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상의 이해 - 장자 1

 

'장자' 들어가기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인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어떤 이데올로기도, 윤리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소국들의 입장이었다. 고대 철학은 그 경계선에서 출발한다.

 

사상사의 출발점에는 공통적인 현상 한가지가 있어. 그게 뭐냐구?

 

그것은 철학의 출발점이 '도시국가'가 출현하는 '청동기' 시대라는 것이지.

 

먼저 석가모니!!!

 

석가는 인도의 공화정이었던 소왕국의 왕자 출신으로서 소국들의 대립과 거대 왕국과의 마찰이 있던 브라만 시대의 인물이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당시 인도는 제국을 꿈꾸는 브라만 집단과 작은 소국을 꿈꾸는 공화정 집단들이 대립하고 있었지. 스타워즈의 제국과 공화국의 대립처럼 말야.

 

그런데 브라만이든, 공화정 집단이든 웬지 신라시대 귀족이랑 화랑들 같았어. 골품같은 고정적 신분이 있었지. 브라만교에는 카스트 제도 있는거 알지? 공화정에도 신라의 화백회의처럼 만장일치 귀족 회의가 있었지.

 

다음 공자!!!

 

공자와 장자, 한비자와 같은 사상가들 역시 춘추전국시대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공동된 고민을 했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인간이 사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밥먹고 그 고민만 했는지 후대에 남긴 어록도 무지 많아.

 

그런데, 그 정의로움을 법에서 찾는지, 도덕에서 찾는지, 자연에서 찾는지, 공리에서 찾는지는 각자 답이 달랐어. 도시국가가 많아서 밥먹고 전쟁하고, 사람 죽고, 또 전쟁하고, 통일한다고 설치고.... 

 

이런 지옥같은 무법천지인 세상을 법으로 다스릴지, 윤리로 다스릴지, 자연에서 답을 찾을지는 생각하는 사람맘 아니겠어? 그러니 철학이 발전하는거지... 철학과 과학기술은 전쟁의 참혹함에 비례해서 팍팍~ 발전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냐.

 

 

 

다음,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도시국가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의 인물이었어. 단지, 그리스 철학의 융성은 다른 지역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지. 그건 또 뭐냐구?

 

다른 지역의 철학자들이 난세를 걱정했다면,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다른 소국을 점령하면서 쌓인 부를 활용하면서 철학이 성장했다는 거야.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어. 정치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등 신분이 있고 역할이 있어야 세상이 돌아간다고. 그래서 아테네의 고귀한 신분들은 식민지 소국 노예와 상인들 덕에 철학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런걸 철인정치론이라고 하는데, 이러니 있는 넘들이 모두 싸잡아서 함께 욕먹는거지, 뭐... 철학자가 이러는데, 다른 지배층은 오죽하겠어?

 

 

 

 

그럼 플라톤의 제자는 누구? 그 분도 같은 말을 했겠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전쟁이 우리의 승리로 끝나고, 전리품인 노예가 끊이기 않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맘놓고 철학을 고민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야. 현자인 아리스토 아저씨도 노예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니,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국가관이 뭔지 알겠지?

 

자, 그럼 그 제자도 한번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인거 알지?

 

매듭 푸는 문제 던져주면 칼로 매듭을 잘라버린다는 그 월드헤비급 챔피언.... 세계 정복왕 말야. 알렉산더는 정복을 거듭하면서 정복지를 서로 연결하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수십개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도시도시를 거쳐서 희귀한 동양의 물품들이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도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을 부수고, 자르고, 해부하고... 또... 음.... 독극물도 넣어보고 하면서 과학을 발전시켰던 거야. 그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건 헌신적인(?) 스승님의 지원이 있었던 거지. 지금이라면 독일이나 일본의 생체실험이라고 난리가 났겠지만, 당시에는 엄연한 과학발전 취급을 했던 거지, 뭐....

 

말했잖아... 난세에 철학과 과학이 발전한다고...

 

 

 

 

자, 이제 청동기 소국 시대에 철학들이 융성했던 것인지, 그 이유 중 중요한 몇가지만 간추려서 정리해 볼까?

 

첫째, 문자라는 것이 존재했던 시기와 청동기 후기가 일치한다는 점이 중요해.

 

문자가 존재하기 이 전에도 수많은 철학이 존재했겠지만, 그 기록이 명확하지가 않잖아? 내가 열살 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적이 있으면 뭐해? 커서 기억도 안나고 기록해놓은 것도 없는데.... 같은 원리야.

 

초기의 상형문자가 있긴 했어. 그런데, 그 수준이 초기 문자라서 초등학생 일기 수준이야. 알지? 아침에 밥먹었다... 친구랑 싸웠다... 엄마가 미워한다... 아빠가 사랑한다....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당연히 기록을 남기는 것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철학적인 생각은 부족했지. 그리고 그 정신없는 기록을 당대 혹은 후대인들이 해석하는 것도 어려웠어.

 

그럼, 철학이 되지 못한 초등 7세 수준의 기록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초딩들이 사용하는 글쓰기 방법이 있잖아. 엄마한테 혼났는데, 그래서, 아빠한테 갔는데, 그랬더니, 아빠가 칭찬해주는데....

 

그거야. 철학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은 접속사를 중심으로 전승되거나 이야기로 엮기게 되지, 그래서 그 이야기들이 뼈대를 잡고 스토리가 되면 신화로 정리되는 거야.

 

홍수가 났어. 그래서.... 다 죽어가... 그래서... 신에게 빌었어... 그랬더니? 다 죽지 말라고 방주 만들어 주더라....

 

뭐 이런 이야기가 성립되는 거지. 그래서 홍수 설화는 수메르 신화, 페르시아 신화, 구약성경 등 같은 지역의 모든 설화에 비슷하게 다 등장하잖아. 접속사만 바꿔서 말이야.... 그래서가 그러므로로 바뀌고, 짜라투스트라가 노아로 이름만 바뀌는 정도?

 

 

둘째, 청동기 시대의 국가가 소국가라는 것에 주목해야해. 

 

거대한 중앙집권적인 국가는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의 '철학' 만을 인정하지. 그것이 철학이든 종교든 국가에게 유리하다면 그거 하나면 된거야. 별로 도움되지 않은 민중철학이나, 윤리철학이 국가철학에 도전한다면? 그건 이단, 반역, 마녀, 빨갱이... 등등의 수식어를 붙여서 다 처단해야지, 뭐....  

 

그래서 거대한 국가는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게 되는 거야.

 

 

 

하지만 다양한 소국가들이 등장해서 자웅을 겨루는 시기에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해야 할까? 아니지...  당장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고,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데, 국가의 생존에 유익하다면 어떤 철학과 사상이라도 스카웃 해와야지.

 

당장 코리안 시리즈 우승해야 하는데, 이종범이 광주출신이라고 삼성이 안데려가고, 이승협이 대구출신이라고 기아가 버려야 하나? 돈이든, 명예든, 지도자 자리 하나 던져주든.... 무조건 데려와서 우승하고 나중에 생각해야 할거 아냐? 삼성이 김응룡, 선동열.... 데려가서 우승도 몇번하고, 이제는 지역 출신 감독 쓰잖아.

 

그런데, 팬들은 그렇게 생각 안해. 감히, 이승엽이 광주가서 기아 감독한다고 하면?

 

국민타자고 뭐고 광주에서는 난리날껄? 광주가 가진 명분과 역사가 있잖아...

 

 

 

철학 역시, 그 두가지를 다루고 있어. 소국이 살기 위해 누구든 스카웃하고 부국강병을 한다는 국가관을 지켜야 하면서도, 국민정서와 명분을 따지면서 윤리의식을 생각하는 것.... 그거야.

 

장자를 제일 먼저 소개하는 이유도 그거야. 그의 철학이 실리과 명분, 즉 국가관과 윤리의식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거든. 

 

셋째, 청동기 중기 이후 대대적인 정복 전쟁과 연관이 있지.

 

청동기 시대쯤 되면 생산력이 늘어나서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굶어죽지는 않을 수준이 되었어. 뭐 혹시나 굻어 죽을 것 같으면 무기 들고 나가서 약탈하면 되잖아...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겼어. 그러자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있다는 이기심도 점점 증가했지.

 

전쟁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였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욕심이 생명보다 소중한가라는 근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거야. 

 

 

 

 

그러자 고대 철학자들도 두 흐름으로 나눠졌지.

 

죽이고 빼앗아서 국가가 잘먹고 잘살아야 백성이 잘산다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일단 백성이 안죽어야 농사를 짓던 세금을 내던 할테니 윤리문제부터 집중하자는 사람들도 등장했어. 누군가는 이 두가지를 함께 생각했고, 누군가는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도 했지.

 

부국강병을 이루는 방법에서 학파가 여러개로 나눠졌고, 윤리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원리에 따라 여러 분파가 생겨서, 수많은 사상들이 '내가 옳소' 라면서 싸우게 되는 거야. 그래서 혼란기에는 철학의 전성기가 열리는 것이지.

 

자, 생각해보자.

 

21세기는 국가관이 윤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주의 사회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자원을 빼앗기 위해 약소국을 침략해. 그런데 솔직하지 못하지. 

 

침략 명분이 세계평화나 종교윤리, 나쁜 피 제거와 같은 따분한 이데올로기 이야기거든. 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야? 이쁜 수영복 입었다고 자랑질 한 뒤에 옆의 친구 탈락시키고는, 세계평화를 위해 살겠다고 30년째 외치는?

 

그 뿐인가?

 

에너지를 얻고 문명개발에 박차를 가하려는 국가의 노력은 자국의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고 있어.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 가장 심한 곳이 가장 개발이 화려(?)했던 미국 남부잖아. 툭하면 몇백명 이상 사망자가 나오는 허리캐인이 속출하는... 거기에 요즘은 도시 개발의 후휴증으로 도심 곳곳에 발생하는 싱크홀까지 3종 세트가 다 등장했어.

 

도시에 수도관, 가스 등 매설하느라 대부분의 지하가 텅 비어있는 공간이 많아. 거기에 균열이 가면 갑자기 거대한 홀이 생기면서 지하 30미터 짜리 구멍이 뻥 뚫리는 거지.... 잠자다가 갑자기 30미터 아래로 쏙~ 떨어져서 실종되는 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잖아.

 

 

 

 

인간이 자연을 몸살나게 하고 있었지만, 자연은 조용히 기다렸지. 이제 인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거야.

 

장자는 이렇게 말했어.

 

인류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위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인 '개발'은 결국 대자연의 복수를 불러온다고...생존은 개발이 아니라 순응에서 시작한다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과 싸우고 남의 것을 강탈하려는 대립은 결국 질서의 파괴를 가져오고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대립보다는 '상생'을 찾아야 하고, 하나의 길만 달리려는 '획일성' 보다는 자연 속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함'을 인정해야만 자연의 복수를 피할 수 있는 거야. 

 

그걸 모르는 어리석인 인간들의 행동은 모두 무지에서 비롯되는 거야.

 

현대 사회의 환경파괴와 생태계 붕괴, 인간 존엄성의 파괴는 결국 환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장자님, 아니 장느님이 말씀하신거지. 장자가 21세기에도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야. 

 

 

 

이제 장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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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3

'원시시대가 석기시대인가요?'

역사를 처음 시작할 때 등장하는 것들이 바로 시대구분이라는 용어다. 그러나 사실 원시시대와 석기시대는 같은 뜻으로 사용하면서도 약간 의미가 다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짚고 넘어가보자. 그건 석기시대와 같이 혼돈해서 쓰는 잘못된 용어들이지.

석기시대란.... 말 그대로 石器... 을 도구로 쓴 시대란 뜻이야. 보통 우리가 stone-age 라고 알고 있는 시기이지만, 실제로는 stone implement 라는 말이 정확한 거지.

구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후진 돌... 새 돌.... 반짝거리는 청동.... 무지 강한 철.... 즉...생활 도구를 돌(石器)을 사용했느냐 금속을 사용했느냐로 나누는 기준인 것이야. 원숭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역사시대가 아니라는 말 했었지? 이건 순전히 고고학이라는 학문에서 인류 발전 단계를 나타낼때 쓰는 용어야.

석기시대를 이야기할 때, 선사시대라는 말도 같이 쓰지만 석기와 선사는 달라.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의 반대말이지. 先史란 말이 역사보다 먼저란 뜻이잖아. 먼저 선!!! 따라서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 이전의 모든 시기가 선사시대야.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단군 신화고... 단군의 고조선은 보통 청동기 때 세워졌다고 하니깐, 청동기 이전은 모두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겠네....

한국사에서.... 구석기 + 신석기 + 이른 청동기 = 선사시대

또... 원시인들이 살았던 옛 시대를 원시시대라고 대충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석기시대랑은 다른 개념이지. 원시시대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을 말하는 개념이야.

원시시대는 사회주의자였던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념인데, 마르크스는 제대로 된 정치력을 가진 국가가 생기기 전의 시대를 원시 시대로 불렀어. 마르크스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했지.

공산주의란, 말 그대로 공산(共産).... 공동으로 생산해서 재산을 공동으로 나누는 이상적 사회를 말해. 인류는 원래 <원시사회>라는 시기에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였는데, 국가가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평등이 깨졌다고 생각한거지. 즉, 원시시대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평등사회를 지칭하는 말이야.

원시원시공산사회(부족공동체 사회) - 고대 국가 - 중세 국가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

위에 적은 사회 발전 단계를 보니깐 대충 알겠지? 돌을 사용한 석기시대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원시사회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 원시사회지만, 돌을 안 쓴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석기 사회에서 고대 국가가 생긴 사회도 있을 수 있지.

아메리카의 고대 잉카 문명 같은 경우에는 석기 시대때 이미 찬란한 문명 사회를 이루었고, 아마존 부족들은 원시사회였지만 금속을 사용할 줄 알았다잖아.

자, 그럼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확실히 알았으니깐, 석기시대로 출발해볼까? 끄적끄적...

2. 구석기의 인류란?

보통 역사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류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그냥 상징적인 개념일 뿐야. 오스트랄로가 오스트레일리아 할 때, 그 남쪽이란 뜻이고, 피테쿠스는 <원숭이>란 뜻이지. 한마디로, 걍 남쪽에서 발견된 원숭이란 뜻이야.

근데, 305만년전이라는 까마득한 시절의 원숭이가 역사책에서 인류의 시조로 등장한 이유는 뭘까?

그건 그냥 두 발로 걸어다닐 줄 알았고, 손에 돌을 들고 뭔가를 부실 줄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손에 돌을 들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살았으니 이 때 부터가 이미 <석기> 시대겠지?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조상을 정하면, 여의봉을 들고 킥킥거리며 하늘은 나는 털보원숭이 손오공도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다. 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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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실 이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원숭이들도 다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어. 400-500만전의 원숭이들 중에서도 <라마피테쿠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원숭이들이 있었거든... 그 이후로 호모 에렉투스니, 호모 사피엔스니... 기타 등등 원숭이들이 많이 발견되었다나봐. 뭐, 우리랑 상관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구...

근데 원숭이들 학명은 대부분 <호모 Homo>가 들어가지? 호모란 원래 고고학 학명으로 <인간 human>이라는 뜻이지. 남성과 여성 할 것 없이 인간 자체를 뜻하는 학명인데, 요즘 사람들은 동성애자나 성정체성이 불명확한 사람들을 호모라고 부르고 있어. 그럼 안된단다... 땍~~~

다음 장에서 할 이야기도 역사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살포시 짚어봐야할 이야기지. 바로 시대구분~~ 이라는 거야. 위에서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원시사회니 고대사회니, 공산주의 사회니 하는 구분을 떡 하니 말했었지? 그런 건 대체 왜 하는건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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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세계사 (3)

석기시대와 원시시대.. 그리고 원숭이들

1. 석기시대가 원시시대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게 있어. 그건 석기시대와 같이 혼돈해서 쓰는 잘못된 용어들이지.

지금 다루는 석기시대란.... 말 그대로 石器... 돌을 도구로 쓴 시대란 뜻이야. 보통 우리가 stone-age 라고 알고 있는 시기이지만, 실제로는 stone implement 라고 쓰고 있지.

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후진 돌... 새 돌.... 반짝거리는 청동.... 무지 강한 철.... 즉...생활 도구를 돌(石器)을 사용했느냐 금속을 사용했느냐로 나누는 기준이지. 이건 순전히 고고학에서 인류 발전 단계를 나타낼때 쓰는 용어야.

석기시대를 이야기할 때, 선사시대라는 말도 같이 쓰지만 석기와 선사는 달라.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의 반대말이지. 先史란 말이 역사보다 이른 시대란 뜻이잖아. 따라서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 이전의 모든 시기가 선사시대야.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단군 신화고... 단군의 고조선은 보통 청동기 때 세워졌다고 하니깐, 청동기 이전은 모두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야....

한국사에서.... 구석기 + 신석기 + 이른 청동기 = 선사시대

또... 원시인들이 살았던 옛 시대를 원시시대라고 대충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석기시대랑은 다른 개념이지. 원시시대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을 말하는 개념이야.

원시시대는 사회주의자였던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념인데, 마르크스는 제대로 된 정치력을 가진 국가가 생기기 전의 시대를 원시 시대로 불렀어. 마르크스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했지.

공산주의란, 말 그대로 공산(共産).... 공동으로 생산해서 재산을 공동으로 나누는 이상적 사회를 말해. 인류는 원래 <원시사회>라는 시기에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였는데, 국가가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평등이 깨졌다고 생각한거지. 즉, 원시시대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평등사회를 지칭하는 말이야.

원시사회(원시 공산사회, 부족공동체 사회) - 고대 국가 - 중세 국가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

위에 적은 사회 발전 단계를 보니깐 대충 알겠지? 돌을 사용한 석기시대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원시사회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 원시사회지만, 돌을 안 쓴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석기 사회에서 고대 국가가 생긴 사회도 있을 수 있지.

아메리카의 고대 잉카 문명 같은 경우에는 석기 시대때 이미 찬란한 문명 사회를 이루었고, 아마존 부족들은 원시사회였지만 금속을 사용할 줄 알았다잖아.

자, 그럼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확실히 알았으니깐, 석기시대로 출발해볼까? 끄적끄적...

2. 구석기의 인류란?

보통 역사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류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그냥 상징적인 개념일 뿐야. 오스트랄로가 오스트레일리아 할 때, 그 남쪽이란 뜻이고, 피테쿠스는 <원숭이>란 뜻이지. 한마디로, 걍 원숭이란 뜻이야.

근데, 305만년전이라는 까마득한 시절의 원숭이가 역사책에서 인류의 시조로 등장한 이유는?

그건 그냥 두 발로 걸어다닐 줄 알았고, 손에 돌을 들고 뭔가를 부실 줄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손에 돌을 들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살았으니 이 때 부터가 이미 <석기> 시대겠지?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조상을 정하면, 여의봉을 들고 킥킥거리며 하늘은 나는 털보원숭이 손오공도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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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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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실 이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원숭이들도 다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어. 400-500만전의 원숭이들 중에서도 <라마피테쿠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원숭이들이 있었거든... 그 이후로 호모 에렉투스니, 호모 사피엔스니... 기타 등등 원숭이들이 많이 발견되었다나봐. 뭐, 우리랑 상관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구...

암튼, 세계 곳곳에서 원숭이들이 등장했다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원숭이들이 발견되었겠지? 그럼 고고학의 시대로 들어가서 우리와 관련된 원숭이들의 생활 양식을 간략히 정리해 볼까? (에휴... 원숭이 얘기만 계속하다가 역사 이야기는 언제 시작하지???)

 

딴 나라 원숭이 얘기는 하기도 귀찮다... 그냥 400만년전 이야기는 영상으로 때워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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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자료 - 철기의 제작 과정

이 자료는 각 교육청 기관 중고등부 학습 자료실에서 만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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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료들은 사이트내에서 중고등부 한국사 모의시험 출제를 위해 수집하고 있습니다.

플래시 출처 : 에듀넷 중앙학습자료실(경남교육청 자료실)    고용호의 사회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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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자료 - 고조선의 건국이야기

이 자료는 각 교육청 기관 중고등부 학습 자료실에서 만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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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출처 : 에듀넷 중앙학습자료실(경남교육청 자료실)    고용호의 사회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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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시대로 이행 - 간단히 핵심 요약

1. 철기사용과 그 시대적 특징 - 간단히 다루기...

철기시대의 특징은 철기는 청동기와는 다르게 구하기 쉬웠고, 두루 쓰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철기를 이용하여 농업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논농사가 전국적으로 실시됩니다. 또, 철제무기를 통한 전쟁이 증가하고, 이것은 사회 분화를 촉진시켰다는 점도 중요하죠.

철기시대에는 해상활동세력, 대장장이(철기제조 기술을 가진 자), 상업세력 등이 각자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지역별로 이루어진 국가들이 철기 시대 초기에는 아주 많았죠. 삼한 70여국이라는 말에서만 보아도 이 당시 국가 숫자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국가들은 서로 정복전쟁을 통하여 집단간 계급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진 자들은 노예가 되어 사회 내부적인 계급이 상당히 분화됩니다. 즉, 제가, 호민, 하호 등 계급이 나뉘고, 정치와 제사를 지내는 군장 및 종교 세력등이 성장하는 등 중층적 질서가 보다 견고해지는 것이지요.

한반도에서 철기가 도입된 것은 위만조선시대라고 보통 말합니다. 위만은 본래 조선을 다스리던 준왕을 한반도로 몰아내고, 새로운 기술인 철기제조술을 이용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성립하려고 하였습니다. 원래 고조선에는 <경>이라 불리는 관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독자적 봉건세력을 뜻합니다. 그러나 위만은 봉건세력들을 통합하기 위해 새로 <상>이라는 칭호를 내려줍니다. 상은 지방 봉건세력을 중앙 관료로 흡수한다는 뜻의 관직명입니다. 그러나 봉건세력들은 <경>이라는 칭호 앞에 <상>이라는 칭호를 붙여 씀으로서 그들이 관료이지만 독자세력임을 과시합니다. <조선상 역계경>이라는 사료의 호칭은 가장 유명하죠. 조선상 역계경이 왕과의 마찰로 자신의 세력 2000호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 버린 사실은 유명한 사료입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 철기 국가들은 구심점을 잃고, <간>, <가> 등을 칭하면 독자적인 국가를 세웁니다. <간>, <가> 등은 왕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후에 이 명칭은 더 큰 나라에 복속된 소국의 군장세력을 뜻하는 말로 의미가 바뀌게 되죠. 북방의 이러한 독자적인 작은 소국들은 개마국, 구다국, 비류국, 옥저국, 동예국 등 수가 엄청 많았는데, 대부분 고구려에게 흡수됩니다. 훗날,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은 이러한 소국들의 간, 가 들을 자국의 세력으로 끌어들어 강대한 국가연합을 이루면서 대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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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의 민족교체론과 민족연결론의 논쟁

1. 청동기 시대의 민족교체론 주장 근거

한국사에서 일단 구석기인들은 현재 우리 민족과 연관성이 없다고 봅니다. 빙하기 대의 이동생활과 이, 모발 등의 형태로 보아 민족일 가능성은 희박하죠. 또, 당시 한반도와 일본이 분리되지 않은 사실도 민족이 아니라는 신빙성을 더해줍니다.

민족교체론은 신석기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신석기인들은 북방계통의 시베리아에서 새로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들을 모체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지요. 이들은 시베리아 지역의 신석기 문화를 이룩하고 내려온 고아시아족이라고 보통 보며,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한 민족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어 청동기 때 내려온 민무늬 토기인들입니다. 민무늬 토기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며, 반달돌칼 등 새로운 도구가 한반도에서 출토됩니다. <민족교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들 청동기인들이 이전의 신석기인들과 다른 민족적 구성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즉, 신석기인들과 청동기인들은 일단 <거주 장소와 생계수단>이 다릅니다. 강가와 구릉지대라는 거주 장소가 다르고, 신석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민족으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즉, 한반도 청동기 문화는 단순히 문화 전파가 아닌 주민들의 이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이들을 다른 민족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죠.

이것은 우리 교과서에서 일부 반영된 논리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빗살무늬토기인은 고아시아족, 민무늬토기인은 예맥족으로 분리해서 봅니다.

2. 청동기 시대의 민족연결론 주장 근거

민족연결론은 민족교체론이 틀렸음을 조목조목 따져서 보여줍니다.

먼저 생계수단의 차이가 주민집단의 차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 생활이 바뀌기 마련이므로, 생계수단이 바뀐 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음을 뜻한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또, 한국의 신석기 문화가 시베리아 고아시아 문화라는 증거도 없고, 그 문화와 뿌리가 같다는 증거도 없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즉, 민족교체론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이들은 빗살무늬인과 민무늬인들은 다른 생업경제를 꾸려갔을 뿐, 결과적으로 같은 계통의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빗살무늬인들이 민무늬 토기로 점진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며, 신석기인중에 민무늬 토기를 받아들여 청동기 문화를 흡수한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점도 강조됩니다.

이 논쟁은 아직, 한반도에 충분한 유적이 발굴되지 못하여 소모적인 논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3. 실제 민족이 형성된 시기는?

위 논쟁에서 한가지 중요한 점은 민족연결론이든, 교체론이든 간에 우리 청동기 문화는 신석기 시기와는 달리 단일 계통의 주민들이 번영시킨 문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독자적인 집단으로 청동기인은 존재하지 않았고, 청동기인들은 다양한 계통에서 유입되었습니다. 청동기의 기원지가 많은 만큼, 아직 우리나라로 유입된 청동기의 정확한 전파지역도 너무나 다양하여 딱 꼬집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청동기 유이민들이 하나의 우리 민족이라고 여기게 된 시기는 세형동검이라는 동류의 문화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라고 보통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공유하던 우리 민족을 기록에서는 <예맥>족이라고 합니다. 중국기록에는 예맥을 <동이족>이라고도 합니다.

동이족은 은주교체기에 한족과 처절한 싸움을 벌이다가 한반도로 많이 유입된 자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합니다. 또, 이동하지 않고 중국대륙에 남아서 한나라 시기까지도 동이족 문화를 중국에 전파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산둥반도의 <무씨사당벽화>에는 단군 신화와 거의 흡사한 내용의 신화가 벽화로 남아있습니다. 백제가 근초고왕기에 중국에 진출하여 요서, 진평 2군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은 이 무씨사당벽화와 연결하면 아주 허구는 아닌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청동기 시대는 민족의 주류가 형성된 시기일 뿐, 민족이라는 자각을 우리 스스로 느끼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삼국통일기에 같은 민족을 통합하였다는 <일통삼한의식>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싹튼 동류의식은 고려시대 <몽골>과의 항쟁에서 민족적 조상은 <단군>이라는 정확한 개념을 도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에서 <민족>이라는 단어 자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실, 민족이라는 용어 자체가 근현대 이후에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조선시대 국난이 있을 때, 실학자들은 단군, 고구려, 발해 등을 같은 부류로 여기고 국가 개념을 확장하였습니다. 이것도 국가 개념의 확장이지 민족 개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뿌리가 같다는 동류의식의 확인이었지요. 신분제 사회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보다 신분이라는 개념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민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일제시기 민족주의 사학자들이었고, 이 개념은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는 개념입니다. 반제국주의 운동, 반봉건주의 운동이라는 개념 속에 민족이라는 개념이 탄생하였고, 이 민족이라는 개념은 신분차별을 초월한 일치된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그 개념은 해방이후에는 남북통일을 위한 <한민족> 개념으로, 독재시설에는 경제 개발을 위해 뭉친 <민족 전사>의 개념으로 사용되어 지금까지 내려왔죠. 반공헌장을 외운 세대와, 국민교육헌장을 외운 세대, 서태지 노래를 듣던 세대, 월드컵을 보면서 길거리에서 민족의식을 공유하는 세대는 다르지만, 민족개념은 아직까지도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 파티는 민족개념에 대한 파트가 아니라, 민족교체론 논쟁 파트이므로 여기까지만 정리할께요. 민족개념에 대한 정리는 근현대사 할 때 자세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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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의 사용과 사회의 변화상을 알아보자.

1. 청동기 시대의 특징

청동기 시대는 금속을 도구로 사용한 최초의 시기입니다. 금속을 사용하면서 달라진 점은 이 당시가 잉여생산이 일어난 시기라는 점입니다. 즉,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잉여생산이 발생하였고, 남는 생산력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는 계급을 발생시켰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생산에서 제외된 이들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통한 정복사업에 들어갔고, 정복사업은 결국 지배층(군장, 족장층)과 피지배층(노예, 노비)계급의 분화를 촉진시키게됩니다.

우리는 보통 계층, 계급, 신분 등의 용어를 역사속에서 혼돈해서 씁니다. 청동기 시대는 계급사회입니다. 계급사회란, 생산수단을 가진 지배집단과 그렇지 못한 피지배집단을 나누는 용어로 마르크스 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계층이란 베버가 사용한 용어인데, 자신의 특정한 기준에 맞추어 다양한 집단을 임의적으로 나눌 때 쓰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보통 역사에서 계급을 나눌 때, 귀족, 평민, 노비 등을 일반적인 계층으로 나누기 때문에 그냥 지배계층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신분은 그 사회에서 그 계층이 갖는 지위를 뜻합니다. 신분은 노력으로 얻는 성취지위보다는 일반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얻는 귀속지위인 경우가 많습니다.

청동기 사회에서는 청동이라는 금속을 가지고 전쟁에 승리하여 노비를 획득하거나, 잉여생산을 많이 확보한 자가 지배계급(지배계층)이 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청동기는 기원전 3700년경에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견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0세기 경 정도를 청동기라고 봅니다.

문제는 청동이라는 금속은 아연,구리,주석 등을 합금해야 했고,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청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지배집단위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즉 전쟁과 제사 정도에만 청동이 사용되었고 일반민은 나무, 간석기 등으로 농사를 지었죠. 청동기 시대 가장 유명한 농기구인 반달돌칼도 석기입니다.

당시 농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고랑, 이랑을 파서 농사를 짓는 방법이 있었다는 것만 봐도 밭의 지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또 탄화미의 발견으로 이 당시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도 있구요. 이러한 농법의 발달 속에서 사회분화와 진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2. 우리나라의 청동기

우리나라의 청동기는 시베리아 계통의 북방계 청동기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이 시베리아 계통의 청동기는 중국계 청동기도, 몽골계 청동기도 아닙니다. 유럽과 유라시아, 시베리아를 걸쳐 북쪽에서 청동기가 전파되었음이 유물로서 확인됩니다. 이러한 한국 청동기 문화의 특징은 민무늬 토기 문화와 함께 전파되었고, 또 고인돌(지석묘)가 많이 분포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강화도, 전라도 고창 등등에 분포하는 남방식 고인돌은 전 세계 고인돌의 60%에 육박할 정도로 많이 분포한답니다.

청동기의 사용은 곧 계급사회와 국가의 출현(고조선)을 예고합니다. 보통 교과서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기를 고대로 봅니다. 율령반포, 불교수용 등을 그 근거로 하죠. 그러나 최근에는 고조선 시대를 원시시대가 끝난 고대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등을 통한 정복전쟁이 활발하였고, 천신에 대한 제사 등을 지냈다는 점에서 불교문화에 버금가는 문화가 있었으며, 삼국시대에 떨어지지 않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수립되었기 때문이죠.

어느 설이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꼭 유럽식 기준으로 고대를 바라보아서 삼국시대가 고대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대구분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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