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 19대 임금이었던 명종은 무신 정중부의 난으로 즉위하게 되었으나 의지가 약하고 성격이 소심하여 재위기간 동안 왕으로서의 위엄을 세우지 못하고 언제나 신하들에게 이끌려 다니기만 하는 허수아비 왕에 불과했다.

당시 고려는 바야흐로 무신 정권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문신보다는 무신들이 나라의 정사를 좌지우지했다. 무력한 임금은 권력을 잡고 있는 무신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대로 말 한 마디 하지 못했고 무신들은 힘없는 임금과 조정을 농락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이의민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던 중 녹사 벼슬에 있던 최충수와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이 사소한 일로 싸움을 벌였다. 최충수의 비둘기가 이지영의 집으로 날아간 것을 빌미로 싸우게 되었는데 최충수가 이지영에게 모욕을 당한 것이다. 분을 참지 못한 최충수는 형인 최충헌을 찾아가 이의민 일가를 칠 계략을 세웠다. 그리고 최충헌과 최충수 형제는 이의민 일가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최충헌은 방법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그는 왕의 측근자 50명을 추방하고 그 이듬해 까지도 왕이 봉사십조를 지키지 않자 폐위시키고 이 아우를 신종으로 세웠다. 그는 전대의 여느 무신 권력자 못지 않게 독재 적이었다. 그는 후에 또 한 차례 왕을 갈아치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오만방자하게 휘둘렀던 이의민조차도 왕은 갈아치우지는 않았다. 물론 이의민과 최충헌은 다르다. 이의민에게는 국가의 장래는 없었지만 최충헌에게는 달랐다.

이로부터 세상은 최씨 일가의 세도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최씨 무신 정권 또한 평탄치만은 않았다. 흔히 그렇듯이 권력은 마약처럼 사람을 중독시킨다.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는 권력의 맛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순식간에 권력의 포로가 되었다. 최충수는 이미 혼인을 한 태자비를 폐하고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올려 훗날 태자가 보위를 이어받을 때 자신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음모를 획책했다. 최충수는 지금의 태자비를 부정하다는 누명을 씌워 내 보내려고 한다. 최충수는 신종을 알현하고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거론하면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신종은 최충수의 음모를 눈치챘지만 막강한 그의 힘을 당할 방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태자비를 폐하고 대궐 밖으로 내 보냈다. 최충수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딸을 태자와 혼인시키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일이 이쯤 되자 최충헌의 귀에도 최충수의 음모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식을 들은 최충헌은 크게 놀라 부랴부랴 동생 최충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최충수는 형이 올 것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터였기에 침착하게 형님을 맞아들이고 술상을 차려오라고 명했다. 두 형제는 아무런 말 없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거나하게 취했다. 술기운이 어느 정도 올랐을 무력 최충헌이 동생에게 먼저 말문은 열었다. “듣건대 자네가 딸을 동궁에 바치고자 한다는데 그러한 일이 있는가?” 고 하니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하였다.

“부부사이는 은혜와 덕의가 본래 있는 법인데 태자가 수년 동안 짝이 되었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이별한다는 것이 인정상으로는 어떠하겠는가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앞수레가 넘어지면 뒷수레가 경계한다고 하였는데 저번에 이의방이 딸을 태자의 배필로 삼았다가 마침내 남의 손에 죽었으니 지금 그 넘어진 전철을 따르고자 함이 가당하겠는가? 우리 형제가 지금 이만한 위치에 까지 오르게 된 연유를 잊은 것이냐? 극악무도한 이의민 일가로부터 왕실을 지키고 땅바닥까지 추락한 왕실의 위신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었다. ”

충헌의 말에 최충수는 잠자코 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폐하께옵서 보위에 오르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사사로운 욕심에 눈이 멀어 왕실의 일에 참견하려 드느냐? 그리고도 네 목숨이 온전할 줄 알았더냐? 네가 형의 말은 듣지 않고 계속해서 네 뜻대로 하겠다면 나도 더는 너를 동생으로 여기지 않겠다.”

최충헌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최충수는 점차 자신의 행동이 무례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충수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다가(최충수의 갈등을 나타내 준다. 권력과 도리 사이의 갈등을 긴탄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참 뒤에 말하기를“ 형님의 말씀이 이치에 맞으니 감히 좇지 않겠습니까?”라 하고 드디어 공인을 파하여 보냈다.

최충헌은 안심했다. 그런데 최충헌이 돌아간 후 최충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금전 자신의 생동을 반성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형님 또한 나의 경쟁자인 셈이다. 권좌의 주인은 오직 한 사람일 뿐 내가 동생이라고 해서 형님에게 그 자리를 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대장부가 일을 행하면 마땅히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최충수의 마음은 영욕에 대한 갈망으로 이글거렸다. 다음날 최충수는 형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오히려 딸의 혼수준비가 늦다고 하인들을 닦달했다.
 
후에 어머니가 이르기를
 “네가 형의 말을 좇기에 내가 기뻐하였는데 또 어찌 이와 같이 하느냐”
라고 하니, 충수가 노하여 말하기를
“부인이 알바가 아니오”라 하고 손으로 밀어 땅에 넘어지게 하였다. 조금 뒤에 태도가 변하여 생각을 고쳐 말하기를 “다시 공인을 모아 독촉하여 힘쓰기를 전과같이 하였다.
 
충헌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죄가 불효보다 큰 것이 없는데 지금 어머니를 욕되게 하였으니 나에게 대해서는 어떠하겠는가 반드시 말로써 개유하지 못할 것이니, 내일 아침에 마땅히 나의 무리들을 시켜 광화문에서 기다리다가 그 딸을 막아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다. ”라고 하였다. 사람이 충수에게 고하자 충수 또한 그 무리에게 말하기를 “남은 나의 행동에 감히 아무도 어찌하지 못하는데 형이 홀로 나를 제지하고자 함은 그 무리가 있음을 믿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내가 마땅히 그 무리를 쓸어버릴 것이니 너희들은 힘을 쓰도록 하라.”고 하였다. 사람이 또 충헌에게 고하니 충헌이 울면서 그 무리에게 말하기를 “충수가 딸을 동궁의 배필로 삼고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도모하고자 함이다. 내일 우리 무리를 소탕하고자 하니 일이 이미 급한데 계책을 어찌 해야 하는가?”라 하였다. 무리들이 말하기를 “청컨데 박진재와 더불어 상의 하시오”라 하였다. 충헌이 곧 진재를 불러 알리니 진재가 말하기를“공의 형제는 같은 나의 외숙이라 어찌 원한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국가의 안위가 일거에 매었으니 그 아우를 도와서 역적이 되는 것이 어찌 형을 도와 충성함을 쫓는 것과 같겠습니까?또 대의에 친을 무시하는 것이니 나는 마땅히 약진 석숭 등과 더불어 무리를 거느리고 이를 돕겠습니다.” 라고 하니 충헌이 크게 기뻐하더라.

밤 삼경에 충헌이 군사 1000여명을 거느리고 고달판을 지나 광화문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알리기를 “충수가 내일 난을 일으키고자 하므로 내가 장차 호위하려 하니 빨리 이를 왕이 계시는 곳에 전달하라.”라고 하였다. 문지기가 아뢰니 왕이 크게 놀라서 즉시 명하여 그들은 들여보내어 구정에 주둔하게 하였다. 무고의 병기를 내어 금군에게 주어 대비하게 하니 제위의 장군도 군사를 거느리고 다투어 왔다. 충수가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그 무리에게 말하기를 “아우로써 형을 치는 것은 불경이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구정에 들어가서 형을 보고 죄를 빌고자 하니 너희들은 마땅히 각기 도망하여 가라.” 고 하였다. 장군들이 말하기를“저희들이 공의 문하에서 노니는 것은 공이 세상을 덮을 만한 기개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 도리어 겁냄이 이와 같으니 이것은 저희들을 멸족시키는 것입니다. 청컨대 일거하여 자웅을 결하십시오”라고 하니 충수가 허락하였다. 새벽에 군사 1000여 명을 거느리고 십자가에 주둔하고 약속하기를 “ 죽을 힘으로써 싸워 진실로 저 무리를 죽이는 자에게는 마땅히 죽은 자의 관직을 주겠다”고 하였다.

충수의 군사는 제장이 모두 충헌에게 귀부함을 듣고는 스스로 도움이 적음을 알고 점점 도망해 가버렸다. 충헌은 광화문에 나와 시가를 향해 내려오고 충수는 광화문을 향하여 올라오다가 흥국사 남쪽에서 만나 교전하였다. 진재 약진, 석숭은 각각 무리를 거느리고 일대는 이현을 넘고 일대는 사현을 넘고 일대는 고달판을 넘어 충수의 군사를 쳤다.

충수가 말하기를 “오늘의 패전은 천운이다. 패전은 임진강 이북에 있으면 나는 임진강 이남에 있겠다.” 고 하고 숙비, 존심등과 더불어 달려서 보정문에 달려가 문지기를 베고 나와서 장단을 건너 파평현에 금강사에 이르니 추격하는 자가 그를 베어서 머리를 서울에 전하였다. 충헌이 울며 추격하던 자에게 말하기를 “나는 사로잡고자 하였더니 어찌 급히 죽였느냐”고 하고 곧 사람을 보내 거두어 장사지냈다.

위와 같이 형제의 골육상쟁으로 인해 최충헌은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박진재 역시 최충헌을 모함하다가 다리의 힘줄이 잘려 귀양가게 된다. 최씨무신 정권의 시작은 이렇듯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리고 권력의 유혹이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형제의 의도 어머니까지도 무시하게 만들어버린 권력에 대한 욕망이 결국 최충수가 죽게 되는 결과를 나았고 최충헌 역시 정권을 잡게 되는 빌미를 얻은 것이다. 최충헌은 어쩌면 최충수가 이렇게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이 아닐까.. 자신이 권력을 혼자 잡을 수 있는 명분을 갖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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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태짱슬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