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 공산주의 단체들을 이름으로 해석해보자!!!

북성회, 북풍회, 화요회, 흑도회, 정우회...

이 이야기는 초보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쉬운 용어와 비약된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사회주의자분들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분들이며, 이 분들의 일화는 여기 짧게 나오는 용어 이상으로 구체적인 이야기와 열정적인 내용이 더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1919년. 우리 민족은 거국적인 3.1운동을 전개해서 일본과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1920년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하였고, 일제 역시 조선인들을 때려잡는 무단통치를 중지하고, 형식적이나마 문화통치를 약속하였습니다.

1919년 3월 중순. 농촌까지 퍼진 3.1운동

이런 분위기가 되자 공산주의 사상을 통해서 조선의 독립을 추구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답니다. 특히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하자,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를 본받아 일본으로부터 해방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우후죽순 공산주의 단체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그 단체들의 이름을 지금 들어보면 유명한 무협지에나 나올 것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이 많았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먼저, 1921년 흑도회(黑濤會)!!!

그 이름으로 보자면 검은 물결이 밀려온다는 뜻이네요. 여기서 검은 물결이란 사회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빨간색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피의 상징이라면, 검은 색은 무정부주의와 사회적 약자를 싱징하는 혼돈의 색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박열, 김약수 등 조선 고학생 동우회 회원들이 일본 무정부주의자들과 연대해서 만든 단체랍니다.

박열 선생과 김약수 선생

그것도 제국주의의 심장인 일본 본토 한가운데서 말이죠. 이 사람들은 일본에서 발생하는 조선인 노동자 집단학살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면서, 일본-조선인 노동자들이 마르크스의 깃발아래 함께 모일 것을 꿈꾸었죠. 하지만, 이들이 꿈꾼 세상은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참된 세상이었습니다. 그 존엄성이 지켜지고, 그것을 가로막는 일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마르크스이던 크로프트킨이던 이념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이념은 인간을 지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까요.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에 대한 자각이 모든 것을 앞선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밖에서 보는 이들은 흑도회를 무정부주의자들이라고 규정한 것이랍니다.

흑도회 선언문

박  열(1921. 1. 1)

1. 우리는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자아에 산다. 일상의 일거일동이라도 그 출발을 모두 자아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철저한 자아주의자로서 인간은 서로 헐뜯는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미워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며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2. 우리는 사람마다의 자아를, 자유를 무시하고 개성의 완전한 발전을 방해하는 그 어떤 불합리한 인위적 통일에도 끝까지 반대하며 전력을 다해 그를 파괴하는 데 노력한다.

3. 우리에게는 아무런 고정된 주의는 없다. 인간은 일정한 틀에 박혀 있게 될 때 타락하고 사멸하는 것이다. 맑스와 레닌이 뭐라고 지껄였던, 크로프트킨이 뭐라고 말했던 우리에게는 필요없다. 우리 길에는 우리의 귀중한 경험이 있고 방침이 있고 또 뜨거운 피가 있다.

4.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 우리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우리 자신 스스로 규율한다. 외부에서 오는 어떤 강한 권력도 우리의 행동을 규율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5. 우리들은 자기를 희생하라는 어떠한 강요도 받아들일 수 없다. 사회 인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라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예외없이 위정가爲政家들이다. 그중에는 이른바 인도주의 등을 가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우리들에게는 만일 자기희생이 있다면 그것은 자아의 의지에서 비롯된 일일 뿐이다.

6. 우리들은 모두 자유롭다. 배고플 때는 먹고 하고 싶을 때 하고, 울고 싶을 때 울고, 화낼 때 화를 낸다. 우리의 자아, 우리의 감정, 우리의 이성중 어떤 한 가지도 다른데서 강요와 지휘를 받는 일은 없다. 의지가 있는 곳에 삶이 있고 마음 다한 곳에 감격이 있다. 자아의 강한 요구에서 생긴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들에게는 신이고, 선이며, 미이다. 우리에게는 소위 절대 보편의 진리대법칙이란 것은 없다. 그런 것들은 모두 자신의 내면적 요구의 진화 발전과 함께 변화해간다.

7. 우리들은 이 인성과 자연의 변화중에 참된 질서가 있고 참된 통일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곳에 인간의 진화가 있고, 새로운 창조가 있다.

8. 이곳에서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에 의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선언하는 바이다.

박열이란 사람은 아예 <흑도>라는 기관지까지 발행하면서 무정부주의를 외쳤답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무정부주의 및 폭력 혁명 단체는 내부 분열로 해체된답니다.

흑도회가 발행한 <흑도>

김약수 등 사회주의 이론과 마르크스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박열이 주장하는 폭력 혁명 및 무정부주의가 과격하다고 생각하면서 따로 북성회(北星會)를 만들었어요. 이름이 왜 북성회냐구요? 북쪽의 별을 모으다... 즉 러시아를 따라가겠다는 거죠.

반면에 무정부주의가 조국 독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박열은 흑도회, 흑우회 이전에 있었던 풍뢰회(風雷會)를 다시 만들어서 활동했답니다. 바람과 번개라는 조직 이름만 들어도 이 무정부주의자들의 성향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죠?

이 무정부주의자들은 우파, 좌파, 사회주의자들 누가 비난하던지 혹은 일제가 탄압하던지 말던지 꿋꿋하게 무정부주의를 통한 독립활동을 전개했답니다. 그것도 제국주의의 심장인 일본에서 말이죠. 탄압이 거세지면 살짝 이름만 더 폼나게 바꿔주었죠. 불령사(不逞社), 흑풍회(黑風會) 등등 더욱 더 무시무시한 이름을 지어서 <인간 존엄성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를 보여준 것입니다. 사실 독립운동가들이 무정부주의라고 말했던 박열의 노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서구의 <실존주의 철학>을 앞서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답니다.

이 사람들은 어느 단체이던지 약간만 친일 경향이 보인다 싶으면 꿋꿋하게 저항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으로 공격했답니다. 노동단체이지만 친일파가 있었던 상애회(相愛會)와 충돌했고, 민족주의 범국민단체인 신간회(新幹會) 일본 지부마져도 <진정한 인권 보호과 독립의 정신이 없다>고 습격했답니다.

이들이 발행한 신문들도 이름이 무시무시하답니다. 기관지 이름이 호조운동(互助運動)이고, 신문 이름은 흑색신문(黑色新聞)이랍니다. 물론 무시무시한 전투적 기사들만 계속 내보냈으니 일본에 의해서 바로 발행 중지 당했겠죠?

반면 정직한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한 북성회는 그나마 이름이 좀 점잖은 편이랍니다. 김약수 등 이 단체 사람들은 국내 사회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먼저 잡으려는 생각으로 건설사(建設社)라는 단체를 만들었답니다. 일본이 보기엔 이 단체가 독립운동단체인지 말 그대로 건설 단체인지 헷갈릴 정도였죠. 하지만, 이건 사회주의 세력을 모으기 위한 잠깐의 위장술이었고 어느 정도 국내 본부가 완성되자 북풍회(北風會)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답니다. 북에서 부는 바람이라면.... 바로 러시아의 마르크스 주의겠죠?

북풍회 선언문

현재 조선의 사회운동은 극히 혼돈스런 상태에 있지만 바야흐로 조직을 필요로 하고 실천을 요구하는 신기운이 감돌고 있다. 운동의 초기에는 오직  소수의 전위분자가 대중과 비교적 간격을 두고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학문적인 이상만을 추구하는 폐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조선의 대중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전위분자들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토대로하여 대중과 함께 자본가의 본진을 향해 돌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이러한 신국면에 적응하는 진용을 새롭게 준비하고 전술과 전략을 수립하여 싸움에 임해야 한다.  

  강령  

  1.사회운동이 본질적으로 대중 자체의 운동인 이상 우리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입각한 대중의 실제적 요구에 따라 종국적인 이상을 향해 매진해야 한다.  

  1.우리는 대중운동 보몬인 노동자. 농민. 청년. 여성. 형평운동의 지적 교양과 계급적 훈련을 병행, 모든 현상타파 운동을 지지함과 동시에 경제문제에  비중을 두어 과학사상을 보급하고 도시와 농촌의 협동을 기한다.

  1.우리는 이제까지 노선이 불투명한 운동을 정리하고 조직의  분류를 면밀히 하여 종래의 소극적 부인의 태도를 버리고 더욱더 질서있게 정진할 것이다.  

  1.우리는 계급관계를 무시한 단순한 민족운동을 부인한다. 그러나 현재 조선에 있어  민족운동도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발생하는 이상 우리는 특히 양대운동 즉 사회운동과 민족운동의 병행에 대한 시간적 연합을 기한다.  

  1924년 12월 27일  

  북풍회 중앙집행위원회  

반면, 3.1운동 직후 처음부터 국내에 터를 잡고 공산주의 운동을 했던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무슨 단체인지 이름만으로는 성향을 알 수 없었던 화요회(火曜會)였습니다. 이 단체의 리더인 김재봉 외에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박헌영,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 김찬, 김단야 등등 유명한 인물들이 포진한 최강의 공산주의 운동 단체였죠.

화요회의 맴버 : 김재봉, 홍명희, 김단야, 박헌영

그런데 이름은 왜 화요회일까요? 그건 마르크스의 생일이 화요일이기 때문에 만든 명칭이랍니다. 원래는 마르크스 사상을 연구하는 신사상 연구회였는데, 화요회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이죠.

이 화요회는 소련의 공산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에 중국 상해 공산당쪽 계열인 서울청년회와는 대립관계였답니다. 사실 1920년대 공산주의 3대 단체하면 북풍회, 화요회, 서울청년회였는데, 그럼 서울청년회는 뭐하는 단체였을까요?

원래 서울청년회는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같이 모여 만든 <서울파>라는 이름의 조직이었답니다. 서울파라고 하니깐 무슨 힘쓰는 조직같죠? 그래서인지 청년단체라는 걸 분명하게 하기 위해 서울청년회라고 이름을 지었지요. 하지만, 장덕수 등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소련 코민테른에서 내려온 자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사회주의자들 중심으로 단체로 변했답니다.

사기공산당 사건의 관련자들 : 이동휘, 장덕수, 최팔용

이동휘, 김철수 등을 통해 전해진 코민테른의 공산당 자금을 장덕수, 최팔용 등이 횡령한 사건으로
서울파에서 민족주의가 몰락하고 사회주의 단체로 변모하게 된 사건이다.

사회주의 단체가 된 서울파는 노동자, 농민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면서 마르크스 주의의 위대함을 알리고, 민족주의자들이 농촌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답니다. 그 결과로 1924년에는 조선청년총동맹, 고려공산동맹 등을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자, 문제는 지금까지 말한 단체들의 1925년 활동이었습니다. 북풍회는 한국-일본의 못사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모두 연대해서 혁명을 일으킨다는 범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독립운동단체였습니다. 반면, 화요회는 소련의 마르크스 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조선의 실정에 맞추어 공산당 창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단체였답니다.

그리고 서울청년회소련보다는 상해의 중국 공산당, 고려공산당과 연관이 많아서 화요회의 러시아파와 대립하는 관계였답니다.

하지만, 이 단체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서 뭉쳐야만 했습니다. 우파나 민족주의와 협력은 고사하고, 공산주의자들끼리 대립하고 있으니 독립운동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지요.

1925년 초반, 일본의 북성회는 일월회(日月會)라는 밝은 이름으로 바꾼 후 사회주의자들은 파벌을 버리고 모두 협력해서 독립운동을 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것에 영향을 받은 화요회와 북풍회는 서로의 생각을 조금씩 양보해서 1925년 제 1차 조선공산당을 창립했답니다.

문제는 서울청년회였습니다. 서울 청년회는 공산주의 운동보다 빈민이나 노동자를 돕기 위한 국제연대가 독립하는데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부갈등이 많았답니다. 결국 서울파는 분열되어서 일부는 일월회로 가서 조선공산당에 합류하게 된답니다.

이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거창한 이름들을 다 버리고 하나의 단체로 모일 때가 되었습니다. 1926년 4월... 수많은 공산주의 단체들은 서로를 벗으로 인정하면서 정우회(政友會 : 바른 친구들)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여성 공산주의자들은 근우회(槿友會)라는 이름으로 뭉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우파, 민족주의자, 좌파, 무정부주의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그 결과 1926년.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좌-우 연합 단체가 등장했답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근간을 알린다는 뜻의 신간회(新幹會)였던 것입니다.

신간회와 근우회의 강령

1. 신간회의 강령

우리는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진한다.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  

2. 근우회의 강령

조선 여자의 공고한 단결을 기함
  조선 여자의 지위 향상을 도모함

3. 강령 실천을 위한 근우회의 행동 강령

 조혼 폐지 및 결혼의 자유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일체 차별 철폐
   
일체 봉건적 인습과 미신 타파
   인신 매매, 공창 폐지
   농촌 부인의 경제적 이익 옹호
   
부인 노동의 임금 차별 철폐, 산전·산후 임금 지불
   
부인 및 소년공의 위험 노동과 야간 작업 철폐

- 신간회 창립 기사 : 좌우합작을 이룬 민족의 쾌거 -

신간회는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이념과 나이, 국내외를 떠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엄청난 단체였습니다. 신간회에 참여하지 못한 건 일제에 협력한 기회주의자들과 일부 서울청년회 극우파들 뿐이었죠. 그 규모도, 국내 지부 숫자도, 가입 회원도, 독립운동에 대한 영향력도 이전 어느 단체보다 막강했답니다.

신간회의 정치 규약  

  제1조. 본회는 신간회라 칭함.  

  제2조. 본회의 본부는 서울에 둠.  

  제3조. 본회는 본회의 강령을 관철키를 목적함.  

  제4조. 본회 회원은 연령 20세  이상 조선인 남녀로서 본회강령을 승인하는  자로 함. 단, 학생 및 20세 미만의 청년은 본회 학생부에 입회케 함.  

  제5조. 본회회원은 본회임원의 선거 및 피선거권 그리고 결의권을 가짐.  

  제6조. 본회회원은 본회의 일체의 결의 및 지휘에 복종함을 요함.  

  제7조. 본회회원은 회비로 1년에 금 30전을 본회에 납입함을 요함.  

  제8조. 본회는 각 지방을 구로 나누어 매구에 지회를 설치함.  

  제9조. 본회에 다음과 같은 기관을 둠.  

        1.대회 2.간사회 3.총무간사회 4.각 부회(특별부를 제외함)  

  제10조. 본회 대회는 본회 지회에서 선출된 대표로 성립함.  

  제11조. 대표회원은 30인의 1인으로 선출함.  

  제12조. 본회 대회는 본회에 관한 일체 사건을 결의하고 본부임원을 선거함.  

  제13조. 본회 정기대회는 매년 1차(2월), 본회 임시대회는 본부간사회가 필요로 인정할 때 또는 지부 대표회원 반수 이상의 요구가 있은 때에 회장이 소집함.  

  제14조. 간사회는 대회와 대회 사이에 있어서 대회의 직능을 행함.  

  제15조. 본회임원은 다음과 같이 둠.  

         1.회장1인 2.부회장 1인 3.총무간사 약간인 4.상무간사 약간인 5.간사 약간인  

  단, 회장,부회장 및 총무간사는 필요를 따라 비서를 본회회원 중에서 스스로 둘 수 있음.  

  제16조. 회장은 본회를 대표하며, 본회회무의 통일을 도모함.  

  제17조. 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하고, 회장이 유고할 때에는 회장의 직책을 대리함.  

  제18조. 총무간사는 간사회 또는 총무간사회 결의에 의하여 각부의 사무를 집행함.  

  제19조. 상무간사는 총무간사를 보좌하여 부무를 처리함.  

  제20조. 본회에는 다음과 같은 부를 설치하고, 매 부에 총무간사 1인 및 상무간사  약간인을 둠.  

         1.서무부 2.재무부 3.출판부 4.정치문화 5.조사연구부 6.조직부 7.선전부  

  제22조. 본회에는 다음과 같은 특별부를 둠.  

  제23조. 본회 경비는 회비와 기타 수입으로 충당함.  

  제24조. 본회 대회에 관한 상세한 규정과 간사회, 총무간사회, 각 부회, 지회 및  특별부에 관한 규약은 별도로 정함.  

  제25조. 본규약은 본회 본부대회에서 증삭할 수 있음.  

임시규약  

  제1조. 지회규약 제3조,제4조에 관하여 지회가 설립되지 못한 구역은 본부에서 직접  처리함.  

  제2조. 본규약 제10조에 관하여 해구역에 지회가 설립되지 못하므로 본부에  직속한 회원은 본부에서 전형하여 대표회원을 지정함.  

대회규정  

  제1조. 대회는 회장의 소집으로 대표회원이 과반수를 출석할 때 성립함.  

  제2조. 대표회원은 1년간 그 대표권을 보유함. 단, 지부대회에서 필요로 인정할 때에는 개선할 수 있음.  

  제3조. 대회에서는 그 계속기간에 한해 다음과 같은 임원을 선출하여 둠.  

        1.의장1인 2.부의장1인 3.서기장1인 4.서기 약간인  

  제4조. 의장은 대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의사를 진행하며 대회를 대표함.  

  제5조. 부의장은 의장이 유고할 때 의장의 사무를 대리함.  

  제6조. 서기장은 의장 지휘하에 서기사무를 총괄함.  

  제7조. 서기는 의사록 및 기타 문안을 작성하고 사무를 처리함.  

  제8조. 의사순서는 본부 총무간사회에서 정하여 대회에 보고함.  

  제9조. 지회로서 의안을 제출할 때에는 설명서를 첨부하여 대회개회 전4일 이전으로 본부 총무간사회에 제시함을 요함. 단, 대표회원으로서 특별의안을 제출할 때에는 5인 이상  연서를 요함.  

  제10조. 제출의안을 기각 또는 수정동의를 발할 때 3인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논제를 삼지 아니함.  

  제11조. 본부 회장, 부회장 및 총무간사는 대회에서 결의권이 없음.  

  제12조. 본회임원 및 본부임원의 선출방법은 전형위원을  선출하여 정원의 배수되는 후보자를 선출케 한 후 무기명투표로써 행함.  

  제13조. 대표 중으로서 대회의  질서를 교란하고 기타  불법한 행동이 있을 때  대표 3인 이상의 동의로 3분 2이상의 찬동이 있으면 다음과 같이 징계함.  1.진사 2.대표권정지 3.대표권박탈  

발기인  

김명동 김준연 김탁 권동진 정재룡 이갑성 이승훈 정태석 이승복 이정 문일평

박동완 백관수 신석우 신채호 안재홍 장지연 조만식 최선익 최원순 박내홍

하재화 한기악 한용운 한위건 홍명희 홍성희 이정섭 이종린 이순탁 이종목  

그러나 신간회는 얼마가지 못해 사라졌습니다. 일제의 탄압에 의한 것이었나구요? 아닙니다. 신간회는 사회주의 계열이 스스로 이탈했답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해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소>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민족주의 계열의 집행부가 절대 독립보다는 실력양성을 추구하자는 애매한 노선으로 돌아섰기 때문이죠. 반면, 러시아에서는 12월 코민테른 테제를 보내왔는데 그 내용은 기회주의자나 민족주의를 가장한 제국주의자를 멀리하라는 지침이었습니다. 거기에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국공합작이 깨지면서 공산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답니다.

결국 신간회는 이대로 해소하자는 안건을 표결로 정했고, 투표결과 신간회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답니다.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사회주의 단체가 주도권을 잡았던 신간회. 그러나 신간회의 해소 이후 사회주의세력은 우리 근현대사(남한)에서 한번도 주도권을 잡아보지 못하였답니다.

이렇게 이름을 통해서 우리 근대사에서 공산주의 단체와 그 활동을 알아보았답니다. 일제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열혈독립운동가들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이름을 사용했으며, 일제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결사단체를 만든 단체들은 평범하고 애매한 이름을 사용했답니다.

하지만, 이름이 무섭고 파격적이라고 해서 꼭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단체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해서 나쁘게 생각해서도 안된답니다. 그분들 역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방법으로 일제 저항운동을 했던 애국자분들이니까요.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 H I S T O R I A > 
역사적으로 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길고 긴 대립과정

이 이야기에 나온 역사적인 이야기들과 법, 제도, 인물 등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라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해당되는 입장의 내용들만으로 씌여진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프랑스 혁명 : 자유부터인가, 평등부터인가...

서구 역사가들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을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찾곤 한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하면 <자유와 평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에서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실제, 근대 유럽의 자유와 평등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니였다.

프랑스 혁명을 처음 일으킨 것은 <귀족>세력에 반발한 <부르조아> 계급이었다. 그들은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인권선언을 발표하여 자본가들의 <재산권>을 인정받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철저한 <자유주의>를 표방한 첫 번째 혁명은 실패하고 말았다. 국민의회의 자본가들은 1791년 샤플리에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파업을 억누르려 했고, 재산이 있는 자만이 투표할 수 있다는 헌법을 만들었다. 자본가들을 믿고 <자유주의 물결>에 동참한 대중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1년 뒤, 민중들은 8월 봉기를 일으킨다. 민중들은 <자본가>들의 세상을 다시 부수고, 프랑스 제 1공화정(국민공회) 시대를 열었다. 자본가들을 위주로 하는 지롱드파를 몰아내고, 민중적이고 급진적인 자코뱅파가 정권을 잡았으며, 국왕인 루이 16세마저 사형에 처한다. 93년 헌법에서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재산권 위주의 헌법을 폐기하고 <생존권과 노동권>을 기준으로 하는 혁명적인 헌법을 다시 만든다. 또, 모든 사람이 직접 선거할 수 있는 <보통선거>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는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평등파>와 대결하려 하였다. 로베스피에르는 <방토즈>법을 만들어 <재산가>들의 재산을 <혁명군과 애국시민>에게 분배하는 조치를 취한다. 서구의 근대사 최초로 <자유>가 <평등>에 의해 억압당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난 것이다.  <자유파 의원>들은 반혁명을 일으켜 다시 <자유>의 가치를 높이려 하였다. 공포정치로 자유를 탄압한 평등주의자 로베스피에르는 죽었고, 부르조아지들은 다시 <재산권>을 최고의 기치로 삼게 되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이 대립했지만, 최후의 승자는 <자유주의>였다.

평등주의자들은 이 자유주의에 대한 반항을 계속하긴 하였다. 예로 1796년 혁명을 통하여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적> 사회를 추구한 이도 있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사회주의의 아버지 <바베프>이다. 그는 재산권 자체를 부정하고, <자유>는 <평등>의 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재정부를 타도하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하였고, 자유주의자들은 그를 곧 바로 <사형> 시킨다. 그 이후 자유주의는 <절대적>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자유주의는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나폴레옹은 <몰락한 프랑스 경제의 부활>과 <혁명적 자유>를 인정한다는 발표로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현재 프랑스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 가장 큰 이유는 이 것  때문이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었지만, 오로지 혁명의 성과를 <자유>로만 규정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자유주의 이념을 평등주의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독재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말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성과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부르조아지와 대토지 소유자>들의 권한을 인정하고, 그들을 프랑스의 위대한 국민이라고 광고하였다. 그리고 유럽 정복을 통하여 <재산권과 자유권>을 유럽 대부분에 전파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평등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평등을 주장하는 언론은 바로 군부에 의한 <탄압>에 들어갔다. <나폴레옹 법전>은 위대한 법전으로서 법적인 평등과 신앙, 재산, 직업의 자유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법전의 모든 조항은 개인을 위한 자유보다는 <국가 시민으로서의 자유, 재산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나폴레옹 시대의 이념은 <자유이념>이 모든 이념을 포괄하여 유럽에 전파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초기 <자유주의 이념>이었고, 이 자유주의 이념은 유럽의 진보와 발전을 위한 최초의 이념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근원이 된 혁명에서부터 <자유>가 <평등>을 누르고 세상의 빛을 보았으며, 이 후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겪으면서 서구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절대적 이념으로 부각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부터 <자유주의> 이념에 반기를 들고 노동자 계급의 <평등>이념을 부각하려는 시도는 수없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그 연약한 시도들은 대부분 <자유라는 인간의 절대 기본권>에 반한다는 이유로 모두 좌절되었다. 또한, <자유주의>이념은 <자유주의적 고전 경제학>과 맞물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절대적 지원사격을 받았다. 그 이후, 극단적인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반자유투쟁>이 계속되었으나, 역사는 이러한 투쟁을 모두 실패로 기록하고 만다.

봉건귀족 세력의 역사적 역할 : 자유주의 이념에 반하는 <악마세력>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뒤, 유럽사회에서 <자유주의>는 금기어가 되었다. 유럽의 봉건 왕조들은 빈회의를 통해 혁명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전 유럽을 <보수화>하려고 하였다. 유럽의 왕실이 특히 주목한 것은 평등보다는 <자유>이념이었다. 왕실과 귀족세력은 산업혁명 등을 통해 성장하고 있던 <자본가> 계급을 가장 큰 적으로 보았으며, <자유주의>는 이들 자본가 계급의 무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로서 유럽의 <정통 왕실>과 성장하는 <자본가>들은 서로 적으로서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게 되었다.

그럼 이 때 <지식인과 민중>은 누구 편을 들어야 했을까? 당시의 지식인들은 <평등주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의 대학생들은 <보수적 과거 세력>들인 왕실과 귀족에 대한 대대적인 규탄시위에 들어간다. 독일 대학생들은 부르센샤프트 운동을 벌였고, 나폴리에서는 카르보나리라는 비밀결사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중세적 왕실 질서는 또 다시 프랑스에서 대대적으로 규탄에 들어간다. 나폴레옹 사후의 프랑스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시민계급과 자본가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으나, 정부는 의회를 해산해 버리는 등 자유주의를 탄압하였다. 티에르 등 <자유주의자>들은 <민중>과 연합하여 1830년 7월. 다시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성공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평등주의자>들을 버린다. 민중이 원한 평등선거는 없었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부도 없었다. 단지, 자본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 선거권을 조금 더 주었을 뿐이었다. 특히 노동자들은 <샤플리에법>에 의해 정치적 발언을 할 수조차 없었다.

결국, 자유주의자와 평등주의자들이 모두 적으로 여긴 봉건귀족은 이 둘의 연합으로 몰락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평등주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자유>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프랑스 공화정 : 계속된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대립

이 이야기는 유럽의 대표적인 혁명을 이끈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혁명은 프랑스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당시 유럽 각지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내걸고 일어난 혁명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자유주의 혁명을 이끈 선구적인 혁명이 프랑스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예로 든 것이다.

7월 혁명으로 프랑스 민중은 또 다시 <평등>의 기치를 잃어 버렸다. 이 때부터 프랑스 민중들은 <민중이 참여할 수 있는 보통선거>를 요구하게 된다. <자유>가 어느 정도 정착되자 <평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를 주장했던 학생들은 이제 농민의 편이 되어서 평등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1948년 2월. 프랑스에서는 또 한 차례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혁명은 국왕 루이 필립을 폐위시키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을 다시 수립하게 만들었다. 로베스피에르의 프랑스 혁명 공화정에 이은 <제 2 공화정>이었다.

그러나, <제 2 공화정>은 <자유주의>와 극심한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급진 평등파>들은 <자유주의>의 기본 이념인 <재산권>을 제한하려 하였고, 이것은 기득권을 가진 기존 <온건한 공화파>들 조차 놀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립은 다시 극단의 혁명을 몰고왔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은 6월 봉기를 일으키고, <평등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주장하였다. 제 2 공화정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폭동은 불법이라면서 강하게 진압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타협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공화정은 <단원제 의회와 대통령제도>를 실시하여 국민투표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한 보완책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을 체제안으로 포섭해야 했다. 특히 <평등>을 주장하면서 <계급>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국내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우애>의 개념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민중과 민족>이라는 개념을 국민에게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족>은 계급을 떠나 하나이다. 모든 계급의 통일체가 민족이고, 민족의 정부가 국민의 정부이다.

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 3세>이다. 그는 이 <민족>개념으로 국민들의 <냄비같은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았다. 물론 노동자들은 계속적으로 평등을 요구했고, 게드의 프랑스 노동당이 창립되기도 하지만 나폴레옹의 강력한 리더쉽 앞에 <평등주의>는 <민족주의>라는 이념에 묻혀 버렸다.

영국 : 자유주의가 제국주의 이념으로 전환되다

프랑스와 함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이끌어갔던 영국의 <자유주의>는 무시할 수가 없다. 영국과 프랑스가 19세기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은 우리나라에까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화기부터 진행된 우리의 <자유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이념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이들 나라의 문물을 먼저 수입한 청과 일본에 의한 것지만 말이다. 이건 다음 회에서 다루면 좋을 것 같다.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철저한 <자유주의>를 표방하였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을 목격한 <조용한 섬나라>는 이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젠트리들에게 수많은 권리를 주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던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혁명이 아니라 조용한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국가이다. 그만큼 자본가들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한 나라였다. 무론 의회 내에서 귀족과 자본가의 대립이 있었지만, 자본가 위주의 휘그당은 <자유당>으로 명칭까지 개편하면서 <자유주의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귀족들은 <보수당>에 집결하여 정당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19세기 영국은 곡물법을 폐기한다던가, 항해조례를 폐기하면서 자본가들이 해외무역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물론 영국의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19세기 차티스트 운동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주장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자유>의 이념은 <평등>이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영국 노동자들이 산업자본가와 같은 권리를 차츰 인정받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또 하나, 유럽 어느 나라이든 19세기 <여성의 평등>을 거론한 나라는 없다. 여성에게 똑같은 보통선거를 준 것은 선진적인 영국도 <20세기> 들어와서이다.

이러한 영국의 자유주의적 발전은 <자유주의 만능 이념>을 발전시키게 된다. 특히 자본가들의 <자유>를 철저하게 인정했던 분야가 바로 애덤스미스로 대표되는 <경제학> 분야이다. 애덤스미스는 국가가 국민의 자유에 절대 간섭하면 안된다는 이론을 주장하면서, 모든 것은 <가격>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멜더스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이론을 내 놓는다. 그런데,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유>는 주되, <평등>은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빈곤은 노동자 책임이므로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는 없다. 빈민촌에는 소독도 해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이었다.

이것을 이데올로기로 정립한 사람은 <스펜서>이다. 스펜서는 이 모든 이론을 <사회진화론>으로 정립시켰고, 유럽인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사회진화론>이란,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 것은 먹이사슬에 의한 정당한 행위이다. 사자는 강하고, 양은 약하다. 사자는 육식동물이고 양은 초식동물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이것을 사회 법칙에 대응하면?

노동자는 가난한데 그것은 유전자가 불량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빈곤할 수밖에 없다. 멘델의 유전의 법칙에 의하면 열성은 도태되어야 한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경제학자 리카도는 한가지 증명까지 시도하였다. 그것이 유명한 <임금의 철칙>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성경이다. 경제는 지대, 이윤, 임금의 3가지로 유지되는데 지대가 커지면 임금이 줄어든다. 노동력이 늘어나면 임금은 그만큼 준다. 노동력이 없다는 것은 수요가 없다는 것이므로 노동자의 임금이 늘어날 수 없다. 결국 노동자는 항상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 진화론을 국가간에 대입하면 이렇게 된다.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강한 나라는 먹이감을 구하고, 자국의 문제를 해결한 탈출구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식민지를 만둘 수밖에 없다. 강한 나라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과 같은 <사회적 법칙>일 뿐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사상은 윤리나 도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라 <사회적 당위성>으로 설명해야할 사상이다. 약한 나라는 강한나라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힘을 키워서 사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약자의 변명은 사회 속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로서 참신한 혁명 이념이었던 <자유주의>는 타락과 협상을 거쳐 다양한 사상과 연결된 결과, <제국주의>의 호수까지 흘러들어가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제국주의를 부정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개화기에는 <근대 사상과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으로 <자유주의>를 수용하였고, 그 결과 개화기 지식인들은 <제국주의>도 수용하였다.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이유는 <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우리 역시 강력한 <제국주의>국가로 거듭나서 <제국주의로 제국주의를 물리친다>는 이이제이의 원칙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민족주의자인 신채호 선생도 초기에는 제국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였고, 실제로도 일제시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초기에는 <제국주의적인 군사실력 양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자유에 대한 <평등주의>의 반격...

사회진화론까지 나아간 <극단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평등주의>자들은 수많은 반격을 하고, 저항을 하였다.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 이념을 계승한 이들은 중산계급의 하층민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면 어느 정도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평등주의적 급진주의>를 주장하였다. 생시몽과 같은 이들은 폭력혁명이 아닌 대화와 설득으로 자본가와 협력하여 타협을 이끌어내자는 <공상적 사회주의>를 주장하였다.

푸리에는 한발 나아가 현존 제도를 모두 버리고, 심지어 결혼조차 부정하면서 성적인 자유까지 주장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간 사람들은 <무정부주의>라는 새로운 이상향을 생각하게 된다. 무정부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가 권력은 모두 <평등>을 억압한다고 본다. 경찰, 군대, 학교, 법원 등은 <자유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들 도구는 <평등>을 옹호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의 결론은 <국가의 완전 소멸>이 평등을 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은 국가를 없애고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생산수단을 가진 뒤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하는 일이 없는 평등한 노동의 세상을 말하였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직접 코뮌(자치집단)을 만드는 것이 <평등>사회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더 나가 러시아의 바쿠닌은 아예 폭력 혁명으로 모든 것을 부수자고 말하기도 한다. 크로포티긴은 바쿠닌의 사상을 계승하여 모든 것의 파괴는 새로운 창조를 가져온다고 말하고, 그 새로운 세상은 <평등>에 입각한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크로포트긴의 사상을 계승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부수고 민족의 평등을 이루자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신채호> 선생이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자유주의와 마르크스 주의의 대립

독일의 자유주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비스마르크이다. 비스마르크는 철저한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가 통일과 자본가 계층의 자본주의를 옹호하였지만, <평등주의>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대입장이었다. 비스마르크는 <반사회주의법>을 발표하여 평등주의자들의 모든 활동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 이유는 독일의 현실 때문이다. 독일은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 된 이후 동독일의 토지귀족(융커)들과 서독일의 산업자본가에 의해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더 철저한 단결을 주장하게 된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평등 개념>은 이렇다.

세상은 불평등하다. 누군가 평등함을 추구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또 깨드린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현 사회의 모습과 일치한다. 단, 이 변증법은 철학적 개념이 아닌 실제 노동자들의 삶과 관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부조리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이 필요하다.

그런데 계급투쟁을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제적 생산력>을 기준으로 한다.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하부구조는 경제력인데, 상부구조인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독식한다. 역사는 그러한 모순(정)에 대한 투쟁(반)이었으며, 그 투쟁은 항상 새로운 결과(합)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역사는 발전하였지만, 아직도 평등하지 않다. 진정한 평등은 자유주의(자본주의 : 정)에 대한 평등주의(반)의 투쟁으로 새로운 세상(공산주의 : 합)을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혁명의 주체인 빈민층(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위해 제 1, 2 인터네셔널을 만들었고 이 국제 평등기구에는 독일계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각국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보다 <의회>에 진출하여 <자본주의>가 붕괴될 대를 기다리자는 이념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적 기구로 단결하여 훗날 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기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1차 대전 후 러시아에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됨으로서 이들은 해산하였다.

프랑스.... 왕정과 공화정의 반복 :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대립

프랑스는 제 2공화정이 몰락하면서 나폴레옹 3세가 다시 <자유주의적 가치>를 들고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내세운 것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평등>요구로 기득권과 자본가들이 <재산권>을 빼앗긴다는 우려를 했기 때문에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았고, 나폴레옹은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신헌법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독재권을 용인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의 큰 줄기였다. 나폴레옹 3세는 기득권을 위한 <쇼>를 많이한다. <자유주의>의 옹호자라는 말을 듣기 위해 은행설립, 철도 건설, 중공업 산업 육성 계획을 세워 자본주의 국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특히 파리시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불만은 많았다. 나폴레옹이 실시한 노동자를 위한 <평등> 정책은 실업자 구제책이었다. 실업자가 늘면 사회 불만 세력이 되고, 그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지 모른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평등이란 말 대신 <민족의 영광>이란 말로 모든 국민이 단결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은 점차 불만이 많아졌다. <민족>을 주장하면서도 결국 <부르조아>를 위한 정책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폴레옹의 정책은 간단하였다. 나폴레옹을 소개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자유주의적 발전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민중>을 달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것은 전쟁이었다. 지금이야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영화, 연예인 등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지만, 이 당시의 확실한 방법은 바로 전쟁이다.

나폴레옹 3세가 국민들에게 전쟁의 이유를 설명한 것을 보면 명확해진다. 바로 <국민적 영광>을 위해 전쟁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크림전쟁, 이탈리아 통일 전쟁(샤르데냐 전쟁), 멕시코 원정, 오스트리아 전쟁 등 도대체 왜 하고 있는지도 불명확한 전쟁을 수많은 이유를 들어 시도하였다. 그러나, 독일 통일 전쟁(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비스마르크의 농간으로 패함으로서 <국민적 영광>은 상처로 돌아왔고, 국민들은 그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역사적인 <파리 자치정부>가 추진된다. 급진적인 자코뱅주의자,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자, 블랑키 주의자들은 <평등주의>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연합하였고, 파리에 <노동자 정부>를 수립하였다고 선언한다.  그들이 진정 원한 건 혁명 자체가 아니였다. 그들은 자유주의에서 <평등주의>로 국가정책을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정부를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피의 일요일 전투>라고 역사는 부른다. 자치정부군은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항쟁하였다. 국가는 그들을 잡아 바로 바로 총살시켰고, 시위는 계속되었다. 정부는 죽이지 못한 이들을 파리 시내에 가뒤 굶겨 죽였다. 쥐를 잡아먹으며 항쟁했던 <자치정부>의 모든 이들은 엄청난 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

다음 2부에서 다룰 이야기 : 사회주의의 성장 드레퓌스 사건, 카톨릭 세력과 자유주의의 관계, 미국노예해방은 자유주의인가 평등주의인가, 러시아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주의를 버린 제국주의, 세계대전 중 평등사상, 히틀러와 자유주의, 냉전시대와 평등주의, 신자유주의 사상의 등장배경과 역할


참고 서적 :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찾아보세요~~~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양장본) 상세보기
데이비드 하비 지음 | 한울아카데미 펴냄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 신자유주의는 강력한 사적 소유권, 자유 시장, 자유무역의 특징을 갖는 제도적 틀 내에서 개인의 자유 및 기능을 해방시킴으로써 인간 복지가 가장 잘 개선될 수 있으며, 국가의 역할은 이러한 실행에 적합한 제도적 틀을 창출하고 보호하는 데 있다고 제안하는 정치적ㆍ경제적 실행에 관한 이론이다. 이 책은 세계적 담론과 정책을 주도하는 핵심 용어가 된 신자유주의의 의미를 알아본다. 신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상세보기
강상구 지음 | 문화과학사 펴냄
문화과학 이론신서 19번째권. IMF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지 2년이 지난 현실에서 신자유주의의 태동과 전개과정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저서. 1950-60년대 신자유주의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고 신자유주의 등장과 현대자본주의의 특징을 고찰했다.
WHY NOT(불온한 자유주의 자유시민의 세상읽기) 상세보기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펴냄
15년 전 항소이유서에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를 인용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저자의 정치문화 에세이. '이 땅에서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나는 국론통일이 싫다', '한국적 자유주의의 비극' 등 45여 편을 엮었다.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 상세보기
장동진 지음 | 동명사 펴냄
정치의 본질을 다룬 정치철학서. 정치철학의 정의부터 분배의 정의와 평등, 국제사회 정의에 관한 모색 방안 및 자유주의와 한국정치에 관한 내용까지 담았다. 지난 10년간 학술지 및 학회나 학술회의에서 발표했던 논문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한 이해와 일부 현대정치 이론가들의 이론을 담았다.
자유주의는 진화하는가 상세보기
황경식 지음 | 철학과현실사 펴냄
'자유주의는 진화하고 있는가'란 물음에 깊이 있게 고찰해 본『자유주의는 진화하는가』. 자유민주 이념에 바탕을 둔 교육을 받아 왔고 철학공부를 한 저자는 롤즈의『정의론』을 접하게 되면서 잠재의식적 자유정신을 의식화하고 자유주의를 향한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각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자신이 나름대로 구상해 온 자유주의적 입장에 대해 총 5부로 나누어 마음껏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자유주의와 그 적들, 2부
상상의 공동체(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상세보기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 나남 펴냄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책. 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해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로 보는 필자의 생각을 상상의 공동체라는것을 통해 접급했다.

프랑스혁명과 베르트랑 바래르 상세보기
서정복 지음 | 삼지원 펴냄
근대적 민주시대의 새로운 장을 연 프랑스 대혁명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혁명의 추진자 겸 관찰자 역 할을 했던 베르트랑 바래르의 활동과 증언을 통해 살 핀 책. 혁명 이전 새로운 사상의 흐름과 베르트랑, 자코뱅 시대, 테르미도르 사건 등 6개 장으로 설명했다.

자유주의적 평등(한길그레이트북스 73) 상세보기
로널드 드워킨 지음 | 한길사 펴냄
로널드 드워킨의『Sovereign Virtue』를 번역한 책. 미국의 롤스 이후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드워킨은 이 책을 통해, 자유주의 평등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평등권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한다. 구좌파가 지나친 평등을 추구했다는 기존의 비판과는 달리, 오히려 구좌파가 추구하였던 평등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라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현대 정치철학의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TAG 1791년헌법, 1793년헌법, 1차선거권개정, 2월혁명, 7월혁명, 8월봉기, 가격, 고전경제학, 곡물법, 공포정치, 국민공회, 국민의영광, 국민의회, 급진평등파, 기조, 나폴레옹, 나폴레옹3세, 나폴레옹법전, 나폴레옹보나파르트, 노동권, 다윈, 러시아혁명, 로베스피에르, 루이16세, 루이필립, 리카도,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 멕시코원정, 멘델, 멜더스, 무정부주의, 민족의영광, 민족주의, 민주적급진주의, 민중주의, 바베프, 바베프사건, 바쿠닌, 박애, 반자유투쟁, 방토즈법, 베베프, 병증법, 보수당, 보수주의, 보이지않는손, 보통선거, 부르센샤프트운동, 부르조아, 브리소, 블랑키주의자, 비스마르크, 빈곤의이유, 빈회의, 사회적당위성, 사회적법칙, 사회주의, 사회진화론, 상부구조, 생시몽, 생존권, 샤르데냐전쟁, 샤플리에법, 선거권, 스펜서, 신채호, 애덤스미스, 여성선거권, 오스트리아전쟁, 유전법칙, 융커, 의회제도, 의회주의, 인구론, 인권선언, 인터네셔널, 임금의철칙, 자유, 자유당, 자유주의, 자유파, 자치정부, 자코뱅주의자, 자코뱅파, 재산권, 정반합, 정통주의, 제1공화국, 제1제정, 제2공화정, 제2제정, 제국주의, 젠트리, 지롱드파, 진화론, 차티스트운동, 총재정부, 카르보나리, 코뮌, 크로포트긴, 크림전쟁, 테르미도르의반동, 토리당, 티에르, 파리코뮌, 평등, 평등주의, 평등주의적급진주의, 평등파, 푸리에, 프롤레타리아, 프루동, 피의일요일전투, 하부구조, 항해조례, 헤겔, 휘그당

5만원, 10만원권 고액 화폐권 2차후보 역사인물 10명

1. 어떤 사람이 후보가 되었을까?

한국은행에서는 2009년부터 발행될 5만원권, 10만원권 지폐의 인물 후보를 10명으로 압축해서 2차로 발표했습니다. 그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구, 김정희, 신사임당, 안창호, 유관순, 장보고, 장영실, 정약용, 주시경, 한용운

2차로 발표된 인물에 대한 각기 평가가 너무 상이하기도 합니다. 예로,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 1위를 차지한 광개토대왕은 아예 평가후보에서 빠졌습니다. 국민들은 광개토대왕을 원한다고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아예 처음부터 삭제한 것이지요.

여성사이트에서는 신사임당, 유관순, 허난설헌, 김만덕 등의 역사 속 여성들이 많은 표를 차지했지만 신사임당과 유관순을 제외하고는 모두 10인 후보에는 빠졌습니다.

단재 신채호 등 민족주의자들이나 독립 운동가들이 대거 빠진것도 눈의 띕니다. 신채호의 사상은 무정부주의적인 사상이 많다는 점, 안재홍은 월북한 민족주의자라는 점, 윤동주, 김소월, 방정환 등도 10인 후보에서는 탈락하였습니다. 소위 좌파 사상가라는 것도 미래성에 맞지 않은 듯 합니다.

건국이후 인물들은 모두 제외된 점도 특이합니다. 박정희, 김대중, 이승만 등의 인물은 역사적 평가와 업적이 규명되지 않은 점이 많고, 국민적 논란 및 정치적 파장이 크다는 입장인 듯 합니다. 이들은 아예 후보군에도 없었습니다.

2. 인물 선정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10만원권은 이후 오랜 기간동안 한국 지폐의 최고권으로 나라를 대표할 돈입니다. 지금까지 나라를 대표하는 돈인 만원권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업적이 너무 눈부신 만큼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만원권 지폐에서 세종대왕만큼의 업적을 가진 인물을 선정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될 듯 합니다.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10만원권의 지폐에 들어갈 역사적 인물은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요?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그 나라의 역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나라의 역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화폐 인물의 기준을 역사성에 두고 있습니다. 영국의 모든 지폐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들어갑니다. 인도의 모든 지폐에는 간디가 들어갑니다. 중국의 지폐에는 어김없이 마오쩌둥이 나옵니다. 모든 지폐의 앞면에 이 인물들을 넣고, 뒷 면에서는 다른 분야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의 인물들을 새겨넣습니다. 같은 인물이 계속 나오는 돈이 식상할지 모르지만, 이 인물들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때 르네상스, 절대왕정, 신항로 개척, 식민지 시대를 열었습니다. 여왕은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표현합니다. 영국 왕실은 아직도 여왕을 사랑하며, 국민들은 왕실을 존중합니다. 지금 1952년 즉위한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화폐에 들어감으로서 <웃고 있는 여왕의 모습>이 영국의 모습을 상징하도록 도안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 역사 속의 엘리자베스 1세나, 빅토리아 여왕이 아니라 현재 여왕을 화폐에 넣음으로서 국민적 단합을 유도한다는 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국 화폐 50 파운드 - 엘리자베스 2세의 웃는 모습

중국의 화폐의 마오쩌둥은 중국 근현대사를 상징하며, 인도의 간디 역시 인도의 평화사상을 상징하도록 도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인물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국민 화폐의 역할을 하겠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도 화폐 1천루피 - 간디의 자상한 모습

2. 외국인들이 보기에 그 나라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화폐를 선정할 때 중요한 점의 하나는 <화폐가 통용되는 곳이 국내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외국화폐를 볼 때 화폐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우리 화폐에서 우리 나라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한은의 후보군에서 단군,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등은 후보에 없거나, 중요성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큰 가치가 없거나, 주변국과의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 큰 오산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 화폐의 조지 워싱턴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이끈 장군입니다. 하지만 영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화폐에서 빼지는 않습니다. 광개토대왕을 중국의 동북공정을 고려해서 후보군에서 제외되거나, 단군이 실존인물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후보군에서 제외한다면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 잘라 버리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단군이 우리 국조가 아니고,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넓힌 것이 사실이 아닌지는 생각할 가치도 없을 뿐더러, 외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우리 정체성을 폄하하는 입장으로는 제대로 된 화폐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주변국의 입장을 살펴 우리의 외교자세를 선택한다는 실리주의는 실리주의가 아니라 사대주의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중립국인 스위스는 인물 화폐가 아니라 뭔지도 모를 추상화 같은 화폐를 도안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말도 안되는 그 화폐를 통용한 것은 미래로 나가는 스위스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추상화같은 화폐는 둘째로 하고라도, 역사 속 인물들을 특정한 이유로 배제하는 행동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래봐도 모르겠습니다. 스위스 화폐
  

화폐를 보는 외국인들이 그 인물을 보는 순간, 이나라의 역사성과 민족적 기상이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화폐, 또는 그 나라의 역사성을 한 눈에 생각할 수 있는 화폐가 되어야 합니다.

3. 사상적 체계가 살아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화폐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순신, 이황, 이이, 세종대왕.... 모두 이씨 입니다. 다른 종친회에서 반발할만도 하네요. 이번 화폐에서는 이씨를 빼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 화폐의 특징은 이씨라는 것보다 이들이 모두 조선시대 성리학과 연관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세종대왕이야 성리학적인 애민정치를 하였고, 이황과 이이는 성리학을 완성시키고 조선성리학으로 발전시킨 분들입니다. 이순신 역시 성리학이 자리잡혀가고 붕당정치의 흐름 속에서 살았던 인물이지만, 이순신의 업적은 성리학보다는 장군으로서 위대함이였죠. 기존 화폐의 기준에 사상적인 측면이 들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실제 화폐에 들어갈 인물이라면 사상적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업적이 어떤 사상에서 나온 것이고, 그 사상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었느냐가 중요합니다. 화폐의 인물은 그 인물의 단순한 업적이 아니라, 그 시대 속의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이 행한 합리적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지나치게 조선시대 성리학 인물만으로 화폐가 도안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조선시대만 있었고, 우리 역사의 황금기가 조선시대였다라는 인식을 할 수밖에 없는 화폐 도안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고조선, 철기시대 국가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그리고 대한제국까지 많은 영토국가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이외의 국가에서도 사상적인 체계가 있는 인물들은 참 많습니다. 유교 인물은 많았지만, 정작 조선 이전 역사에 큰 흐름을 좌지우지 했던 불교사상이나, 민족 종교인 천도교, 대종교 등은 포함된 적이 없습니다.

또, 일제시대 민족운동을 한 사람들의 사상은 지금까지 폄하되어 있었습니다. 당대 일제에 대한 저항은 무정부주의, 폭력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 등 다양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사상이 공산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그 사상이 일본에 저항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었으니까요. 사회주의를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자라서 제외한다면, 일본 고관들에게 폭탄을 던진 한인애국단의 리더 김구 선생님도 폭력주의자가 됩니다.

사상적 체계는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계산되어야 합니다. 단지 성리학을 완성시킨 인물들만 지폐가 채워진다면 미래에 대한 지향성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4.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화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사성이지만, 그 역사성은 과거의 업적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역사성이여야 타당합니다. 예로, 장영실은 우리나라가 지향할 IT산업과 이공계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10인안에 선정되었고, 장보고는 후기신라시대 해상왕으로서 그 상업적 마인드와 탁월한 외교능력 등이 인정되어 10인안에 선정되었습니다.

단, 미래성만 있는 인물은 국민화폐로서 무게감이 떨어집니다. 역사성과 확실한 사상체계, 우리 조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인물 중에서 미래성을 볼 수 있는 인물로 선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3. 정말 고심해서 좋은 인물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선정된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벌써 말이 많습니다. 이 사람은 안된다. 이 사람이 왜 빠졌는가.... 말이 많죠. 선정된 인물들 모두 역사 속에서는 훌륭한 위인들입니다. 그러나 화폐에 들어갈 인물은 위인의 경중을 따져서 선별해서는 안됩니다. 역사성과 사상성, 인간적 노력, 미래성 까지 갖춘 인물을 가려야 합니다.

이번에 10인의 후보를 보면 역사성, 사상성 보다는 한국사회의 미래지향적인 면을 많이 고려한 듯 보입니다. 역사적인 위대한 인물들은 더 많을 지 모르지만, 그 인물들 가운데 미래 한국사회의 이상향으로 적합한 인물을 후보로 고른 듯 싶네요.

민족정체성만으로 선별한다면, 시조인 단군과 광개토대왕을 뽑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후보군에 없습니다. 감강찬, 을지문덕, 서희 등 역사속 무관들은 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래의 한국사회가 여성을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신사임당과 유관순 같은 여성인물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사회를 주도하는 미래의 한국을 본다면 장영실을 뽑을 수 있겠죠.

실학자로서 기존의 사상체계와는 다른 변화된 사상을 제시하여 조선사회의 변화를 꿈꾼 정약용도 후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후기 실학자로서는 정약용과 김정희 두 분이 들어가 있습니다. 국가 속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이지만, 해상왕 장보고의 상업적 마인드와 미래 지향적 태도도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일제시대 이후의 인물로서 독립에 앞장선 김구, 안창호, 한용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일본의 침략에 의해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기틀을 잡게 된 중요한 시점의 인물들이 화폐 도안에 없다는 점에서 김구 선생님도 유력한 후보중의 한 분이십니다.

이제 10인 가운데 2분이 5만원권, 10만원군의 지폐에 들어갈 인물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사회단체들의 입장 속에서 추려낸 후보군이라, 역사성을 가진 인물보다는 미래성을 가진 인물들을 많이 택하였다는 점이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이 인물들 중에서 어떤 인물이 한국을 대표할 지폐에 들어가게 될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인터넷에서 블로거들이 합성한 10만원권 인물......(재미로 보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누가 장금이까지 지폐 후보로 ?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