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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복신과 도침의 백제 부흥운동

백제 부흥운동 - 복신과 도침에 대한 사료

백제 승려인 도침과 옛 장수인 복신은 무리를 거느리고 주류성을 거점을 반란을일으켰다. 그리고 왜국에 사신을 보내어 옛 왕주 부여풍을 맞이하여 왕으로 세우니, 서부와 북부가 모두 성을 들어 호응하였다. 이 때 낭장 유인원은 백제의 부성(사비성)에 머물러 있었는데 도침 등이 군사를 이끌고 포위하였다. 대방주자사 유인궤가 왕문도를 대신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지름길로 신라병을 출동시켜 합세하여 유인원을 구원하고 계속하여 싸우니, 이르는 곳마다 항복하였다.

도침 등이 웅진강(공주 앞 금강) 어귀에 책 두 개를 세워 관군에게 저항하자 유인궤는 신라병과 함께 사방에서 협공하였다. 적들은 후퇴하여 책 안으로 달아났지만, 물에 막히고 다리는 좁아 물에 빠지거나 전사한 사람이 1만이나 되었다.

도침 등은 이에 유인원에 대한 포위를 풀고 임존성으로 물러나 보전하였다. 신라병은 군량이 다하여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이 때가 용삭 원년(661) 3월이었다.

구당서 권 199, 열전 149, 동이 백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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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해석 : 이 사료는 백제 부흥운동을 보여줍니다. 백제 부흥운동은 사비, 웅전성을 제외한 백제 전역에서 전개되는데 그 목적은 모두가 <사비성 탈환 시도>였습니다. 사비성은 당나라 유인원, 신라 김인태의 공동 관리였고, 웅진성은 당나라 왕문도가 관리했습니다. 즉, 백제의 점령군은 당나라가 주력군, 신라가 보조군의 입장에서 부흥운동을 막은 것이지요. 도침과 복신은 사비성을 탈환하려는 목적으로 대규모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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