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고려사절요에서 평가한 고려시대 각 왕에 대한 인물 표현(태조 ~ 공양왕 정리)

이 글은 고려사절요에서 국왕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하여 운영자가 재편집한 글입니다. 고려사절요가 <신진사대부>의 입장에서 고려 건국을 정당화하면서 만들어진 만큼, 조선 초기의 고려 인식이 눈에 확 띕니다. 태조는 <도량이 깊다>라는 표현부터 우왕을 신돈의 씨앗인 <신우>라고 표현한 부분, 공민왕이 갈수록 음란해졌다 등등의 표현이 눈에 들어오네요. 이 글은 예약포스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태조 신성대왕

휘(諱)는 건(建)이며, 자(子)는 약천(若天)이요, 성은 왕씨(王氏)이다. 한주(漢州) 송악군(松嶽郡) 사람으로 금성태수(金城太守) 융(隆)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당(唐) 나라 희종(僖宗) 건부(乾符) 4년, 신라 헌강왕(憲康王) 3년 정유(877) 정월 14일 병술에 태조를 송악 남쪽 사제(私第)에서 낳으니, 신비한 광채와 자줏빛 기운이 종일토록 방 안에 비치고 뜰에 가득히 서리고 둘러 있었는데 형상이 마치 교룡(蛟龍)과 같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용모는 용안(龍顔)과 일각(日角)이며 턱이 풍만하고 이마가 넓었다. 기우(氣宇)와 도량이 크고 깊었으며, 목소리가 우렁차고 컸으며, 너그럽고 후하여 세상을 구제할 도량이 있었다. 왕위에 있은 지는 26년이고, 수(壽)는 67세였다.

혜종 의공대왕

휘(諱)는 무(武)요, 자(字)는 승건(承乾)이니, 태조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이며, 후량(後梁) 건화(乾化) 2년 임신(912)에 태어났다. 오씨가 일찍이 용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얼마 안 가서 태조가 나주(羅州)를 지키러 나갔을 때 오씨를 보고 사랑하여 드디어 아기를 배게 되었다. 나서 성장하자, 도량이 넓고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서 태조를 따라 후백제를 정벌하는 데 공이 있었다. 왕위에 있은 지는 2년이요, 수(壽)는 34세였다.

정종 문명대왕

휘(諱)는 요(堯)요, 자(字)는 의천(義天)이니, 태조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신명왕후(神明王后) 유씨(劉氏)이며, 태조 6년 계미(923)에 태어났다. 천성이 불교를 좋아하고 두려움이 많았으며 도참(圖讖)을 믿었다. 왕위에 있은 지는 4년이요, 수(壽)는 27세였다.

광종 경성대왕

휘는 소(昭)요, 자는 일화(日華)이니, 정종의 동모제(同母弟)로 태조 8년 을유(925)에 태어났다. 신하에게 예를 갖추어 대우하고 송사를 처리하는 데 현명하였으며, 빈민을 구휼하고 유학을 중히 여기며, 밤낮으로 부지런하여 거의 태평의 정치를 이루었는데, 중세 이후로는 참소를 믿어 사람을 많이 죽이고, 불법(佛法)을 지나치게 좋아하며 절도가 없이 사치스러웠다. 왕위에 있은 지는 26년이요, 수(壽)는 51세였다.

경종 헌화대왕

휘(諱)는 주(?)요, 자(字)는 장민(長民)이니, 광종(光宗)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대목황후(大穆皇后) 황보씨(皇甫氏)이며, 광종 6년 을묘(955) 9월 정사일에 났다. 성품이 온량(溫良)하고 인후(仁厚)하며 놀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말년에 와서는 정사를 게을리하여 날마다 오락을 일삼고 음악과 여색에 빠지며 바둑 두기를 좋아하고, 소인을 가까이하고 군자를 멀리하니 이로 말미암아 정치와 교화가 쇠퇴하였다. 왕위에 있은 지는 6년이요, 수(壽)는 27세였다.

성종 문의대왕

휘는 치(治)요, 자는 온고(溫古)이니, 태조의 일곱째 아들인 욱(旭)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선의왕후(宣義王后) 유씨(柳氏)이며, 광종(光宗) 11년 경신(960) 12월 신묘일에 났다. 타고난 자품이 엄정(嚴正)하며 기품이 너그럽고 넓었다. 법과 제도를 제정하고 절의를 숭상촵장려하며, 어진이를 구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정치가 볼 만한 것이 있었다. 왕위에 있은 지는 16년이요, 수(壽)는 38세였다.

목종 선양대왕

 휘(諱)는 송(誦)이고, 자(字)는 효신(孝伸)이며, 경종(景宗)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헌애왕후(獻哀王后) 황보씨(皇甫氏)이다. 경종 5년 경진(980) 5월 임술일에 났다. 성종이 궁중에서 기르다가, 스승에게 나아가 학문을 배우자 내서랑(內書郞) 김승조(金承祚)에게 명하여 시독(侍讀)하게 하였다. 성품이 침착하고 굳세며 어려서는 임금의 도량이 있었으나,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고 술을 즐기며 사냥을 좋아하여 정사에 마음을 두지 않으며, 폐행(嬖倖)을 믿고 친압(親狎)하다가 화를 당하였다. 왕위에 있은 지는 12년이며, 수(壽)는 30세였다.

현종 원문대왕

휘(諱)는 순(詢)이며, 자(字)는 안세(安世)요, 안종(安宗) 욱(郁)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효숙왕후(孝肅王后) 황보씨(皇甫氏)이며, 성종(成宗) 11년 임진년(992) 7월 1일 임진에 났다. 천성이 총명하고 어질었으며, 학문에 통달하고 문필을 잘하였다. 처음에 머리를 깎고 숭교사(崇敎寺)에 우거하였는데 그 절의 중이 일찍이 꿈을 꾸기를, 큰 별이 절 뜰에 떨어져서 용으로 변하였다가 또 사람으로 변하니 곧 왕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왕을 기이하게 여기는 이가 많았다. 신혈사(神穴寺)로 옮겨 거처하였는데, 또 꿈에 닭소리와 다듬잇소리를 듣고 술사(術士)에게 물으니 방언(方言 우리말)으로 해석하기를, “닭의 울음 소리는 '꼬끼오’라는 소리와 비슷하다는 말이요, 다듬잇소리는 어근당(御近當)이니, 이는 즉위할 징조입니다." 하였다. 왕위에 있은 지는 22년이요, 수(壽)는 40세였다.

덕종 경강대왕

휘는 흠(欽)이고 자는 원량(元良)이며, 현종(顯宗)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원성태후(元成太后) 김씨이며, 현종 7년 병진 5월 을사일에 태어났다. 성품이 과단성 있게 결단하여 지조가 있었다. 왕위에 있은 지는 3년이요, 수는 19세였다.

휘는 형(亨)이고 자는 신조(申炤)이니, 덕종의 동모제(同母弟)로 현종 9년 무오 7월 무인일에 태어났다.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너그럽고 마음이 넓으며 영특하고 슬기롭고 과단성이 있었으며, 작은 절개에 구애하지 않았다. 왕위에 있는 지 12년이요, 수는 32세였다.

문종 인효대왕

휘는 휘(徽)요, 자는 촉유(燭幽)다. 그 전의 휘는 서(緖)이다. 현종의 셋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원혜태후(元惠太后) 김씨이니, 현종 10년 기미 12월 계미일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현철하였으며, 자라서는 학문을 좋아하고 활을 잘 쏘았으며 포부가 넓고 원대하였으며, 너그럽고 어질어서 남을 포용하였고 모든 정사를 한번 처결한 것은 기억하여 다시는 잊지 않았다. 왕위에 있은 지는 37년이요, 수는 65세였다

선종 사효대왕

휘(諱)는 운(運)이며, 자(字)는 계천(繼天)인데, 처음에는 휘를 증(蒸) 또는 기(祁)라고 하였다. 순종(順宗)의 동복 동생으로서 문종(文宗) 3년 기축 9월 경자일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성장해서 효도촵공경촵공손촵검소하고 식견과 도량이 넓으며, 경사를 박람하였고 제술을 더욱 잘하였다. 왕위에 11년 동안 있었고 수는 46세였다.

헌종 공상대왕

휘는 욱(昱)이고, 선종의 원자(元子)이다. 생모는 사숙태후(思肅太后) 이씨이며, 선종 원년 갑자 6월 을미일에 출생하였다. 성품이 총명하고 슬기로워서 9세에 서화를 좋아하였으며, 보고 들은 것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왕위에 1년 동안 있었으며 수(壽)는 14세였다.

숙종 명효대왕

휘는 옹(?)이며, 자는 천상(天常)인데, 처음 휘는 희(熙)였다. 선종(宣宗)의 동복 아우로서, 문종(文宗) 8년 갑오 7월 기축일에 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자라서는 효도하고 공경하며,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웅걸스럽고 굳세어 과단성이 있고, 오경촵제자서(諸子書)와 사서를 해박하게 열람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문종이 사랑하여 항상 말하기를, “뒷날에 왕실을 부흥시킬 자는 바로 너다." 하였다. 선종 9년에 대가(大駕)를 호종하여 서경(西京)에 갔는데, 그가 머물던 막차(幕次) 위에 자기(紫氣)가 날아오르니, 망기(望氣)하는 사람이 왕자(王者)의 상서라 하였다. 왕위에 있은 지는 10년이었고, 수(壽)는 52세였다.

예종 문효대왕

휘(諱)는 우(?)요, 자는 세민(世民)이니 숙종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명의태후(明懿太后) 유(柳)씨인데, 문종(文宗) 33년 기미년 정월 정축일에 낳았다. 깊고 침착하여 도량이 있었으며, 평소 유학(儒學)을 좋아하였다. 왕위에 있은 지 17년이며 수(壽)는 45세였다.

인종 공효대왕

휘(諱)는 해(楷)이며, 자는 인표(仁表)이고, 고휘는 구(構)이다. 예종의 장자로 어머니는 순덕왕후(順德王后) 이씨(李氏)이며, 예종 4년 기축 10월 을해일에 태어났다.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너그럽고 자비로웠다. 학문을 좋아하고 재주가 많으며, 스승과 벗을 대할때는 예를 잃지 않았다. 재위 24년이며, 수는 38세였다.

의종 장효대왕

휘(諱)는 현(晛)이며, 자는 일승(日升)이요, 구휘는 철(徹)이니, 인종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공예태후(恭睿太后) 임(任)씨인데, 인종 5년 정미 4월 경오일에 출생하였다. 성질이 놀이와 잔치를 좋아하였고, 여러 소인들과 친압하여 마침내 화란을 당하였다. 24년간 왕위에 있었고, 수는 47세이었다.

명종 광효대왕

휘는 호(晧), 자는 지단(之旦), 구휘(舊諱)는 흔(昕)이니, 의종(毅宗)의 동복 아우이다. 인종(仁宗) 9년인 신해년 10월 경진일에 출생하였다. 성질이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문학(文學)을 좋아하였다. 처음에 익양후(翼陽侯)로 봉해졌더니, 정중부(鄭仲夫)가 의종을 폐위하고 그를 맞아들여 왕으로 세웠다. 마음이 부드럽고 약하여 결단성이 없으므로, 정권이 아랫사람 손에 있었다.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폐위되었다. 재위 27년이고 수명은 72세였다.

신종 정효대왕

휘(諱)는 탁(晫)이니, 그전 휘는 민(旼)이요, 자(字)는 지화(至華)이다. 명종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인종 22년 갑자 7월 경신일에 태어났다. 장성하여 평량공(平?公)으로 책봉되었는데, 최충헌이 명종을 폐하고 그를 맞아 왕으로 세웠다. 왕위에 있은 지는 7년이요, 수(壽)는 61세였다.

희종 성효대왕

휘(諱)는 영(?)이요, 자(字)는 불피(不陂)이다. 전 휘는 덕(悳)이며, 신종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정선태후(靖宣太后) 김씨이다. 명종 11년 신축 5월 계미일에 태어났다. 신종 3년에 태자로 책봉되고, 7년 정월에 유명(遺命)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후에 최충헌에게 폐위 되었다. 왕위에 있은 지 7년이요, 수(壽)는 57세였다.

강종 원효대왕

휘(諱)는 오(?)요, 자(字)는 대화(大華)이며, 또 자를 법주(法柱)라고 하였다. 명종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광정태후(光靖太后) 김씨(金氏)이다. 의종 6년 임신 4월 을사일에 태어났다. 최충헌이 명종을 폐위하고 태자를 강화(江華)로 내쫓았는데 희종이 불러 돌아오게 하여 한남공(漢南公)으로 책봉하였다. 충헌이 희종을 폐위하고 왕을 받들어 즉위하게 하였다. 왕위에 있은 지는 2년이요, 수(壽)는 62세였다.

고종 안효대왕

휘는 철(?)이요, 자는 대명(大明)이며, 또 자를 천우(天祐)라고도 하였다. 그전 휘는 진(瞋)인데 또 질(?)로 고쳤다. 강종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원덕태후(元德太后) 유씨(柳氏)이다. 명종 22년 임자 정월 임술일에 태어났다. 강종 2년 8월에 유조(遺詔)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원(元) 나라에서 충헌왕(忠憲王)이라 추시(追諡)하였다. 재위 44년이요, 수는 68세이었다.

원종 순효대왕

휘는 식(植)이요, 자는 일신(日新)이며, 그 전의 휘는 전(?)이니, 고종의 장자이고, 어머니는 안혜태후(安惠太后) 유씨(柳氏)이다. 고종 6년 기묘 3월 을유일에 나서 장성하자 태자로 봉하였다. 46년에 몽고에 들어가 조회하고 다음 해에 환국하여 즉위하였다. 뒤에 원나라에서 충경왕(忠敬王)이라 시호하였다. 재위 15년이요, 수(壽)는 56세였다.

충렬왕

휘는 거(?)요, 처음 휘는 심(諶)이다. 원종의 장자이며 어머니는 순경태후(順敬太后) 김씨(金氏)인데, 고종 23년 2월 계축일에 탄생하였다. 천성이 관후하여 희노를 나타내지 않았으며, 어렸을 때에 오로지 학문에 뜻을 두고 글을 읽어 대의(大義)를 알았다. 그러나 연락에 빠지고 여러 소인들을 친근히 하였으며, 부자간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재위 34 년이요, 수는 73세였다.

충선왕

휘(諱)는 장(璋)이고, 자(字)는 중앙(仲?)이며, 고휘는 원(?)이고, 몽고의 휘는 익지례보화(益智禮普化)이다. 충렬왕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이다. 충렬왕 원년인 을해년 9월 정유일에 출생하였다. 성품이 총명하고 굳세며 결단력이 있었다. 이로운 것을 일으키고 폐단을 제가하여 시정에 그런대로 볼 만한 것이 있었으나 부자 사이는 실로 부끄러원 일이 많았다. 오랫동안 상국에 있었는데, 스스로 귀양가는 욕을 당하였다. 왕위에 있은 지 5년이며, 수는 51세였다.

충숙왕

휘(諱)는 도(燾)요, 어릴 때 이름은 의효(宜孝)이며, 몽고식 휘는 아라눌특실리(阿刺訥?失里)이다. 충선왕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몽고 여자인 야속진(也速眞)으로 의비(懿妃)로 추증(追贈)하였다. 충렬왕 20년 갑오 7월 을묘일에 출생하였다. 성질이 엄격하며 굳세고, 침착하며 무게가 있고, 총명하고 고결하였다. 제술(製述)을 잘하였으며, 예서(隷書)를 잘 썼다. 재위가 전후 25년이고 수(壽)는 46세였다.

충혜왕

휘(諱)는 정(禎)이요, 몽고식 이름은 보탑실리(普塔失里)이다. 충숙왕(忠肅王)의 큰아들이며, 어머니는 명덕태후(明德太后) 홍씨(洪氏)이다. 충숙왕 2년 정월 을묘일에 출생하였다. 성품이 호협하여 말타고 활쏘는 것을 좋아하였고, 재리(財利)에 밝으며 황음무도(荒淫無度)하여, 여러 소인들이 뜻을 얻고, 충직한 신하들은 배척을 당하였다. 바른말만 하면 반드시 베어 죽이므로 사람들이 처벌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과감하게 말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재위연수는 전후 6년이고, 수(壽)는 30이다.

충목왕

휘(諱)는 흔(昕)이며, 몽고명[蒙古諱]은 팔사마타아지(八思麻朶兒只)이다. 충혜왕의 장자이며, 어머니는 덕녕공주(德寧公主)이다. 충숙왕 6년 정축 4월 을유일에 출생하였다. 천성이 총명하였다. 재위 4년, 수(壽)는 12세였다.

충정왕

휘(諱)는 저(?)요, 몽고 휘는 미사감타아지(迷思監朶兒只)이다. 충혜왕(忠惠王)의 서자이니, 어머니는 희비(禧妃) 윤씨(尹氏)이다. 충숙왕(忠肅王) 7년 무인에 출생하였다. 재위 3년, 수는 15세였다.

공민왕

휘(諱)는 전(?)이요, 옛 휘는 기(祺)이고, 몽고 휘는 백안첩목아(伯顔帖木兒)이다. 충혜왕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충숙왕 17년 경오 5월에 출생하였다. 성품이 엄격촵중후하고 또한 자애로우며 어질어 여러 백성의 인심을 많이 얻었으나, 만년에 이르러서는 시기심이 많고 음란하여 화를 당하는 데에 이르렀다. 재위 24년, 수(壽)는 45세였다.

신우

어렸을 때의 이름은 모니노(牟尼奴)인데, 신돈(辛旽)의 비첩(婢妾) 반야(般若) 소생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반야가 낳은 아이는 죽고 다른 아이를 훔쳐다 길렀는데, 공민왕이 자기 아들이라고 일컬었다."고 하였다. 왕이 훙(薨)하니 이인임(李仁任)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는데, 공양왕(恭讓王)이 즉위하자 그를 죽였다. 참람하게 왕위를 차지한 기간이 14년이다.

공양왕

휘(諱)는 요(瑤)이며 신종(神宗)의 7대손이다. 일찍이 정창부원군(定昌府院君)에 책봉되었는데, 기사년 11월에 우리 태조가 심덕부촵정몽주 등과 계책을 세워 왕으로 세웠다. 재위 4년이다. 임신년 7월에 왕위를 사양하고 원주(原州)에 있었는데 간성군 공양군(杆城郡恭讓君)으로 강봉되었다가 후에 왕으로 추봉되었다.

- 고려사절요, 각 권에서 국왕에 관련된 서지문만 발췌하여 편집함 -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