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영특하고 순수하고 총명하고 예지에 넘치는 자질의 소유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 다시 후천적으로 크고 넓으며 공명정대한 학문을 닦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문사(文詞)로 발현이 될 때 마치 흰 비단 위에 붉은 색칠을 하듯 샘 물줄기가 못에 흘러 들어오듯 본말(本末)이 서로 응하고 화실(華實)이 부합하여 좋은 글을 만들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좋은 글이 되는 것이다. 옛적에 성현(聖賢)들이 모범이 될 만한 의견을 세워 후세에 드리운 것도 모두 이 도(道)에 입각한 것이었다. 이 도를 벗어나 글을 지을 경우에는 비록 이상야릇하게 지어 옛맛이 나게 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화려하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편패(偏?)나 윤통(閏統 비정통)에 비유될 수 있을 뿐 전체(全體)나 정종(正宗)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문(詩文)은 당(唐) 나라 말엽부터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곱게 꾸밀 따름이었으나 시대마다 호걸이 나오면서 흐름을 따라가고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다가 아조(我朝)에 들어와서는 관각(館閣)의 진신 선생(薦紳先生)들이 경(經)의 교훈과 도리를 숭상하고 한유(韓愈)와 소식(蘇軾)의 법도를 취하면서 전형(典刑)이 갖추어졌고, 근대에 이르러 여러 거공(鉅公)들이 진부한 언어를 추방하려 노력하고 옛날을 거울삼아 문사(文辭)를 닦으면서 《춘추좌전(春秋左傳)》촵《국어(國語)》, 사마천(司馬遷), 반고(班固)의 궤적(軌迹)을 좇은 결과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경을 근본으로 삼을 경우에는 고리타분하여 통속적이기 쉽고 문사만 치달리는 경우에는 뭐든지 끌어와 배우와 비슷하게 되고 마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하나로 합쳐 융화시키는 동시에 뛰어넘어 울연(蔚然)히 한 시대의 종장(宗匠)이 되고 옛날에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놓은 자를 찾는다면 오직 우리 계곡 장 상국만이 있을 뿐이다. 공은 천부적으로 자품(資稟)이 이미 특이한 데다가 후천적으로 알맞게 양육된 결과 정신은 맑고 기운은 완전했으며 그 덕(德)이 행동과 부합되었다. 그리하여 이른 나이에 벌써 영명(英名)을 떨쳤었고 험난한 역경을 겪기도 하였으나 만년(?年)에 이르러서는 다시 훈신(勳臣)으로서 임금과 뜻이 잘 맞아 국가의 정책에 직접 참여하곤 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공이 평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것은 오로지 문학(文學)에의 일념뿐이었다. 그의 학문을 보건대 경서(經書)에 정통했음은 물론 제자(諸子)와 사서(史書)에 두루 통했으며 위와 아래를 모두 꿰뚫고 정화(精華)를 한 몸에 거두어 모으고 있었다. 이렇듯 온축(蘊畜)된 것이 많았건마는 생각은 법도를 뛰어넘지 않고 기운은 조화를 잃지 않았으며 한번 내놓게 되면 휘두르는 대로 문장이 이루어지면서 어느 모로 살펴보아도 근원과 맞닿곤 하였는데, 그 이치는 공맹(孔孟)에 입각한 것이었고 그 소재는 진한(秦漢)의 것이었으며 모범으로 삼은 것은 한유, 구양수 등 대가(大家)의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소부(騷賦) 시율(詩律)에 이르기까지 옛사람의 심오한 것을 각각 끌어 모으면서도 세속에서 한 가지만 좋아하거나 혹은 음식을 있는 대로 죽 늘어놓은 것과 같은 병통이 전혀 없이 순수하게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전개하였으니, 아, 공이야말로 이 문예(文藝)에 있어서 더할 수 없는 훌륭함과 아름다움을 소유하게 되어 아무런 유감이 없게 되었다고 말할 만하다. 공의 문집으로는 16책(冊)이 남아 있다. 이는 일찍이 공이 직접 산정(刪定)했던 것인데 강도(江都)가 불타는 바람에 열에 한둘은 없어지고 말았다. 이 흩어진 원고들을 윤자(胤子) 선징(善?)이 수습하고 추가로 보충해서 완질(完秩)을 만든 다음 광산(光山)에서 현재 판각(版刻) 중인데 목사(牧使) 이군각(李君恪)이 실제로 그 일을 돕고 있다. 이 문집의 간행이야말로 어찌 사문(斯文)의 큰 행운이 아니겠는가. 선징이 내가 같은 문형(文衡) 출신이라는 이유로 변변치 않은 서문을 나에게 부탁해 왔다. 아, 공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고, 그 포부와 이룩한 업적은 이 문집 속에 다 갈무리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닌데, 또 어찌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분수에 넘치는 나의 말을 기다려서 이 문집을 중하게 하겠단 말인가. 이에 단지 옛날에 공에게서 들은 것을 가지고 제공(諸公)이 서술한 말미에 소개함으로써 후학들이 공을 사모하는 데에 하나의 보탬이 되게끔 하려 한다. 계미년 3월에 가의대부(嘉義大夫) 예조참판 겸 수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성균관사 동지경연춘추관사(禮曹參判兼守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成均館事同知經筵春秋館事) 이식(李植)은 삼가 서(序)한다. - 계곡선생집 서, 이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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