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 상징물들의 대결

004. 마리안과 헤라클레스가 대리전을 벌이다.

*** 배경 : 프랑스 대혁명 초기(1791~1800) ***

프랑스 대혁명하면 떠오르는 것은?

수능 공부를 열심히 했던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삼부회, 국민의회, 국민공회, 쟈코뱅당,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정도를 떠올릴거에요.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거랍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왕과 귀족들만 잘사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부자들(부르조아지), 농민,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이라는데, 그럼 부자와 시민, 농민들은 같은 편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혁명을 일으켰을까요? 자, 그 의문을 파해치면서 최근 프랑스 혁명을 연구하는 분들이 관심을 갖는 <상징물>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거립니다.

귀족과 민중의 봉기

   프랑스 파리고등법원의 젋은 변호사인 <데물렝>이 네케르의 해임에 반발하여 모든 귀족이 봉기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이를 동조한 민중들이 튈르리궁전으로 들어가려다가 독일 용병대에게 피살되자 곳곳의 봉기와 더불어 바스티유 감옥 습격까지 이어져서 혁명이 시작된다. 데물렝은 이 연설로 일약 스타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훗날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때 단두대에 목이 잘린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으로 민족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포정치 등등 많은 상황들이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용어를 알고 있었던 이들은 부르조아지 계급 정도였을 거에요. 일반 시민들조차 어려운 사회개념이 적힌 책들을 읽을 기회가 적었을 뿐 아니라, 18세기 농민층은 글자 자체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거든요.

혁명의 중심이었던 농민들이 과연 <구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왕과 가톨릭 질서를 바꾸고, 각 계급의 성향을 고려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출한다> 라는 어려운 목표를 이해할 수나 있었겠어요?

그래서인지 프랑스 혁명 초창기에 주도권을 잡았던 <국민의회>는 어느 정도의 재산과 지식을 갖춘 <부르조아지>들이 이끌었답니다. 이들은 농민에게 땅을 돌려주자는 토지개혁이나 모두가 평등하다는 개념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재산권>은 신성한 것이지 때문에 절대 빼앗을 수 없다라는 헌법을 만들어서 농민들이 부르조아지의 재산을 넘볼 수 없게 못 박았답니다.

특히 혁명을 일으킨 농민들은 <이참에 세상을 바꾸자>라는 단순한 논리로 폭동을 일으키거나, 지금 밀리면 왕한테 잡혀서 다시 죽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귀족들을 무조건 학살하는 분위기가 있었답니다. 시민대표인 부자들은 이런 농민들의 <광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구요. 그런 이유에서 부자들이 만든 문서가 바로 <인권선언>이었습니다. 프랑스 인권선언은 자유를 상징하는 프랑스인의 권리 선언으로 너무 훌륭한 선언이지만, 그 선언문 안에는 <재산권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라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답니다.

<인권선언 6조 : 재산권은 불가침한 또는 신성한 권리이다. 법적으로 공공의 필요한 분명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

자자... 그런데 문제는 <인권선언> 같은 문서를 백날 발표해봤자 글자를 모르는 농민들은 관심이 없었다는 거죠. 따라서 프랑스 혁명에서 일반 시민이나 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인 문서>가 아니랍니다.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상징물>이 훨씬 중요했던 거죠.

그래서 혁명을 이끈 부르조아지들은 농민들에게 혁명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이벤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답니다. 그것은 바로 <축제>였습니다. 피터지게 사람이 죽어가고, 전쟁과 폭동이 난무하는데 무슨 축제냐구요? 역사적으로 전쟁 중에 기획되는 축제는 <계급간의 단합대회>랍니다. 축제를 통해서 부르조아지와 농민들은 우리가 하나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대중문화를 서로 공유하면서 가까워지는 거죠. 요즘이나 TV나 인터넷이 그 역할을 하지만, 당시에는 축제가 문화와 계급을 초월한 동질성을 갖게하는 역할을 했답니다.

그럼 이 축제에서 부르조아지 정부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을까요? 먼저 민중을 통제하고 민심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파악하려고 했겠죠? 또 민중이 기독교에 호감을 갖는지 반감을 갖는지도 살피게 됩니다. 또 국가제도와 도량형, 달력 같은 것들 민중에게 설명하겠죠. 혁명이 일어나면 혁명력이라는 새로운 달력을 사용하고 새로운 화폐단위, 새로운 길이 및 무게 단위 등등을 사용하니깐 그런 것들도 민중들과 공유해야 하구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민중들이 혁명의 상징으로 쓰고 다니는 <자유의 모자>와 같은 상징물을 같이 사용하고, <자유의 나무> 아래서 혁명군, 성직자, 민중이 같이 춤추며 즐기는 행동 같은 것을 하는거죠. <자유의 모자, 애국의 제단, 자유의 나무>와 같은 것들이 바로 우리는 모두 같은 편이며, 하나이다라는 것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랍니다.

자자... 이렇게 상징물들을 통해 민중과 교류하는 부르조아지 혁명 정부는 더 중요한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새로운 <정부>이며, 국가 기관이라는 것을 민중에게 인식시켜야 하는 것이죠. 그럼 그 상징물로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도덕과 윤리를 지키며, 기독교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면서 재산권을 지키는 부르조아지를 상징하면서도 농민들도 인정할 수 있는 새로운 정부의 상징물.... 그것은 바로 카톨릭의 성모 마리아 상의 개념에 접근한 <마리안 상> 이였답니다. 마리안상은 보편적인 포근함과 기독교적인 윤리를 상징하면서도, 민중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개념이었거든요.

전통적 개념의 성모 마리아 : 기독교적이고 윤리적인 이미지

그래서 초기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국민의회 정부는 민중혁명의 창을 든 젋은 여인의 모습으로 마리안 상을 제작하였습니다. 또 공공 기관에는 모성의 이미지로 아이와 함께 조용히 책을 읽는 마리안 상을 세워서 혁명정부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이죠. 이 두가지 마리안 상은 <민중과 함께 한다> 라는 대외적 의미와 <보편적인 정권이다> 라는 부르조아지적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준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에서 두 번째로 정권을 잡은 쟈코뱅 당의 로베스피에르는 앞의 부르조아지 정권과는 성격이 너무 달랐습니다. 쟈코뱅 당은 보다 급진적인 혁명을 원했고, 부자들이 원하는 <자유와 재산권의 보장> 보다는 <민중의 평등>이라는 개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답니다. 즉 <자유권> 보다 <평등권>이 혁명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는 엄청난 개혁을 실시한답니다. 부자가 아닌 이들도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보통선거제도>, 모든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국왕이 없는 <공화국> 건설, 모든 봉건제도의 무상폐지 등등.... 당시 유럽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급진적인 개혁을 기획하였죠.

급진적인 평등 이념에 기초한 공포시대의 정치가 : 로베스피에르

그 개혁의 실행을 위해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모든 세력을 숙청하였습니다. 민중을 위하여 같은 혁명세력까지 제거해 나간거죠. 단두대(길로틴)에는 매일 수많은 이들의 목이 잘리고,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개혁이 왕권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유럽의 모든 왕정 국가와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이제 혁명의 상징물이 달라지기 시작한답니다. 1793년의 마리안 상은 성모가 아니라 투사가 되었습니다. 마리안은 일분 가슴을 드러낸 채 투쟁을 지휘하는 사나운 모습이 되었고, 성모가 아니라 혁명을 이끄는 살아있는 여인으로 변하였답니다.

그리고, 여인인 마리안 상을 대신하여 광폭한 이미지의 남성상이 등장했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 상> 이였죠. 공포정치의 쟈코뱅당은 곳곳에 헤라클레스 상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농민들은 기독교적인 기존의 부자 정부에 반감이 커져갔기 때문에 마리안 상은 공포정치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헤라클레스는 기독교와 반대였던 고대 제우스교의 상징물이었거든요. 또, 헤라클레스는 신화에 나오기는 하지만 신에게 고통받는 민중적인 영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답니다. 또, 헤라클레스는 반여성적인데다가 부친을 살해하는 이미지가 있어서 국왕을 죽인 공포정치 정부에게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였죠.

토르발센의 헤라클레스(덴마크 코펜하겐)

   프랑스 혁명기 헤라클레스는 '프랑스 구체제의 악을 격파하라'라는 명령을 지혜의 여신에게서 받고 쟈코뱅 정부의 상징으로 등장하였다. 이 임무는 기독교적인 보편정신의 마리안느가 아닌 고대 신화 속의 인간 영웅에게 하달된 것이었다.

민중의 혁명 시대.... 헤라클레스는 부르조아지의 상징물은 마리안을 누르고 대중교류의 수단으로 이용된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공포스러웠던 정치를 한 나머지 죽게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시대가 끝나고, 다시 온건한 부르조아지 정부가 들어서자 헤라클레스의 이미지는 프랑스 곳곳에서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프랑스 혁명 공화국의 상징물은 다시 추상적이고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인 <마리안>으로 대체되었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자 1800년 콩코드 광장에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어 자신의 정체성을 민중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곧 이 여신상 대신 그 자리에 <개선문>을 만들어 버려서 자신이 이전과 다른 <위대한 영웅>이라는 것을 다시 보여준답니다.

그럼 <마리안> 즉, <자유의 여신>은 사라진 것일까요? 아니랍니다. 이후 프랑스의 7월 혁명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선거권 확보>가 혁명의 주 목표였는데, 이 때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이미지가 다시 등장한답니다. 또, 프랑스 출신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에펠탑을 세웠던 에펠은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을 건립함으로서, 미국이 자유와 기독교 정신을 수호하는 국가라는 것을 보여준답니다.

들라크루아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7월 혁명의 마리안)

우리는 프랑스 혁명을 볼 때, 국민의회니, 국민공회니, 공포정치니 하는 변화에만 주목해 왔답니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문화적인 교류와 공감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커지고 있으며, 프랑스 혁명 뿐 아니라 모든 사회 변화에서 민중들과의 교류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어 가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많은 혁명과 민란, 봉기가 있었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 역사 연구가 깊어진다면 우리도 이렇게 상징물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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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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