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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자료제공/초중고수업자료

역사가의 눈으로 본 기독교의 과거와 현재

기독교의 발전

서양 사상의 배경이라고 한다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들 수가 있다. 헬레니즘이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이라면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의 신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서양 사상의 두 축이라고 할 때 필자는 지금까지 계속적인 변화를 겪어 오면서 발전해 온 헤브라이즘의 기독교에 대해 서술 하고자 한다.

1. 구약시대

본래 기독교의 모태는 유대교이다. 유대교는 동일한 하나님 (야훼)를 섬기는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종교다. 원래는 갈대아 우르지방의 한 부족의 신앙이었으나, 아브라함에 이르러 계시를 받아 그 지방을 떠나고 가나안지방에 정착하게 된다. 유대교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민족을 약속하게 된다. 그리고 야곱에 대에 이집트로 들어가면서 그 영역이 넓어지고 결국 모세에 이르러서는 민족의 종교로 발전할 만큼 성장했다. 바로 유대교의 성장이 일어나는데 이때가 바로 모세의 때이다. 모세 때에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출 이집트하면서 민족의 체계가 성립된다. 모세는 유대민족을 이끌고 처음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가면서 율법과 체제를 완성한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신약 시대에 이르기 전까지 기독교에 절대 가치인 십계명이다. 왕이 없는 사사의 시대에 살면서 그들의 유대교는 현실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자부심으로 갖고 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곧 왕의 통치를 부러워하게 되고 왕의 나라를 꿈꾸자 사사들은 왕을 선택하게 되어 이스라엘이 왕국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잠시 번영을 누렸지만 곧 그들은 아시리아와 바벨론의 공격으로 계속되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이 시기에 서서히 메시아니즘이 생기게 된다. 현실의 고통이 그들 스스로의 형식적인 제사와 식어버린 신앙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하나님의 전신인 메시아(구원자)를 기다리게 된다. 이것은 구약 최고의 예언가 이사야서에 보면 잘 나타나 있다.

2. 신약시대

예수의 등장은 구약의 메시아니즘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구약의 십계명을 단 두 가지로 축소했다. 하나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네 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고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다. 결국 예수는 하나님의 절대성을 지키는 계명과 편협하던 유대민족만의 종교였던 유대교가 이웃과 형제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적인 종교로의 발전을 모색하면서 그동안 복잡하고, 제한 적이여서 일부(바리새파와 사두개파)에게만 국한 되어 있었던 제사와 섬김을 간편화 하였다. 결국 예수는 이사야의 예언(그가 채찍에 맞음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그가 창에 찔림은 죄를 위함이라...)대로 고난을 받다가 결국 십자가에 죽고 삼일만에 부활했다가 40일 후에 승천하게 된다. 그의 십자가 사건은 오직 제사장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을 결국 예수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개인의 1:1의 관계가 형성됨으로써 오직 믿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진다.
 12사도로 알려진 그의 제자 (실제로는 11명이다. 한명은 배신했다.)들은 예수의 마지막 명령인 전도에 힘쓰게 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유대인이다. 그러기에 전통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시대에 선택된 인물이 바로 바울이다. 그는 원래 사울이라는 이름의 유대명문 가문의 후손으로서 그리스 철학에 능하고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의 지식인이였다. 그는 유대인으로써도 굉장히 트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탄압하였는데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 회심을 하게 된다. 그 이후 그는 그의 세계관과 트인 사고를 가지고 유대인 이외의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이런 바울의 전도여행은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만드는 초석을 만들게 된다.

3. 중세시대

예수의 사후 12사도의 노력으로 로마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성장한다. 결국 313년 콘스탄티누스대제에 이르러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선포되게 된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과 만민 평등의 사상이 로마의 세계주의에 맞물려 맞았다. 둘째, 너무 현실주의 적이고 타락해 버린 로마에는 그들을 정신적으로 묶을 수 있는 종교가 필요했다. 굳이 기독교라고 말하는 것은 당시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의 로마인들에 엄청난 탄압에도 웃으면서 죽어갔던 모습이 로마인들에게 변화를 준 것일수도 있겠다. 셋째로는 정치와 분리된 순순성을 들 수 있다. 초기 기독교는 권력지향 적이것나 정치지향적이지 못했다. 당시 기독교의 모습에는 신앙에 대한 열정이나 사명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외에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꿈에 십자가의 표시로 가면 승리하리라는 계시가 있어서 공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교로의 공인이 된다는 것은 이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후에 중세 기독교의 시기에 들어선다. 당시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통으로 인정된 삼위일체의 아리우스파는 로마를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또한 게르만의 이동이후 프랑크왕국과의 결탁으로 중세 유럽의 기독교를 이끌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교황의 존재.. 이것은 바로 교권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소유하게 했다고 해서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해서 계속 이어지게 되지만 한가지 간과한 것은 오직 믿음으로 라는 순순한 기본이다. 초기에는 교황역시 교회의 수장의 의미였다. 그리고 순수하게 교회와 교구를 이끌었으나 로마의 국교공인 이후 제도화 되고 오랜시간에 거쳐 점차 권력화 되면서 오직믿음을 강조했던 이 믿음이 교황으로 대체된 것이다. 때문에 면죄부 판매까지로 이어지고 교권의 세속화가 지속되면서 중세 기독교는 썩어갈 수 밖에 없었다. 처음의 열정은 순순하였으나 교황의 권위가 세속의 황제의 권위 위에 서자 순수한 신앙의 교권은 타락한 세상의 권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하나님과 나라는 개체 사이의 1:1의 관계를 형성하게 만들어 놓은 예수의 노력이 중세의 교황이라는 사도계층의 변질로 인하여서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4. 프로테스탄트

십자군운동과 르네상스운동 이후 교황권이 약해 지기 시작했다. 십자군의 패배로 십자군을 주도했던 교권의 힘에 의심이 찾아오고 급하게 퍼진 페스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는데도 교회는 좌시했으며, 또한 이런 전쟁의 패배와 질병의 문제를 마녀사냥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으로 돌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죄없이 죽어나간다. 결국 교황의 권위는 서서히 무너진다. 이런 시기 교황의 교권주의와 교회의 타락에 대항하여 많은 신학자들의 개혁이 일어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을 들 수 있다. 그는 초대교회 바울의 주장인 오직 믿음으로 라는 말에 변화를 받는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믿음으로 가는 것이지 교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대교회의 열정을 되찾으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열병처럼 번져 나갔다. 물론 칼뱅의 장로파역시 예정설과 청지기의 삶 그리고 믿음을 강조하면서 유럽을 흔들어 놓았고 이 종교개혁으로 인하여서 유럽의 기독교는 새 국면으로 맞아들게 된다. 지금의 기독교의 모태가 되는 신앙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다시금 기독교의 부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톨릭 또한 교황을 중심으로 내부적인 개혁과 반성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개선하면서 기독교의 한 축을 이루어 나간다.
 그후 계속 그 교세가 확장되고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와 맞물리면서 기독교(구교와 신교)도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5. 지금의 기독교(개신교)

지금의 기독교를 보면 또한 한 번의 도약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모세로 인해서 민족의 종교로, 메시아니즘으로의 변화와 예수를 통한 기독교의 교리의 보편화 그리고 바울을 통한 기독교의 세계화, 그리고 종교개혁을 통하여 무너진 기독교의 부활을 이끌었듯이 지금 또 교권화되고 형식적이 되어가는 기독교에 또 다른 도약이 있어야 할 듯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교회가 정치성의 띠고 일부 목사가 사업성을 띠는 교회가 늘어난다면 지금의 매너리즘에 빠진 기독교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아프리카 같이 이제 기독교의 교리가 들어가기 시작하는 곳은 열정이 살아있고 발전하고 있지만 이미 너무 발전하여 순수성을 잃어버린 곳에서의 기독교는 무너지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회복이 없다면 또다른 돌파구가 모색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