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속 역사 여행

백안시와 군계일학 : 죽림칠현과 해소의 이야기

1. 완적 : 백안시와 청안시 이야기

이 이야기는 죽림칠현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지. 죽림칠현은 중국 진나라의 혼란기 노장사상을 흠모하고 정치를 멀리했던 7인조 그룹. 즉, 완적, 혜강, 왕융, 향수, 완함, 유형, 산도를 뜻해.

죽림칠현이 왜 등장했냐 물으면... 중국이 너무 난세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꺼야. 삼국지 알지? 조조랑, 유비, 원소 같은 애들 나오잖아. 그 혼란한 시기를 통일하려고 했던 조조의 위나라와 사마중달의 후예들이 세운 진나라가 바로 죽림칠현이 살았던 시기거든.

죽림칠현 중에서도 시대가 좀 위고, 사상적으로도 빼어난 중심적인 인물이 완적과 혜강이었어. 즉, 죽림칠현의 리더격이었지. 그 중 완적(210~263)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

우린 죽림칠현이 난세에 은둔하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죽림칠현의 멤버들은 사실 엄청나게 <정치적 수완>이 좋았던 자들이야. 생각해봐. 무능한 애들이 대나무 숲(죽림) 속에 숨어서 놀았다면 후대에 이슈가 될게 없잖아.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죽림칠현은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들이었고,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명문 귀족가문 출신들이었지.

완적 역시 명문가 출신으로 재능이 뛰어났지. 당시 위나라 왕은 완적을 관직에 등용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완적은 잠시 관직에 있다가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서 거절하곤 했어.

저기, 낙양 공기가 좀 안좋아서 그런지 자꾸 병이 납니다. 요양을 해야겠어요....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 고위직을 거부하고, 완적은 시골에서 거문고나 타면서 불안한 시대를 벗어나려고 했지. 그래서일까?

사마씨가 정변을 일으켜서 진나라를 세우고, 위나라의 관리들이 몰살당하고 때죽음을 당했어. 하지만, 선견지명을 가지고 정치에서 벗어나 거문고를 키며 놀았던 완강은 살아남았지.

이번엔 지배자 사마염이 완적을 자기 딸과 결혼시키려고 했어. 완적은 어떻게 거절했을까?

술가져와 술... 딸꾹... 마시고, 마시고, 흔들고, 또 마시고....

바로 이 방법이었지. 결혼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걍 계속 마시는 거야... 왕 앞에서 직접 거부했다가는 맞아 죽을지도 모르니 계속 퍼 마시는 거지.

그 남자가 살아남았던 이야기는 중국 정사에도 자세히 나와있어.

아픈 척 구르기, 술먹고 뻗기, 심지어 자고 자고 또 자고... 술 취한 척 자면서 버티기...

그런데, 다음 지배자 사마소는 명성이 높은 완적을 국가 정책에 홍보용으로 이용해 먹고 싶어서 아예 강제로 관직을 줘 버렸어.

 

완적의 방법은? 수도에서 먼 지방 관리를 자청한 다음에 가는 도중에 말을 타고 튀어 버렸지. 그리고 아름다운 강산을 구경하겠다면서 유람을 떠나 버려.

완적이 죽림칠현의 리더로 뽑히는 이유는, 이런 자유로운 생활 패턴이 큰 몫을 담당하지. 후배 죽림칠현들이 동일시 대상으로 삼을만 하잖아. 완적은 당시 사회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사상을 선보였는데, 그것이 은둔자들에게는 너무 멋져보였거든.

당시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술이랑 고기 먹고 떠드는 것이 금기 사항이었거든. 그런데 완적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술을 잔뜩 퍼먹고 술기운으로 슬픔을 토하기도 했어. 조문객들에게 예를 차리지 않고 자기 슬픔만 멋대로 토해낸 거야.

자, 여기서 <백안시>라는 고사가 등장한거지.

<백안시(白眼視)>는 <눈의 흰자위 부분>으로 사람을 쳐다보는 걸 뜻해. 완적은 예절을 잘 지키는 척하면서 몇마디 말이나 나누려는 사람을 그렇게 째려봤거든. 백안시는 <그를 경멸해서 차가운 대접을 한다>는 뜻이 되었어.

반대로, 예절같은 걸 무시하고, 거문고를 타며 술을 마시고 거리낌 없이 대하려는 사람에게는 <맑은 눈>으로 맞이하였지. 그래서 <청안시(靑眼視)>라는 말이 나온거야.

2. 혜강 : 광릉산의 이야기

완적과 쌍벽을 이루는 죽림칠현의 또 다른 리더는 혜강(223-262)이야. 완적보다는 약간 늦은 시기에 태어났지.

혜강도 명문가 태생이야. 아버지는 조조 군대의 참모였지, 어머니는 조조의 친척이었거든. 그래서 조씨집안의 위나라는 그를 높은 직위에 두려고 했지만, 혜강이 거부하지.

혜강은 완적과 같이 <관직>을 가지라고 달달 볶이지 않았지. 일단 자기 집안이 빵빵하잖아...

그래서 혜강은 <노장사상>을 연구하면서 청년기를 행복하게 보냈어.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수명을 연장하는 비법을 연구한다던가, 거문고를 타면서 신선이 되길 기원한다던가 하면서 보냈지. 그의 거문고 타는 솜씨는 당대 최고라고 불릴 정도였어.

그런데, 거문고 연주가 최고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무렵의 일이야. 뽕~ 하고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연주를 하는데, 그 연주가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는 거야. 흥분한 혜강은 그 노인과 대화를 시작했어.

노인 : 연주 기법은 훌륭하지만, 무릇 음악에는 감정이 들어가야 하는 법. 음악에 감정이 없구나.

혜강 왈 : 노인의 연주는 신기에 가깝군요. 감정의 비법이 무엇입니까?

노인은 자신이 연주한 광릉산의 유래를 설명하기 시작하지.

전국시대에 한나라의 대신 협루가 진나라와 내통해서 나라를 팔아 넘기려고 하자, 백정인 섭정이 분개해서 협루를 암살한 뒤에 신분을 감추려고 자신의 얼굴을 으깬 뒤 자결했어. 한나라는 그의 시체를 거리에 내걸었는데, 섭정의 누나가 동생의 의로운 행동을 알리려고 시체 앞에서 동생의 신원을 밝히고 자결해 버렸어.

혜강은 그 이야기를 듣고, 음악에는 감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 조씨의 위나라가 망하고, 사마씨의 진나라가 들어선거야.

그는 광릉산의 이야기처럼 간신들을 멀리하고, 새로운 왕이 주려던 관직을 거부했어.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살려고 했지.

하지만, 위나라 조조의 일족이었던 혜강은 자연에 숨어있었어도, 새로운 정권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어. 혜강은 결국 형장으로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

그리고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되.

내가 죽는 것은 억울하지 않지만, 광릉산아~ 네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원통하구나.

하지만, 광릉산은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지.

김용 소설 중에 유명한 <소오강호> 있지? 그 소오강호에 나오는 음악이 광릉산의 음악을 포함하고 있지. 소오강호에 보면, 마교장로 곡양과 형산파의 유정풍이 나오잖아. 진나라 시대 무덤을 모조리 파헤쳐서 광릉산을 찾아내고, 소오강호라는 곡을 만들어 정파와 사파가 나란히 연주하지. 그 소오강호가 동방불패를 물리친 마교 임영영이랑, 화산파 영호충에 의해 연주되잖아.

3. 해소 : 군계일학 이야기

해소는 혜강의 아들이야. 역시 재능이 뛰어났지. 아버지가 사형을 선고받고 죽었을 때, 11살이었어.

해소는 다른 죽림칠현들 덕분에 보호를 받으면서 자랐지. 죽림칠현인 산도는 진나라 사마염에게 해소를 적극 추천해서 혜소는 고위 관직에 오르게 되었고, 또 다른 죽림칠현인 왕융, 완함도 혜소를 지켜주려고 했어.

해소가 낙양에 오자 사람들은 혜소의 지혜와 기상에 감동을 받았어. 그래서 이렇게 표현했지.

해소를 보니 기상이 좋고, 의기가 있군요. 마치 학이 닭의 무리들 속에서 서 있는거 같으니, 군계일학(群鷄一鶴)입니다.

그러자, 죽림칠현은 이렇게 대답했지.

그런 아니야. 당신들은 해소만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그의 부친의 빼어남을 보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거야.

해소는 아버지를 빼어 닮았지. 거문고를 잘 탔고, 정치적인 수완도 뛰어났어. 그렇지만, 헤소는 완적과 혜강이 가진 능력이 하나 부족했지. 바로, 정치를 멀리하고 자연에서 살아야 오래 살수 있다는 거 말야.

왕의 신임을 얻고 승승장구하던 혜소는 어느날, 전투중에 왕을 지키기 위해 앞에 나섰어. 모두에 도망간 후에 홀로 화살을 다 맞으면서 죽음으로서 왕을 살렸지.

그는 아버지와 달리 왕 옆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이 행복이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야. 혜강과 해소... 누가 더 현명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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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