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장군 이야기

나당(羅唐) 연합군 18만이 백제의 도성을 향하여 진격의 박차를 가해오자 의자왕은 전세가 급박함을 직감하고 달솔(達率)이던 계백(階伯)울 장군으로 삼아 황산벌 전장에 출정토록 하였다.

계백장군은 5천 결사대를 인솔하여 전장에 나가며 말하기를, '한 나라의 사람으로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하게 되니 국가의 존망을 가늠할 수가 없다. 내 처자가 적들에게 붙잡히어 노비가 되어 욕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차라리 쾌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하고 손수 처와 자식을 벤 후에 황산(黃山) 벌판에 이르러 삼영(三營)을 설치하고 신라의 5만 병사를 만나 싸웠는데 여러 장병들 앞에 맹세하기를 '옛날 월(越)나라의 구천(句踐)은 5천명의 군사로써 오(吳)나라의 70만 대군을 격파하였다. 오늘 각기 장병들은 각각 분발하여 승리를 결단함으로써 국은을 갚도록 하라'하고, 드디어는 물밀 듯이 쳐들어 가서 한 사람이 천명을 당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신라군은 드디어 격퇴 되었다. 이와 같이 서로 진퇴하며 네 번이나 싸워 이겼다.

  신라측에서는 군사의 기력이 다하고 백제군을 향하여 더 이상 진격할 용기를 잃게 되자 장군 흠순(欽純)이 아들 반굴(盤屈)을 불러 말하기를 '신하의 도리는 충성을 다 하과 같은 것이 없고, 자식의 도리는 효성된 일을 함과 같은 것이 없는데 이런 위급함을 보고 목숨을 내던지면 충과 효를 둘 다 이루는 것이라'하니, 반굴(盤屈)은 대답하기를 '삼가 아버님의 명령을 따르겠나이다.'하고 곧 적진(백제 진영)으로 뛰어들어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 때 신라의 장군 품일(品日)은 아들 관창(官狀~官昌)을 불러 말 앞에 세우고 모든 장병들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나의 아들은 나이가 겨우 16세이나 의지와 기개가 자못 용감하다. 너는 오늘의 급박한 전역에 사군의 표적이 되겠는가' 하니, '예' 하고 대답한 다음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말을 달려 백제 진영으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관창은 곧 잡히어 포로가 되었고 계백 장군의 앞에 불려가게 된다. 계백은 관창을 살려 보냈지만 관창은 다시 백제 진영으로 뛰어 드어와 싸우다 다시 붙잡힌다. 결국 계백 장군은 관창의 목을 베어 신라 진영으로 돌려 보낸다. 이에 감개 분발한 신라군에 의하여 백제군은 전멸하고 계백 장군 또한 전사하였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