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의 시대구분논쟁(1)
한국사에서 시대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교과서를 보면 왕조를 기준으로 나누죠? 고대는 통일신라까지, 중세는 고려, 근대는 조선...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교과서의 시대 구분은 절대적이지도 못할뿐더러 많은 비판마저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통일신라같은 통일왕국이 왜 고대가 되야 하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한국사에서 시대구분에 대한 논의를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마르크스 사회경제사학자인 "백남운"이었습니다. 백남운은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30년대 일본의 식민지 사관에 반대하여 우리 민족도 다른 민족과 같은 시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시도된 것이 마르크스적인 시대 구분법이었죠.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대 구분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4.19 혁명 이후입니다. 국민들은 혁명의 열기 속에서 한국사를 정확히 바라보기를 요구했었죠.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구호 속에서 진전되지 못하다가 1990년대 3차 교육과정에서부터 시대구분에 대한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게 되었습니다.
한국사의 시대구분은 보통은 왕조에 의한 시대구분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왕조에 의한 시대구분은 천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전근대적 사관으로, 천명에 의해 역성혁명이 일어나면서 시대가 변한다는 아시아적 구분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순환론적으로 계속 왕조가 바뀌는 외에 뚜렷한 시대적 발전을 제시하지 못하였고, 세계사적 보편성도 없는 시대구분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왕조를 통한 시대구분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도 많습니다. 즉, 왕조교체는 "정권교체, 신분의 변동, 제도의 변화"를 초래하면서 사회발전을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마르크스 주의의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 사회 - 공산주의 사회>라는 도식을 벗어나면서도 "민중, 피지배층"이라는 개념은 중시하는 주장입니다. 즉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면서 이들 양자의 이익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창출한 새로운 질서가 왕조탄생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즉, 왕조탄생은 단순한 역성혁명이 아니라 민중의 노력이 가미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로, 고려의 건국은 신라말 지속적인 농민봉기가 원인이 되었고, 조선의 건국 속에서도 과전법이나 체제 정비에 민의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된 사실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기백은 특정주제에 의한 한국사 시대구분을 제시하였습니다. <한국사실론>이라는 책에서 그는 민족의 흥망성쇠라던가 지배세력이 변화하는 과정으로 시대를 구분하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일제시대 말 신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주장하였던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즉, 고려시대를 나눌 때 호족시대, 문벌시대, 무인시대... 등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것인대요. 문제는 이것이 너무 주관적이고 보편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겠지요.
보통 보편적인 시대구분은 시간의 원근에 따른 시대 구분론입니다. 이것은 서양 근대 지식인들이 그 이전의 시기와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했던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르네상스 시기의 서양인들은 자신들을 고대 로마 문명의 위대함과 종종 비교하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고대인과 자신들중 누가 더 문화적 역량이 큰 가를 가지고 논쟁하기도 하였죠. 이들은 고대 - 중세 - 근대라는 개념을 통해서 중세를 비판하고 고대사회를 찬양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든어진 3분법적인 구분은 서양인들에 의해 보편적인 시대 구분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서양사람들은 이러한 시대구분이 보편적이고 일관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역사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기준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에 따른 구분은 서양에서나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하지 다른 문화권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로 일본의 동경학파는 이러한 3분법(고대-중세-근대)라는 개념이 동양에 맞지 않자 "근세"라는 새로운 개념을 추가하기도 하였죠. 또 2차 대전 후 제 3세계에는 이러한 시대구분법이 전혀 맞지도 않으면서 단지 민족적인 고유 전통으로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3분법적 시대구분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마르크스입니다. 마르크스는 유물사관을 제시하면서 시간의 원근에 따른 시대구분에 각각 사회의 특징을 대입하여 공산주의 사회의 필연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 - 중세 봉건제 사회 - 근대 자본주의 사회 - 공산주의 사회"라는 이러한 도식은 곧 사회구조나 성격이 어떻게 발전하는가에 따른 시대 구분이자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망하여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한다는 새로운 도식을 창출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구분은 각 시기가 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을 하층민의 저항의식으로 생각하여 실천적인 역사의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물사관의 단점은 이것이 서구중심적이라서 다른 사회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예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나라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여 스스로의 모순으로 자본주의가 망할 수 밖에 없었던 나라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미숙했던 "러시아나 동유럽"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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