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악양루기(岳陽樓記) - 범중엄(范仲淹)

악양루기(岳陽樓記) - 범중엄(范仲淹)

 송(宋)나라 인종(仁宗) 경력(慶曆) 4년 봄, 등자경( 子京)이 유배되어 파릉군(巴陵郡)의 태수가 되었다. 이듬해가 되자, 정치가 잘 행해져 인심이 화합하고, 그 전의 온갖 그릇된 일들이 모두 새로 잘 되었다.

 그러자, 그는 악양루(岳陽樓)를 중수하였는데, 옛규모를 더욱 늘리고 당대(唐代)의 뛰어난 문인들과 오늘날 사람들의 시(詩)와 부(賦)도 그 위에 새겨 넣었으며, 나에게는 문장을 써서 그 일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보기엔 파릉의 뛰어난 경치중 오로지 동정호(洞庭湖) 하나이다. 동정호는 먼 산을 머금고, 장강(長江)의 흐름을 삼키고 있는 듯 물결이 널리 넘실거리고 있으며, 그 너비는 남북으로 가로질러 끝이 없으며, 아침 햇살이 비칠 때나 어스름 저녁이 되면 기상(氣象)이 천태만상으로 변화한다. 이것이 바로 악양루에서 본 위대한 풍광으로써, 옛 사람들이 모두 상세히 기술하였다. 그런데 북쪽으로는 무협(巫峽)에까지 통해 있고 남쪽으로는 소수(瀟水)와 상수(湘水)에까지 이르고 있어 예부터 유배된 사람들이나 시름에 젖은 시인(詩人)들이 이곳에 많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경물(景物)을 보는 감정은 각기 다르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만약 장마비가 계속 내여 몇 달이고 개지 않으면 음산한 바람이 성난 듯 불어와 흙탕물진 파도가 하늘에 치솟아 해와 별이 빛을 감추고, 여러산들이 모습을 숨기며, 장사꾼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어지고, 배의 돛대가 기울어져 노가 부러지며, 이둘 녘 날이 컴컴하면 호랑이 울고 원숭이 울부짖는다.

 이 누각에 오르게 된다면, 멀리 서울[國都]을 떠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일고, 무고(誣告)를 당할까 모략(謀略)에 걸릴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듯한 정이 일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쓸쓸하게 느껴질 터이니 감정이 격동하여 슬퍼질 것이다.

 봄 기운이 온화하고 경치가 청명하며, 파도가 잔잔할 때면, 하늘과 물이 모두 하늘빛으로 온통 푸르게 널리 펼쳐지게 된다. 물가에 갈매기때 날아들고 아름다운 비단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며, 언덕 위에 궁궁이 풀, 물가에는 난초가 푸릇푸릇 향기로우며, 때로는 긴 안개가 하늘 가득히 퍼지고, 하얀 달빛이 천리 멀리까지 비쳐 달빛 받은 물결이 금빛으로 일렁거리고, 고요한 달그림자는 마치 구슬이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그 속에 어부들의 노랫소리 오가니, 그 즐기는 마음에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이 누각에 오르면 마음이 넓어지고 정신이 편안해져서, 영광스런일, 욕된 일을 모두 잊고 술잔을 들고서 바람을 쐬게 될 것이니, 그 기쁨은 크고 또 클 것이다.

 아아! 나는 일찍부터 옛 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았는데, 아마도 앞서 든 두 가지 예와는 다른 듯 하니 무엇 때문일까? 그들은 외부의 사물을 보고 기뻐하지는 않으며, 또 자신의 개인적인 일로 슬퍼하진 않기 때문이다.

 조정의 높은 직위에 있으면 백성들을 걱정하고, 물러나서 멀리 강호(江湖)에 거처하게 되면 임금을 걱정했다. 그러니 조정에 나아가서도 걱정, 물러나서도 걱정이었으니 어느 때에나 즐거울 수 있었겠는가? 틀림없이 하는 말들은 "천하의 근심은 누구보다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한 뒤에 즐긴다." 라는 것일 것이다. 아아! 그와 같은 어진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누구를 본받고 의지하며 살아 갈 것인가!

이 글에 대한 참조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2. 이 글을 운영자 허락없이 불펌할 경우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원저작자 로고>가 펌글에 자동 삽입됩니다.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