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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11세기 - 13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유럽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항쟁의 역사

11세기 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 운동

이번 장에서는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었던 이베리아 반도를 서유럽 국가가 재탈환하는 시기의 역사를 다뤄볼까 합니다. 이 지역의 역사는 교과서든, 어디든 다 서유럽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슬람 세력을 유럽이 몰아내고, 크리스트교 세계를 복구하였다라는 것이 이 파트의 내용인데, 상당히 불만입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닐텐데요. 하지만, 제 주관을 배제하고 중세 유럽사의 내용에서 이 파트를 다룬 뒤 이슬람사에서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이 파트를 다른 관점으로 다루겠습니다.

1. 이베리아 반도의 상황

11세기 이전까지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국가가 지배하였습니다. 7세기 이후 마호메트의 이슬람 세력이 그 위세를 떨칠 무렵 이슬람은 전 유럽을 이슬람의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이 때 비잔틴 제국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그 영토가 축소되었고, 페리시아는 이슬람에 망했으며, 지중해와 유럽의 대서양은 이슬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슬람 세력은 지중해에는 유럽 배의 판자 조각 하나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호언하면서 모든 영토를 이슬함화 하였습니다. 이때 이베리아 반도도 이슬람에게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이슬람 세력은 더욱 세력을 넓히고자 프랑크 왕국을 침범하고 유럽 내륙으로 세력을 넓히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크 왕국의 궁재 마르텔과 이슬람이 정면으로 충돌한 투르 전투에서 이슬람이 패배함으로서 이슬람이 전 유럽을 지배하려는 꿈은 좌절되었습니다. 이후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는 교황의 힘을 등에 업고 이슬람 정벌을 위해 에스파냐 변경에서 이슬람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카롤루스 대제도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을 몰아내지 못하였고,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스파냐 지방)은 영원히 이슬람의 땅으로 남을 듯 했습니다. 이 때를 배경으로 한 유명한 무훈시가 바로 그 유명한 <롤랑의 노래>입니다. 유럽과 이슬람의 경계는 카롤루스의 정복전쟁 실패 이후 에스파냐 변경주(프랑스와 에스퍄냐의 경계)를 경계로 나뉘었습니다.

이후 이 지역은 후옴미아드 왕조 등 이슬람의 칼리프가 오랜 시간 지배하였습니다. 유럽의 민족은 이슬람에게 도전하기도 하였지만, 당시 후진적이었던 유럽의 힘으로 이슬람을 몰아낸다는 것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는 없는 법... 10세기 이후 유럽의 후옴미아드 왕조와 서아시아의 아바스 왕조 등 이슬람의 강력한 왕조들이 서로 분열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자체 균열이 심해졌습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들은 독립을 시도합니다.

2. 유럽은 이것을 <재정복>이라 부른다.

유럽의 서구적 시각에서는 10세기 이후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는 크리스트교 유럽인들의 움직임을 <재정복>사업이라고 하며 <십자군> 원정의 전초전으로 생각하는 등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11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작은 단위의 크리스트 국가들이 등장합니다. 이 때의 반 이슬람 세력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 위주의 집단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레온, 카스티야 등 작은 소국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에게 위기 의식을 심어줍니다. 또 카롤루스 대제가 과거 이슬람과 싸워서 경계가 된 에스파냐 경계주는 점차 크리스트인의 국가가 생가면서 유럽인들이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이 이슬람과 유럽의 국경 지방에서 나바르, 아라곤 왕국, 바르셀로나 백작령 등의 국가가 형성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크리스트교 국가들은 일제히 힘을 합쳐 이슬람 왕조에 대한 공격을 시도합니다. 이것이 11세기의 <재정복>운동이라 부르는 사건의 시작입니다. 11세기에 작은 소국들은 차츰 카스티야와 아라곤을 위주로 뭉쳐서 주변 소국과 이슬람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12세기에는 카스티야에서 포르투갈이라는 국가가 독립하여 신생독립국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들 카스티야, 아라곤, 포르투갈은 이슬람을 계속 압박하였고, 13세기가 되면 그라나다 지역을 제외한 전 에스파냐 영토가 이들 크리스트교 국가에게 넘어갑니다.

실제 이러한 이슬람에 대한 재정복 운동은 유럽인들에게 이슬람 국가와의 전쟁이 유럽인의 힘으로도 해볼만 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시작합니다. 유럽은 이제 이슬람과 붙어도 승산이 있을 정도로 11세기 이후 발전했습니다.(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당시 유럽이 이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의문였습니다. 유럽인의 자신감은 대단했지만, 이슬람에서는 유럽을 후진지역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죠) 이것이 훗날 십자군 원정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 주게 됩니다. 유럽에서는 이 <재정복>사업을 십자군 원정의 전초전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3. 시칠리아를 탈환하라.

이탈리아의 섬 시칠리아는 9세기 무렵 이슬람이 확장하면서 이슬람의 영토였습니다. 유럽인들은 11세기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크리스트교 확장 등에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기 위한 대대적인 운동을 전개합니다. 12세기 로저 2세는 결국 분열기에 있는 이슬람을 몰아내고 왕국을 성립시켰습니다. 이것은 단지 섬 하나의 탈환이라는 의미보다 더 큰 <지중해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 때 성립한 왕국이 바로 양 시칠라아 왕국(2개의 시칠리아)입니다. 이제 유럽인들은 이슬람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이제는 성지인 예루살렘마저도 탈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젠 이슬람의 팽창기가 아니라 유럽인의 반격 시기를 맞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11-13세기에 이르는 오랜 시간동안 이슬람의 본거지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군 원정의 시작이죠. 그러나, 십자군 원정은 결국 후진지역이었던 서유럽의 완패로 끝나고 맙니다. 유럽은 이제 이슬람 지역에 대한 도전은 완전히 포기하고, 내부 정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15세기 이후에는 이슬람을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거나, 지구 반대편을 통해 동방으로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항로 개척>이죠. 아이러니 하게도, 유럽이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 계기인 신항로 개척은, 당시 동양과 서양의 네트워크 중심이었던 이슬람 세력을 철저히 피해가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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