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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시대 이야기 1 - 그리스의 멸망과 헬레니즘

1. 그리스의 멸망과 펠리포 2세

헬레니즘의 시작은 그리스 폴리스의 분열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그리스 이야기 후반부에 이야기했듯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후 그리스 사회는 분열되었고, 그 분열은 곧 그리스의 멸망을 초래합니다. 또, 식민운동의 중단으로 그리스의 주력부대인 달리는 중장보병(팔랑크스)가 사라지고, 용병이 나타나면서 그리스 사회는 너무나 무기력하게 마케도니아에게 멸망하였습니다.

그리스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군주가 바로 펠리포 2세입니다. 예전에 극장에서 <알렉산더>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배작 영화라기 보다는 대작 다큐멘터리 수준이더군요. 영화가 망한 이유가 한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영화라 느끼지 못했으니... 거기보면 펠리포 2세는 상당히 독선적인 폭군으로 나오며, 그 부인을 학대하고, 부하들까지 괴롭히는 약간 사이코(?)로 나옵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기록으로만 보면 그는 독재자적 기질은 있었다고 하네요.

펠리포 2세는 그러나 문화에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정책은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리스 지역을 마케도니아에 효율적으로 흡수하였고, 마케도니아와 폴리스의 씨족 기반을 각각 인정함으로서 균형있는 통일제국을 만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가 폭군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마케도니아 본국의 귀족들을 그리스 귀족과 동일시함으로서 독선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때로는 회유정책으로, 때로는 강압적 진압으로 폴리스들을 규합하였고, 대 제국 건설을 위해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하였으나, 측근들에 의해 암살당하고 맙니다.

펠리포 2세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알렉산더에게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혼자 잘나서 세계정복한 왕은 징기스칸 외에는 없습니다. 다 이전 왕들이 차분히 뭔가 준비해 놓은 것들이 있죠.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제국건설에는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가 있었고, 진흥왕의 삼국통일기반에는 법흥왕의 체제정비가 있었으며, 근초고왕의 동아시아 상권 수립에는 고이왕 대의 율령정비가 뒷받침 됩니다.

알렉산더의 세계제국 기반도 펠리포 2세의 기반을 바탕으로 합니다. 즉, 펠리포 2세는 엄청난 숫자의 상비군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비군은 오합지졸의 군대가 아니라, <항상 준비된 군대 = 상. 비. 군>입니다. 즉, 국왕에게 귀속되어 국왕이 지급하는 재물를 받고, 목숨걸고 싸우는 충성심 강한 군대이지요. 알렉산더의 세계정복에는 선배이자, 친구이자, 동생들인 상비군 대장들이 가장 큰 활약을 합니다.

상비군의 구성은 소농출신들의 보병밀집대(팔랑크스)인데, 이것 역시 펠리포 2세가 무리해서까지 그리스를 통합하여 기반을 만들어놓은 유산이었습니다. 또, 가장 화려한 기병대 역시 대귀족 지주와 왕의 전우들로 구성된 단합된 군대였습니다. 이러한 기반을 가지고 알렉산더는 반항하는 반마케도니아 그리스 세력을 완전 분쇄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지 못한 동방원정을 시작하여, 페르시아와의 대격전을 벌이고 승리합니다. 그는 승승장구하며 동방진출을 하였고, 젊은 나이게 인더스 강 유역까지 점령하였습니다. 페르시아 원정은 복수를 위한 것이었고, 인도진출은 세계정복을 위한 것이었죠. 이 알렉산더의 제국은 약 300년간 이 지역을 경영합니다.

2. 헬레니즘 문화의 성립

동방진출을 통해 거대한 영역을 차지한 제국으로 발전한 알렉산더의 제국은 그리스식의 문화를 동방에 심어놓기 시작합니다. 먼저 그리스식으로 건축된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계 곳곳에 만들어 놓게 되는데, 이 도시의 숫자만 70여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식 건물로 치장한 제국은 전형적인 그리스 문화를 동방 곳곳에 심어놓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 문화가 세계화>된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네요. 즉, 그리스식 건물을 지은 뒤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을 동방으로 이주시켜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였고, 그리스어(아테네 앗티카 벙언)를 공식어로 하여 그리스 문화를 찬란하게 세계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서문화를 융합하기 위하여, 정치체제만큼은 그리스식 민주주의가 아닌 강력한 전제군주제를 실시하였습니다. 동서문화의 융합을 위해서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했거든요. 그리고 이주한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은 오리엔트인과 적극적으로 결혼을 장려하기도 합니다. 즉, 알렉산더가 구상한 통일제국은 폴리스적인 문화를 세계에 심어놓으면서도, 정치만큼은 전제적, 오리엔트적인 신의 대리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초월적 지배자 밑에 존재하는 그리스적 세계국가입니다.

따라서 알렉산더는 원주민들에 대하여 아주 평등한 대우를 보장하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그리스 시민들의 민주정치기반이 <노예노동>을 통하여 생산된 수입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알렉산더 제국 안에서 동방으로 이주한 그리스인들은 가혹한 <노예노동>을 통하여 대규모 농업경영을 하였고, 이것으로 경제력을 마련하여 지배층으로 군림한 것이니까요.

3. 선주민 문화에 대한 가혹한 착취

알렉산더 제국의 탄생으로 동방과 서방의 교역권과 경제권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동서방의 무역을 중계하는 도시로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크, 로도스섬, 델로스섬은 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죠.

그러나 이주민이 늘고, 평화가 시작되자 인구증가로 인하여 식량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리스인들은 상공업과 수공업을 확대하면서 이러한 모든 업종에 선주민을 노예로 활용하는 노예노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농업분야의 노예노동은 인권을 무시한 착취수준이었지요. 도시와 농촌의 중산층은 선주민을 무시하기 시작하였고, 철저한 원주민 탄압책을 통하여 <빈부격차>를 크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알렉산더 시기의 엄청난 경제번영이 착취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서방인>과 <동방인>이 합리적으로 공존하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감을 키웠다는 점입니다. 또, 왕실은 계속된 정복전쟁을 추진하였으므로, <경제번영으로 인한 이득>을 사회에 재투자 하지 못하고, 소모하기만 하였습니다. 만약 이 제국이 계속 같은 상태로 간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4. 알렉산더 사후의 제국

그러나 알렉산더는 세계 정복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가 인도의 간다라 지방을 넘어 중국까지 가지 못하고 죽은 것에 대하여 여러 학설이 분분한데, 대표적인 학설은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는 학설이 요즘 유력한 것 같습니다. 이 알렉산더라는 30도 안된 젊은 세계 제왕이 죽자 제국은 그의 신하이자 친구들인 귀족들에 의해서 산산조각납니다.

그의 친구들은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로 국가를 나눠 각각 통치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알렉산더의 이념과 통치방식을 잘 이해하였기에, 알렉산더의 정책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스식의 도시는 계속 융성하였고, 그리스인들은 계속 이주하였습니다.

이 알렉산더의 제국이 각각 망하는 것은 <로마>가 공화정 시기를 끝내고 제정시기를 맞이하면서입니다. 그 유명한 악티움 해전(옥타비아누스 vs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가 망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이 제국이 해체되어 로마에 통합되는 사건으로 볼 수 있지요. 알렉산더가 남긴 국가들은 점차 정복되어 역사에서 잊혀지게 됩니다.

특히, 알렉산더 각 제국들은 내분도 심하였습니다. 제국 중에서 <시리아>는 과거 페르시아 지방인 관계로 제국에 가장 반항을 많이하였고, 그리스적 요소들을 싫어하였습니다. 또 그리스에서는 아직도 폴리스 상호간에 갈등이 많았으며, 때로는 마케도니아에 반항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그리스는 전체적으로는 알렉산더 제국의 후신인 마케도니아에 예속되어 있었지만, 스파르타 등 강대한 군사국가들은 독립적 지위를 유지하여,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특이한 사실은 이러한 폴리스와 마케도니아의 분열을 이용하여 성장한 섬이 있는데, 이 곳이 마케도니아, 그리스, 시리아의 딱 중간지점에 위치한 <로도스> 섬입니다. 로도스 지방은 당시 폴리스가 아카이아 동맹과 에톨리아 동맹이 상호 대립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양쪽에 무역을 하여 돈을 벌었고, 마케도니아가 폴리스를 장악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을 이용하여 돈을 벌면서,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로도스에 가서 무역에 도전하면 성공한다는 설화가 떠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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