 

2. 다음 플래시 파일의 스피커 모양을 클릭하여 음성을 들어주세요.

2. 위 연설은 로마 공화정 시기 <그라쿠스 형제>가 민회에서 한 말이다. 이 연설을 토대로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닌 것은?
① 당시 지배층들은 라티푼티움이라 불리는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② 그라쿠스 형제는 백성들의 대표인 호민관 이였다.
③ 그라쿠스 형제는 카이사르(시저)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④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⑤ 형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각각 시기를 달리하여 선출되었다.

 

3. 아래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해주세요. 

  자유와 평등을 근본이념으로 하는 근대적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봉건사회에서 직접 제국주의 식민지 사회로 이행한 우리 역사는 세계사의 조류와 격리된 채 36년간 암흑 속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였다. 그것은 자기 말살의 역사요 자기 모독의  역사요 노예적 굴종의 역사였다. 

  다행히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이 참담한 이민족의 겸제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자기 광정의 여유를 가질 겨를도 없이 태동하는 현대의 진통을 자신의 피로써 감당하게 된 것은 진실로 슬픈 운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자유의 적을 쳐부수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또 다시 역사를  말살하고 조상을 모욕하는  어리석은 후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자기의 무능과 태만과 비겁으로 말미암아  자손만대에 누를 끼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이 역사적 사명을 깊이 통찰하고 지성일관 그 완수에 용양매진해야 할 줄로 안다. 

  이 민족사생 관두에서 우리는 과연 유신창업의 기백과 실천이 있었던가? 사를 위하여 공을 희생한 일은 없었던가? 정치인은 과연 구국대업에 헌신하고 발분망식하였던가? 민은 과연 대를 위하여 소를 버릴 용의가 있었던가? 우리는 서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음을 지극히 유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지중한 시기에 처하여 현재를 해결하고 미래를 개척할 민족의 동량은 탁고기명의 청년이요 학생이요 새로운 세대임을 확신하는 까닭에 본지는 순정무구한 이 대열의 등불이 되고 지표가 됨을 지상의 과업으로 삼는 동시에 종으로 오천 년의 역사를 밝혀 우리의 전통을 바로잡고 횡으로 만방의 지적 소산을  매개하는 공기로서 자유, 평등,  평화, 번영의 민주사회 건설에 미력을 바치고자 하는 바이다. 

  오직 강호의 편달을 바랄 뿐이다. 

3. 제시된 내용은 1953년 사상계 창간호에 실린 글이다. 위 글로 미루어보아 당시 사회적 상황과 연관없는 것은?
① 냉전 논리에 의해 국내 좌파들이 탄압받고 있었다.
② 독재정권의 연장을 위한 개헌이 이루어지는 시점이였다.
③ 박헌영은 국내 좌파들을 규합하여 인권 운동을 전개하였다.
④ 정치 깡패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정치 현실이 암울하였다.
⑤ 당시 통일정책은 대북 북진 통일 정책 노선으로 반공정신이 강조되었다.

 

4. 다음 뮤직비디오를 감상한 뒤 물음에 답해주세요.

4. 위 영상은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 3집 당시 뮤직비디오이다. <발해를 꿈꾸며>라는 제목의 영상은, 영상 사이사이에 고구려와 발해에 관련된 문서들을 삽입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위 영상에 삽입된 <발해고>의 원 저자는 누구인가?
① 장지연
② 신채호
③ 정인보
④ 유득공
⑤ 정약용

 

5. 다음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라와 왜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사들 모음입니다.

천황이 궁으로 나오셨다. (중략) 천황은 제신에게 묻기를, <어느 정도의 군사가 있으면 신라를 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신하가 간하기를, <적은 군사로는 쉽사리 치기가 어렵습니다. 신라에 대한 원한은 오래 되었기에 쉽사리 치는 것은 안됩니다>라고 말하였다.

- 흠왕 원년 9월 5일 -

백제가 달솔 등을 보내 말하기를, <금년 7월 신라는 힘을 믿고 세력을 만들어 이웃과 친하지 않고 당나라 인을 끌어들여 백제를 전복시키고 순신을 모두 포로로 하여 거의 살아님은 자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 제왕 6년 9월 5일 -

천황이 지시하기를,

<신라는 작고 추한 나라이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난폭하다. 나의 은혜와 의리를 모르고, 관을 파괴하였다. 내 백성을 해치고 내 군현을 부수었다. 우리 신공황후는 영묘하고도 총명하셔서 천하를 주행하셨다. 많은 서민을 위로하고 만민을 향육하였다.

신라가 궁하여 귀순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 신라왕이 살해되려는 것을 살려주고 신라에 중요한 땅을 주었다. 신라의 편을 들어 영화를 누리게 하였다. 우리 신공황후가 신라에 박하게 대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백성이 신라에 원한을 갖게 한 것이 무엇인가?

그럼에도 신라가 긴 창과 강한 활로 임나를 강곡하고 큰 이빨과 날카로운 손톱으로 인민을 학대하였구나.

- 흠왕 23년 6월 -

이 때 신라의 조공사 지만 등이 당나라 옷을 입고 항구에 정박하였다. 조정에서는 마음대로 복제를 바꾼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여 문책하여 쫒아내었다. 대신이 주상하여, <지금 신라를 치지 않으면 후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 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난피진에 배를 가득 띄워서 신라를 불러서 그 죄를 물으면 쉽게 굴복할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 효덕 2년 -

무릇 백제와 신라의 풍속은 사망자가 있을 때 부모 형제 부부 자매라 하더라도 스스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보면 몹시 자애가 없어 금수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 성극 원년 5월 22일 -

신라는 사인을 보내 주를 헌상하였다. 그 사인은 산리가 임나를 멸하였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천황의 은혜에 배반하였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가지 않겠다고 청하였다. 그래서 머물러서 본토에 돌아가지 않았다. 천황의 백성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 흠명 23년 7월 -

신라는 사인을 보내 헌상품과 주를 바쳤다. 사인은 신라가 임나를 멸하여서 천황이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감히 돌아가겠다는 청을 못하고 처벌을 두려워하여 본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후에 천황의 백성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 흠왕 23년 11월 -

5. 위 지문을 통해 추론했을 때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한 사람은?
① 원걸 소희 : 신공황후는 정말 위대한 역사속 인물이구나
② 소시 윤아 : 당시 왜는 백제와는 우호관계였지만 신라와는 앙숙이였네
③ 빅뱅 승리 : 일본 천황이 한반도 일에 간섭할만큼 강했었구나
④ 슈주 강인 : 이 기록들은 모두 신뢰할 만하네
⑤ 브아걸 가인 : 이 글들은 모두 삼국시대에 씌여진 것이 확실하구나.

 

6. 다음은 18세기 이탈리아의 상황을 보여주는 한 인물의 일대기입니다.

베니스의 상인들로 유명했던 베네치아 공화국.

그러나 신항로 개척이후 이곳은 2류로 전락하였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는 18세기 환락의 도시로 바뀌고 말았다. 강대한 오스만 투르크의 무력 앞에 숨죽인 이 작은 도시는 귀족들이 다스리는 작인 자치 공화국일 뿐이었다.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귀족도시 베네치아.. 이 작은 도시는 철저하게 정치적 탄압을 이어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환락 뿐이었다. 모든 것은 쇼이고, 오락이고, 스포츠였다. 남자들의 관심은 아름다운 여성 뿐이었고, 이 도시의 축제는 유럽의 첨단 유행을 이끌었다. 평민들도 명문가의 저택에 들어갈 수 있었고, 수녀도 도박장에서 술을 마시는 도시가 되었다.

그는 18세기 유럽이 낳은 최고의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음악 연주와 말솜씨. 배우였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끼는 최고였다. 그는 최고 신분인 성직자에 오르고 싶었다. 천재적인 사교가였던 그는 수많은 귀부인과 귀족 여성들을 자기 방으로 끌어들여 신분상승을 꿈꾸었다. 수백명의 여인을 사귄 그는 바람둥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결국 그는 종교재판소에 의해 <호색한>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극적으로 탈옥한다. 그리고, 18세기 계몽사상은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계몽주의 여성들과 대화를 나눈 그는, 프랑스 정부의 환심을 사서 정부의 <스파이>로서 활동한다. 그는 볼테르의 계몽사상을 신봉하여 그를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그는 영국, 동유럽 등을 돌면서 18세기 모든 사회 변화를 직접 몸으로 겪은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교회에 의해 <낙인>찍힌 그가 갈 곳은 없었다. 그는 결국 <프란체스카>라는 착한 여자를 만나 개과천선하고 새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가 쓴 글 중에 유력 귀족의 사생활을 폭로한 글이 문제가 되어 또다시 방랑을 시작한다. 생애의 마지막 10년... 그는 한적한 시골에서 <회상록>을 집필한다.

그 무렵 프랑스 혁명군의 나폴레옹은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켰다. 환락과 축제의 고향은 망했다. 환락의 시대에 태어난 그는, 혁명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 나폴레옹을 바라보면서 자신 역시 역사속으로 사라져야 함을 느꼈다. 고향은 사라졌고, 희대의 탕아로 낙인찍힌 그는 73세의 나이로 먼 이국 땅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죽었다.

6. 근대 베네치아와 유럽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위 인물은 누구인가?
① 돈 주앙
② 카사노바
③ 나부코
④ 베르디
⑤ 피가로

 

7. 아래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당나라 측천무후와 법장은 이 종파를 공식으로 인정하였다.

2. 이 종파의 핵심 사상은 <진심> 이다. 

3. 의상의 <하나는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은 하나다>라는 원융 합일 사상을 주장하였다.

4. 불교의 각 종파는 바다 속의 물고기와 같다. 그러나 이 종파는 그 물고기들을 아우르고 있는 큰 대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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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컨대 이 금사자의 본체는 금이라고 하는 질료이고 사자의 모습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금사자의 형상은 허무하여 실제가 없고 변동합니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한 무더기의 금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한 무더기의 금으로 고양이나 개, 호랑이의 형상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바로 오늘의 홍안이 내일의 백발로 되어 버림을 우리가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지, 수, 화, 풍 등 네 개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현상으로서의 사건은 비록 변할지라도 볼질로서의 그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사자의 모습이 늙어갈지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의 본질이란 결국은 그 현상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마치 금사자의 형상이 없다면 그 존재마저도 알 수 없음과 같지요. 마찬가지로 육체라고 하는 껍데기가 없다면 인간의 본질이라 할 정신도 발휘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과 그 원리는 상호 의존하고 보완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7. 위 지문으로 미루어보아 가장 관련있는 동아시아 불교 종파는 무엇일까?
① 조계종
② 계율종
③ 성실종
④ 삼론종
⑤ 화엄종

 

8. 아래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김용의 베스트셀러 소설 <소오강호>를 보면, <소오강호>라는 곡으로 만나 선과 악의 구분을 잊고 음악으로 하나가 된 유정풍과 곡양이 나온다. 그들은 그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고대 무덤까지 파해쳤다는데, 그들이 찾고자 한 악보는 바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이 사람의 <광릉산>이었다.

2.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그는 거문고 연주를 잘하는 숨은 기인이었다. 그러나, <광릉산>을 알게 된 후 그는 자신의 연주에는 감정이 없음을 탄식하고, 광릉산 이야기를 마음 깊이 새겼다고 한다.

3. 춘추 전국시대... 진나라가 통일을 하기 위해 한을 공격하려고 하자 한의 대신 협루가 진과 내통하여 돈과 관직을 받고 한을 팔아넘기려 하였다. 이 때 대신 엄중자가 이에 분개하여 제나라로 망명하였는데, 이 때 백정출신인 섭정을 만났다. 섭정은 엄중자의 간청을 받아 한나라로 가서 협루를 죽인 뒤 자신의 얼굴을 못알아보게 하려고 자신의 얼굴과 신체를 으깬 뒤 죽었다. 한나라는 그 시체를 길에 버리고 누구인지 밝히려고 하였다. 이 때 섭정의 누이는 목숨을 걸고 시체옆에서 울어서 그 시체가 자신의 동생 시체임을 알리고, 동생이 <대의>를 행하였음을 알린뒤 자결하였다. 이들의 정의로움을 노래한 악보가 <광릉산>이다.

4. 그는 속세에 숨어 살며 은둔하려고 하였다. 사마씨가 다스리는 더러운 세상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그는 백정인 <섭정>만도 못하였다. 나라를 위해 한 일도 없는데 더러운 누명을 쓰고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죽림칠현이라는 허명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였는가? 죽는 순간 그는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죽는 것은 하나도 억울하지 않다. 그러나 '광릉산'아 , 너는 이후부터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으니 그것이 원통할 뿐이로다!"

그러나 광릉산은 누군가에 의해 그 후로도 전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8. 위 지문을 읽고 타당하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광릉산을 연주했던 인물은 죽림칠현을 대표하는 사람이였던 혜강이였다.
② 위 인물은 후한 말기 난세에 태어난 인물이다.
③ 당시 혼란했던 사회 때문에 노장사상이 유행하고 있었다.
④ 죽림칠현은 음악과 대화술 등에 능하였고, 각종 학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청담도 즐겨했다.
⑤ 광릉산에 대한 김용의 <소오강호> 악보는 실제 역사 속에 있었던 악보가 아니다.

 

9. 아래 음악 프로그램을 클릭하여 음악을 듣고 물음에 답하시오.

9. 위 음악은 홍서범의 김삿갓이다. 위 노래의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잘못된 것은?
① 당시 안동김씨가 집권했을 때 국왕은 순조였다.
② 당시 정치적인 문제는 정조 사망 후 세도가를 견제할 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③ 실제 살았던 연대로 보아 김삿갓은 이태백보다 후대 사람이다.
④ 실제로 조선 후기에 김삿갓처럼 양반직을 스스로 버릴 수는 없었다.
⑤ 안동김씨 세력이 관직을 돈으로 사고 팔기 위해 발행한 이름을 적지않은 관직임명장을 공명첩이라고 하였다.

 

10. 아래 지문은 어느 철학자의 유명한 저서에서 발췌한 말이다.

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 그의 철학에서는 왜 신의 존재가 사라졌는가? 그는 세계에 운동을 주기 위해 신의 손가락을 필요로 하였다. 그 다음에는 신을 찾지 않았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오만한 인간이여, 신의 말씀을 들어라>

인간은 수증기나 바늘침 하나로도 죽을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우주는 얼마나 광대한 것인가?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반면 우주는 자신이 강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인간이 위대한 점은 여기에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인 것이다.

10. 위와 같이 주장한 사상가의 철학과 상관없는 것은 무엇인가?
① 이 사상가는 파스칼이다.
② 그의 기독교적 신앙 사상을 안세니즘이라고 한다.
③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유명한 명상록의 제목은 <팡세>이다.
④ 그의 사상의 기본 배경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서 유래한다.
⑤ 그가 살았던 17세기는 신앙이 과학을 압도하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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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