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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크로스 퀴즈(난이도 :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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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퍼즐

  1. 고려 태조가 옛 고구려 땅을 되찾기 위해 펼친 정책.
  2. 조선 인조시대,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하여 벌었던 전쟁. 삼전도의 굴욕과 관련있다.
  3. 고대 폴리스에서 군사적, 종교적 거점이였던 곳. 아테네, 포세이돈 등을 모시던 신전들이 유명하다. 헤라클레스는 이곳에서 12가지 신탁을 받았다.
  4. 도리아인이 중심이 되어 만든, 고대 그리스의 국가. 귀족 중심의 군국주의 체제로 **** 식 교육은 강압적인 군사문화를 상징한다.
  5.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을 모두 영웅인 헬렌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 라고 불렀다.
  6.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
  7. 스파르타, 아테네 등 폴리스를 이룬 소국 국가들을 묶어서 표현한 용어. 페르시아 전쟁 때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루었으며, 스스로를 헬레네스라고 불렀다.
  8.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 토끼는 앞선 거북이를 절대 추월할 수 없다는 논증법으로 유명하다.
  9. 소크라테스의 제자. 철인정치론, 국가론, 이데아론 등이 유명하다
  10. 페르시아 3차전쟁 때, 그리스의 병사가 이 전투에서 이긴 후, 약 40km를 달려서 승리를 알리고 죽었다고 한다.
  11.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전쟁. 이후 폴리스간의 대립과 분쟁이 계속되었다. ****** 전쟁.
  12. 고대 그리스의 12신을 모시던 아크로폴리스가 있던 지역을 일컫는 말. ****의 12신이라고 부른다.
  13.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이 사람을 모시기 위해 3번을 찾아가 삼고초려를 했습니다.
  14. 상대적 진리를 주장했던 그리스의 궤변학파. 웅변과 수사학을 중시했으며, 제논 등이 유명하다.
  15.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
  16.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72개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받아, <물질은 질량에 내재한다>는 객관적 진리를 입증하였다. 중용과 행복론의 철학을 추구하였다.
  17. 개화기에 우리 나라 바다 근처에 나타난 서양 배를 이르는 말

세로 퍼즐

  1.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청나라를 치려고 한 효종 임금의 정책
  2.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에 2차에 걸쳐 조선을 침입한 전쟁
  3.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저자
  4. 의학의 아버지. 의사 윤리 강령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의 의학자.
  5. 고대 그리스에서, 산지가 많아 각각 흩어져 있던 촌락 도시를 일컫는 말
  6. 도편추방제를 제정하여 아테네 민주정치의 기틀을 다진 인물
  7. 고대 아테네의 수호여신인 아테나 여신을 위해 만든 신전
  8. 조선시대, 상평통보와 같은 동전을 부르는 말입니다.
  9.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하면서,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이끈 지도자. 수당제, 공직추첨제 등의 직접 민주주의 방식이 유명하다.
  10.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시민들이 회의를 하고, 시장을 열기도 했던 광장. daum 사이트에도 토론 공간을 이렇게 부른다.
  11.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동족(헬레네스)와 다른 이방인을 이렇게 불렀다.
  12. 고대 그리스 본토에서 발달한 청동기 문명. 크레타를 정복하고,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도리아인에게 멸망하였다.
  13. 1970년대, 농촌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농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실시한 운동.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이 운동의 정신이 곧 국민 정신임을 강조하였다.
  14.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저자
  15. 고대 그리스인들이 동족의식을 과시하기 위해 4년에 한번 열었던 민족 축제. **** 제전
  16. 그리스 신화의 주신. 독수리와 번개창이 유명하다.
  17.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받은 자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은 관직임명장이 돈을 주고 거래되었습니다. 이것을 *** 이라고 합니다.
  18. 미케네 문명에게 멸망한 고대 소아시아 문명. 목마를 탄 병사들이 이 문명을 멸망시켰다는 ***의 목마 이야기가 유명하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1) 고대 지중해 세계
 ① 에게 문명
  에게 문명은 에게 해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문명들을 말한다. 크레타, 미케네, 트로이 등이 있었는데, 트로이는 고등학교 세계사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다. 기원전 2000년 전에 크레타 문명크레타 섬에 있었던 문명을 말하는데, 크노소스 궁전과 궁전 안에 거대한 미궁으로 된 구조를 볼 때 그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국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섬에 위치한 만큼,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크레타 문명은 그리스나 유럽에 청동기와 오리엔트의 문명의 유산을 전해주는 중간 매체가 되었다. 반면 기원전 14세기에 등장한 미케네는 대륙에 위치한 문명으로, 대륙적인 호방한 성격과 상무적인 문화가 발달하였다. 미케네는 철기를 사용하는 도리아인의 이주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도리아인은 훗날 스파르타를 건국하는 민족이다.

 ② 폴리스의 형성
  폴리스가 형성된 것은 기원전 약 8세기였다. 도시국가인 폴리스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은 그리스의 지형에 따라 그리스 주민들이 모여 살면서(集住) 형성되었다. 보통 폴리스의 형태를 크게 아테네형과 스파르타형으로 나누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폴리스에 대한 사료가 많지 않아 아테네와 스파르타 외의 것은 구체적으로 구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폴리스는 크게 산 둔턱에서 신전과 요새의 기능을 하는 아크로폴리스와 중앙광장인 아고라로 구성되어있다. 아고라에선 연극, 음악회, 향연 등이 열렸다. 그리스인들은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헬렌의 자손’이라는 뜻에서 자신들을 ‘헬레네스’라고 하고, 변방의 외국인들을 ‘바르바로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들은 4년에 한 번씩 현재의 올림픽과 같은 올림피아를 열어 운동시합을 겨뤘다.

 ③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앞서 말한 것처럼 미케네를 멸망시켰던 도리아 인에 의해 건설된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의 원주민이었던 아리아인과의 마찰인 피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스파르타가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마찰은 더더욱 확대되었다. 도리아인은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 군국주의적인 정책을 펴게 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스파르타 전체인구에서 도리아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0% 전후로, 모든 도리아인은 군인이 되어야만 했다. 이들은 ‘아고게’라고 하는 공동 학습의 장에서 군사, 글쓰기, 문화 등을 수료해서 보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전사로 거듭나기를 희망했다. 반면 스파르타의 아리아인은 대부분 헬로트(헤일로타이)라는 노예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도리아인들은 노예들을 감시하고 지배하였다. 무역은 페리오이코이라는 반자유인들에 의해 행하여졌는데, 아테네에 비해 활발하지 못했다.

 ④ 아테네
  아테네는 정복 국가의 성격을 띠는 스파르타와 달리, 해상무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폴리스이다. 처음엔 왕정이었다가 귀족들의 기병을 중심으로 한 귀족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해상무역으로 상공인 계층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아테네는 점점 보다 민주적으로 변해갔다. 아테네가 가장 크게 변화하게 된 동기는 전술상의 변화였다. 상공인들은 축적된 부를 통해 중무장을 하여 보병으로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를 중장보병이라 한다. 중장보병은 기병을 밀어내고 아테네의 주력이 되었다. 이를 통해 상공인 계층은 정치적인 발언권을 갖게 되었다.

 ⑤ 아테네의 민주주의 발달과정
  솔론은 아테네의 주력이었던 상공인 계층에게도 정치적인 권한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솔론의 ‘금권정’이다. 비로소 상공인 계층인 부를 통해 정치에 참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부의 정도에 따른 평등을 기하학적 평등이라고 하며, 솔론의 금권정은 기하학적 평등에 의한 민중의 참여정치인 것이다.
  솔론의 개혁은 그 당시 상당히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기득권을 잡고 있던 귀족들은 솔론의 개혁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공인 층 역시 자신들의 정치 참여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귀족과 상공인들은 서로 대립하게 되었는데, 이를 군사로 제압하고 권력을 잡은 것이 페이시스트라토스였다. 그는 군대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시민을 다독여 지지를 돈독히 하였다. 이러한 페이시스트라토스의 독재를 참주정이라고 한다.
  참주정은 참주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죽음과 거의 동시에 폐지되었다.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들의 정책은 시민들에게 시원치 않았고, 시민들은 그들을 결국 추방하게 된다. 이후 클레이스테네스는 앞서 나타났던 참주의 등장을 저지하기 위해 도편 추방제를 실시하였으며, 500인회를 구성하고 여기에 성인 남자를 참여시켜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져갔다.
  페르시아 전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롯한 지중해 폴리스들에게 크나큰 위험이었다. 오리엔트에 위치해 그동안 많은 문화를 그리스 지역에 전파한 바 있는 페르시아는, 이젠 무력을 가지고 그리스 세계의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3차에 이른 페르시아 완정은 마라톤 전투나 살라미스 해전을 통해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힘을 합쳐 막아내었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그리스는 훗날 있을 페르시아의 침략에 대비하여 서로 동맹을 맺게 되는데,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도 그러한 동맹 중에 하나였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아테네를 맹주로 하는 델로스 동맹의 완성은 아테네의 생활수준에 큰 변화를 주게 된다. 거기에는 민주주의도 포함되는데 페리클레스는 델로스 동맹의 전쟁자금을 끌어들여 민주주의 발전의 발판으로 삼았다. 페리클레스는 민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특수직이 아닌 일반 행정직 같은 경우에는 추천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이런 아테네의 영광은 페리클레스 사후에 선동정치가들에 의해 중우(衆愚)정치로 변질되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로 아테네인들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좋지 않은 감정마저 갖게 된다.

Tip. 아테네 민주주의 발달 과정
솔론의 금권정 -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 - 클레이스테네스 - 페리클레스 - 중우정치

* 주의
아테네 사회가 다소 불완전하지만 민주주의 그 자체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좋다.
그 때의 민주주의의 개념과, 지금의 민주주의의 개념은 너무나 다르다. 별도의 것이라고 봐도 좋다.

 ⑥ 폴리스의 쇠퇴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과 같이 스파르타를 맹주로 하고 있던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을 탐탁케 여기지 않았다. 결국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격돌하여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전쟁은 육군이 발달한 스파르타에게 아테네가 패배하면서 끝났다. 이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폴리스들의 전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도시국가에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였으며,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衆愚政治)라고 비난했다. 폴리스 후반기에 주도권을 잡은 것은 아테네도 스파르타도 아닌 테베였으며, 테베 역시 오랜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마케도니아에게 멸망하였다.

 ⑦ 그리스의 문화
  그리스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인간 중심적, 현세 긍정적, 합리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한 성격은 바로 미술에서 나타나는데 페르테논 신전과 아테네 여신상에서 볼 수 있는 조화와 균형적인 미가 바로 그것이다. 아테네에선 특히 철학이 발달하였는데 탈레스, 데모크리토스와 같은 자연 철학자부터 소피스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있다. 역사서로는 최초의 역사서라고 일컫는 헤로도토스의 『역사(페르시아 전쟁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있다.

* 생각해볼 문제
그리스의 문화가 저러하다면, 과연 페르시아나 이집트는 동물 중심적이고, 현세 부정적이며, 불합리적인 문화를 이루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이는 서구 학자들에 의해 미화된 것이다.


Posted by 비회원

군국주의 국가 스타르타

1. 스파르타식 국가체제가 성립된 이유는?

우리가 보통 강압적이거나 군대식으로 일을 밀어부칠 때 스파르타식이라고 합니다. 그 어원이 바로 이 고대 국가 스파르타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흔히 그리스 역사를 비교할 때 민주국가인 아테네와 군사국가인 스파르타라고 비교하곤 하죠. 그리스의 폴리스를 대표하는 두 국가는 왜 이렇게 상당히 다른 정치체제를 채택하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스파르타는 과연 독재와 억압으로 이루어진 사회일까요? 한번 봅시다.

스파르타의 주 구성원은 전에 이야기해던 도리아인입니다. 도리아인은 미케네 문명을 세우며 청동기 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하던 선주민을 초기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도리아인이 그리스 본토에 선주한 수많은 초기 그리스인들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군국주의적인 국가체제를 갖출 수밖에 없었지요. 이것을 편의상 <군국주의적 국가체제>라고 부릅시다.

일단 스파르타에서는 도리아인이 지배계층이고요. 정복당한 원주민인 미케네인들을 2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헤일로타이와 페리오이코이입니다.

헤일로타이는 도리아인에게 반항하거나, 원래 노예였던 신분이 여기 해당합니다. 이들은 엄청난 숫자이기 때문에, 반란이 이러날 확률도 높습니다. 스파르타의 도리아인들은 이들을 철저히 탄압하고 감시하는 체제를 마련합니다. 이들은 재산권이나, 자유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국가가 할당한 시민분배지를 경작하는 일종의 <농업 공납 노예>입니다. 일하고, 공납바차고, 일하고, 공납바치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죽는 것이지요.

다름 페리오이코이는 변두리 주민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스파르타의 지배층인 도리아인에게 협조하거나, 우호적이었던 선주민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비교적 자유민으로 상공업에 종사하거나, 군대에서 장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지배층은 아닌 까닭에 선거권이 없었고, 따라서 시민권을 주어지지 않는 자유민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스파르타의 군국주의적인 정체체제는 소수의 도리아인이 다수의 선주민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생간 부산물이라는 것이지요.

2. 시민계급의 발전

스파르타에서는 진정한 시민은 도리아인입니다. 그렇다고 도리아인이면 모두 동동한 시민이었는가라고 묻는 다면 글써요... 아테네에서 보았듯이 초기 폴리스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분배토지(클레로스)가 있어야 시민으로 인정받습니다. 즉, 전쟁에 열심히 참여하여 국가에 기여하고, 국가로부터 정복된 토지를 분배받는 것이 바로 시민으로서 인정받는 첫 스타트거든요. 아테네도 초기 솔론시대에는 토지를 가진 자들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재산금권정치를 실시했다고 말했었죠?

이렇게 토지를 가진 자를 시민으로 인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헤일로타이는 자신의 토지가 없이 토지노예였으며, 페리오이코이도 농업이 아닌 상공업이나 장교쪽의 일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스파르타 자체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리한 농업국가였습니다.

이러한 스파르타 시민들이 모두가 평등한 시민권을 갖게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메세니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스파르타가 메세니아 지역을 정복한 1차 전쟁과, 메세니아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2차 전쟁이 있는데, 두 번의 전쟁 모두 스파르타의 군대가 잔인하게 진압합니다. 메세니아 전쟁의 결과 많은 전쟁 참여 시민들에게 토지가 분배되었고, 시민의 평등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시민들은 국가 사회에 별 불만이 없게 되었고, 이들 시민들은 항시 전쟁 준비를 하는 군인으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보통 스파르타의 민주정치를 시민군을 중심으로 한다고 하여 <중장보병 민주정>이라고도 부릅니다.

스파르타는 시민이 이끌어가는 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이지만, 국가 자체는 시민군 위주로 이루어지는 군국주의적 국가체제입니다. <군국주의적 국가체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시민들은 보통 20-60세 정도까지 군대와 관련을 맺습니다. 특히 20-30세의 집단 군생활은 엄격합니다. 30세가 넘으면 엄격한 집단 군생활에서 약간 해방되나, 일상 생활은 계속 군과 관련을 맺습니다. 시민생활이 병영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전 시민이 공동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이 정복한 선주민(헤일로타이)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회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늘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시민은 일체의 생산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제적 지출은 헤일로타이의 공납으로 충당하는 노예제 사회입니다. 헤일로타이는 공납노예인 것이지요. 상업은 페리오이코이가 전담합니다. 즉, 시민이 감시하고, 정복민이 일하는 사회로 폐쇄적인 자급자족주의 사회가 바로 스파르타입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차이점을 볼까요?

아테네와의 공통점을 보자면 노예제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테네의 노예는 자유로운 시민 소유의 노예이지만, 스파르타의 노예는 국가가 소유하여 공납을 걷는 국가 노예입니다. 아테네의 민족은 미케네 문명기의 이오니아인이지만, 스파르타인들은 미케네 문명을 정복한 도리아인입니다. 아테네는 민주정치이지만, 스파르타는 민주정치를 하면서도 시민군을 위주로 하는 군국주의적인 성격의 국가입니다. 아테네는 해군을 중심으로 한 해상상업을 중시하지만, 스파르타는 육군을 중심으로한 농업중심사회입니다. 아테네는 자유로운 학문과 문학이 발달하였지만, 스파르타는 군국주의 체제이므로 개인의 자유 표현이 약합니다.

3. 스파르타에 대한 착각 - 그들은 사실 민주정치이다.

스파르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보통 전제적인 국가입니다만, 이건 완전히 틀렸습니다. 스타르타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체>, <국체>라는 말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체는 <징치체제>로서 그 사회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누구냐를 말합니다. 스파르타를 이끈 것은 군인으로서 활약하는 다수의 시민들입니다. 즉, 왕이나 독재자가 아닌 시민이 사회를 이끌어가므로 민주주의 정치체제인 것입니다.

국체는 <국가체제>로서 그 국가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스파르타의 국가 구조는 시민군을 위주로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이므로, 스타르타의 국가체제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군국주의 국가체제인 것입니다.

즉, 스파르타는 군국주의적 국가체제이자,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가 맞습니다. 스파르타가 전제적이라는 말은 틀립니다. 전제적이라는 것은 정치를 어느 한 1인이 이끌어간다는 것과 유사한데, 스파르타의 정치는 시민이 민회(시민회)를 만들어서 이끌어 나가거든요.

자 그럼 여기서 우리는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를 한번 볼까요?

일단 스파르타에는 초기에 국왕이 2명이 있었으므로, <왕정>이었으나, 왕의 실권은 없어서 왕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또 귀족대표가 모인 장로회가 있어서 국가의 중요한 안간을 마련하는 입법부의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전적으로 <귀족공화정>이라고 보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 스파르타를 이끈 것은 다수 시민의 민회입니다. 민회는 성년 시민남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민회에서는 법안을 의결하고, 공직자를 선출하며, 원로원(장로회)이 제출한 안건을 승인하는 등 최종적인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단체입니다.

실제 스파르타를 이끄는 행정관인 에포르는 국정운영의 집정관이자 스파르타 체제의 감시관으로 막강한 권한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 에포르를 선출하는 것도 민회입니다.

결과적으로 스파르타의 정치제제를 말하자면 <왕정, 귀족정>의 성격이 보이기는 하나 실제 <민주정> 체제인 국가라고 보면 되겠네요.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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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에게문명과 그리스 역사의 시작

1. 에게 문명의 탄생

고대 유럽 문명의 출발점인 그리스 역사를 차분히 살펴봅시다. 그리스 역사를 알려면 먼저, 그 문명이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는지부터 봐야겠죠? 고대 그리스 문명이 역사에서 주목받은 것은 하인리히 슐리이만이라는 사람이 그리스 신화 유적지를 탐사하면서 부터입니다. 슐리이만은 과연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가 진짜일까, 미노스의 궁전에 살던 괴물이 있었을까 등을 궁금해했습니다. 그는 트로이와 미케네 문명을 발굴하고 거기서 선형 B문자라는 것을 해독했는데요, 그 때부터 그리스의 고대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1) 에게문명의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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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시작해보죠. 근데, 그리스는 세계 4대문명에 안들어가네요? 헉... 분명 세계 4대문명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문명인데, 그럼 유럽에는 문명이 없었단 말인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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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초기에는 유럽지역은 4대문명에서 빠져있습니다. 그럼 그리스 문명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건 바로 근처 문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시면 되죠. 그리스 신화를 잘 보면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겹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리스 신화가 유명한 것은 그 신화들을 조리있게 정리해서 유럽인의 세계관에 딱 맞는 신화로 재창조했기 때문이죠. (신화이야기는 여기서 안 다룹니다. 그리스 신화 다 적으면 끝도 없으니... 나중에 세계사 사료방에다가 적어보도록 도전은 해볼께요.)

즉,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전제군주제도에 영향을 받은 청동기 정복문화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문명 초기에 오리엔트 지방의 문명이 전파된 지역이 바로 에게해 지역입니다. 우리가, 유럽사를 배울 때 비유럽지역으로 보이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연관시켜 배우는 이유도 이겁니다. 유럽사의 기원 자체가 오리엔트와 연결되거든요.

2. 에게 문명 - 초기의 크레타섬 문명(크레타, 미노아 문명)

에게 문명의 초기 단계를 우리는 크레타 문명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도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문명을 전달해줄 때 가장 가깝고 근접한 지역이 바로 이 크레타 섬 지역입니다. 이 크레타 문명은 오리엔트 지역과 원거리 교역을 통해 청동기 문명과 교류할 수 있는 딱 좋은 동서무역의 요충지였죠. 이들은 해상무역을 통해서 발달하면서도, 이집트 지역의 문화를 독자적인 자신들의 문화로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집트 문명이 전쟁, 사치, 피라미드 건축 등으로 남는 생산물을 소비하기만 했던 만면, 이들은 남는 잉여생산물을 건설적인 부분에 재투자하였습니다. 이렇게 무역으로 돈을 벌고 번 돈을 재투자해 가면서 활발하면서도 동적인 아름다운 문명을 만들어 나갑니다.

이 크레타 문명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크노소스 궁전입니다. 크노소스 궁전에 대한 유명한 일화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크노소스 궁전은 에게문명 전기를 지배했던 지배자 미노스의 궁전입니다. 엄청나게 복잡한 미궁 형식으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복잡한 미궁을 라비린토스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이 미궁(라비린토스) 깊숙이 살고 있는 괴우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왕녀 아리아드네와 함께 섬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견고한 성문이나 성벽이 없고, 또 큰 방 등 지배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시설을 갖추지 않은 점도 이 종류의 건축으로는 이례적입니다. 이 크노소스 궁전의 정교한 도자기, 궁전 안의 프레스코 벽화인 파리의 여인 등은 유명합니다.

그림)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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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크노소스 벽화 - 프레스코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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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에게 문명 - 후기의 미케네 문명

미케네 문명은 이제 미노아 문명을 흡수하여 그리스 본토로 올라간 문명을 말합니다. 또, 그리스 본토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의 트로이 지방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그리스인의 선조격 되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형성됩니다.

이들은 그리스 본토에 문명을 확고히 한 뒤 강대해지자 그리스 본토를 넘어 미케네를 맹주로 하여 소아시아로 전출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입니다. 들어보셨죠?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국가들이 트로이를 점령하려다 반항이 거세어지자, 트로이의 목마를 선물하는 척하고 정복한 이야기 말이죠. 또, 남쪽으로는 이전 문명인 크레타섬 문명도 점령하여 남부로도 진출합니다. 이들은 이렇게 동부 소아시아(트로이), 남부 미케네섬을 점령하는 활동을 하면서 보대 전사적인 성격이 강화된 집단으로 성장합니다. 즉, 크레타 문명(미노아 문명)을 계승하였으면서도 거기에 강력한 군사적 성격을 더한 국가라고 보면 되죠. 이러한 전사적 성격의 예로는 전쟁과 사냥, 많은 무기류 부장품, 견고한 성벽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케네 문명은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농업, 목축, 수공업, 무역 등 다양한 경로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오리엔트와 마찬가지 구조로서 왕, 귀족, 전사, 관료(서기), 상민, 농민, 노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죠.(이집트의 계층구조와 형식상으로는 비슷합니다.)

이렇게 발전하던 에게문명은 전형적인 그리스인이라 불리는 도리아인 들이 내려오면서 갑자기 멸망하고, 그 역사를 잘 알 수 없는 300년간의 암흑기를 맞이합니다. 고대 오리엔트사에서 이것을 호메르스 시대라고 정의내렸죠? BC 1200년경부터 오리엔트와 유럽 모든 지역에서 형성된 역사를 알 수 없는 암흑기는 보통 청동기 문명의 국가들을 당시 새롭게 등장한 철기 민족들이 정복하고, 파괴하면서 비릇되었다고 합니다. 에게문명도 새로운 민족인 도리아인에게 망하면서, 세계적인 조류에 휩쓸렸던 것이지요.

그림) 미케네의 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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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에게 문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에게문명이 그리스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 문명이 오리엔트 문명과 그리스 문명의 중간에 위치한 과도기 문명으로서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에게문명은 오리엔트의 전제군주제적이고, 절대적인 서열을 가진 사회(이집트의 파라오, 메소포타미아의 신권정치)의 문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에게 문명은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되, 전제적인 절대성은 버렸습니다.

예를 들면 이집트는 왕실 중심으로 이루어진 부역국가입니다. 파라오가 전권을 가지고,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렸으며, 세금을 걷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세급과 노역을 공납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에게 문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왕이 있지만, 파라오처럼 강력한 왕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민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민주정입니다. 이집트에서는 모든 토지가 왕의 토지이며, 모든 백성은 왕의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하다는 원칙을 가진 공동체적 국가입니다. 그러나 에게 문명에서는 공동체적으로 토지를 경작하여 왕에게 세금을 내지만, 시민들이 자신의 토지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정치 상황이 이집트처럼 절대적 왕권밑에서 독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더 발전하여 나중에는 그리스의 민주정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에게문명은 오리엔트(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문명으로 출발하면서도, 민주적 성격을 키워나가는 과도기적 문명이며, 이것은 전형적인 민주정을 실현하는 그리스인들인 도리아인에게 망함으로서 오리엔트와는 다른 유럽만의 정치형태를 만들 수 있게 기반을 만든 문명이라고 말입니다.

에게 문명을 멸망시킨 도리아인들이 그리스 본토에 침입하면서 본격적인 그리스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럼 그리스 역사로 출발합니다.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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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