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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그리스인 이야기 9 - 펠레폰네소스 전쟁과 그리스의 분열

펠레폰네소스 전쟁과 그리스의 분열

1.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배경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의 가장 강력한 폴리스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그리스 사회가 나뉘어 치루어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배경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 <델로스 동맹>으로 그리스의 경제적을 장악하고, 민주주의를 완성한 아테네가 이제 서부 지중해로까지 진출하면서 서부에 있던 주변국들을 위협했기 때문이죠. 특히, 코린트, 메가라같은 중소국가들은 아테네의 이러한 국가확장이, 폴리스의 기본원칙인 분립주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폴리스의 각 국가들은 하나의 그리스 민족이면서도, 각국은 독자적인 독립국가로 존중받는다는 <전체와 분립>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테네는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에게해의 패권을 차지한 아테네가 코린트를 위협하면서 서부 지중해로 진출하자, 서부 지중해 국가들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펠레폰네소스 동맹>을 맺고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에게 집단적으로 저항을 합니다. 아테네는 서부 지중해 국가들의 동맹을 보고는 30년 평화 조약을 맺어 서남부 지중해 국가들과 평화를 유지합니다.

문제는 아주 작은 국가인 코르키라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코린트시의 식민도시인 코르키라가 코린트와 갈등이 있자, 아테네와 동맹을 맺고 펠레폰네소스 동맹을 배신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대규모 전쟁의 시작이었죠.

2.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그 결과

여기서는 전쟁의 과정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생략합니다. 그 얘기 다하면 그리스 신화나 트로이 전쟁처럼 끝도 없을테니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원래 전쟁은 국력과 재정이 강한 아테네가 이겨야 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신의 저주>라고 불릴 정도의 강력한 페스트가 전염병으로 돌아 아테네는 일단 <나키아스의 평화>라는 조약을 맺고 전쟁을 중단합니다. 이후 아테네의 유능한 지도자 알키비아데스가 시칠리아로 원정을 떠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했지만, 전염병 이후 아테네의 내분은 심해져서 이 지도자는 전쟁을 해보기도 전에 추방당합니다.

반면, 스파르타는 강력한 국가인 아테네와 직접 전쟁을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많다고 생각하여, 페르시아와 조약을 맺습니다. 그 조약 내용은 소아시아의 식민도시들을 페르시아에 넘겨주는 대가로 페르시아가 그리스 본토에서 스파르타를 돕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걸로 볼 때, 그리스 국가들의 분열이 얼마나 심했으며, 외세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그리스 사회가 점차 초기의 강건함을 잃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겠네요.

전쟁 중에 아테네에서는 전쟁을 이끈 유능한 10인 장군들이 전시에 죽은 익사자들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처리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테네 민중들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채, 시민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지 못한 장군 6명을 집단 처형해서 죽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전쟁중이라는 상황파악을 못한 것이지요. 결국 장군들은 처형당했고, 아테네의 함대는 그 해상전투의 우월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전에서조차 농업국가인 스파르타군에게 일방적으로 격파당합니다. 이것이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결말이지요.

전쟁의 결과 아테네는 모든 그동안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델로스 동맹을 해체하며, 스파르타에 복종한다는 맹세를 하면서 겨우 독립만을 허용받았습니다. 이제 아테네 민주주의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며, 아테네는 어리석은 민중들이 다스렸던 <중우정치>의 국가라고 폴리스들에게 손가락질 받게됩니다. 아테네는 30명의 참주가 다스리는 참주정으로 국가를 이끌어 나가다가, 다시 민주정치로 복귀하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힘이 없었습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가장 큰 영향은 그리스가 완전 분열되면서 분립주의가 심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폴리스는 하나의 전제 단위라는 공통의식이 사라지면서, 각국을 적으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특히, 전쟁에 이긴 스파르타는 펠로펜네소스 동맹을 이용하여 더 강압적이고, 더 군사적으로 주변국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델로스 동맹의 이권도 스파르타가 모두 탈취하면서 주변국들은 스파르타에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하죠. 더욱이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에게 내준 소아시아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하였지만, 페르시아에게 패하고 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테네는 다시 힘을 키우게 되고, 또 아테네와 우호적이었던 테베를 중심으로 반 스파르타 진영이 형성되어 이제 그리스는 3국 중심의 상호 대립과 분쟁이 계속됩니다. 멸망이 다가온 것이죠.

3. 그리스의 쇠퇴 - 예견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리스가 쇠퇴한 이유를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립이라는 시각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가 쇠퇴할 수밖에 없던 근본적인 경제적 이유는 또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식민활동 중단>이라는 측면입니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전성기를 구가한 3-4c는 엄청난 식민지 정복 시기였습니다. 소아시아에 진출하여, 식민도시를 만들고, 수많은 노예들을 데려와 일을 시키고, 심지어 페르시아와 전쟁까지 하면서 식민지 확대라는 사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5c에 넘어오면서 식민지 정복사업은 거의 끝이 났습니다. 이것은 폴리스 사회를 지탱하던 경제적 끈이 끊어짐을 의미합니다. 일을 시킬 노예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고, 식민지에 가서 일한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었으며, 빈민들이 늘어났습니다. 식민지 전쟁이 사라지자 전쟁을 통해 땅을 확보한다는 <클레로스> 제도가 유명무실해졌고, 이제 군대도 <달리는 중장보병>이 아니라 <직업군인>이라는 용병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내부적 모순만 커진 폴리스들은 이제 같은 폴리스끼리 내부적 전쟁을 통해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지요.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습니다. 식민활동이 중단됨으로서,

1. 빈민이 속출하다    2. 군역을 기피하여 용병이 출연하다.   3. 시민공동체가 무너지고 폴리시간 내전이 발생하다.

이러한 폴리스의 위기는 그 위기를 극복할 대안도 마련하기 전에 마케도니아라는 나라에 정복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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