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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의 한국통사 <결론 부분 전문>

발췌부분  : 박은식 선생님의 한국통사 중 결론 부분 전문

발췌자 : http://historia.tistory.com/(히스토리아)

자료 원문 서적 : 한국통사(박은식 저, 김승일 옮김, 범우사, 2000)

1. 운영자의 해석

한국통사는 백암 박은식 선생님이 상하이에서 망명하던 시절에 쓰신 책입니다. 이 때 박은식 선생님은 스스로 나라를 잃은 미친 노예(태백광노)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쓰셨습니다. 한국통사는 서언, 1편(대강편), 2편과 3편(1-51장, 1-61장), 결론, 후서, 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개할 부분은 유명한 <국백, 국혼>에 대한 말이 나오는 결론 부분입니다. 박은식 선생님의 역사관이 집약된 부분이라 이 부분을 오늘 포스팅 하려 합니다.

2. 한국 통사의 결론 부분 <전문>

옛날에 대씨가 지배했던 발해는 그 영토가 5천리나 되고 약 300년간의 영화를 누렸다. 그들은 무공이 뛰어났던 데다 문물이 번창하였기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멸망한 다음에는 발해의 역사라는 것이 명확히 후세에 전해지지 않고 있으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일찍이 용천이라는 곳에 와서 그들의 고적들을 답사하며 보았더니 잡초만이 우거져 있어 씁쓸하기 짝이 없으니 힘차게 흘러가는 강물소리처럼 무예가 드높고 문장이 세상천지에 알려졌던 그 찬란한 위업들이 이제는 모두가 바람에 날려 버린 듯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발해가 문장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졌을 때는 발해의 문인학사들이 당나라에 가서 과거에 급제한 자들이 많은데 어찌 문헌상에 간략하게나마 남아있지 않으며, 또한 그들의 왕자와 왕족 그리고 그들 유민들이 요나라의 노예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무기를 들고 고려로 들어온 자들이 만여 명이나 됐는데도 그들의 기록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들 민족이 마한 동족이고 그들의 영토가 고구려의 옛 영토이기 때문에 고려인이 볼 때는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방문하여 이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옛사람들이 발해사를 편수하지 않았던 것은 이를 고려로 알고 정리하지 않았던 것이니 이를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인류가 이 지구의 땅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야만스럽고 무지함을 벗어나기 위해 국가제도를 정하고 도덕윤리와 정치, 교육, 법제 등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역사인 것이다. 역사가 있다는 것은 국혼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아시아 최대의 또는 가장 오래된 나라들을 예로 하여 이를 말하자면, 중국의 혼은 문학에 있고, 돌궐의 혼은 종교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시대에 따라 흉노, 강족, 금원, 몽고족 등에 의해 침략을 받아 지배당하기도 하였으나 5천년에 이르는 문학의 연원이 단절되지 않았던 까닭은 타민족에 동화되지 않았던 것이고, 오히려 타민족이 중국에 동화되게 되었고, 돌궐은 국세가 미약하여 강토도 점점 축소되어 감으로써 오래도록 열강들의 제재를 받아야 했지만 1억이나 되는 교도들의 세력이 언제나 강성했기 때문에 그들은 곧 국권을 회복하고 했으니 이는 바로 국혼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비, 거란, 몽고는 모름지기 한때는 극성하여 많은 지역을 정복함으로서 천하에 그들의 무공을 빛내기도 했으나 일순간에 그들의 국명이 다하고 말았으니 이들 나라는 백이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국교, 국학, 국어, 국문, 국사는 혼에 속하고, 전곡, 졸승, 성지, 함선, 기계는 백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혼이 있는 자는 백에 따라서 죽고 살지 않으므로 나라에서 국사를 가르체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게 된다. 오호라 지금의 한국은 이미 백은 죽었다고 할 수 있으나 소위 혼이라는 것이 남아 있는가, 아니면 이미 없어져 버렸는가?

나는 단군이 개국한지 4100년(1863년) 만에 황해도 해변가에서 태어났으므로 점점 더 국권이 실추되어 가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국민적 책임을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늙어 백발이 된 지금 국가가 존망에 처하게 되어 이제는 조상에 제사조차 지낼 수가 없게 되었으니 큰 죄를 지은 내가 어찌 편안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루는 애양이라는 곳에서 우리 동포를 찾아 묵게 되었는데, 다음날 그 집 주인이 나에게 말하기를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지금 여기에 있는 자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써야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우리 선조님들이 묵묵히 소자에게 명을 내리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이 문치를 시작한 이래 500년 동안 많은 문사들을 배양했고 그로 인해 베풀어진 은덕 또한 깊고 넓기만 하니 글을 아는 문재들도 각 시대마다 그득하다 아니할 수 없다. 나는 그들만큼의 큰 그릇이 아니니 어찌 내가 그런 계통을 이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계통을 이을 사람이 나타나기를 오래도록 기다렸으나 이미 수년동안 그러한 글을 썼다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다. 세월이 이미 이처럼 흘러 나도 나이가 적지 않게 되었고, 나의 맡은 바 직분도 또한 그만두게 되었으니, 4천년 문명부국이 발해국의 흥망사와는 다르므로 비록 천하 사람들이 내가 비록 부족하다고 질책하더라도 나는 이제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4천년 전체의 역사는 쓰는 일은 보다 유능한 자가 나타나서 해야 할 일이고, 이는 세월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보며 또한 반드시 그런 인물이 나타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목격했던 근대사는 쓸 수가 있을 것 같으므로 갑자는(1864)에서부터 신해년(1911)까지의 역사를 총 3편 100여장으로 나누어 서술하여 이를 통사라고 하였지만 감히 정사라고는 할 수 없다. 이제 이 글을 통해 우리 동포들이 다행히 국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바라며, 절대로 이를 저 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전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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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역사로서 우리의 혼을 일깨우려는 마음... 박은식 선생님의 역사 사랑이 마음에 팍팍 와 닿는 글입니다. 이런 분들의 후손들이 잘사는 세상이 진정 아름다운 세상 아닐까요? 친일파 재산 환수도 안되는 나라, 애국자들의 후손들을 냉대하여 이후 전쟁에 총들고 나갈 사람들이 없는 나라... 어떤 나라로 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로서 좋은 것인지 박은식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해봅니다.

박은식 선생님의 손자인 박유철 선생님이 지금 독립기념관의 관정으로 계신다고 합니다. 애국자들이 잘사는 나라,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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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운영자의 글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 사료인 <한국통사>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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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곤 2007.05.21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백은 사라질 수 있어도 국혼은 절대 사라질 수 없다.
    가슴에 남는 명언입니다.

  • 꼭두각시 2011.09.16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은 죽어도 혼이 남아 있으면 살릴 수 있으나 ...혼이 죽으면 무엇으로 살려야 하는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친일의 문제는 지금에 명확히 해주지 않으면 두고두고...애국자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입니다......애국자가 잘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