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의 등장과 생각하는 문자인....
   "역사적 사건을 보존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문자의 필요성은 제기되었다. 그것을 사건으로 기록하는 사람은 왕과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고 한다. 초기의 설형문자가 기도를 들어주는 신에게 바치는 것이었다면, 시간이 지나 인간이 좀더 이성적일수록 좀더 이성적인 기록을 남긴다고 한다. 이것이 역사기록의 시작이다."
                                                                             

    기원전 2천년경 아카드인들은 함무리비왕으로 유명한 바빌로리아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 그들은 역사에서는 셈족의 선조로서 아랍족, 히브리족 등은 모두 여기서 기원하고 있습니다. 아카드 인들이 나라를 세우고 이전 수메르 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수메르어는 이제 종교문헌에나 등장하는 문어로 보존되었습니다. 마치, 라틴어가 카톨릭 교회에서나 사용되던 것과 비슷하죠. 이러한 수메르의 설형문자는 곧 오리엔트를 통일한 아시리아의 문자로도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문자가 이제 어떻게 발전되어가는지 볼까요? 함무라비 법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문자는 중요한 사건이나 계약을 위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또, 중형주의적 보복주의적인 형벌을 규정하는 체계로도 사용되지요.

기원전 2천년은 문자를 통하여 상호교류의 역사가 진전되었다.
  이러한 의사소통과 표현의 수단으로서 발달한 문자는 곧 아카드인,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 등이 우편제도를 발달시키는 것에도 도움을 줍니다. 심지어 진흙으로 만든 봉투까지도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여기서 역사적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원전 2천년 경의 역사와 문자와의 관계입니다. 역사가들은 흔히 기원전 3천년경에 개별적으로 발달한 각 문명이 기원전 2천년경에 서로 밀접한 상호적 관계를 맺는 국제사회로 발전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청동기 사회의 진전이라고만 설명하고 있는데, 저는 이러한 상호연관된 국제사회로의 발전은 곧 문자 사용의 진전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도 주목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외부로는 문화적 영향력, 내부로는 문화를 통한 권력...
   고대 수메르인들이 남긴 대서사시 <길가메시의 서사시>는 설형문자가 신에 대한 찬송, 고대의 예언, 문학자료의 보관 등이 모두 가능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고대의 서아시아, 유럽 문화는 모두 일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길가메시 이야기

   그리스의 《오디세이아》에 비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길가메시는 수메르 ·바빌로니아 등 고대 동양 여러 민족 사이에 알려진 전설적 영웅으로, 수메르의 자료에 의하면 우루크 제1왕조 제5대 왕이었으나 뒤에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옛 이야기의 미술작품에도 가끔 나타나고 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BC 2000년경에 이룩된 것이라 하는데 각기 시대가 다른 별도의 이야기들을 한 사람의 인물인 길가메시에 통일시킨 것이죠. 오늘날에는 주로 BC 7세기 니네베의 아슈르바니팔 왕궁 서고에서 출토된, 12개의 점토서판이 그 전거가 되는데, 1862년에 영국의 조지 스미스가 이 서판의 내용을 공표함으로써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길가메시는 반신반인의 영웅으로 폭군이 되어 있네요.

여신 아루루가 괴물 엔키두를 보냈지만 두 사람은 싸움 끝에 친구가 된니다. 두 사람은 숲속의 괴물 훔바바를 치러 함께 떠나 이를 무찌르게되죠. 다음에 엔키두는 하늘의 황소까지 죽여 버리는데 그 죄과로 하늘로부터 죽음의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친구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길가메시는 죽지 않는 비결을 찾아 헤메게 다니게됩니다.
    오랜 방황을 하다가 드디어 멀리 성자
의 섬에 사는 우트나피시팀(바빌로니아의 노아)을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서 우트나피시팀은 옛날 신이 일으켰던 대홍수(구약성서 중 노아의 대홍수에 해당한다)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나 그도 죽지 않는 비결은 알지 못하고 다만 불로초를 바다에서 캐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길가메시는 이 풀을 캐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잠시 쉬고 있는 사이 뱀이 이 불로초를 먹어 버려 빈손으로 슬픔에 잠겨 우루크성으로 돌아오다는 내용입니다.

  즉 이 이야기에는 2/3는 신이고, 1/3은 인간인 태양거인이 나오는가 하면, 여러 신화적 괴물도 등장합니다. 또한 방황에 대한 구조라던가 설정 등은 웬지 그리스적인 신화 냄새가 많이 납니다. 이러한 방황을 극복하는 영웅이라던가,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저항하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헤라클레스 신화>의 전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또 대홍수에 대한 설명 등이 가미된 이 이야기는 고대 수메르, 아카드 인들과 셈족인 아랍족, 히브리족이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성경 자체가 설형문자를 변형한 문자체계인 히브리어인 만큼 성경의 설명 등도 일부분 고대 민족들의 사상 체계가 들어가 있음이 눈에 띕니다.
 

 

문자가 신분의 지위였던 시절이 있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설형문자를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기호를 모두 알고, 문맥에 맞추어 그 기호를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사람만 가능한 것이었죠. 그렇다면 글자를 안다는 것은 곧 독립된 신분계급을 의미했겠지요? 그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글을 아는 사람들이 궁신이나 심지어 왕보다도 더 강력한 권력을 누린 시절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역사에 따르면, 바빌로니아나 아시리아인들의 서기관들은 전쟁이나 종교행사를 주관하는 것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도 하네요.

메소포타미아의 언어체계는 끊임없이 전파되어 갔다.
 
메소포타미아의 언어가 역사상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많은 언어와 상관관계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 설형문자는 수메르어, 아카드어 외에도 엘람어(페르시아어의 기원), 히타이트족의 언어, 아르메니아어(카난어, 우라르티아어) 등 대부분의 중동지방에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페르시아 왕국은 설형문자에서 파생된 설형 알파벳을 사용하였고, 페니키아 역시 변형된 설형문자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그리스 알파벳과도 일정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겠죠.



길가메시의 발견



함무라비 법전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