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상의 이해 - 장자 1

 

'장자' 들어가기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인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어떤 이데올로기도, 윤리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소국들의 입장이었다. 고대 철학은 그 경계선에서 출발한다.

 

사상사의 출발점에는 공통적인 현상 한가지가 있어. 그게 뭐냐구?

 

그것은 철학의 출발점이 '도시국가'가 출현하는 '청동기' 시대라는 것이지.

 

먼저 석가모니!!!

 

석가는 인도의 공화정이었던 소왕국의 왕자 출신으로서 소국들의 대립과 거대 왕국과의 마찰이 있던 브라만 시대의 인물이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당시 인도는 제국을 꿈꾸는 브라만 집단과 작은 소국을 꿈꾸는 공화정 집단들이 대립하고 있었지. 스타워즈의 제국과 공화국의 대립처럼 말야.

 

그런데 브라만이든, 공화정 집단이든 웬지 신라시대 귀족이랑 화랑들 같았어. 골품같은 고정적 신분이 있었지. 브라만교에는 카스트 제도 있는거 알지? 공화정에도 신라의 화백회의처럼 만장일치 귀족 회의가 있었지.

 

다음 공자!!!

 

공자와 장자, 한비자와 같은 사상가들 역시 춘추전국시대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공동된 고민을 했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인간이 사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밥먹고 그 고민만 했는지 후대에 남긴 어록도 무지 많아.

 

그런데, 그 정의로움을 법에서 찾는지, 도덕에서 찾는지, 자연에서 찾는지, 공리에서 찾는지는 각자 답이 달랐어. 도시국가가 많아서 밥먹고 전쟁하고, 사람 죽고, 또 전쟁하고, 통일한다고 설치고.... 

 

이런 지옥같은 무법천지인 세상을 법으로 다스릴지, 윤리로 다스릴지, 자연에서 답을 찾을지는 생각하는 사람맘 아니겠어? 그러니 철학이 발전하는거지... 철학과 과학기술은 전쟁의 참혹함에 비례해서 팍팍~ 발전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냐.

 

 

 

다음,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도시국가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의 인물이었어. 단지, 그리스 철학의 융성은 다른 지역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지. 그건 또 뭐냐구?

 

다른 지역의 철학자들이 난세를 걱정했다면,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다른 소국을 점령하면서 쌓인 부를 활용하면서 철학이 성장했다는 거야.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어. 정치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등 신분이 있고 역할이 있어야 세상이 돌아간다고. 그래서 아테네의 고귀한 신분들은 식민지 소국 노예와 상인들 덕에 철학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런걸 철인정치론이라고 하는데, 이러니 있는 넘들이 모두 싸잡아서 함께 욕먹는거지, 뭐... 철학자가 이러는데, 다른 지배층은 오죽하겠어?

 

 

 

 

그럼 플라톤의 제자는 누구? 그 분도 같은 말을 했겠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전쟁이 우리의 승리로 끝나고, 전리품인 노예가 끊이기 않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맘놓고 철학을 고민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야. 현자인 아리스토 아저씨도 노예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니,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국가관이 뭔지 알겠지?

 

자, 그럼 그 제자도 한번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인거 알지?

 

매듭 푸는 문제 던져주면 칼로 매듭을 잘라버린다는 그 월드헤비급 챔피언.... 세계 정복왕 말야. 알렉산더는 정복을 거듭하면서 정복지를 서로 연결하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수십개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도시도시를 거쳐서 희귀한 동양의 물품들이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도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을 부수고, 자르고, 해부하고... 또... 음.... 독극물도 넣어보고 하면서 과학을 발전시켰던 거야. 그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건 헌신적인(?) 스승님의 지원이 있었던 거지. 지금이라면 독일이나 일본의 생체실험이라고 난리가 났겠지만, 당시에는 엄연한 과학발전 취급을 했던 거지, 뭐....

 

말했잖아... 난세에 철학과 과학이 발전한다고...

 

 

 

 

자, 이제 청동기 소국 시대에 철학들이 융성했던 것인지, 그 이유 중 중요한 몇가지만 간추려서 정리해 볼까?

 

첫째, 문자라는 것이 존재했던 시기와 청동기 후기가 일치한다는 점이 중요해.

 

문자가 존재하기 이 전에도 수많은 철학이 존재했겠지만, 그 기록이 명확하지가 않잖아? 내가 열살 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적이 있으면 뭐해? 커서 기억도 안나고 기록해놓은 것도 없는데.... 같은 원리야.

 

초기의 상형문자가 있긴 했어. 그런데, 그 수준이 초기 문자라서 초등학생 일기 수준이야. 알지? 아침에 밥먹었다... 친구랑 싸웠다... 엄마가 미워한다... 아빠가 사랑한다....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당연히 기록을 남기는 것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철학적인 생각은 부족했지. 그리고 그 정신없는 기록을 당대 혹은 후대인들이 해석하는 것도 어려웠어.

 

그럼, 철학이 되지 못한 초등 7세 수준의 기록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초딩들이 사용하는 글쓰기 방법이 있잖아. 엄마한테 혼났는데, 그래서, 아빠한테 갔는데, 그랬더니, 아빠가 칭찬해주는데....

 

그거야. 철학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은 접속사를 중심으로 전승되거나 이야기로 엮기게 되지, 그래서 그 이야기들이 뼈대를 잡고 스토리가 되면 신화로 정리되는 거야.

 

홍수가 났어. 그래서.... 다 죽어가... 그래서... 신에게 빌었어... 그랬더니? 다 죽지 말라고 방주 만들어 주더라....

 

뭐 이런 이야기가 성립되는 거지. 그래서 홍수 설화는 수메르 신화, 페르시아 신화, 구약성경 등 같은 지역의 모든 설화에 비슷하게 다 등장하잖아. 접속사만 바꿔서 말이야.... 그래서가 그러므로로 바뀌고, 짜라투스트라가 노아로 이름만 바뀌는 정도?

 

 

둘째, 청동기 시대의 국가가 소국가라는 것에 주목해야해. 

 

거대한 중앙집권적인 국가는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의 '철학' 만을 인정하지. 그것이 철학이든 종교든 국가에게 유리하다면 그거 하나면 된거야. 별로 도움되지 않은 민중철학이나, 윤리철학이 국가철학에 도전한다면? 그건 이단, 반역, 마녀, 빨갱이... 등등의 수식어를 붙여서 다 처단해야지, 뭐....  

 

그래서 거대한 국가는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게 되는 거야.

 

 

 

하지만 다양한 소국가들이 등장해서 자웅을 겨루는 시기에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해야 할까? 아니지...  당장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고,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데, 국가의 생존에 유익하다면 어떤 철학과 사상이라도 스카웃 해와야지.

 

당장 코리안 시리즈 우승해야 하는데, 이종범이 광주출신이라고 삼성이 안데려가고, 이승협이 대구출신이라고 기아가 버려야 하나? 돈이든, 명예든, 지도자 자리 하나 던져주든.... 무조건 데려와서 우승하고 나중에 생각해야 할거 아냐? 삼성이 김응룡, 선동열.... 데려가서 우승도 몇번하고, 이제는 지역 출신 감독 쓰잖아.

 

그런데, 팬들은 그렇게 생각 안해. 감히, 이승엽이 광주가서 기아 감독한다고 하면?

 

국민타자고 뭐고 광주에서는 난리날껄? 광주가 가진 명분과 역사가 있잖아...

 

 

 

철학 역시, 그 두가지를 다루고 있어. 소국이 살기 위해 누구든 스카웃하고 부국강병을 한다는 국가관을 지켜야 하면서도, 국민정서와 명분을 따지면서 윤리의식을 생각하는 것.... 그거야.

 

장자를 제일 먼저 소개하는 이유도 그거야. 그의 철학이 실리과 명분, 즉 국가관과 윤리의식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거든. 

 

셋째, 청동기 중기 이후 대대적인 정복 전쟁과 연관이 있지.

 

청동기 시대쯤 되면 생산력이 늘어나서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굶어죽지는 않을 수준이 되었어. 뭐 혹시나 굻어 죽을 것 같으면 무기 들고 나가서 약탈하면 되잖아...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겼어. 그러자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있다는 이기심도 점점 증가했지.

 

전쟁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였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욕심이 생명보다 소중한가라는 근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거야. 

 

 

 

 

그러자 고대 철학자들도 두 흐름으로 나눠졌지.

 

죽이고 빼앗아서 국가가 잘먹고 잘살아야 백성이 잘산다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일단 백성이 안죽어야 농사를 짓던 세금을 내던 할테니 윤리문제부터 집중하자는 사람들도 등장했어. 누군가는 이 두가지를 함께 생각했고, 누군가는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도 했지.

 

부국강병을 이루는 방법에서 학파가 여러개로 나눠졌고, 윤리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원리에 따라 여러 분파가 생겨서, 수많은 사상들이 '내가 옳소' 라면서 싸우게 되는 거야. 그래서 혼란기에는 철학의 전성기가 열리는 것이지.

 

자, 생각해보자.

 

21세기는 국가관이 윤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주의 사회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자원을 빼앗기 위해 약소국을 침략해. 그런데 솔직하지 못하지. 

 

침략 명분이 세계평화나 종교윤리, 나쁜 피 제거와 같은 따분한 이데올로기 이야기거든. 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야? 이쁜 수영복 입었다고 자랑질 한 뒤에 옆의 친구 탈락시키고는, 세계평화를 위해 살겠다고 30년째 외치는?

 

그 뿐인가?

 

에너지를 얻고 문명개발에 박차를 가하려는 국가의 노력은 자국의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고 있어.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 가장 심한 곳이 가장 개발이 화려(?)했던 미국 남부잖아. 툭하면 몇백명 이상 사망자가 나오는 허리캐인이 속출하는... 거기에 요즘은 도시 개발의 후휴증으로 도심 곳곳에 발생하는 싱크홀까지 3종 세트가 다 등장했어.

 

도시에 수도관, 가스 등 매설하느라 대부분의 지하가 텅 비어있는 공간이 많아. 거기에 균열이 가면 갑자기 거대한 홀이 생기면서 지하 30미터 짜리 구멍이 뻥 뚫리는 거지.... 잠자다가 갑자기 30미터 아래로 쏙~ 떨어져서 실종되는 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잖아.

 

 

 

 

인간이 자연을 몸살나게 하고 있었지만, 자연은 조용히 기다렸지. 이제 인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거야.

 

장자는 이렇게 말했어.

 

인류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위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인 '개발'은 결국 대자연의 복수를 불러온다고...생존은 개발이 아니라 순응에서 시작한다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과 싸우고 남의 것을 강탈하려는 대립은 결국 질서의 파괴를 가져오고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대립보다는 '상생'을 찾아야 하고, 하나의 길만 달리려는 '획일성' 보다는 자연 속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함'을 인정해야만 자연의 복수를 피할 수 있는 거야. 

 

그걸 모르는 어리석인 인간들의 행동은 모두 무지에서 비롯되는 거야.

 

현대 사회의 환경파괴와 생태계 붕괴, 인간 존엄성의 파괴는 결국 환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장자님, 아니 장느님이 말씀하신거지. 장자가 21세기에도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야. 

 

 

 

이제 장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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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이야기 (NO.5)

한국사에서 원시시대란 무엇일까?

- 시대구분 이야기 -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역사의 시대구분 이야기를 달려볼꺼야.  자, 그럼 역사학자들이 우리 역사에서 원시, 고대, 중세와 같은 시대를 어떻게 나눠놓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이번 시간에는 <원시 시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그런데, <원시>라는 말을 하려고 하니깐, 비슷한 말들이 많이 있네? 뭐, <선사시대>, <석기시대> 이런 말들도 있는데, 이런 용어들은 <원시시대>와 같은 뜻일까? 다른 뜻일까?

그럼 그럼 이 3개의 용어를 구분하기 위해 먼저 <원시시대>가 무슨 말인지부터 알아보자.

원시시대란,  <고대>보다도 더 이른 시기를 통털어 말하는 거야. 서양에서는 <국가>가 성립된 그리스, 로마제국과 같은 시기를 <고대 시대>라고 불러. 그럼 반대로 국가도 없었던 더 원시적인 시대를 부르는 말이 있어야겠지? 그래서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원시시대>라는 말을 끼워넣기 한거야.

그럼 원시시대란 말은 언제쓸까? 당연히 <고대시대>라는 말에 뒤따라 오는 패키지 세트 용어인거야. 원시-고대-중세-근대.... 이런 일반적인 시대구분상 맨 앞에 따라오는 시대가 바로 <원시>인 거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국가라는 체계없이 공동체 생활을 하던 시대를 서양애들이 <원시>라고 구분한거야. 근데, 서양학자들은 <원시> 시대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공동체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원시 공동체 사회>라고도 부르기도 해. 국가나 법이라는 것이 없던 시기에 인류가 기초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모여 살던 시대라는 걸 강조하려고 쓰는 말인거지.

지난 시간에 배운 마르크스의 시대구분 기억나지? <원시> 사회에서는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지배자도, 노예도 없었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였어.

함께 생존하기 위해 먹을 것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했겠지.  그러다보니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한 부족(씨족)들도 있었을거구...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어려운 말로 <점유>라고 불러. 마르크스는 모두가 평등하게 생산하고 분배한다고 해서 원시 사회를 <원시 공산제 사회>라고 불렀어.

정리하자면, <원시>란 말은 시대 구분할 때 쓰는 말이야. 즉, <고대>보다 앞서는 시대로 씨족이나 부족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대를 말하는거지.

이번에는 선사시대라는 말을 알아보자. 선사시대라는 말의 뜻은 쉬워. <역사시대>의 반대말이거든.

우리가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은 모두 <역사>에 대한 이야기잖아.  그럼 역사란 단어는 무슨 뜻을 가진 단어일까? <역사(歷史)>란, 시간을 보내다, 전달한다라는 뜻의 歷이라는 단어와 기록된 문서라는 뜻의 史 라는 단어의 합성어야.

자, 합쳐봅세다~ <역사>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기록한다는 뜻이겠네. 

그럼 반대로, <선사(先史)>란, 역사(史)보다 이른 시기(先)를 말하는 거야. 先자는 <먼저>라는 뜻이잖아. 즉, 역사를 기록하기 전의 <문자>가 없는 시기를 선사라고 말하는거지.

만약, 어떤 시대이든지 과거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 시대는 선사 시대라고 부르면 되는거야.

예를 들어, 우리 민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 한나라 때 사람인 사마천이 지은 <사기 - 조선열전>에 나오거든. 그 책은 기원전 2세기에 쓴 책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서 선사시대는 <사기>에 적힌 내용보다 더 옛날인 <기록이 없는 시대>를 말한다고 보면 되겠네. 반대로, <사기>라는 책 이후의 시대는 <역사> 시대가 되는 것이지.

그런데 생각해봐봐.

사마천이 <사기>라는 역사책을 쓰기 이전에도 우리 민족이 세운 <고조선>은 존재했고, 그 이후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삼국시대도 있었잖아. 만약, 고조선과 삼국시대의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면, 그 시대는 <선사시대>라고 불러야 할 거야. 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등등의 국가는 이미 강력한 국가였기 때문에, 원시시대는 아니잖아. 그럼, 그 시대는 <고대시대>라고 불러야 맞을 거야.

결론은 이거야. 문자가 있냐 없냐를 따지는 <선사시대>라는 용어와, 시대구분상 공동체 사회였느냐, 국가 사회였으냐를 따지는 <원시시대>라는 용어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거지.

자, 이제 다음으로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살펴보자.

<석기시대>라는 용어는 역사에서 쓰는 용어가 아니라, <고고학>에서 쓰는 용어야. 고고학자들은 유물들도 발굴하잖아. 일단 석기(石器)라는 말 자체가, <돌 기구>라는 뜻이니깐, 돌을 사용하던 시대의 유물을 발견하는 거지.

즉, 석기시대는 돌을 사용했는지, 다른 금속을 사용했는지를 따져서 시기를 구분하는 용어인거야. 한마디로, <도구 사용>에 따른 시대 구분 용어인거지.

자, 그럼 돌을 사용한 시대들을 한번 보자. 돌을 이용한 시기는 원시적인 돌을 사용했다는 뜻으로 <구석기 시대>가 있어.  좀, 돌을 깔끔하게 갈아서 효율적으로 이용한 시기는 <신석기 시대>라고 부르지.

그런데, 돌을 도구로 사용한 이 시기에 서양에서는 국가가 성립되지 않았어.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석기시대는 <원시시대>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곤 하지.

하지만, 금속을 사용한 <청동기 시대>가 되면, 부족간의 전쟁이 많아지기 시작하지. 전쟁을 통해 이긴 자들은 지배계급이 되고, 패한 자들은 노예가 되는 거야. 그럼 계급이 생기겠지? 계급이 생기면서 지배계급은 점령한 피지배계급을 노예로 삼기 시작했어. 그리고 피지배계급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국가>라는 것을 만들기 시작한거지. 그래서인지, 서양학자들은 청동기 시대 이후가 되야 <국가>가 생기고 <고대 사회>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 서양학자들의 연구를 이유로 해서, 우리 역사학자들도 청동기 때 성립한 국가인 <고조선> 시기가 <고대>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 그리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해. 

하지만, 우리 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이 고대라는 걸 인정하기 않고 있어. 확실하고 강력한 국가 체계가 이루어진 시기가 <삼국 시대>이기 때문에, 법이나 종교, 왕권이라는 개념이 확실한 <삼국시대>를 고대로 파악하고 있는거지. 한마디로, 교과서는 <삼국시대>부터를 고대로 보고 있고, 최근 학자들은 <고조선> 시대부터를 고대로 보기 시작했다.... 이거지 뭐.

그렇다고, <석기시대가 반드시~ 원시시대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신석기 시대에서도 문화가 발달하고 생산력이 높아지면 국가와 계급이 발생할 수도 있잖아.  그렇게 되면 석기시대인데도 <고대시대>인 국가가 있을 수 있어. 고대 아메리카의 잉카나 마야 문명은, 신석기 시대였지만 찬란한 <고대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거든.

자, 이렇게 지금까지 <원시시대, 선사시대,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비교하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았어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 역사에서는 언제까지가 원시시대이고, 언제부터 고대시대로 봐야할지... 그럼 다음 장에서는 원시와 고대를 구분하는 이야기를 해보는거야....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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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따라잡기 1 - 원시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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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봉룡,서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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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토지 이야기 (2)

동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신석기 시대가 도래하다....

인류가 땅을 이용하여 생상력을 확보한 시기는 약 1만년 전부터이다. 1만년전을 훌쩍 뛰어넘어 70만년전에 이르는 <구석기 시대>는 토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수십만년 동안 지속된 빙하기와 간빙기 때문이다. 그 오랜 기간 인류의 시조인 <원숭이>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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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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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지구상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1만년 전쯤부터 본격적인 <토지 이용>이 시작되었다. 고고학 연대로 보면 이 시기가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물론, 채집과 수렵 생활은 계속 되었지만, 토지를 이용한 생활도 병행되었다.

이제, 토지를 이용하여 도토리, 수수 등의 작물을 재배하는 초보적인 농경이 이루어졌고, 토기와 같이 작물을 보관하는 기구도 등장하였다. 그러나 최초의 농경은 그 생산력이 너무나 낮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인류는 초보적인 <종교>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자연물과 동식물에 대한 경배가 시작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숭배 대상은 <하늘과 태양>이었다. 특히 태양신은 농경이 이루어진 주요 문명 지역에서 빠지지 않는 신이었다.

그럼 동아시아의 사람들은 <신석기 시대>에 어떻게 살았을까?

2. 신석기 시대와 토지 이용

중국의 신석기 시대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전설의 시대>이다. 사기에는 3황 5제의 전설이 나오는데, 이 3황 5제가 바로 농경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황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 지, 인과 같은 개념이다. 사기의 3황은 천황(天皇)·지황(地皇)·태황(泰皇)이라고 나오는데, 후대 역사가들이 복희, 신농, 여와, 수인 등 다양한 개념을 가져다 붙였다. 중요한 것은 3황이 하늘, 땅,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중 <땅의 신>이 농경을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3황 이후 등장한 5제는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황제, 전욱, 제곡(帝嚳),·당요(唐堯),·우순(虞舜) 이다.

삼황의 기록

내용

사기의 진시황본기

천황(天皇),·지황(地皇),·태황(泰皇)

사기의 보삼황본기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풍속통의의 황패편

복희(伏羲), 여와(女臥), 신농(神農)

통감외기

복희(伏羲), 신농(神農), 공공(共工)

예위의 함문가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

백호통

복희(伏羲), 신농(神農), 축융(祝融)

십팔사략의 제왕세기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3황이 하늘, 땅, 사람을 뜻하면서 농경의 전파를 전설로 설명하고 있다면, 5제는 음양오행의 돌고도는 5행을 기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원래 5제는 중국 최초 왕조은 <하> 왕조의 전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탄생했다고 보여졌지만, 한나라 때 동중서가 <추연의 음양오행설>을 받아들여 정리한 것이다.

오제의 기록

내용

사기 오제본기

황제(黃帝), 전욱(颛顼), 제곡(帝喾), 당요(唐堯), 우순(虞舜)

황왕대기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당요(唐堯), 우순(虞舜)

예기 월령

태고(太皋: 복희), 염제(炎帝), 황제(黃帝), 소고(少皋), 전욱(颛顼)

도장의 동신부

황제(黃帝), 소고(少皋), 제곡(帝喾), 제지(帝摯), 제요(帝堯)

십팔사략

소호(少昊), 전욱(颛顼), 고신(高辛), 당요(唐堯), 우순(虞舜)

한반도와 요동지방의 신석기 시대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이다. 그러나, 남겨진 기록이 없기 때문에 어떤 방식의 토지 이용을 했을지는 알 방법이 없다.

일단 빗살무늬 토기와 탄화된 좁쌀 등의 유적으로 미루어 초보적인 농경이 부락단위로 이루어졌다는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만주지방의 칠무늬 토기(채도)는 한반도와 유사하다. 많은 학자들이 요령 지방의 홍산 문화와 같은 신석기 문화가 중국보다는 한반도 계통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링크 : 한반도와 홍산문화는 같은 문화권이다.

한반도의 신석기 농경을 <토기>의 형태로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석기 초기의 토기는 시베리아 계통의 토기와 비슷하며, 신석기 후기로 갈수록 중국식 토기와 비슷한 유물이 많다고 한다.

링크 : 시베리아와 한반도의 유물 비교

반면, 일본의 신석기는 조몬 시대(縄文時代) 후기를 말한다. 일본인의 인종은 고몽골족으로, 1만년전 경부터 한반도 등에서 이동한 이들이 농경 등을 전파하면서 토지 이용을 시작하였다. (일본 국립유전학 연구소에 따르면 약 65% 정도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링크 : 일본 유전학 연구

   

신석기 때의 토기 :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좌), 일본의 조몬토기(우)

동아시아의 신석기인들이 농사를 지으며 먹었던 주식은 도토리와 밤 정도였다. 당시 농사 기술로는 계절에 따라 다른 음식을 먹어야만 했는데, 봄에는 나물류를 채집하고, 여름에는 강이나 바닷가 근처에서 어류를 많이 먹었을 것이다. 가을에는 도토리와 밤 등의 수확물을 먹을 수 있었고, 겨울에는 버섯류와 칡, 마, 겨울 생선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즉, 신석기 때 토지 이용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을 정도에 수확되는 일부 견과류 정도였고, 사냥과 채집이 여전히 큰 비율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초보적인 농경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촌락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식량을 구하는 씨족 단위 체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수견해이다. 씨족들은 한 해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부족의 수호신에게 기원을 했을 것이다.

또, 당시 사회가 모계제인가, 부계제인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인들의 전통 견해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의 생산력은 극히 낮았고, 채집과 수렵 등 여성들의 생산력이 중요시되던 시기였다. 또, 결혼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일부다처제를 시행했다고 가정하면, 아이를 직접 낳은 여자측의 발언권이 강했다는 주장이다. 3황5제의 모계사회가 현재의 부계사회로 넘어온 것은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왕조>가 성립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그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도 일부일처제의 기본적인 가족관계가 성립되었고, 동아시아 사회에 모계 사회는 성립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신석기 시대에도 남성이 힘든 일을 하면서 경제권을 조금 더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누가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던지는 열심히 싸우라고 냅두고 토지이야기를 해보자.

신석기라는 1만년전후의 오랜 시간은 토지 사용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다. 누가 토지의 주인일까?

신석기 시대의 토지 이용을 놓고, <원시 공산제 사회>라는 학설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다. 먼저 사회주의자인 <마르크스>부터 사회학자인 <베버>, <뒤르껨>... 지금의 대부분 역사학자들까지 그렇게들 주장한다.

신석기 시대의 생산력이 극히 낮고, 당시 사람들은 절대 빈곤에 처해 있었다. 농경은 초보적이었다. 사람들은 수천년간에 걸쳐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농사기술의 발전보다는 <자연신>에게 좋은 날씨를 부탁하고 있었다.

아마도 토지 소유권을 놓고 일어난 분쟁은 극히 적었을 것이다. 설령 있었다고 해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또,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는 토지 소유가 아닌 <점유> 형태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당시 사회가 부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사회였기 때문에, 토지는 부족민 전체가 <점유>하는 것이었다. 토지를 <점유>하다는 개념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개념으로 바뀐 것은 정복전쟁이 활발해지는 <철기 시대>쯤에 등장한다.

3. 청동기와 토지 이용

동아시아에서 금속 문명이 등장하고, 농경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000년 경이다. 이 시기는 석기 문명과 청동 문명이 공존하던 시기로, 황하 문명을 비롯한 다양한 동아시아 문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 양자강 근처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기원전 2000년경에 공동체를 장악한 종교 제사장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권력을 가진 자가 성장하여 기원전 1600년경 최초의 왕조인 상 왕조(은)를 건설했다고 한다.

만주에서는 기원전 1600년 경에 북방 유목 계통인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청동기가 전파되었고, 한반도에도 기원전 15세기 전후에 청동기가 보급되었다. 일본에는 기원전 1000년경 야오이 시기에 청동기가 전파되었다.

청동기가 전파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각 지역에 벼농사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청동기와 벼농사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청동기는 요즘으로 따지면 <보석>과 같이 귀한 것이었다. 구리와 주석, 아연 등을 합금해야 제조가 가능한 청동은, 희소성 때문에 지배층의 무기나 제사용품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여전히 농기구는 돌이었다.

청동기를 만드는 기술이 전파되면서 농사를 짓는 기술도 같이 전해져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특히 벼농사의 전파경로는 청동기 전파 경로와 유사하다. 만주 계통에서 한반도로, 그리고 일본으로 전래된 경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럼 창동기와 함께 보급된 농사 기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동아시아 사람들이 처음 시도한 농사는 견과류 등을 수확하는 것이었다. 밤을 많이 수확하였고, 깨, 도토리, 박 등이었다.

조금 시기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비옥한 땅과 비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화경농법>이다. 화경은 말 그대로 그 자리를 불태워서 비옥한 땅과 비료를 만든 후에 농사짓는 초보적인 방식이었다. 화전 농법으로 보리, 수수, 조, 팥 등을 재배할 수 있었다.

신석기 후기가 되면서 농사 기술은 더욱 발전되었다. 각 지역의 화경 농법이 발달하였고, 중국 강남지방에서 시도되었던 <수경농법>과, 만주지방의 <화경농법>이 유행하였다.  

특히 <수경농법>은 물을 이용한 농법으로 한층 진화된 농사법이었다. 물을 이용함으로서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벼가 동아시아인들의 주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처음 중국식 수경농법은 강가와 저습지를 이용한 농사였으나,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한반도, 일본 등에서 개량을 거치게 된다. 저습지를 찾아다닐 필요없이 직접 <관개시설>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동아시아 각지에 관개 시설이 등장하고, 농사기술은 한층 발전하게 된다.

농사기술을 발전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생산물과 관개시설을 놓고 다툼이 시작되었다. 청동기와 철기 시대는 서로 많은 생산력과 생산물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활발히 진행된 것이다.

즉, 당시의 농업기술 수준으로 볼 때, 당시 생산력을 높이는 주요 수단은 직접적인 생산력보다도, 생산력을 획득하려는 싸움이었다는 점이다. 일정 지역을 확보한 지배자의 출현은 생산 영역을 놓고 벌이는 전쟁에서 시작되었다.

다음 장에서는 금속기 시대의 생활 단위인 <읍>과 중국인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토지제도 <정전제도>에 대해 간략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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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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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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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토지경제사연구(인문사회과학총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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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택민 (고려대학교출판부,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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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와 토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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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시형 (신서원,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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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편집부 (민족문화사,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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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만에 읽는 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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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전

위만이 왕이 되어 왕검에 도읍하였을 때는 마침 효혜, 고후(한나라 혜제왕 대 여후 섭정기)의 때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된 무렵이였다. 요동태수가 위만으로 외신(외번)을 삼아요새 밖의 만이를 막아서 변방에서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고, 만이의 군장들 가운데 천자께 들어가 뵙고자 하는 자는 이를 막지 말도록 하자고 아뢰니 천자가 이를 허락하였다. 이 때문에 위만이 군사의 위엄과 재물을 얻자 주변 소읍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땅이 수천리나 되었다.

위만이 왕위를 아들에게 전하고 다시 손자 우거에게 이르자 한나라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을 자못 많이 유인하였다. 또 일찍이 들어와 천자를 뵙지도 않으면서 진번 곁의 진국(한반도 남방의 중국, 3한의 모태)이 글을 올려 천자를 보고자 해도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원봉 2년에 한에서는 섭하를 사신으로 보내 달래고 타일렀으나 우거는 끝내 조서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는 돌아가다가 국경 위에 이르러 패수에 도착하자 부하를 시켜 자기를 배웅하러 나온 조선비왕 장을 죽인 다음 재빨리 강을 건너 요새로 달아났다. 돌아가서 이 사실을 천자에게 보고하여 자기가 조선 장수를 죽였다고 하자 천자는 잘했다고 칭찬하며 더 캐묻지 않고 섭하를 요동동부도위로 삼았다. 조선은 섭하를 원수로 여겨 군사를 내어 습격하여 죽였다. 이에 천자는 죄인을 모집해 조선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좌장군이 양군을 합하고는 급히 조선을 공격하였다. 조선사 노인, 상 한음, 이계상 참, 장군 왕협 등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에는 누선에게 항복하려 하였으나 지금은 누선이 체포되고 좌장군 혼자 장군들을 합쳐 전투가 더욱 급하니 더불어 싸울 수 없을 것 같은데 왕은 항복하려 들지 않는다.” 하고는 음, 겹, 노인 모두 도망하여 한에 항복하였는데 노인은 도중에 길에서 죽었다.

원봉 3년 여름, 이계상 참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해 왔다. 그러나 왕검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우거왕의 대신이었던 성이가 거듭 항전해왔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강과 상 노인의 아들 최로 하여금 백성들을달래 성이를 죽이게 하였다. 이로서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을 삼았다.

                                                             - 사기 조선열전 -

사료해석 : 위 사료는 사기의 관점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위지동이전같은 사료와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사기에 나온 조선의 내용 자체가 <열전>에 포함되기 때문에 정치사적 관점에서 중국의 동이정복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반면 위지동이전 같은 사료는 민족지학적인 관점이 훨씬 많죠.

중국의 동이정복관점에서 전쟁의 명분이라는 측면에 사기에 많이 들어가 있으므로, 이러한 사료를 비판할 때 중국입장을 생각하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진짜 그랬을까, 그랬다면 다른 이유가 있었지 않을까, 중요한 사건을 누락시키지 않았을까하는 사료 비판이 첨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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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