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 공산주의 단체들을 이름으로 해석해보자!!!

북성회, 북풍회, 화요회, 흑도회, 정우회...

이 이야기는 초보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쉬운 용어와 비약된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사회주의자분들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분들이며, 이 분들의 일화는 여기 짧게 나오는 용어 이상으로 구체적인 이야기와 열정적인 내용이 더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1919년. 우리 민족은 거국적인 3.1운동을 전개해서 일본과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1920년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하였고, 일제 역시 조선인들을 때려잡는 무단통치를 중지하고, 형식적이나마 문화통치를 약속하였습니다.

1919년 3월 중순. 농촌까지 퍼진 3.1운동

이런 분위기가 되자 공산주의 사상을 통해서 조선의 독립을 추구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답니다. 특히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하자,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를 본받아 일본으로부터 해방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우후죽순 공산주의 단체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그 단체들의 이름을 지금 들어보면 유명한 무협지에나 나올 것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이 많았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먼저, 1921년 흑도회(黑濤會)!!!

그 이름으로 보자면 검은 물결이 밀려온다는 뜻이네요. 여기서 검은 물결이란 사회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빨간색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피의 상징이라면, 검은 색은 무정부주의와 사회적 약자를 싱징하는 혼돈의 색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박열, 김약수 등 조선 고학생 동우회 회원들이 일본 무정부주의자들과 연대해서 만든 단체랍니다.

박열 선생과 김약수 선생

그것도 제국주의의 심장인 일본 본토 한가운데서 말이죠. 이 사람들은 일본에서 발생하는 조선인 노동자 집단학살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면서, 일본-조선인 노동자들이 마르크스의 깃발아래 함께 모일 것을 꿈꾸었죠. 하지만, 이들이 꿈꾼 세상은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참된 세상이었습니다. 그 존엄성이 지켜지고, 그것을 가로막는 일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마르크스이던 크로프트킨이던 이념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이념은 인간을 지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까요.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에 대한 자각이 모든 것을 앞선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밖에서 보는 이들은 흑도회를 무정부주의자들이라고 규정한 것이랍니다.

흑도회 선언문

박  열(1921. 1. 1)

1. 우리는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자아에 산다. 일상의 일거일동이라도 그 출발을 모두 자아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철저한 자아주의자로서 인간은 서로 헐뜯는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미워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며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2. 우리는 사람마다의 자아를, 자유를 무시하고 개성의 완전한 발전을 방해하는 그 어떤 불합리한 인위적 통일에도 끝까지 반대하며 전력을 다해 그를 파괴하는 데 노력한다.

3. 우리에게는 아무런 고정된 주의는 없다. 인간은 일정한 틀에 박혀 있게 될 때 타락하고 사멸하는 것이다. 맑스와 레닌이 뭐라고 지껄였던, 크로프트킨이 뭐라고 말했던 우리에게는 필요없다. 우리 길에는 우리의 귀중한 경험이 있고 방침이 있고 또 뜨거운 피가 있다.

4.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 우리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우리 자신 스스로 규율한다. 외부에서 오는 어떤 강한 권력도 우리의 행동을 규율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5. 우리들은 자기를 희생하라는 어떠한 강요도 받아들일 수 없다. 사회 인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라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예외없이 위정가爲政家들이다. 그중에는 이른바 인도주의 등을 가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우리들에게는 만일 자기희생이 있다면 그것은 자아의 의지에서 비롯된 일일 뿐이다.

6. 우리들은 모두 자유롭다. 배고플 때는 먹고 하고 싶을 때 하고, 울고 싶을 때 울고, 화낼 때 화를 낸다. 우리의 자아, 우리의 감정, 우리의 이성중 어떤 한 가지도 다른데서 강요와 지휘를 받는 일은 없다. 의지가 있는 곳에 삶이 있고 마음 다한 곳에 감격이 있다. 자아의 강한 요구에서 생긴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들에게는 신이고, 선이며, 미이다. 우리에게는 소위 절대 보편의 진리대법칙이란 것은 없다. 그런 것들은 모두 자신의 내면적 요구의 진화 발전과 함께 변화해간다.

7. 우리들은 이 인성과 자연의 변화중에 참된 질서가 있고 참된 통일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곳에 인간의 진화가 있고, 새로운 창조가 있다.

8. 이곳에서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에 의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선언하는 바이다.

박열이란 사람은 아예 <흑도>라는 기관지까지 발행하면서 무정부주의를 외쳤답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무정부주의 및 폭력 혁명 단체는 내부 분열로 해체된답니다.

흑도회가 발행한 <흑도>

김약수 등 사회주의 이론과 마르크스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박열이 주장하는 폭력 혁명 및 무정부주의가 과격하다고 생각하면서 따로 북성회(北星會)를 만들었어요. 이름이 왜 북성회냐구요? 북쪽의 별을 모으다... 즉 러시아를 따라가겠다는 거죠.

반면에 무정부주의가 조국 독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박열은 흑도회, 흑우회 이전에 있었던 풍뢰회(風雷會)를 다시 만들어서 활동했답니다. 바람과 번개라는 조직 이름만 들어도 이 무정부주의자들의 성향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죠?

이 무정부주의자들은 우파, 좌파, 사회주의자들 누가 비난하던지 혹은 일제가 탄압하던지 말던지 꿋꿋하게 무정부주의를 통한 독립활동을 전개했답니다. 그것도 제국주의의 심장인 일본에서 말이죠. 탄압이 거세지면 살짝 이름만 더 폼나게 바꿔주었죠. 불령사(不逞社), 흑풍회(黑風會) 등등 더욱 더 무시무시한 이름을 지어서 <인간 존엄성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를 보여준 것입니다. 사실 독립운동가들이 무정부주의라고 말했던 박열의 노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서구의 <실존주의 철학>을 앞서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답니다.

이 사람들은 어느 단체이던지 약간만 친일 경향이 보인다 싶으면 꿋꿋하게 저항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으로 공격했답니다. 노동단체이지만 친일파가 있었던 상애회(相愛會)와 충돌했고, 민족주의 범국민단체인 신간회(新幹會) 일본 지부마져도 <진정한 인권 보호과 독립의 정신이 없다>고 습격했답니다.

이들이 발행한 신문들도 이름이 무시무시하답니다. 기관지 이름이 호조운동(互助運動)이고, 신문 이름은 흑색신문(黑色新聞)이랍니다. 물론 무시무시한 전투적 기사들만 계속 내보냈으니 일본에 의해서 바로 발행 중지 당했겠죠?

반면 정직한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한 북성회는 그나마 이름이 좀 점잖은 편이랍니다. 김약수 등 이 단체 사람들은 국내 사회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먼저 잡으려는 생각으로 건설사(建設社)라는 단체를 만들었답니다. 일본이 보기엔 이 단체가 독립운동단체인지 말 그대로 건설 단체인지 헷갈릴 정도였죠. 하지만, 이건 사회주의 세력을 모으기 위한 잠깐의 위장술이었고 어느 정도 국내 본부가 완성되자 북풍회(北風會)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답니다. 북에서 부는 바람이라면.... 바로 러시아의 마르크스 주의겠죠?

북풍회 선언문

현재 조선의 사회운동은 극히 혼돈스런 상태에 있지만 바야흐로 조직을 필요로 하고 실천을 요구하는 신기운이 감돌고 있다. 운동의 초기에는 오직  소수의 전위분자가 대중과 비교적 간격을 두고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학문적인 이상만을 추구하는 폐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조선의 대중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전위분자들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토대로하여 대중과 함께 자본가의 본진을 향해 돌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이러한 신국면에 적응하는 진용을 새롭게 준비하고 전술과 전략을 수립하여 싸움에 임해야 한다.  

  강령  

  1.사회운동이 본질적으로 대중 자체의 운동인 이상 우리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입각한 대중의 실제적 요구에 따라 종국적인 이상을 향해 매진해야 한다.  

  1.우리는 대중운동 보몬인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 형평운동의 지적 교양과 계급적 훈련을 병행, 모든 현상타파 운동을 지지함과 동시에 경제문제에  비중을 두어 과학사상을 보급하고 도시와 농촌의 협동을 기한다.

  1.우리는 이제까지 노선이 불투명한 운동을 정리하고 조직의  분류를 면밀히 하여 종래의 소극적 부인의 태도를 버리고 더욱더 질서있게 정진할 것이다.  

  1.우리는 계급관계를 무시한 단순한 민족운동을 부인한다. 그러나 현재 조선에 있어  민족운동도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발생하는 이상 우리는 특히 양대운동 즉 사회운동과 민족운동의 병행에 대한 시간적 연합을 기한다.  

  1924년 12월 27일  

  북풍회 중앙집행위원회  

반면, 3.1운동 직후 처음부터 국내에 터를 잡고 공산주의 운동을 했던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무슨 단체인지 이름만으로는 성향을 알 수 없었던 화요회(火曜會)였습니다. 이 단체의 리더인 김재봉 외에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박헌영,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 김찬, 김단야 등등 유명한 인물들이 포진한 최강의 공산주의 운동 단체였죠.

화요회의 맴버 : 김재봉, 홍명희, 김단야, 박헌영

그런데 이름은 왜 화요회일까요? 그건 마르크스의 생일이 화요일이기 때문에 만든 명칭이랍니다. 원래는 마르크스 사상을 연구하는 신사상 연구회였는데, 화요회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죠.

이 화요회는 소련의 공산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에 중국 상해 공산당쪽 계열인 서울청년회와는 대립관계였답니다. 사실 1920년대 공산주의 3대 단체하면 북풍회, 화요회, 서울청년회였는데, 그럼 서울청년회는 뭐하는 단체였을까요?

원래 서울청년회는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같이 모여 만든 <서울파>라는 이름의 조직이었답니다. 서울파라고 하니깐 무슨 힘쓰는 조직같죠? 그래서인지 청년단체라는 걸 분명하게 하기 위해 서울청년회라고 이름을 지었지요. 하지만, 장덕수 등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소련 코민테른에서 내려온 자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사회주의자들 중심으로 단체로 변했답니다.

사기공산당 사건의 관련자들 : 이동휘, 장덕수, 최팔용

이동휘, 김철수 등을 통해 전해진 코민테른의 공산당 자금을 장덕수, 최팔용 등이 횡령한 사건으로
서울파에서 민족주의가 몰락하고 사회주의 단체로 변모하게 된 사건이다.

사회주의 단체가 된 서울파는 노동자, 농민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면서 마르크스 주의의 위대함을 알리고, 민족주의자들이 농촌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답니다. 그 결과로 1924년에는 조선청년총동맹, 고려공산동맹 등을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자, 문제는 지금까지 말한 단체들의 1925년 활동이었습니다. 북풍회는 한국-일본의 못사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모두 연대해서 혁명을 일으킨다는 범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독립운동단체였습니다. 반면, 화요회는 소련의 마르크스 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조선의 실정에 맞추어 공산당 창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단체였답니다.

그리고 서울청년회소련보다는 상해의 중국 공산당, 고려공산당과 연관이 많아서 화요회의 러시아파와 대립하는 관계였답니다.

하지만, 이 단체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서 뭉쳐야만 했습니다. 우파나 민족주의와 협력은 고사하고, 공산주의자들끼리 대립하고 있으니 독립운동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지요.

1925년 초반, 일본의 북성회는 일월회(日月會)라는 밝은 이름으로 바꾼 후 사회주의자들은 파벌을 버리고 모두 협력해서 독립운동을 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것에 영향을 받은 화요회와 북풍회는 서로의 생각을 조금씩 양보해서 1925년 제 1차 조선공산당을 창립했답니다.

문제는 서울청년회였습니다. 서울 청년회는 공산주의 운동보다 빈민이나 노동자를 돕기 위한 국제연대가 독립하는데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부갈등이 많았답니다. 결국 서울파는 분열되어서 일부는 일월회로 가서 조선공산당에 합류하게 된답니다.

이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거창한 이름들을 다 버리고 하나의 단체로 모일 때가 되었습니다. 1926년 4월... 수많은 공산주의 단체들은 서로를 벗으로 인정하면서 정우회(政友會 : 바른 친구들)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여성 공산주의자들은 근우회(槿友會)라는 이름으로 뭉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우파, 민족주의자, 좌파, 무정부주의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그 결과 1926년.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좌-우 연합 단체가 등장했답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근간을 알린다는 뜻의 신간회(新幹會)였던 것입니다.

신간회와 근우회의 강령

1. 신간회의 강령

우리는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진한다.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  

2. 근우회의 강령

조선 여자의 공고한 단결을 기함
  조선 여자의 지위 향상을 도모함

3. 강령 실천을 위한 근우회의 행동 강령

 조혼 폐지 및 결혼의 자유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일체 차별 철폐
   
일체 봉건적 인습과 미신 타파
   인신 매매, 공창 폐지
   농촌 부인의 경제적 이익 옹호
   
부인 노동의 임금 차별 철폐, 산전·산후 임금 지불
   
부인 및 소년공의 위험 노동과 야간 작업 철폐

- 신간회 창립 기사 : 좌우합작을 이룬 민족의 쾌거 -

신간회는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이념과 나이, 국내외를 떠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엄청난 단체였습니다. 신간회에 참여하지 못한 건 일제에 협력한 기회주의자들과 일부 서울청년회 극우파들 뿐이었죠. 그 규모도, 국내 지부 숫자도, 가입 회원도, 독립운동에 대한 영향력도 이전 어느 단체보다 막강했답니다.

신간회의 정치 규약  

  제1조. 본회는 신간회라 칭함.  

  제2조. 본회의 본부는 서울에 둠.  

  제3조. 본회는 본회의 강령을 관철키를 목적함.  

  제4조. 본회 회원은 연령 20세  이상 조선인 남녀로서 본회강령을 승인하는  자로 함. 단, 학생 및 20세 미만의 청년은 본회 학생부에 입회케 함.  

  제5조. 본회회원은 본회임원의 선거 및 피선거권 그리고 결의권을 가짐.  

  제6조. 본회회원은 본회의 일체의 결의 및 지휘에 복종함을 요함.  

  제7조. 본회회원은 회비로 1년에 금 30전을 본회에 납입함을 요함.  

  제8조. 본회는 각 지방을 구로 나누어 매구에 지회를 설치함.  

  제9조. 본회에 다음과 같은 기관을 둠.  

        1.대회 2.간사회 3.총무간사회 4.각 부회(특별부를 제외함)  

  제10조. 본회 대회는 본회 지회에서 선출된 대표로 성립함.  

  제11조. 대표회원은 30인의 1인으로 선출함.  

  제12조. 본회 대회는 본회에 관한 일체 사건을 결의하고 본부임원을 선거함.  

  제13조. 본회 정기대회는 매년 1차(2월), 본회 임시대회는 본부간사회가 필요로 인정할 때 또는 지부 대표회원 반수 이상의 요구가 있은 때에 회장이 소집함.  

  제14조. 간사회는 대회와 대회 사이에 있어서 대회의 직능을 행함.  

  제15조. 본회임원은 다음과 같이 둠.  

         1.회장1인 2.부회장 1인 3.총무간사 약간인 4.상무간사 약간인 5.간사 약간인  

  단, 회장,부회장 및 총무간사는 필요를 따라 비서를 본회회원 중에서 스스로 둘 수 있음.  

  제16조. 회장은 본회를 대표하며, 본회회무의 통일을 도모함.  

  제17조. 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하고, 회장이 유고할 때에는 회장의 직책을 대리함.  

  제18조. 총무간사는 간사회 또는 총무간사회 결의에 의하여 각부의 사무를 집행함.  

  제19조. 상무간사는 총무간사를 보좌하여 부무를 처리함.  

  제20조. 본회에는 다음과 같은 부를 설치하고, 매 부에 총무간사 1인 및 상무간사  약간인을 둠.  

         1.서무부 2.재무부 3.출판부 4.정치문화 5.조사연구부 6.조직부 7.선전부  

  제22조. 본회에는 다음과 같은 특별부를 둠.  

  제23조. 본회 경비는 회비와 기타 수입으로 충당함.  

  제24조. 본회 대회에 관한 상세한 규정과 간사회, 총무간사회, 각 부회, 지회 및  특별부에 관한 규약은 별도로 정함.  

  제25조. 본규약은 본회 본부대회에서 증삭할 수 있음.  

임시규약  

  제1조. 지회규약 제3조,제4조에 관하여 지회가 설립되지 못한 구역은 본부에서 직접  처리함.  

  제2조. 본규약 제10조에 관하여 해구역에 지회가 설립되지 못하므로 본부에  직속한 회원은 본부에서 전형하여 대표회원을 지정함.  

대회규정  

  제1조. 대회는 회장의 소집으로 대표회원이 과반수를 출석할 때 성립함.  

  제2조. 대표회원은 1년간 그 대표권을 보유함. 단, 지부대회에서 필요로 인정할 때에는 개선할 수 있음.  

  제3조. 대회에서는 그 계속기간에 한해 다음과 같은 임원을 선출하여 둠.  

        1.의장1인 2.부의장1인 3.서기장1인 4.서기 약간인  

  제4조. 의장은 대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의사를 진행하며 대회를 대표함.  

  제5조. 부의장은 의장이 유고할 때 의장의 사무를 대리함.  

  제6조. 서기장은 의장 지휘하에 서기사무를 총괄함.  

  제7조. 서기는 의사록 및 기타 문안을 작성하고 사무를 처리함.  

  제8조. 의사순서는 본부 총무간사회에서 정하여 대회에 보고함.  

  제9조. 지회로서 의안을 제출할 때에는 설명서를 첨부하여 대회개회 전4일 이전으로 본부 총무간사회에 제시함을 요함. 단, 대표회원으로서 특별의안을 제출할 때에는 5인 이상  연서를 요함.  

  제10조. 제출의안을 기각 또는 수정동의를 발할 때 3인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논제를 삼지 아니함.  

  제11조. 본부 회장, 부회장 및 총무간사는 대회에서 결의권이 없음.  

  제12조. 본회임원 및 본부임원의 선출방법은 전형위원을  선출하여 정원의 배수되는 후보자를 선출케 한 후 무기명투표로써 행함.  

  제13조. 대표 중으로서 대회의  질서를 교란하고 기타  불법한 행동이 있을 때  대표 3인 이상의 동의로 3분 2이상의 찬동이 있으면 다음과 같이 징계함.  1.진사 2.대표권정지 3.대표권박탈  

발기인  

김명동 김준연 김탁 권동진 정재룡 이갑성 이승훈 정태석 이승복 이정 문일평

박동완 백관수 신석우 신채호 안재홍 장지연 조만식 최선익 최원순 박내홍

하재화 한기악 한용운 한위건 홍명희 홍성희 이정섭 이종린 이순탁 이종목  

그러나 신간회는 얼마가지 못해 사라졌습니다. 일제의 탄압에 의한 것이었나구요? 아닙니다. 신간회는 사회주의 계열이 스스로 이탈했답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해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소>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민족주의 계열의 집행부가 절대 독립보다는 실력양성을 추구하자는 애매한 노선으로 돌아섰기 때문이죠. 반면, 러시아에서는 12월 코민테른 테제를 보내왔는데 그 내용은 기회주의자나 민족주의를 가장한 제국주의자를 멀리하라는 지침이었습니다. 거기에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합작이 깨지면서 공산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답니다.

결국 신간회는 이대로 해소하자는 안건을 표결로 정했고, 투표결과 신간회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답니다.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사회주의 단체가 주도권을 잡았던 신간회. 그러나 신간회의 해소 이후 사회주의세력은 우리 근현대사(남한)에서 한번도 주도권을 잡아보지 못하였답니다.

이렇게 이름을 통해서 우리 근대사에서 공산주의 단체와 그 활동을 알아보았답니다. 일제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열혈독립운동가들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이름을 사용했으며, 일제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결사단체를 만든 단체들은 평범하고 애매한 이름을 사용했답니다.

하지만, 이름이 무섭고 파격적이라고 해서 꼭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단체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해서 나쁘게 생각해서도 안된답니다. 그분들 역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방법으로 일제 저항운동을 했던 애국자분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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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근현대사 이야기 (NO.6)

번외편 : 마르크스로 <독일관념론>과 <사회주의> 이해하기 (1)

번외편은 근현대사의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성된 주변 이야기들입니다. 이 이야기 때문에 중간에 흐름이 끊긴다고 생각한다면, 번외편과 문제편을 뛰어넘고 본문만 계속 읽어주시면 되요~


  - 마르크스 이야기 <시작> -

자, 오늘부터 번외편에서는 <마르크스>에 대해 이야기할거에요. 시대 구분을 이야기하다 보니깐 <마르크스>라는 철학자 이야기가 많이 나왔죠? 잠깐~ 그런데 왜 이 <사회주의자> 이야기를 <번외편>에서 다루는 것일까요?

먼저, 이걸 이해해줘요~ 이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사람이 만들려고 했던 <세상>이나 <이념>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랍니다.

이 사람은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에요. 단지 19세기 혁명의 시대에 태어나 한 시대를 꿰뚫어보려고 노력했던 지성인일 뿐이죠. 이 사람의 철학 역시 다른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답니다. 그냥 놀랍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장점도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이 사람을 다루지 않고서는 <근현대사>의 큰 흐름중에 하나인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독립혁명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답니다. 마르크스는 19세기의 큰 흐름인 <자본주의, 근대화>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거부하고, <인간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하려고 했던 사상가에요. 그리고, 이 사람의 사상은 우리 역사에서도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죠. 지금도 우리 민족은 <이념>의 차이 때문에 남북이 갈라져 있잖아요.

하지만, <자본주의>가 정착한 우리 남쪽 대한민국에서는 이 사람의 사상을 쉽게 인정하려들지 않았답니다. 20년전만해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금기된 책이었죠. 또, <마르크스>를 알려고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반정부적인 운동권이나 빨갱이들이라는 누명을 써야 했던 시기가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을 제대로 알아야 우리 <근현대>에 존재했던 다양한 생각과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답니다. 자, 그럼 이 철학자를 통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추구했던 <근현대>의 철학을 알아볼까요?

그럼, 소위 <빨갱이> 철학이라고 불렸던 이 철학자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 청년 시절의 마르크스 -

과거의 혁명은 세계사의 기억에 의존해 왔다. 그 혁명 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각성된 상태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혁명 내용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19세기의 혁명은 죽은 자들의 손으로 죽은 자들의 시신을 묻게 해야 한다. 과거엔 번지르르한 말이 내용을 앞섰지만, 이젠 <내용이 말을 앞서야> 할 때이다.

                               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무월 십팔일>중에서...

자, 그럼 마르크스라는 사람의 인생을 팍팍~ 파해쳐보면서 근대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해봅시다.

마르크스는 독일 라인지방 트리어에서 태어났답니다. 아버지는 유태인이었는데 기독교로 개종한 변호사였죠. 19세기 유럽에서는 낭만주의니, 계몽주의니 하는 생각들이 유행하고 있었어요. 특히, <지식인들이 민중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간다>라는 생각이 많았었는데, 마르크스의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거죠.

그럼, 마르크스는 어떤 교육을 받았을지 대충 감이 잡히죠? 잘 사는 지식인이 되서 <민중>들을 이끌어 가려면 가장 필요한 공부는? 당연히 <법률>공부였죠. 19세기 유럽에서는 <기독교 집안의 법률가> 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아버지도 아들이 <법조인>이 되기를 원했답니다.

그런데, 이 철부지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했답니다. 마르크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본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지만, 입학한 뒤에는 <법학>보다는 <헤겔>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죠. 당시 대학생들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젊은 시절, 인생의 큰 뜻을 펴는데 도움이 많이된다고 생각했답니다. 또, <철학>에는 인생의 낭만이 있다고 생각한 젊은이들도 많았거든요.

이 젊은 청년은 아버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모범생 역할을 하지 못했겠죠? 자, 그럼 이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고 다녔는지 한번 가상의 친구들을 찾아가서 얘기를 들어보죠.

마르크스요? 쫌~ 과감한 친구였죠. 이 인간이 얼마나 잘난 척을 하는지, 이것저것 주워들어서 아는 건 많아 보이더라구요. 근데, 가끔 거만한게 도를 지나쳐서 왕짜증날 때가 있어요. 뭐, 친구들을 확실하게 챙겨주는 것만 아니면, 완전 왕따감이죠....

거기다가 자기 생각이 얼마나 확실한지...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고 친구들과 맞짱을 뜨고 결투 신청해서 얻어터지질 않나.... 뭔 철학얘기를 한다고 술 퍼마시고 소리를 크게 질러서 경찰에 끌려가질 않나... 뭔 넘의 술값은 맨날 지가 내는지.... 또 가방에 사시미칼은 왜 넣어가지고 다녀? 호러 영화 알바하나?

지 개똥철학엔 또 자부심이 있어서 지가 교수인줄 알고 다닌다니깐요. 헤겔 철학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헤겔이 교수를 했던 대학이 지 대학인줄 안다니깐요. 어떤 친구는 그 넘을 천재라고도 부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똥고집도 장난 아니에요.

뭐, 이 정도 이야기를 들을 만한 위인이었던거죠. 심지어 아버지도 아들을 보면서 이렇게 짜증을 내었다고 하네요.

망할 넘의 자식이, 실컷 <법대> 나오라고 뒷바라지 해주었더니 <철학> 나부랭이에 빠져서 뭐하는 거야? 철학이란게, 이것 저것 찌끄레기 학문들을 모아서 뭉쳐놓은 건데, 그런 걸 공부라고 하고 있으니...

거기에 지가 무슨 교수인 줄 알고 이넘 저넘 모아놓고 토론질만 즐기지 않나... 사회발전이니 역사발전이니 헛소리를 하면서 사회 개혁을 하겠다느니, 뭐니 헛소리를 하지 않나... 지 똥고집 때문에 사람들에게 예의도 지키지 않는 미친 놈 아닌가.... 니 집에만 와봐라... 다리 몽둥이를 뿌려뜨려 버릴기다.

하지만, 아버지가 곧 돌아가셔서 마르크스의 다리몽댕이는 멀쩡했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철학의 차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죠.

자, 이렇게 철학에 심취한 마르크스.... 그의 목표는 <헤겔>과 같이 위대한 <철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죠. 그런데 말이죠. 그는 결코 죽을 때까지 교수가 될 수 없었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헤겔 좌파>의 사상을 가졌기 때문이고, 그 사상은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기시하는 사상이었기 때문이에요.

자, 그럼 마르크스의 일생을 바꾸고 그를 가난에 몰아넣었던 <헤겔 좌파>의 사상이란 무엇일까요? 다음 페이지에서 헤겔 좌파의 사상과, 독일 철학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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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세계사 (3)

석기시대와 원시시대.. 그리고 원숭이들

1. 석기시대가 원시시대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게 있어. 그건 석기시대와 같이 혼돈해서 쓰는 잘못된 용어들이지.

지금 다루는 석기시대란.... 말 그대로 石器... 돌을 도구로 쓴 시대란 뜻이야. 보통 우리가 stone-age 라고 알고 있는 시기이지만, 실제로는 stone implement 라고 쓰고 있지.

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후진 돌... 새 돌.... 반짝거리는 청동.... 무지 강한 철.... 즉...생활 도구를 돌(石器)을 사용했느냐 금속을 사용했느냐로 나누는 기준이지. 이건 순전히 고고학에서 인류 발전 단계를 나타낼때 쓰는 용어야.

석기시대를 이야기할 때, 선사시대라는 말도 같이 쓰지만 석기와 선사는 달라.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의 반대말이지. 先史란 말이 역사보다 이른 시대란 뜻이잖아. 따라서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 이전의 모든 시기가 선사시대야.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단군 신화고... 단군의 고조선은 보통 청동기 때 세워졌다고 하니깐, 청동기 이전은 모두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야....

한국사에서.... 구석기 + 신석기 + 이른 청동기 = 선사시대

또... 원시인들이 살았던 옛 시대를 원시시대라고 대충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석기시대랑은 다른 개념이지. 원시시대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을 말하는 개념이야.

원시시대는 사회주의자였던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념인데, 마르크스는 제대로 된 정치력을 가진 국가가 생기기 전의 시대를 원시 시대로 불렀어. 마르크스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했지.

공산주의란, 말 그대로 공산(共産).... 공동으로 생산해서 재산을 공동으로 나누는 이상적 사회를 말해. 인류는 원래 <원시사회>라는 시기에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였는데, 국가가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평등이 깨졌다고 생각한거지. 즉, 원시시대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평등사회를 지칭하는 말이야.

원시사회(원시 공산사회, 부족공동체 사회) - 고대 국가 - 중세 국가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

위에 적은 사회 발전 단계를 보니깐 대충 알겠지? 돌을 사용한 석기시대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원시사회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 원시사회지만, 돌을 안 쓴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석기 사회에서 고대 국가가 생긴 사회도 있을 수 있지.

아메리카의 고대 잉카 문명 같은 경우에는 석기 시대때 이미 찬란한 문명 사회를 이루었고, 아마존 부족들은 원시사회였지만 금속을 사용할 줄 알았다잖아.

자, 그럼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확실히 알았으니깐, 석기시대로 출발해볼까? 끄적끄적...

2. 구석기의 인류란?

보통 역사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류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그냥 상징적인 개념일 뿐야. 오스트랄로가 오스트레일리아 할 때, 그 남쪽이란 뜻이고, 피테쿠스는 <원숭이>란 뜻이지. 한마디로, 걍 원숭이란 뜻이야.

근데, 305만년전이라는 까마득한 시절의 원숭이가 역사책에서 인류의 시조로 등장한 이유는?

그건 그냥 두 발로 걸어다닐 줄 알았고, 손에 돌을 들고 뭔가를 부실 줄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손에 돌을 들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살았으니 이 때 부터가 이미 <석기> 시대겠지?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조상을 정하면, 여의봉을 들고 킥킥거리며 하늘은 나는 털보원숭이 손오공도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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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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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실 이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원숭이들도 다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어. 400-500만전의 원숭이들 중에서도 <라마피테쿠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원숭이들이 있었거든... 그 이후로 호모 에렉투스니, 호모 사피엔스니... 기타 등등 원숭이들이 많이 발견되었다나봐. 뭐, 우리랑 상관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구...

암튼, 세계 곳곳에서 원숭이들이 등장했다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원숭이들이 발견되었겠지? 그럼 고고학의 시대로 들어가서 우리와 관련된 원숭이들의 생활 양식을 간략히 정리해 볼까? (에휴... 원숭이 얘기만 계속하다가 역사 이야기는 언제 시작하지???)

 

딴 나라 원숭이 얘기는 하기도 귀찮다... 그냥 400만년전 이야기는 영상으로 때워주마~~


http://histor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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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에 그려져 있는 이황,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로 평가받는다.

1. 성리학에 대한 북한 주체 사상식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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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주체사상의 이념도 <마르크스 사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철저하게 북한식 공신주의 사관으로 모든 역사를 바라보는 북한 역사학자들은 남한에서 1000원, 5000원권으로 쓰이는 유명한 성리학자인 이황과 이이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우리가 역사와 윤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는 이황, 이이에 대한 평가와 북한의 평가는 상당히 다릅니다. 오히려 북한과 우리의 견해가 상당히 다른 반면, 남한과 일본의 견해가 더 비슷할 정도입니다. 그럼 한번 볼까요?

북한의 역사인식은 소위 말하는 <유물론적 사관>입니다. 유물론적 사관을 간략히 말하면, 모든 현상은 눈에 보이는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마르크스의 견해입니다. 사회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인간의 마음이 만드어 낸 허구라고 말했습니다.

예로, 신의 존재는 증명된 적이 없지만 인간들은 신을 믿죠? 특히 서구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신이란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과 우주에 대한 무지를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의 어처구니 없는 불완전함을 인간식으로 해석하기에는 한계를 느껴 신이란 존재를 창조했다는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는 눈에 보이는 물질, 즉 사회경제적 물질의 소유관계에 따라 발전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토지, 자본 등 눈에 보이는 경제 물질을 놓고,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가 투쟁하면서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했죠.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역사란, 눈에 보이는 물질(유물론)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신과 같은 존재(관념론)가 투쟁하는 역사이자, 물질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투쟁하는 역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결국 완성되는 사회는 모든 물질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소유하는 <공산주의 사회>인 것이죠.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의 철학 이념은 물질과 경제 기반에 대한 <유물론적 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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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황은 유물론자가 아니라.

이러한 유물론 중심의 북한 철학은 역사의 주도층을 2가지로 분석합니다.

첫 번째는 관념론의 이념을 가진 자들로, 신이나 우주 법칙 등을 생각하는 비생산적인 계급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기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구질서를 유지하려는 인물들입니다.

두 번째는 유물론의 이념을 가진 자들로, 현실을 직시하고 경제 문제의 해결과 실제 삶에서의 평등한 가치를 찾으려는 자들이 있씁니다. 이들은 피지배계급인 백성을 생각하고 좀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생산력을 높이는 일에 주력하는 자들입니다. 인간이 생산의 주체이자 사회 변화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주체 사상을 가진 이들로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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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조선 성리학자들을 이 공식으로 이해합니다.

북한은 조선 시대 관념론을 이끌어 간 대표적인 학자는 이황이라고 규정합니다. 이황은 관념적인 주자성리학을 이끌어간 자로 규정합니다. 특히 이황은 아무런 사회적 개선책도 내 놓지 않고 윤리나 지배집단의 도덕정치만을 주장한 지배집단의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이황의 주리론적인 성리학을 관념론으로, 이후 조금 개방적인 주기론적 성리학은 조금 유물론에 근접한 학문으로 분류합니다. 이황에서 좀더 유물론적이고 현실론적으로 생각한 자가 바로 이이 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주의파들이었다고 말하죠.

이러한 관점은 철학을 관념론, 유물론으로 나누어 무리하게 분석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황의 업적이 어떤 것이든, 유물론의 입장에서는 이황의 철학이 물질세계와는 관계없는 나태하고 보수주의적인 철학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북한이 주체사상을 정리하면서 이황의 사상을 가장 반동적인 철학사상으로 규정하여 매도한 것은 북한 정권이 추구하는 핵심 사상이 <유물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이황이 주장한 사상 중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천성이 정해져있다는 <인성론>은 두고 두고 계급차별적 발언으로 매도하였습니다. 사실, 이황이 대표적인 표적이었기 때문에 비판받은 것이지, 북한에서는 성리학 자체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습니다.

성리학의 왕도정치, 국왕과 신하의 공치주의 같은 이념은 백성들의 혁명과 무장봉기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공산주의 혁명 사상과는 맞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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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역시 북한에서 좋은 취급을 받는 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이의 십만양병설이나 현실개혁 주장 등은 유물론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이황정도로 처절하게 규탄받지는 않습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완성하였고, 일본에서는 성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황.... 북한에서는 이 성리학자를 가장 반동분자로 생각한다니.... 좀 의외이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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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8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현대사 사료) 김일성 사망 북한방송 보도문(1994)
2007/06/02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 대장 차스차코프의 포고문(1945)
2007/03/17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6. 25 휴전 협정 조약
2007/03/17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한국사 참고 사료 - 해방직후 북한의 토지 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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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 10만원권 고액 화폐권 2차후보 역사인물 10명

1. 어떤 사람이 후보가 되었을까?

한국은행에서는 2009년부터 발행될 5만원권, 10만원권 지폐의 인물 후보를 10명으로 압축해서 2차로 발표했습니다. 그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구, 김정희, 신사임당, 안창호, 유관순, 장보고, 장영실, 정약용, 주시경, 한용운

2차로 발표된 인물에 대한 각기 평가가 너무 상이하기도 합니다. 예로,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 1위를 차지한 광개토대왕은 아예 평가후보에서 빠졌습니다. 국민들은 광개토대왕을 원한다고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아예 처음부터 삭제한 것이지요.

여성사이트에서는 신사임당, 유관순, 허난설헌, 김만덕 등의 역사 속 여성들이 많은 표를 차지했지만 신사임당과 유관순을 제외하고는 모두 10인 후보에는 빠졌습니다.

단재 신채호 등 민족주의자들이나 독립 운동가들이 대거 빠진것도 눈의 띕니다. 신채호의 사상은 무정부주의적인 사상이 많다는 점, 안재홍은 월북한 민족주의자라는 점, 윤동주, 김소월, 방정환 등도 10인 후보에서는 탈락하였습니다. 소위 좌파 사상가라는 것도 미래성에 맞지 않은 듯 합니다.

건국이후 인물들은 모두 제외된 점도 특이합니다. 박정희, 김대중, 이승만 등의 인물은 역사적 평가와 업적이 규명되지 않은 점이 많고, 국민적 논란 및 정치적 파장이 크다는 입장인 듯 합니다. 이들은 아예 후보군에도 없었습니다.

2. 인물 선정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10만원권은 이후 오랜 기간동안 한국 지폐의 최고권으로 나라를 대표할 돈입니다. 지금까지 나라를 대표하는 돈인 만원권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업적이 너무 눈부신 만큼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만원권 지폐에서 세종대왕만큼의 업적을 가진 인물을 선정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될 듯 합니다.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10만원권의 지폐에 들어갈 역사적 인물은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요?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그 나라의 역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나라의 역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화폐 인물의 기준을 역사성에 두고 있습니다. 영국의 모든 지폐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들어갑니다. 인도의 모든 지폐에는 간디가 들어갑니다. 중국의 지폐에는 어김없이 마오쩌둥이 나옵니다. 모든 지폐의 앞면에 이 인물들을 넣고, 뒷 면에서는 다른 분야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의 인물들을 새겨넣습니다. 같은 인물이 계속 나오는 돈이 식상할지 모르지만, 이 인물들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때 르네상스, 절대왕정, 신항로 개척, 식민지 시대를 열었습니다. 여왕은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표현합니다. 영국 왕실은 아직도 여왕을 사랑하며, 국민들은 왕실을 존중합니다. 지금 1952년 즉위한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화폐에 들어감으로서 <웃고 있는 여왕의 모습>이 영국의 모습을 상징하도록 도안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 역사 속의 엘리자베스 1세나, 빅토리아 여왕이 아니라 현재 여왕을 화폐에 넣음으로서 국민적 단합을 유도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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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폐 50 파운드 - 엘리자베스 2세의 웃는 모습

중국의 화폐의 마오쩌둥은 중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며, 인도의 간디 역시 인도의 평화사상을 상징하도록 도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인물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국민 화폐의 역할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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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화폐 1천루피 - 간디의 자상한 모습

2. 외국인들이 보기에 그 나라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화폐를 선정할 때 중요한 점의 하나는 <화폐가 통용되는 곳이 국내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외국화폐를 볼 때 화폐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우리 화폐에서 우리 나라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한은의 후보군에서 단군,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등은 후보에 없거나, 중요성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큰 가치가 없거나, 주변국과의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큰 오산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 화폐의 조지 워싱턴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이끈 장군입니다. 하지만 영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화폐에서 빼지는 않습니다. 광개토대왕을 중국의 동북공정을 고려해서 후보군에서 제외되거나, 단군이 실존인물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후보군에서 제외한다면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 잘라 버리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단군이 우리 국조가 아니고,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넓힌 것이 사실이 아닌지는 생각할 가치도 없을 뿐더러, 외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우리 정체성을 폄하하는 입장으로는 제대로 된 화폐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주변국의 입장을 살펴 우리의 외교자세를 선택한다는 실리주의는 실리주의가 아니라 사대주의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중립국인 스위스는 인물 화폐가 아니라 뭔지도 모를 추상화 같은 화폐를 도안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말도 안되는 그 화폐를 통용한 것은 미래로 나가는 스위스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추상화같은 화폐는 둘째로 하고라도, 역사 속 인물들을 특정한 이유로 배제하는 행동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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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봐도 모르겠습니다. 스위스 화폐
  

화폐를 보는 외국인들이 그 인물을 보는 순간, 이나라의 역사성과 민족적 기상이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화폐, 또는 그 나라의 역사성을 한 눈에 생각할 수 있는 화폐가 되어야 합니다.

3. 사상적 체계가 살아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화폐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순신, 이황, 이이, 세종대왕.... 모두 이씨 입니다. 다른 종친회에서 반발할만도 하네요. 이번 화폐에서는 이씨를 빼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 화폐의 특징은 이씨라는 것보다 이들이 모두 조선시대 성리학과 연관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세종대왕이야 성리학적인 애민정치를 하였고, 이황과 이이는 성리학을 완성시키고 조선성리학으로 발전시킨 분들입니다. 이순신 역시 성리학이 자리잡혀가고 붕당정치의 흐름 속에서 살았던 인물이지만, 이순신의 업적은 성리학보다는 장군으로서 위대함이였죠. 기존 화폐의 기준에 사상적인 측면이 들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실제 화폐에 들어갈 인물이라면 사상적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업적이 어떤 사상에서 나온 것이고, 그 사상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었느냐가 중요합니다. 화폐의 인물은 그 인물의 단순한 업적이 아니라, 그 시대 속의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이 행한 합리적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지나치게 조선시대 성리학 인물만으로 화폐가 도안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조선시대만 있었고, 우리 역사의 황금기가 조선시대였다라는 인식을 할 수밖에 없는 화폐 도안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고조선, 철기시대 국가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그리고 대한제국까지 많은 영토국가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이외의 국가에서도 사상적인 체계가 있는 인물들은 참 많습니다. 유교 인물은 많았지만, 정작 조선 이전 역사에 큰 흐름을 좌지우지 했던 불교사상이나, 민족 종교인 천도교, 대종교 등은 포함된 적이 없습니다.

또, 일제시대 민족운동을 한 사람들의 사상은 지금까지 폄하되어 있었습니다. 당대 일제에 대한 저항은 무정부주의, 폭력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 등 다양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사상이 공산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그 사상이 일본에 저항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었으니까요. 사회주의를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자라서 제외한다면, 일본 고관들에게 폭탄을 던진 한인애국단의 리더 김구 선생님도 폭력주의자가 됩니다.

사상적 체계는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계산되어야 합니다. 단지 성리학을 완성시킨 인물들만 지폐가 채워진다면 미래에 대한 지향성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4.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화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사성이지만, 그 역사성은 과거의 업적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역사성이여야 타당합니다. 예로, 장영실은 우리나라가 지향할 IT산업과 이공계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10인안에 선정되었고, 장보고는 후기신라시대 해상왕으로서 그 상업적 마인드와 탁월한 외교능력 등이 인정되어 10인안에 선정되었습니다.

단, 미래성만 있는 인물은 국민화폐로서 무게감이 떨어집니다. 역사성과 확실한 사상체계, 우리 조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인물 중에서 미래성을 볼 수 있는 인물로 선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3. 정말 고심해서 좋은 인물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선정된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벌써 말이 많습니다. 이 사람은 안된다. 이 사람이 왜 빠졌는가.... 말이 많죠. 선정된 인물들 모두 역사 속에서는 훌륭한 위인들입니다. 그러나 화폐에 들어갈 인물은 위인의 경중을 따져서 선별해서는 안됩니다. 역사성과 사상성, 인간적 노력, 미래성 까지 갖춘 인물을 가려야 합니다.

이번에 10인의 후보를 보면 역사성, 사상성 보다는 한국사회의 미래지향적인 면을 많이 고려한 듯 보입니다. 역사적인 위대한 인물들은 더 많을 지 모르지만, 그 인물들 가운데 미래 한국사회의 이상향으로 적합한 인물을 후보로 고른 듯 싶네요.

민족정체성만으로 선별한다면, 시조인 단군과 광개토대왕을 뽑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후보군에 없습니다. 감강찬, 을지문덕, 서희 등 역사속 무관들은 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래의 한국사회가 여성을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신사임당과 유관순 같은 여성인물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사회를 주도하는 미래의 한국을 본다면 장영실을 뽑을 수 있겠죠.

실학자로서 기존의 사상체계와는 다른 변화된 사상을 제시하여 조선사회의 변화를 꿈꾼 정약용도 후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후기 실학자로서는 정약용과 김정희 두 분이 들어가 있습니다. 국가 속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이지만, 해상왕 장보고의 상업적 마인드와 미래 지향적 태도도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일제시대 이후의 인물로서 독립에 앞장선 김구, 안창호, 한용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일본의 침략에 의해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기틀을 잡게 된 중요한 시점의 인물들이 화폐 도안에 없다는 점에서 김구 선생님도 유력한 후보중의 한 분이십니다.

이제 10인 가운데 2분이 5만원권, 10만원군의 지폐에 들어갈 인물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사회단체들의 입장 속에서 추려낸 후보군이라, 역사성을 가진 인물보다는 미래성을 가진 인물들을 많이 택하였다는 점이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이 인물들 중에서 어떤 인물이 한국을 대표할 지폐에 들어가게 될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인터넷에서 블로거들이 합성한 10만원권 인물......(재미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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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장금이까지 지폐 후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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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