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竹馬故友) 이야기

001. 죽마고우란 과연 가장 아끼는 친구를 뜻하는 말이였을까?

*** 배경 :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진나라) ***

이 이야기는 중국 진나라 시대의 이야기랍니다.

중국은 강력한 통일제국인 한나라가 망하고,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로 분열되는 삼국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결국 통일은 조조 일가의 <위나라>가 했어요.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조조의 후예가 아니라 <진나라>를 세운 사마중달의 후예, 즉 사마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원의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북쪽 만리장성에서 다섯 오랑캐(오호)가 밀고 내려오면서 진나라 역시 몰락하게 됩니다. 이 시대를 중국 역사에서는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부른답니다.

바로 이 시대에 살았던 은호와 환온이라는 친구의 이야기에서 <죽마고우(竹馬故友)>라는 고사가 생겼답니다.

은호와 환온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둘은 나아가는 길이 달랐습니다.

환온은 일찍이 진나라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진나라를 위협하는 오랑캐 민족들을 토벌하고 다녔답니다. 특히, 남방의 촉나라를 토벌한 일로 그는 누구도 무시못할 세력을 갖게되었습니다.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는 환온을 국왕도 두려워할 정도였죠.

반대로 은호는 풍류를 아는 숨은 지식인이었습니다.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를 피해 자연을 벗삼아 살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처럼 은호 역시 정치나 전쟁을 멀리하고 노자의 책을 읽으며 자연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은호는 숙부인 융과 함께 노자의 책과 주역을 읽었는데, 입으로 책의 내용을 주고 받으면 그를 이길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은호는 누가 뭐라고 해도 관리가 되지 않고 10년이라는 세월을 선조 무덤을 지키면서 살았답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와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 관직에 있을 때 꿈에 관을 보고, 재물을 얻게 될 때 꿈에 더러운 것을 보는 것은 무슨 이유인 것이요?"

은호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관리란 본래 썩은 것이니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 시체가 보이는 것이지요. 또, 돈이란 본래 더러운 것이니 꿈에 더러운 것만 나타날 따름이지요."

당시, 위선을 떠는 정치가들과 전쟁만을 일삼는 장군들 때문에 살기가 어려웠던 모든 사람들은 은호의 말이 너무나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은호의 명성이 높아지자 국가에서는 그에게 관직에 나올 것을 계속 부탁했답니다. 은호는 왕인 간문제의 청을 끝까지 물리치기 어려워 결국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국왕이 은호를 데려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시에 세력이 대단했던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답니다.

은호와 환온을 서로 대립시켜서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던 왕의 계략으로 이 두 사람은 서로 의심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귀족인 <왕희지>가 이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했지만, 은호는 그것마저 거부했습니다.

마침, 오랑캐가 세운 국가 중 하나인 <후조>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진나라는 은호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중원을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은호는 오히려 오랑캐들에게 참패를 당하고 말았답니다. (여기서 오랑캐라고 말하는 것은 중국인들이 적은 <진서>라는 책의 내용을 토대로 말하는 것이랍니다.)

그러자, 환온은 왕에게 상소를 올려서 은호를 귀양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는 어릴 때 은호와 같이 죽마(대나무로 만든 말)를 타며 놀았는데, 내가 죽마를 가지고 놀다가 버리면 반드시 은호가 주워가졌다. 그러고 보면 그는 내 아래에 있음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한 동네에 같이 살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친구를 소꿉친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어릴 때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같이 자란 친구에게는 특별한 정을 두기 마련이죠. 죽마 고우란 어릴 적 장난감을 공유하면서 친하게 지낸 벗을 말합니다.

그러나, 환온이 말한 죽마고우도 그런 뜻이었을까요?

어렸을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일생의 라이벌이 되어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정치를 하자, 그를 제거하기 위해 상소를 올렸고, 결국 그를 귀양살이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고 은호가 자신의 아래에 있다는 뜻으로 '죽마를 주워 간 친구' 라고 말했습니다. 요즘말로, 내가 쓰다 버린 것도 기쁘게 가져가는 <땅거지>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귀양살이를 떠난 은호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을 버리고 친구와 대립한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처음의 마음, 즉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했답니다. 오히려 귀양살이는 조용한 자연 속의 삶을 살 수 있기에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가락으로 글자를 쓰는 버릇이 생겼다고 합니다. '돌돌괴사(정말 괴이한 일이였구나)' 라는 네글자였죠.

그렇다면 환온은 <은호>를 죽여야만 할 정적으로만 생각했을까요?

시간이 지나고 모든 일들이 잊혀질 무렵, 환온은 온호에게 <상서령>의 벼슬을 줄 것이니, 자신을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적었답니다. 은호 역시 그 편지를 기쁜 마음으로 읽고 승낙하였죠. 그런데, 은호는 답장을 확실하게 하려고 봉투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보고를 반복하다가 실수로 빈봉투만 환온에게 보냈답니다.

환온은 빈봉투만 답장으로 온 것을 보고는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자신은 옛 친구를 끝까지 거두고 싶었는데, 옛 친구는 자신을 적으로만 생각한다고 느낀 것이지요. 환온은 그날 이후 은호를 다시는 찾지 않았고, 은호는 귀양살이를 계속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시대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환온과 은호.... 그들의 끝내 이루지 못한 우정에서 <죽마고우>라는 고사가 생겼답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자신을 끝까지 믿어줄 수 있는 어릴 적 친구가 있나요? 기분이 울적할 때, 허물없이 옛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있을까요?

만약 그런 친구와 사이가 벌어졌다면, 서로의 마음과 상관없이 <빈봉투>를 보낸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세요. 오랜시간 서로를 알고 지낸 벗과의 타툼은 은호가 <빈봉투>를 보낸 것처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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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