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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토막 역사 12화. 넥타이와 라-마르세예즈의 유래 등 3가지 일화

1. 넥타이의 유래

넥타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언제일까요?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넥타이는 기원전 고대 로마 병사들이 처음 착용하였다고 합니다. 로마 병사들은 포갈이라는 목도리를 착용하면서 제복다운 멋을 내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목도리와 넥타이의 중간쯤 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진정한 넥타이로는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넥타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태양왕 루이 14세가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이루었을 때입니다. 하이힐에 대한 고사 아시나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때 너무 멋있게 짓던 나머지 화장실을 짓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르사유 궁전에는 더러운 오물들이 많았고, 그 오물을 피하기 위해 뒷굽이 높은 구두를 만들어 신었는데, 그것이 오늘 날 하이힐의 기원이 되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넥타이도 그 베르사유 궁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날 크로아티아 병사들이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파리에서 개선식을 할 때 루이 14세가 그 병사들을 보았습니다. 그 병사들은 루이 14세를 위해 활약한 외인부대(용병)이었습니다. 루이 14세가 자세히 보니, 그 용병부대는 자신들의 신원을 서로 알아보기 위해 앞가슴에 크라바트(크로아트아 용병입니다라는 뜻)라는 천을 매고 있었습니다. 루이 14세가 보기에 멋있었지요. 루이왕과 귀족들은 너도나도 그 크라바트라는 천을 목에 매고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넥타이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와 귀족들이 죽은 시점에서 넥타이는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넥타이가 다시 나타난 것은 19세기 프랑스 제 2공화정 이후였는데, 이 넥타이가 영국 등 유럽에서 유행하면서 그 형태가 차츰 오늘날의 넥타이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이 목에 매는 크라바트를 영국식 용어로 넥-타이(목에 매는 끈)으로 바꾸어 불렀고, 지금은 모두가 넥타이라고 부릅니다.

2. 프랑스의 국가인 라 - 마르세예즈의 유래

프랑스의 국가는 라 마르세예즈입니다. 이 말의 뜻은 <마르셰이유의 노래>란 뜻이지요. 그럼 이 국가의 유래를 한번 볼까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자 프랑스 왕과 친인척이었던 유럽의 각국왕들은 프랑스 왕가를 도우러고 서로 안절부절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모국이었고, 프로이센은 프랑스 왕가의 친척국가였죠. 프랑스 입법의회의 국민들은 프랑스 왕가를 돕는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유럽과의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북프랑스의 루제 드 리르라는 젊은 군인 장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를 위해 의용병과 같이 전쟁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곳의 시장인 디트리크는 루제 드 리르에게 의용병을 위한 군가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였고, 그는 하룻밤만에 급한 마음으로 노래를 한 곡 만들었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라인군의 군가>라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막상 의용군이 출발하려고 하자 의용군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의용군들은 <라인군의 군가>를 부르며 용감하게 출정하였는데, 이 노래가 많은 의용군들에 의해 전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파리 베르사유 궁전으로 올라온 마르세이유 의용군들이 이 노래를 파리에서 부르며 행진을 하였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이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마르세이유의 군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국가를 <마르세이유의 근가>라는 뜻인 <라-마르세예즈>라고 부른 것입니다.

3. 간디는 몸으로 실천하는 실천가였음을 보여주는 일화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치아 보호와 비만 극복을 위해 아들이 사탕을 먹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그 여자는 먼 거리를 걸어와 성인인 간디를 만나 아들에게 사탕을 먹지 말 것을 권유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인도에서 누구나 존경하는 간디의 말이면, 아들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군요. 한 달 뒤에 다시 오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 어머니는 간디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소홀히 대한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성인이 말이니 어쩔 수 없이 한 달 뒤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때의 간디는 어머니가 데려온 아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아이의 손을 잡고 아주 공손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야, 사탕을 먹으면 치아가 상한단다. 사탕은 몸에 좋지 않아. 내가 너를 위해 신의 축복을 내려주마.>

그 아이의 어머니는 너무 의아했습니다. 한달 전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간디가 지금은 너무 공손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너무 감사하면서도 이상해서 간디에게 왜 한 달 전에는 지금과 다른 태도였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한 달 전에는 나도 사탕을 먹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때 내가 해줄 말은 없었으니까요. 이제 저는 제가 아이에게 맹세한 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위대한 성인은 말 뿐만이 아니라 조그만 것 하나까지도 실천으로 보여준다는 일화같아서 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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