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전 : 누구의 영향력이 더 클까?
칼 포퍼 VS 토마스 쿤 : 역사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두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자>들의 이야기 오늘 전개할 이야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철학에 너무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과학자> 이야기이다. 바로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칼 포퍼>와 과학사 뿐 아니라 모든 인문과학분야에 <패러다임>이라는 명제를 던진 <토마스 쿤> 이야기이다. 그럼 두 인물의 상반된 이론을 이해해보고, 후대 역사학자들이 왜 이들의 이론을 역사에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보자. 칼 포퍼가 1902년, 토마스 쿤이 1922년에 태어났으니까 두 학자는 20년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토마스 쿤이 이미 <유명한 이론가>였던 칼 포퍼의 이론을 반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칼 포퍼가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는 서양의 제국주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칼 포퍼는 관용이나 열린 사상과 같은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서구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두 철학자의 역사관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19세기 사상에 대한 <수용>이라고 볼 수 있다. 토마스 쿤은 학창시절부터 사회주의에 빠진 인물이다. 노동운동이나 자본에 따른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그 학창시절이 바로 <세계 2차대전> 중이었다. 반면, 칼 포퍼는 제국주의를 직접 경험한 세대인 만큼 서구의 미덕과 도덕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유명한 저서에서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반감을 보였던 인물이다. 여기에서 두 철학자의 핵심 이론의 배경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칼 포퍼는 스스로 <계몽주의>자이기를 원한 인물이다. 그는 문명국가인 서구사회가 미개한 <비문명사회>를 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리고 그 서구사회의 길잡이는 <미국>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의 글에는 미국과 서구에 대한 자부심이 많이 들어가있다. 어떤 경우에는 역사가 특정한 법칙과 사회진화사상에 따라 <발전>한다는 담론까지 제시하기도 한다. 반면, 토마스쿤은 <계몽사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예 더 나아가 과학이 우리에게 진리를 제공하고 진보를 준다는 생각자체를 오류라고 말해 버렸다. 그래서 토마스쿤은 기존의 과학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상이 기존의 사상을 대체한다고 말해 버렸고, 그것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19세기 최고의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1850년대 동시에 등장한 혁명적인 이론 2가지였다. 하나는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 포함된 <종의 기원>이라는 과학사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또 하나의 책은 사회주의의 아버지 마르크스의 역작 <자본론>이었다. (마르크스는 종의 기원과 자본론이 같은 시기에 출판된 것을 두고, 최고의 역작들이 동시에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 포퍼는 마르크스는 철저히 비판했고, 진화론은 사회진화론으로 어느 정도 수용했다. 반면, 토마스쿤은 과학이론에서의 진화는 불신했고, 마르크스가 주장한 <변증법>은 어느 정도 인정했다. 토마스 쿤이 주장한 <패러다임 이론>은 사회현상이 일반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혀 새로운 사회나 문화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자 그럼 이 두 과학자를 왜 역사 이야기에서 다루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의 이론이 과학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역사, 사회 전반에 너무나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역사철학에서도 이 두 학자의 이론을 완전히 배재한 채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기가 버겁다. 그럼 먼저 <칼 포퍼>의 이론과 역사철학을 한 번 볼까? - 칼 포퍼와 <과학적 검증> 19세기 독일의 랑케를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랑케가 <역사학>을 다른 인문과학분야에서 독립시켰기 때문이다. 랑케는 국가의 공적인 자료들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해석해서 과거의 사실을 밝히는 것을 역사학이라고 말했다. 역사학은 역사가의 편견이나 해석이 들어가서는 안된다고도 말했다. 과거의 정치, 제도, 문화를 밝히는데 있어서 편견이 들어간다면 그것은 정치학이나 사회학이 될 것이다. 역사학의 임무는 <과거> 그 자체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다. 그럼 과거 그 자체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가장 명확하게 밝히는 방법은 무엇일까? 20세기 역사학자들은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리고 랑케의 역사학을 넘어서서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아날 사학자들은 인간의 역사를 아주 오랜 기간동안 관찰하면서 일상적인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변화까지도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인간들이 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대처하는지에 대한 법칙을 찾고, 전체적인 역사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지중해의 어떤 섬에 인간이 살게 된다면 그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여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시도와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그 섬의 모든 인간은 낚시를 하거나 사냥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게 된다. 결국 그 섬에 사는 인간들은 일정한 패턴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구조사학자들은 인간이 역사 속에서 만들어 온 모든 유산들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만들어서 구조화시키려고 했다. 예를 들어, 머리모양의 역사, 방부제의 역사와 같은 시시한 것들도 하나의 역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의 역사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과거부터 현재까지 밝혀낸 뒤 원인과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무엇을 밝혀야 하고, 어떤 방법을 활용해야 하는지는 역사학자들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칼 포퍼>의 과학 법칙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칼 포퍼>는 <논리주의> 또는 <경험주의>와 과학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면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예를 들면, 근대인들은 점성술을 믿거나 신에 대한 믿음, 별자리와 같은 것을 통해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었다. 칼 포퍼는 말한다. <신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인간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는가? 당연히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신의 존재>는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 되려면 제일 먼저 그것이 아니다라는 <반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은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반증가능성>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신>이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다. 신을 믿는 사람은 그 마음에 따라 행동한다. <교회에서는 불경이 아니라 찬송가를 부른다>는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신>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신의 존재가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논리나 경험만을 따지는 <논리학, 경험주의, 실증주의>에서의 신은 과학도 아니고, 의미도 없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신이 과학은 아니라고 해도 <의미>는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건전한 보수주의자이자, 서구학자인 포퍼의 <도덕적 논리>인 것이다. 반면, <앞으로 비가 올 것이다> 라는 명제가 있다고 하자. 이건 <과학>적인 것일까? <논리주의>에 따르면 이것은 맞는 명제이다. 비는 언젠가 올 것이니까.... 하지만 포퍼는 이것이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첫째, 이것은 과학을 모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도 비온다는 말은 할 수 있다. 단지, 그게 장마철에 올지, 3년 뒤에 올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둘째, 이것은 <반증>이 안된다. 앞으로 천년간 비가 안왔다고 해서 저 명제가 틀릴까? 아니다. 만년 뒤에, 혹은 백만년 뒤에 비가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지구가 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증명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말들은 과학이 안되는 것이다. 즉, 포퍼에게 과학이란 <100% 완벽하게 검증>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럼 검증이란 어떻게 해야 과학이 되는 것일까? 카르납이라는 과학자가 검증이란 <확률>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최고의 투수가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1000개를 던졌다. 그럼 100% 검증은 못하더라도 저 투수는 다음 번에 스트라이크를 던진다는 법칙은 거의 맞을 것이다. 즉, 신뢰도가 무지 높아지기 때문에 검증이 곧 <확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포퍼는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리 만개의 스트라이크를 던져도 반증가능한 확률이 0.00001% 만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에 <확증>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논리를 중요시하는 <햄펠>이라는 실증주의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과학적 명제나 지식을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기호(원자명제)로 바꿔서 번역해 버리면 <확률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이다. 예를 들면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반드시 물이 이루어진다.>는 100% 확증일 수 없지만, <H2 + O = H2O> 라고 과학적으로 바꿔 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퍼는 말한다. 그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어떤 과학적 실험에서 <반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과학인가, 아닌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즉, 포퍼가 생각한 과학이란 <100% 완벽한 검증>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검증의 문제를 놓고 포퍼와 햄펠이 격론을 벌였는데, 여기서 바로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난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 칼 포퍼와 <역사의 법칙> 칼 포퍼는 위에 언급한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의 연구방법이 역사의 핵심을 밝히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랑케처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원문을 번역하듯이 밝혀놓기만 하면 어떤 역사가 중요하며,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어떤 법칙이 숨어있으며, 그것이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포퍼는 역사학을 자연과학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자연과학이 <100% 옳은지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을 밝히는 학문이라면, 역사학은 어떤 과거의 사건들을 전후관계(인과관계)를 따져서 100% 법칙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 그럼, 알기 쉽게 포퍼가 생각한 법칙을 정리해보자. 조건(Control) : 2월 혁명의 원인은 왕정의 무능력함이었다. 법칙(Low) : 지배층이 무능력할 경우 혁명은 발생한다. 결과(Effect) : 2월 혁명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포퍼는 어떤 조건이 제시되었을 때, 그것이 역사법칙과 맞아떨어진다면 100% 결과가 도출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사회과학이 발달하면서 역사를 규칙 속에서 바라보려는 역사학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진 이론이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이와 비슷한 조건이 있었는데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포퍼는 간단히 말한다. 법칙에 해당하는 어떤 조건이 빠진 것이라고.... 한마디로 빠진 걸 알아서 잘 찾아보라는 이야기다. 그러자, 햄펠이 포퍼의 이론에 바로 반박하였다. <미국독립혁명>과 같은 경우에는 프랑스 혁명의 원인과 상관없는 <조세문제, 식민지 문제> 등이 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역사를 설명할 때는 굳이 어떤 법칙이나 증거를 들이대지 않고, 원인과 결과만 나열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 또는 <가장 합리적인 이유> 때문에 움직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2월 혁명에서 지배층들은 왕정의 무능함으로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다. 피지배층들은 왕정의 재정파탄으로 생계가 어려웠다. 그들이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혁명을 일으키는 게 맞다는 것이다.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가만 있다가 피해를 보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에 혁명은 당연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햄펠은 과학적 <기호>를 이용하여 이런 공식을 만들어낸다. a : 지배층 / b : 피지배층 / c : 왕정의 무능 / d : 혁명 c라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a + b는 아주 높은 확률로 d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포퍼는 햄펠의 기호논리에 대해 부인한다. 기호를 이용한 수식은 <과학>적이지 못할 뿐더러, 100% 확증이 없이 <확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증명> 하거나 <반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높은 확률>은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느 정도가 높은 확률인지 증명을 할 수 없지 않는가? 위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포퍼의 핵심 주장은 <반증>이 가능한가였다. 하지만 포퍼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었다. 역사라는 학문은 인간의 과거를 다루는 데, 과연 100% 확고한 법칙으로 역사를 설명할 수 있을까? 포퍼는 여기서 한발 물러난다. 모든 역사적 사실을 100% 법칙으로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법칙으로 생각한 것은 누구나 너무나도 당연해서 법칙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거나, 당연히 법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증명하는 과정이 난해해서 대부분 그냥 넘기는 그런 법칙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동설을 주장하는 교회세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았다.> 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빠진 법칙이 있다. <기득권 세력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면 제재를 받는다> 라는 법칙이 있지만, 너무 당연해서 그냥 원인과 결과만 설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 칼 포퍼의 <계몽주의> 자, 그럼 칼 포퍼의 역사이론을 통해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살펴보자. 포퍼는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하나의 사건은 반드시 하나 이상의 법칙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법칙들은 반드시 선후관계(인과관계)를 가진다고 믿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것도 러시아에 진격한 것도 반드시 그 원인이 있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사에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칙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다. 20세기 사회는 19세기 서구 문명이 이루어낸 문명 이기의 총합이다. 산업혁명과 계몽주의라는 조건(Control)이 있었고, 진보한 문명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법칙(Low)이 있었다. 그 결과 서구사회는 진보의 정신으로 발전해왔다. 아프리카 등 제 3세계는 같은 조건과 법칙을 적용하여 서구 문명과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 다윈이 생명체의 세계에서 진화의 법칙을 찾아냈듯이 서구사회는 다른 사회에 그러나 이러한 진화를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주의와 파시즘적 공산주의는 그러한 진보의 과정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칼 포퍼는 자연과학이든,사회과학분야에서든, 역사에서든 변화와 발전에는 법칙이 있으며, 그것의 결과로 사회는 발전해나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포퍼의 과학연구가 <과학이 역사적으로 전개해 온 방식>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 학자가 있다. 그는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았더니 변화나 발전이라는 말보다 <전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에서 법칙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양한 <다른 세계>들이 공존한다고 말하였다. 토마스쿤은 이런 주장들을 묶어 <패러다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 용어는 과학사 뿐 아니라 모든 인문사회과학과 역사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그럼 다음장에서 토마스쿤의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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