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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탈레스와 철학의 기원

 

1. 탈레스는 누구인가?

탈레스(B C 640-545) : 밀레토스학파의 선두주자, 통상 철학의 시조로 숭상됨

탈레스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이오니아의 밀레토스 사람으로서 밀레토스 학파의 창시자라고도 부르죠.  그는 최초의 자연철학자라고도 불립니다. 아리스토텔레서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까지 말하기도 하였죠.

탈레스의 사상은 그 사상 자체의 위대함이라기 보다는 서양철학사에 있어 학문적으로 철학이 무엇인가를 밝혀준 최초의 등불같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위대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와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이 바로 탈레스이죠. 탈레스는 일단 우주의 생성원리를 물에서 찾은 최초의 자연주의 철학자입니다.

2. 아르케는 곧 물이다.

그는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물이라고 하였습니다.(시작점, 원리 등을 아르케(arche)라고 하는데, 그는 아르케는 물이라 했죠) 그는 스스로, "만물의 아르케가 무엇인가? 만물의 아르케는 물이다" 라고 묻고 답하곤 했답니다. 쉬운 말로 만물이란 물에서 생겨 결국 물로 돌아간다는 뜻이지요.

그럼 만물의 근본이 왜 물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먼저 물은 모든 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물질이라는 점에 착안하였을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수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말이죠. 두 번째로 물은 고체, 기체, 액체로 그 형태가 변하듯 다양한 형질로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고대 신화에서 물을 만물의 시조로 여기는 부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도 영향을 준 듯 싶습니다.

탈레스는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는 일원론적인 철학체계를 제시했습니다. 또 만물은 물이라는 물질에서 비롯된다는 유물론적 시각도 이때부터 시작된 듯 싶습니다. 탈레스의 입장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철학적 논쟁의 해답은 간단합니다. 결국 그것은 만물의 시초인 물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가 왜 물을 모든 사물의 본질로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실제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단순히 사건들을 관찰하다가 그런 결론에 도달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만물의 영양소가 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열이 수분에서 발생하며 수분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에, 또한 만물의 씨앗들이 수분을 가지며 그 수분의 근원은 물이라는 사실로부터 탈레스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탈레스는 주변의 현상들에 관심이 많았고 모든 사물들에는 공통적인 영원불변하는 연관되는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은 곧 하나의 원리 속에서 규명되며, 하나의 원리는 곧 우주를 구성하는 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탈레스적인 해석이였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탈레스의 사상보다는 탈레스가 제기한 문제의식입니다. 탈레스의 사상의 핵심은 만물을 물이라고 정의함으로써, 만물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즉, 철학이라는 것이 고민과 성찰이라는 측면을 중요시한다고 했을 때, 탈레스는 철학적 사고와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인간이라는 뜻이지요.(물론 서양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입니다.)

탈레스의 사상은 인류에게 크나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인간이 본질이라는 절대적 측면과 현실이라는 측면을 나누어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게 생각하였을 때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결국 무엇이냐라는 최초의 물음이 여기서 시작된 것이지요.

3. 밀레토스 학파란?

여기서 밀레토스 학파를 한번 짚어봅시다. 밀레토스 학파는 사물의 기원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탈레스적 사고를 추구하는 학파입니다. 그들은 만물을 구성하는 것은 실재로 존재하며, 그 존재하는 만물의 기원을 아르케라고 부릅니다. 아르케는 모든 만물의 시작이며, 모든 만물이 다시 되돌아가는 근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지만, 그 기원은 아르케는 영원하다고 믿습니다. 즉, 아르케는 영원함을 가진 존재이며 영혼과 동일한 존재입니다. 탈레스는 "만물은 신들로 가득차 있다"라고 말합니다.

탈레스의 철학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계통을 통해 밀레토스 학파가 완성되게 됩니다.

먼저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B. 610~545)는 탈레스의 제자인 동시에 후계자로서 스승과 거의 동시대에 밀레토스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과 달랐습니다. 스승이 경험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물질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만물을 물이라 하였던 것과 비교됩니다. 그는 만물을 연구함에 있어서 물과 같은 물질을 아르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불, 흙, 공기 등 다른 물질들이 물에서만 발생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는 물질이 아닌 개념적으로 추론하고, 논리적으로 이해되는 것으로 아르케를 삼으려고 노력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승처럼 단일한 본빌이 만물을 구성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물이 아닙니다. 물은 다른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은 어떤 형태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무한한 것이라고 파악했습니다. 형태를 갖춘 일반 사물들은 이미 그 형태가 있는 물질일 뿐 근원일 수 없습니다. 즉 만물의 본질은 "비결정적 무한성"을 가진 무엇인가라는 개념적인 추론을 통해 만물의 근원을 연구한 것이지요. 그는 이것을 "하나의 영원한 운동이 있었고, 이것을 통하여 삼라만상이 탄생하였다"라고 개념적인 정의를 내립니다.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만물의 근원은 무한자이다."

밀레토스 학파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인물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8-524, B.C.)는 아낙시만더의 젊은 친구였습니다. 그는 모든 사물의 근원으로서의 무한성이라는 친구의 개념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개념은 애매모호하고 임의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더욱 깊은 고민끝에 만물의 근원은 공기라고 주장합니다.

4. 만물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밀레토스 학파의 이러한 문제의식과 만물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이후 계속 이어집니다. 이후의 학자들은 이 학파의 논의에 대해 새로운 시도와 끊임없는 정의를 시도합니다. 구체적으로 몇 명의 학자들의 주장만 적어봅니다.

1) 탈레스(Thales, 624-546 B.C.) : 존재의 근원은 신이 아닌 물질.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2)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610-546, B.C.) : 만물의 근원은 무한(aoriston)이다.

3)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8-524, B.C.) : 만물의 근원은 공기(pneuma)이다.

4)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570-480, B.C.) : 만물의 기본 요소는 흙이다.

5)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41-475, B.C.) : 모든 물질의 본질은 형상이 없고 변화하지만, 가장 활기찬 것은 불이다.

6)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499-428 B.C.) :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질 변화의 수만큼의 원소가 있다.

7)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483-435 B.C.) :  4원소설(흙, 물, 불, 공기)을 주장하였습니다. 만물은 4개 원소의 각 부분이 '사랑(philia)'과 미움(neikos)'의 두 개의 힘에 의하여 혼합되거나 분리되어 형성된다고 합니다.

8) 플라톤(Platon, 427-347 B.C.) : 4원소설을 수학적, 기하학적으로 변형하였고, 4원소 이외에 제5원소로서 에테르(aither)를 언급하였습니다.

9)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 4원소는 하나의 원질(primary matter)로 되어 있고, 이 원질에  건(dry), 습(wet), 냉(cold), 열(hot) 4개의 촉감적 성질(quality)이 두 개씩 조를 이루어 부가되어 현실적 원소가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0) 레우시푸스(Leucippus, 500 B.C.) :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졌다.

11)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460-370 B.C.) : 원자설을 완성하였습니다.

        ① 세계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것(atomos, 원자)과 공허한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원자는 모두 같은 원질로 구성되지만 형태, 크기 무게는 다르다.

        ② 무에서 새로 생기거나 존재하는 것이 소멸하지 않는다.

            소멸처럼 보이는 것은 원자 운동으로 다른 것으로 변환된 것이다.

        ③ 원자의 운동은 기계적이며 필연적이다.

12) 에피쿠로스(Epikuros, 342-271 B.C.) :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운동이 신에 의하여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는 그 운동은 무작위적이며 자유 의지 같은 무엇인가의 결과이며 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13) 루크레티우스(Lucretius, 95-55 B.C.) : 기원전 57년에 라틴어 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지었습니다. 이 시가 1417년에 발견되어서 원자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5. 탈레스에 대한 일화들

1. 탈레스와 사고

탈레스는 그리이스 일곱현인 중에서도 최고라고 일컬어 질 만큼 유명한 수학자이며 철학자로서, 기원 전 620년 경에 그리이스 이오니아 해안의 밀레토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상인인 아버지와 어느날 함께 지중해를 건너 먼 이집트로 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집트의 고전에 관심을 가져온 그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먼저 그는 피라미드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저렇게 웅장한 것을 인간이 만들 수 있었을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가 이집트인으로부터 아직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불가사의한 책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책을 꼭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탈레스는 이집트 땅에 도착하자마자 그 책의 소재를 탐문해 본 결과 어느 사원의 사고(事庫)에 비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기쁨에 넘쳐 그는 이 사원의 승려에게 그 책을 보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좀체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탈레스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끈질기게 부탁을 계속했더니 그 승려도 결국은 그의 열성에 마음이 움직여 그 책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이 책은 수학과 천문에 관하여 쓴 것으로서, 탈레스가 그 방면에 평소부터 연구해 왔기 때문에 꿈에서도 읽을 만큼 그 책을 열심히 읽어 그 내용을 흡수하였다.

2. 일식을 예언

탈레스는 기원 전 585년 5월 28일 일식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언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오늘날에는 신비한 일도 아니지만, 기원 전 585년에는 태양의 일부 또는 전체가 달에 의해 가리워진 다는 것을 예언하는 일은 세상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탈레스가 비록 이집트를 다녀온 천문학자라 해도 설마 태양이 이지러진다는 것을 알 수야 있겠느 냐고 생각하여 마을 사람들은 5월 28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 날은 왔다. 탈레스는 예언은 적중하였다. 한낮에 하늘은 갑자기 밤이 온 것처럼 어두워졌다. 마을 사람들은 탈레스가 천문에도 밝다는 사실에 경탄해 마지 않았다. 그리하여 탈레스는 단지 수학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천문학자로 서도 그 명성이 그리이스 전역에 떨쳐지게 되었다. 어느 역사가는 "그리스의 철학은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시작되었다"라고 말한다. 이 날은 탈레스가 예언한 일식날이었다.

3. 웅덩이에 빠지다.

천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탈레스는 자주 하늘을 쳐다 보면서 연구에 열중하였다. 그 날 저녁에도 전과 같이 무심히 밤하늘을 보면서 산보하고 있었다. 지상의 것은 어느 하나도 관심이 없 었다. 갑자기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놀라 보니 그 소리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별에 정신 을 팔고 걷다가 길옆의 웅덩이에 빠진 것이다. 그러자 익살스런 하녀가 그를 비웃었다. "자기 발 밑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면서 하늘의 일을 알려고 하다니.... "

이 이야기에 대하여 플라톤은 진지하게 말한다.

"그와 같은 조소는 철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사실 철학자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무엇을 하는지, 심한 경우에는 자기가 인간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조차 모른다. 철학자는 하녀 뿐 아니라 법정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는 웅덩이 뿐 아니라 온갖 어려움에 빠질 정도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서툰 행동을 한다. 그러나 철학자는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이 다른 존재와 달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통구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4. 피라밋의 높이를 재다

이집트에서는 왕이 죽으면 돌로 산처럼 큰 무덤을 쌓아 올린다. 이러한 왕릉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만 명의 노예가 매일 일해도 몇 십 년의 세월이 걸려야 할만큼 엄청난 노동력과 경비가 소요되었다. 지금도 수십 개의 피라미드가 남아있었지만 그 중 제일 큰 것의 높이는 5.6백자가 넘는다고 한다. 탈레스는 그 피라미드의 높이를 겨우 몇 자 밖에 안 되는 짧은 막대 하나를 가지고 알아냄으로써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탈레스는 과연 피라미드의 높이를 어떻게 재었을까?

탈레스는 피라미드와 태양의 반대쪽에 막대기를 세우고, 피라미드의 그림자 끝과 막대기 그림자 끝이 일치(만남)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 삼각형 ㄱㄴㄷ과 삼각형 ㄱㄹㅁ의 두 닮은 삼각형이 생겨나게 되는데, 막대기의 길이는 이미 알고 있고(1m 막대기를 사용하면 편리하다.) 땅의 길이는 평면이기 때문에 금방 잴 수 있다. 그래서 탈레스는 다음과 같은 식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1 :h=χ : y

h×χ=y×1

h(높이)=y÷χ , (높이)=(큰 삼각형의 밑변의 길이)÷(작은 삼각형의 밑변의 길이)

탈레스는 이와 같이 그림자를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구할 수 있었다.

5. 탈레스의 제자들

탈레스는 고향인 이오니아에 돌아와 학교를 세우고 많은 제자들과 함께 수학을 연구하였다. 따라서, 그의 제자 중에는 유명한 수학자가 있다. 그 중에도 아낙시만델과 아낙사고라스, 아낙레메네스 등은 최고의 수학자들이다. 그들을 학계에서는 이오니아 학파라고 부르고 있다.

아낙시만델은 어떤 사정으로 붙잡혀 오랜 기간 감옥살이를 했는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수학을 연구하였다. 그 때 연구한 것 중의 하나는 원의 넓이와 같은 넓이를 가진 정4각형을 만들라는 문제였다.

이것은 '원적문제' 로 알려진 기하학의 3대난문 중의 하나로서, 자와 컴파스만으로는 작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재는 증명되고 있다. 탈레스는 비례 뿐만 아니라 초등기하학의 각 부분에도 손을 대어 피타고라스나 유클리드 등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연구하였다.

6. 부자가 되어 버리다.

어떤 사람이 탈레스에게 "도대체 학문 따위는 쓸모가 없소. 당신같이 학문하는 사람은 모두 가난하지 않소?"라고 비옷었다.

그러자 탈레스는 그해 겨울 자신이 가진 모든 돈으로 밀레토스 일대의 올리브 착유기를 모두 사 버렸다. 다음해 가을이 되자 그가 예언한 대로 풍년이 들어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착유기를 빌리러 왔다. 그를 비웃었던 사람 역시 착유기를 빌리러 왔다. 탈레스는 이들에게 비싼 값으로 기계를 빌려주고 많은 돈을 벌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일화는 이렇게 설명한다.

"학자는 마음만 먹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학자의 목적은 부자가 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탈레스는 세상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7. 결혼에 대한 일화

탈레스의 어머니가 그에게 결혼을 하라고 하였다. 탈레스는 "아직 결혼할 시기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이가 더 든 뒤 어머니가 결혼을 재촉하였다. 탈레스는 "이제 결혼할 시기가 지났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머니가 탈레스에게 왜 자식을 낳으려 하지 않는냐고 말했다. 탈레스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라고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