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후 장면 국무총리의 시정연설문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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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혁명으로써 이루어진 새 헌법하의 초대 국무총리직에 불초 이 사람이 취임하게 되어 오늘 국무위원들과 함께 인사의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무쌍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앞으로 중첩한 난관을 돌파하여 혁명정신을 구현하고 당면한 민족적 과제인 경제적 건설을 수행하여야 할 중대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 마지않는 바이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국정을 쇄신하고 새로운 건설의 목적을 달성시킬 과제는 그 내용에 있어서 광범위하기 그지없고 어떤 부면에 있어서는 비상한 난관을 극복하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니만큼 짧은 기간 안에 소기의 성과를 완전히 거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본인과 각료 일동은 굳은 결의로써 모든 과업을 과감하고도 확실하게 추진하여 국민의 혁신요청과 의원 동지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성심성의 노력하고자 하는 바이다. 시정의 목표는 물론 민주당의 정강, 정책과 선거공약을 충실하게 실현함에 있으며 그 상세한 것은 앞으로 명년도 예산안을 여러분 앞에 제안할 때에 진술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바이지마는 특히 당면한 긴급과제에 관하여 몇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9월에 국제연합총회가 개최되겠으므로 정부는 유능한 대표단을 파견하여 한국통일안과 한국의 국제연합 가입에 관하여 국제여론을 환기하겠으며 통일안에 있어서는 구정권의 태도와는 달리 국제연합 자유국가들의 노선과 일치하도록 국제연합의 감시하에 남북을 통한 자유선거에 의하여 통일을 달성한다는 주장을 강조하고자하는 바이다. 한,일 양국간의 외교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양국간의 회담을 재개할 것과 재일교포의 경제적 지원 및 교육에 관한 지도 등을 적극화 할것과 교포의 자본을 국내에 도입하는 길을 열도록 하는 것이 급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제4대 국회에서 심의 미료된 경찰법안 지방자치법 개정법률안 등의 조속한 통과로 정치적 혁신의 일보전진을 도모하여야 하겠으며 인사행정의 공정화와 관기의 확립 및 직무능률의 향상 등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자 하며 3부 고급 공무원의 재산등록법안도 기초에 착수하였다. 셋째로, 부정선거의 원흉들과 발포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공소가 제기되어 있으므로 사법부에서 법과 혁명정신에 의하여 엄정한 판결이 내릴것으로 믿고 있거니와 발포자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그 색출과 처단에 노력할 것이다. 구정권하에서 부정불법축재한 자를 처단할 것은 물론이나 산업과 경제를 마비시키는 아니하는 적절한 한도는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며 그 부정불법축재를 국고에 회수하고 국민의 혁명 욕구를 충족시키며 민족정기를 바로잡도록 하겠다. 과도정부는 조세범 처벌법에 의하여 처벌될 46사 23명을 적발 수사하다가 신정부로 넘겼으므로 이 수사를 계속하고 단기간 내에 완료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추가해서 적발할 것과 또는 다른 법률에 저축되는 자에 대한 적발도 할 생각이다. 다만 그 증거를 포착하기 곤란한만큼 국민 제위의 협력이 있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새로운 부패와 부정을 봉쇄하기 위하여 특혜금융을 지양하고 탈세를 봉쇄하며 관제 행정을 쇄신하는 동시에 외환율의 현실화 조치를 실시하고자 한다. 넷째로, 경제건설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경제안정의 테두리 안에서 장기개발계획의 실현을 위한 투융자의 확대, 세제의 개혁 특히 토지수득세의 금납제와 농민부담의 경감 등을 실천에 옮겨야 하겠다. 다가오는 추수기에 대비하여 미곡담보융자를 확대하여 융자기준을 인상함으로써 농산물 가격을 보장하도록 할 것이며 이미 현년도 예산에 책정되어있는 공공사업비 중 보류되어 있는 금액을 적시 방출함으로써 노임의 살포를 도모코자 한다. 다섯째로, 원조자금에 의하여 계획되어 있는 제사업 중 아직 현안으로 되어 있는 충주비료공장 문제, 대한조선공사, 송전과 배전개선사업 및 2백여건의 중기업체 건설계획 등을 한,미 쌍방의 협조로써 신속히 해결하고자 하며 미국회계연도(1961년 즉 금년 7월 1일로 개시되어 명년 6월 말에 종료하는 회계연도)에서 지출될 경제원조에 관하여 목하 예비 교섭을 추진중에 있는 바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의 원조를 획득하기 위하여 특히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여섯째로, 경제건설과 균형상 국방비의 과중한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점차적 감군을 주장하여온 민주당의 정책을 실현하고자 국제연합군 사령부와 협의하여 신년도부터 약간 감군할 것을 계획 중에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계획도 이미 수립된 바 있음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국군의 군기를 확립하며 일부에 있었던 부패를 숙청하는 동시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고 군내 파벌의 조성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며, 따라서 금후 인사행정에 신중과 공정을 기하고자 한다. 일곱째로, 가을철의 전염병 만연에 대하여 방역을 강화하며 태풍피해에 대한 구호책도 강구하려한다. 여덟째로, 전몰장병과 군경유가족 및 광복선열가족에 대한 연금의 조속한 지급과 연차적인 증액을 명년도 예산에 반영시킬 방침이며 4월 혁명 희생자에 대한 원호사업도 고려중에 있다. 이상으로 당면한 긴급 과제 몇가지에 관하여 간단히 언급하였습니다만 앞서 말씀한 것과 같이 여타의 여러 가지 부문에 대한 방침 또는 좀더 장기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예산안을 제출할 기회에 더욱 상세하게 말씀드릴 예정으로 있다는 것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라는 바이다. 예산안에 관해서는 첫째로 사라호 태풍피해에 관한 특별원조 기타 수개 항목을 포함하는 현년도 추가경정예산안과 4294년도 신예산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하겠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정부수립이 지난 23일이었으므로 9월 1일 정기국회일까지에는 근근 일주일밖에 없는 형편이므로 도저히 정기국회 초에 예산안을 제출하기 어렵다는 만부득이한 사정을 의원동지 여러분께서 양해주시기를 바라며 정부는 주야 노력하여 늦더라도 9월 말일 까지에는 예산안을 여러분 앞에 제안하여 심의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도 아울러 말씀드리면서 여러분께서 널리 양해해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정부는 자기자신이 국민의 다대한 기대와 세계우방의 주시리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면서 신헌법하의 초대내각으로서 담임해야할 모든 의무를 성의를 다하고 노력을 다하여 수행할 굳은 결심을 가지고 모든 혁신 사업에 매진하고자 하오니 의원 동지 여러분 께서는 대국적 견지에서 지도와 편달을 아끼지 말아주시기를 간망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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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4.19혁명후 한국의 현대사는 민주주의(民主主意)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박 정희(朴 正熙) 소장(少將)이 주도한 5.16 군사 쿠데타를 당하고 말았다. 4.19혁명 이후,장 면(張 勉) 내각정부(內閣政府)가 수립됐지만 오히려 구파(舊派)와 신파(新派)간의 갈등으로 인해 오히려 4.19혁명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총리(總理)인 장 면은 강력한 리더를 보여주지 못했고,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그는 천주교 성당(天主敎 聖堂)으로 몸을 피하는 우스운 꼴을 당하고 말았다.
한국 최초로 내각정부를 구성했던 장 면 내각정부는 군사 쿠데타로 인해 현대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장 면내각을 단숨에 무너뜨린 박 정희 소장은 2년 6개월간의 군정기간(軍政期間)을 거친 다음 1963년 12월 17일,대통령에 당선돼 제 3공화국을 출범 시켰으며,군부세력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의 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집권의 길을 여는데 성공 하였다. 박 정희는 1971년의 대선에서 김 대중(金 大中)씨의 위협(?)을 느끼며 간신히 90여만표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이듬해인 1972년 10월 17일,유신(維新-일본의 明治維新을 본 뜻음)을 선포, 독재자의 길로 들어섰다. 대표적으로 그는 인민혁명당(人民革命黨-인혁당) 사건을 조작,이와 관련된 인사들을 모조리 사형 시키고 말았다.
박 정희가 독재자로 군림하며 철권통치를 행하고 1호~9호까지의 긴급조치를 잇달아 발표하자 전국에서는 데모가 일어났고 1979년에 이러한 사회혼란은 극에 달하였다. 신민당 총재이던 김 영삼씨를 국회에서 제명 시키자 경남의 부산과 마산에서는 이에 반발해 박 정희의 유신정권에 맞서기 시작했다(부마사태). 여기에서 박 정희를 경호하던 차 지철(車 智澈)은 탱크로 데모하는 놈들을 깔아 뭉개야 된다면서 초강경 자세를 취하였고 이에 격분한 중앙정보부장 김 재규(中央情報部長 金 載圭)는 술자리에서 권총을 꺼내들어 차 지철을 먼저 죽이고 뒤이어 박 정희의 머리에 총을 발사 하였다. 이리해서 18년간에 걸친 박 정희의 장기집권은 그 종말을 맞고 말았다. 비록 박 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독재의 길을 걸었으나 경제적으로는 한국을 가난에서 구해낸 인물 이었다. 이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박 정희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하루 아침에 그의 최측근에게 시해 당하자 한국의 정치는 마치 안개속을 걷는듯 암담 하였다. 이러한 때에 당시 보안사령관 전 두환(保安司令官 全 斗煥) 소장은 합동수사본부장(合同搜事本部長-일명 합수부)을 맡아 10.26사태의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정 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 사령관(鄭 昇和 陸軍參謀總長 兼 戒嚴司令官)이 10.26사태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간파,이를 빌미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 승화씨를 제거하고 전 두환 그와 신군부(新軍府)의 똘마니들은 그들을 지지하는 황 영시, 차 규헌등과 공모(共謀),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은채 불법으로 계엄사령관을 연행 하는데 성공 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장 태완씨와 특전사령관(特戰司令官) 정 병주씨,그리고 이 건영 3군 사령관(大將)을 제거하는데
성공 하였다. 이리해서 12.12사태를 성공시킨 신군부 세력들은 이후 한국정치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 12.12사태는 재판을 통해 불법적인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으로 낙인이 찍힌지 오래 되었다. 그러면 군사반란의 수괴(首怪)인 전 두환을 처형 시켜야 하지 않는가. 지금 전 두환이는 무슨 똥 배짱인지,강원도 산골의 백담사(白潭寺)에서 고생을 했으면서도 정신 못차리고 나라에 낼 돈도 내지않고 저렇게 배짱을 부리고 있다. 작년인가...어느 공중파 TV에서 전 두환의 해괴망측한 방송을 내보낸 적이 있었다. 그가 탄 승용차가 거리를 질주하면 그 옆과 뒤에서 이를 호위해 주었고,전 두환이가 도착하기 몇시간 전부터는 경찰들이 투입돼 붉은색 양탄자를 깔아놓고 전 두환이가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무슨 조폭 두목에게 인사하듯,90도로 깎듯이 인사 하는걸 보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리고 전 두환이는 1980년 5월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을 한국최강의 부대인 공수부대를 투입시켜 무슨 개 잡듯이 시민들을 총과 대검으로 쏴대고 죽였다. 이른바 제5공화국은 피의 공화국 이다. 국민들의 피를 빨아먹은,마귀같은 공화국인 것이다. 이런글을 5공화국에 시절에 인터넷에 올렸다면 나는 당장 보안사(保安司)로 끌려가 반병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 두환이는 북한이 금강산댐을
세워 서울을 수공(水攻) 한다는 말을 방송을 통해 퍼뜨렸고 평화의 댐을 건설해 북한의 수공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하면서 국민들을 상대로 성금을 걷었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 2학년 이었다. 나는 성금으로 500원을 낸 기억이 난다(내 돈 500원 돌리도...!!! 땅 파봐,500원이 나오나..).
한마디로 전 두환이는 그 당시 복잡한 정치상황을 이용해 애꿎은 북한을 끌어들여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다. 그것도 대형사기를....(장 영자가 울고 가겠네..) 그리고 전 두환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노 태우(盧 泰愚)는 12.12사태 당시,전방의 9사단장 이었는데 그는 공을 세우고 싶어 전방의 예비병력을 빼내 쿠데타에 가담 하였다. 이때 당시의 북한이 남침 했더라면 서을은 아마 함락 당했을 것이다. 일국(一國)의 국군을 자신의 사병(私兵)인양,빼낸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고 5년간 나라를 통치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희한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거의 민주화를 이루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인(政治人)들의 일하는 작태를 보니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는 아직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마디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것이 다름아닌 정치라고. 참으로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우리는 남북으로 분단돼 있는 상태에 있다. 2백여개가 넘는 이 지구상의 수 많은 나라중에 딱 한 나라,한국만이 분단을 겪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전쟁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휴전(休戰)이 돼 있는 준 전시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한국은 비약적으로 발전 하였다. 이런것을 보면,한민족은 진정 영리하고 성실한 민족 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하루빨리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어서 한국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강국(强國)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올린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