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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이야기 23장) 일본의 개항 과정과 미일수호통상조약의 내용

오늘 이야기할 부분은 일본사에서 우리가 가장 관심있는 부분 중의 하나인 일본의 개항과정입니다. 일본 근대사의 핵심인 메이지 유신을 다루기 위해 그 배경을 살펴보는 시간이죠... 그럼 시작해 볼까요?

1. 다양한 서양선박들이 나타나다...

일본의 근대화기인 19세기 전반에 수많은 서양의 배들이 일본에게 장사를 요구합니다. 이 때 서양 선박들은 일본만 간 것은 아니였죠. 세도정치기인 조선과 기울고 있던 대륙의 청나라에도 서양배들은 끊임없이 장사를 요구하는 시기였거든요. 당시 인도라던가, 동남아시아 등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들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압력을 받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서양이 아시아에 통상(장사) 요구를 하게 된 것은, 서양의 산업혁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유럽의 산업혁명은 사람의 노동 대신, 기계를 이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엄청난 생산량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산업혁명의 출발지인 영국은 <양모산업>이 발달한 나라였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진행된 인클로저 운동 기억하시나요? 인클로저(En_closer)란, 말 그대로 양을 기르기 위해 안에다가(in), 울타리를 치는(close) 사업이었죠. 원래 인클로저는 17세기쯤에 시작되었는데, 19세기 인클로저는 양 뿐만 아니라 각종 공장 기계 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토지에 소유권을 주장하고, 원주민과 농업 노동자들을 추방하는 형태로 까지 전개됩니다.

결국, 산업혁명을 통해 공장에서 찍어낸 가장 큰 수출품이 바로 면직물로 대표되는 <옷>이었죠. 그러나, 각종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서양은 자체 수요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원료은 옷감을 가져올 식민지가 필요했고, 더불어 제품을 팔아먹을 시장도 필요하게 되었죠. 19세기 유럽의 각 국가들은 산업혁명의 단계에 따라 시차를 두고 아시아에 각각 진출하게 됩니다.

조선과 에도막부에 가장 먼저 접근한 세력은 에제 에카테리나 2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러시아였습니다. 지리적으로 러시아가 가장 가까운 국가였으니까요. 그러나, 러시아는 영국보다 훨씬 산업혁명 단계가 늦었던 관계로, 동북아시아에서 제대로 된 무역을 하지 못한 채 영토 확장만 추구하였습니다. 특히, 유럽에 피바람을 불러온 나폴레옹 전쟁 때, 대륙봉쇄령을 어기면서까지 전쟁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에 일본에 진출하지 못하였죠.

실제로 일본에 통상을 요구한 국가는 오랫동안 일본과 교류하던 네덜란드였습니다. 이미 일본은 네덜란드의 <난학>을 받아들이는 등 네덜란드와는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죠. 여기에 도전장을 낸 국가가 산업혁명의 선두주자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은 에도막부에게 상업협정을 맺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세계와의 교류를 단절해 온 에도막부는 밀려오는 외국 선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하였습니다. 기껏 처리한다고 내놓은 법이 <무휼령>이란 법이었죠.

무휼령이란, 외국세력이 어떤 의도이고, 어느 정도 힘인지 모르기 때문에, 외국 선박이 오면 조용히 사바사바~(?)해서 돌려보낸다는 정책입니다. 외국에게 납작 업드려 배에 연료도 넣어주고, 물도 주고, 먹을 것도 준 다음에 바아바이~~ 환영해주고 보내는 정책이죠.

그러나, 이 무휼령이 영국에게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먹을 것 얻으러 먼 아시아까지 온 것이 아니였거든요. 그들이 원한 건 <통상조약>이었습니다. 특히, 영국 페리 대령의 페튼호는 강경하였습니다. 영국 선박은 라이벌인 프랑스가 일본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네덜란드인을 인질로 잡기 까지 하면서 일본을 압박하였습니다.

결국 일본은 <무휼령>을 버리고, 서양 선박을 직접 공격하는 방법을 택하게 됩니다. 이것을 강압적이고 폭압적인 외세는 힘으로 제압하다고 하여 <타불령>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첫 진출한 영국을 몰아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중국 청과의 아편전쟁을 통해 대륙부터 장악하느라 더 이상 일본에 신경쓰지 못하였거든요.

영국이 대륙에 신경쓰는 동안, 일본에 진출한 국가는 태평양을 건너 온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이제 막 산업혁명을 진행하고 있던 국가였죠. 일본은 그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 중 하나인 미국에게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였습니다. 에도 막부는 2-3차례 미국과의 통상요구를 거부하다가 결국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맺고, 세계사의 일원으로 편입됩니다.

2.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의 내용들....

이제 일본은 미국이란 나라와 조약(수교)을 맺습니다. 아시아의 근대화에서 각국이 서양과 맺은 조약들은 공통적인 속성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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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를 주장한 서양의 국가가 원한 것은 무역을 위한 <항구개항>입니다. 항구를 개항해서 자신들의 물품을 아시아에 팔고, 필요한 원료를 자국에 가져가려는 것이죠. 그리고, 개항한 항구를 지키기 위해 항구 근처에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원활한 장사를 위해 각종 법과 관세률을 적용하는 것이죠.

수교를 허락한 아시아 국가는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평등한 관계에서 서양식 근대화 체계를 갖추는 것을 원하지만 실제 그렇게 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서양 세력이 1차적으로 원한 것은 산업혁명으로 마련된 잉여자본을 투자할 대상국을 찾는 것이었으니까요.

일본의 첫 수교 역시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1854년 미국과 최초로 맺은 조약은 <미일화친조약>의 핵심 내용은 <항구개항>입니다. 일본은 에도 막부 내내 네덜란드만을 무역 대상국으로 지정했습니다. 나가사키 항구 1군데에서만 무역을 해왔죠. 나가사키는 일본 서북쪽 끝으로 일본 수도와는 동떨어진 곳이어진 항구도시였습니다.

미국은 조약을 맺으면서 <하코다테와 시모다> 2개의 항구 개항을 요구합니다. 일본이 항구를 개항하면서 미국의 물품이 일본에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1858년 추가 조약(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국가에 강요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을 조약에 추가시켰습니다. 그 내용은, 치외법권(영사재판권), 관세권, 최혜국 대우 등이 포함된 불평등 조약이었죠. 한국사할 때, 하나 하나를 자세히 다루었지만, 다시 한 번 이 내용들을 이야기해 볼께요.

치외법권은 불평등 조약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무역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지요. 만약 미국인이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일본은 그 외국인을 재판할 수 없습니다. 그 죄가 살인이라고 해도 말이죠. 미국인은 미국에 송환되어 재판을 받게 됩니다. 치외법권은 한 국가의 자주성마저 침해하는 조항입니다.

관세권은 무역에 대한 일방적인 독점 조약입니다. 미국이 일본에 물품을 판매한다고 했을 때, 일본은 미국물건에 대해서 자유롭게 관세(세금)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세금 장벽이 낮아질수록 미국은 자유롭게 물품을 팔 수 있고, 일본으로서는 외국 물품을 막을 수 없을뿐더러 국가 재정에도 타격을 입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최혜국 대우는 조약 당사자인 <미국>이 일본에서 누릴 수 있는 대우를 다른 국가 이상으로 설정한다는 내용입니다. 만약 영국이나 프랑스가 더 좋은 조건에서 일본과 통상 조약을 맺는 다면, 미국은 그들 국가만큼의 대우를 자동으로 받는 다는 내용이죠. 따라서 다른 국가와의 불평등한 조약 내용이 이전에 맺은 미국과의 조약에도 영향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훗날 일본이 조선과 <강화도 조약> 및 다른 각종 조약을 맺을 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고스란히 써 먹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근현대사에서 아시아 국가가 서양과 조약을 맺을 때, 첫 조약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면, 언급한 <최혜국 대우>라는 것을 모든 서양국가가 요구하기 때문에 하나의 국가와 맺은 조약의 내용은 다른 국가들과 조약을 맺을 때 거의 자동으로 포함되기 때문이죠. 영국, 네덜란드, 러시아 등 서양의 국가들은 일본과 조약을 맺으면서 미국과 맺은 조약의 내용 거의 전부를 똑같이 요구하고, 몇 가지를 더 추가 요구하게 됩니다.

당시, 서양 제국주의 세력들은 서로 간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논리로 <균점의 논리>라는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균점의 원리란, 영국보다 늦게 식민지 시장에 뛰어든 미국이 주장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강한 나라들은 거대한 식민지 시장이 눈앞에 있을 경우에 서로 전쟁을 통해 영역을 넓히는 것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각종 조약을 균등하게 맺음으로서 시장을 나눠먹는다는 원리입니다.

이 균점의 원리는 아직 어떤 나라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중국, 조선, 일본 등 동북 아시아에서 적용되었습니다. 서양 각국은 이곳에서 철도든 항만이든, 광산이든 하나의 권리라도 더 갖기 위해 하나라도 더 많은 조약을 청, 조선, 에도막부와 체결하려고 난리였죠.

결국 일본은 미국부터 시작해 서양 각국과 조약을 맺는 동안 서양 각국이 원하는 항구를 모두 개방하게 됩니다. 이 때 서양과 무역을 하기 위해 개방한 대표적인 무역항은 <요코하마>였습니다. 미국과의 무역 중심지였죠. 그러나 미국과 무역에서 5개 항구를 개항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일본 대부분의 항구들이 개방됩니다.

자, 그럼 개항이 일본 에도막부와 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또 어떤 현상이 일어났기에 <메이지 유신>이라는 거대한 개혁이 시작되었을까요? 다음 장에서는 통상 조약 이후에 벌어진 에도 막부 타도 운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죠.... 막부 타도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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