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성씨들
이 자료는 운영자가 작성한 글이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출처를 가지고 있는 글입니다. 번역/내용추가 · 편집 : JinGoon™(진기범),2006 원문사이트 : 일본성씨연구가 모리오카 히로시(森岡 浩)님의 사이트에서 발췌. (http://home.r01.itscom.net/morioka/myoji/shurui.html) 참고 : 묘지야[苗字屋] (http://www14.jp-net.ne.jp/03/0003/myoujiya.html) 본 문 일본어나 문화등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시다거나, 혹은 역사에 관해서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현재 일본에 존재하고 있는 약 17만여개의 성씨 중 대부분은 메이지이신(明治維新:1868)때 새 호적정리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겁니다. 예를 들어서 타나카(田中)나 사와치카(澤近)같은 성씨의 경우에는 밭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마을에 사는(田中) 사람이라거나, 연못이나 소(沼) 근처에 사는(澤近) 사람이라거나, 이런 사는 곳의 특징에 따라서 만들어졌다고 하죠. 물론 이런 이야기가 다 거짓은 아닙니다만, 사토(佐藤)나 타카하시(高橋)등의 성씨같이 인터넷에서 유래를 찾아봐야 알 수 있는 큰 집안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 이제부터 일본의 성씨, 그러니까 묘지(苗字)의 구성에 대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 이러저러한 성씨들(일본 성씨 중 연원이 불분명한 경우 포함) 말씀드렸듯이 일본에는 현재 약 17여만개의 성씨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집계가 나온다면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만, 현재 대부분의 경우엔 17만개 정도로 축약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에서처럼 메이지시대때 갑자기 생겨난 집안도 많이 있습니다만, 황족이나 귀족에서 갈라져 나온 집안들도 많죠. 우리나라나 중국의 고대 역사에서, 중국의 경우나 우리나라나 상당히 많은 성씨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한자의 발상지였던 만큼 수많은 성씨가 존재했다는 것을 여러 역사서를 통해 알 수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삼국시대나 고려의 역사서를 보았을 때 다양한 종류의 성씨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역시 평민의 성씨 사용을 금지한 에도시대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많은 성씨가 분포했습니다. 이러저러한 성씨로 묶고 있는 분류 중에서도 특히 헤이안시대 후기(1000-1192)부터 무로마치시대(1392-1573)에 걸쳐 상당히 많은 성씨가 폭발적으로 생성되었는데, 이것은 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성씨의 사용에 일정한 제한이 없었기 때문으로, 당시 사용되고 있었던 성씨의 수에는 계속 만들어내는 한, 한정이 없을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평민의 성씨를 제외하고도 크게 몇 가지로 묶어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간략하게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사성(賜姓) : 임금의 친척이나 공신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성씨를 받은 경우.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예전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천황가문에는 성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만세일계萬世一系라고도 하죠.) 따라서, 황족 중에서 천황가에서 나와 일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천황의 허락을 얻어 분가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나모토(源)씨, 그러니까 겐지(源氏)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황족에서 나온 집안만이 아닙니다.원류를 살펴보자면, 중국과도 연결되는데요. 중국의 남북조시대때 북위(北魏)의 독발파강(禿髮破羌)이 태무제(太武帝)에게서 원(源)이라는 성씨를 받은 것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황족과는 관련도 없는 중국의 원(源)씨가 무슨 상관이냐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대치시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원씨를 사성받았던 독발파강의 가계와 북위 황실의 가계는 같은 집안이었습니다. 북위의 황실이 원(元)씨로 개성하기 전까지 사용했던 탁발(拓髮)씨와 독발파강의 독발씨는 중국어로 발음은 같지만 한자만 틀리게 했던 것으로, 독발씨가 탁발씨의 분파 정도가 되었던 셈입니다. 이런 원인으로, 북위의 태무제가 가문을 원(元)씨로 개성하면서, 그 일족이었던 독발씨에게 이번에도 발음은 같고 한자만 틀린 원(源)씨를 내림으로서 자신의 가문의 일파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역사, 중국의 경사에 상당히 밝았던 52대 사가천황(嵯峨天皇/786.9.7~842.7.15- 재위기간은 809.4.1 - 823.4.16)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미나모토(源)씨의 성을 제수함으로서 천황가의 일족으로 영예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고 전해집니다. 재미있는 사실이지만, 미나모토의 성씨를 받은 사가천황의 자녀들,그러니까 사가겐지(嵯峨源氏)들의 시조들의 이름이 다 중국풍의 외자라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자녀가 너무 많았던 사가천황이 친왕이나 내친왕으로 있으면서 황위를 바라지 않는 자녀의 경우, 스스로 신적(臣籍)으로 내려와서 일가를 이루게 하여, 신적으로 내려간 가문은 그 가문 나름대로 번창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물론 설득력있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재정의 빈약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적으로 강등된 친왕들도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서는 강제적인 측면도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어쨌든 겐지의 출발점인 사가겐지를 시작으로, 이후 수많은 황족들이 신적으로 내려가면서 자신의 직계 조상이 되는 천황의 시호나 칭호를 따서 겐지가문을 세웠습니다. 몬토쿠겐지(文德源氏), 닌묘겐지(仁明源氏), 우다겐지(宇多源氏), 세이와겐지(淸和源氏), 요제이겐지(陽成源氏), 다이고겐지(醍醐源氏), 무라카미겐지(村上源氏), 카잔겐지(花山源氏), 고시라카와겐지(後白河源氏), 고사가겐지(後嵯峨源氏), 오기마치겐지(正親町源氏), 코코겐지(光孝源氏), 산죠겐지(三條源氏), 고산죠겐지(後三條源氏), 쥰토쿠겐지(順德源氏), 고후카쿠사겐지(後深草源氏)가 그 일파입니다. 이렇게 다수의 파로 갈려져서 분포하기 시작한 겐지 일족은 정삼위의 고위 귀족이란 의미의 아손(朝臣)이란 칭호를 받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카바네(姓)가 아손이었던 셈이죠. 한편, 또다른 가문의 대표격인 타이라(平)씨는 50대 칸무천황의 손자인 타카무네오(高棟王)에게 제수된 칸무헤이지 타카무네류(桓武平氏高棟流)와, 역시 칸무천황의 증손으로 타카무네오의 조카가 되는 타카모치오(高望王)에게 제수된 칸무헤이지 타카모치류(桓武平氏高望流) [이 두개를 통틀어 칸무헤이지 (桓武平氏)라고 칭합니다] 를 시작으로 수많은 황족들이 신적으로 내려가면서 번창한 가문이죠. 일파로는 한토헤이지(板東平氏), 이세헤이지(伊勢平氏)등이 있습니다. 1185년에 실권을 잡고 있었던 타이라노 무네모리(平 宗盛)와 칸토에서 성장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賴朝)가 두 가문의 실력을 놓고 싸운 단노우라의 전쟁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가장 잘 알려진 두 가문입니다. 그 시대에 생긴 다른 사성가문으로는 아리와라(在原), 타치바나(橘), 키요하라(淸原)등의 가문이 있습니다. 이후, 에도시대때는 가문을 이을 사람이 없는 경우의 황족은 출가해서 승적에 들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메이지시대부터 다시 분가가 허락되어 12개의 가문이 신성씨를 이루어 분가하였습니다. 그리고 2차 대전 패전 후 GHQ의 지배 하에서도 11개의 가문이 새로 독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로운 축에 속하는 이들 신사성가문에는 쿠지(久邇), 히가시쿠지(東久邇), 키타시라카와(北白川)씨등이 있습니다. ②. 고대호족(古代豪族) : 고대 야마토정권의 주세력에서 나온 가문. 야마토정권시대에서 타이카카이신 이전까지는 천황가도 유력 호족에 지나지 않았던 탓에, 다른 유력한 성씨들이 많이 중앙정치에 진출해 있었습니다. 야마토지방의 유력호족인 소가(蘇我 : 도래인가문이라는 설이 유력), 모노노베(物部), 오토모(大伴) 이외에도 오카야마현(岡山縣)의 키비(吉備 : 후의 카모賀茂씨의 선조.)씨나 쿤마현(群馬縣)의 케노(毛野)씨등이 대표적인 가문입니다. ③. 도래인(渡來人) : 중국이나 한국에서 고대에 건너간 가문. 4세기 이후, 일본보다 문물이 앞서 있었던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일본에 여러가지 문물을 전해 주기 위해서, 혹은 국내정치에서 밀려난 후에 망명의 목적으로 건너간 사람들을 도래인, 즉 토라이진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일본으로 도래할 때, 상당히 앞선 문물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개방되어 있었던 고대 야마토정권에서 상당히 유력한 가문으로 다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야마토정권이, 능력이 있다면 특별히 외국인이라고 해서 차별을 두지 않았던 이유에서였습니다. 한나라(漢)의 궁월군(유미즈키노키미:弓月君)의 후예라고 칭하는 하타(秦)씨와 백제에서 섬유기술을 가지고 가서 성장한 아야(漢)씨, 백제 왕족의 후손인 쿠다라(百濟)씨, 고구려 왕족의 후손인 쿠마(高麗)씨등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으며, 또한 이들 가문에서 많은 성씨가 분파되어 전국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④. 신관가문(神官家門) : 진쟈(神社)에 관련된 일을 맡던 신관의 집안. 고대 야마토정권은 제정일치의 체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의식과 국가적 제사를 담당하는 신관 또한 유력한 세력이었습니다. 그 시대에서 유래하여 현재까지도 각지의 유력한 진쟈(神社)에는 그 진쟈의 일을 담당하는 가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신토(神道)가 시대의 변혁을 겪으면서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가문 또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이타현(大分縣)에 있는 우사진구(宇佐神宮)의 우사(宇佐)씨, 쿠마모토현(熊本縣)의 아소진쟈(阿蘇神社)의 아소(阿蘇)씨, 시마네현(島根縣)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의 이즈모(出雲)씨등이 주요신관가문이며, 이들 중에서는 전국시대에 유력 센고쿠다이묘(戰國大名)로 성장한 가문도 있습니다. 나가노현 스와시(長野縣 諏訪市)의 스와(諏訪)씨는 카마쿠라시대 이후에 신관가문에서 떨어져나와, 전국시대 때에는 센고쿠다이묘가 되어서 에도시대때는 타카시마한(高島藩:스와시의 에도시대 한이름.)의 한슈(藩主)가 되기도 했습니다. 2. 지명이 들어가 있는 성씨 & 지명 자체가 성씨인 경우 일본의 전체 성씨 중 상당수가 지명을 연원으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에는 여러가지의 패턴이 있습니다만, 옛수도 쿄토(京都)에서 지방으로 내려가서 살게 되었을 때, 그 지방의 이름을 성씨로 사용했다는 것이 가장 많은 경우입니다. 뭐, 예를 들자면 야마자키(山崎)씨나 오카자키(岡崎)씨, 미야자키(宮崎)씨 같은 집안은 이런 경우의 성씨입니다. 또는, 수도에서 그 지방으로 이동해 간 경우가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그 지방의 영주가 되었다거나 할 경우에 자신의 성을 그 지방의 이름으로 정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지명이 성씨와 같으므로 그 연원을 찾기 쉽지만, 똑같은 지명이 전국 도처에 산재해 있는 경우에는 연원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합니다. 이시카와(石川)같은 성씨는 그 좋은 예가 됩니다. 또, 그 지방의 이름을 성씨로 했다고 해서 그 지방의 유력자에서 나온 가문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지방에 그 성씨가 극단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또 하나의 난점이므로 주의하여야 합니다. 지명을 성씨로 한 경우, 또다른 일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지방의 유력자가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서도 성공했을 경우, 자신의 출신지의 지명을 성씨로 한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해도, 카이에키(改易)제도가 있었던 에도시대 이전에는 멀리 이동하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의 경우는 그 연원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분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명을 성씨로 한 가문의 경우에는 그 발상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지역에 고착분포하고 있는 경우가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3. 지형(地形)을 성씨로 한 가문 이 경우는 지명성씨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경우인데요, 그것도 그럴 것이, 지명을 성씨로 하는 경우에는 근처의 여러 촌락 사람들의 성씨가 모두 똑같아져 버린다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다른 가문과 자신의 일가를 구분하기 위해서라는 성씨의 기본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거주지의 지형상 특징을 나타낸 성씨를 사용하는 가문이 나타났습니다. 나카야마(中山)씨나 야마시타(山下)씨같은 가문이 이 예에 들어갑니다. 산과 강이 많은 일본의 지형상의 특징때문에, 일본의 성씨 중에서는 야마(山), 카와(川,河), 에(江), 타(田), 하타케(畠)등이 붙은 성씨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이 경우에는 비슷한 지형이 있는 마을에서 발생한 성씨는 그 연원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4. 방위(方位)로 성을 삼은 가문. 문자 그대로 요모히로(東西南北), 즉 동서남북을 뜻하는 성씨와,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니시무라(西村), 그대로 동서남북의 각 방향을 성으로 한 히가시 아즈마(東), 니시(西), 미나미(南/美波), 키타(北)등의 성씨가 이 예에 해당됩니다. 지형을 성으로 한 것과 비슷한 이유로,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성씨가 모두 같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주거지의 방위로 성을 삼는 사람들이 나타나 이런 방위성씨가 나타났습니다. 이외에도 젠고오쿠(前後奧)나 우사(右左), 카미나카시타(上中下)등의 성씨도 있습니다. ※ 카미나카시타씨의 경우에는 여러 독음이 존재합니다. 5. 직업을 성씨로 한 가문 현대와는 다르게, 에도시대까지의 일본은 직업을 세습해왔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직업이 후손에게도 세습되는 점을 이용해, 여러 가문이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성씨를 만들었습니다. 먼저 관직을 성씨로 삼은 경우는 수도 근위를 맡았던 콘에부(近衛府)에서 연원된 코노에(近衛), 다자이후(太宰府)의 관리에서 연원된 다자이(太宰), 조정의 재정을 맡았던 오쿠라노츠카사(大藏省)의 관직에서 연원된 오쿠라(大藏)와 쿠란도(藏人)등이 있습니다. 소엔(莊園)의 관리를 맡았던 소지(莊司), 개를 키웠다고 해서 이누카이(犬養) 등의 성씨가 나온 것은 헤이안시대부터 무로마치시대 이전까지의 일입니다. 무로마치시대 이후, 화폐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상업적 특징을 내세운 상인들의 성씨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끝에 ~야(屋)가 들어간 성씨들은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성씨들은 자신이 파는 물건을 붙인 경우나 (냄비의 경우는 솥 과鍋자를 붙여서 나베야鍋屋), 출신 지역의 이름을 붙인 경우등의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가게주인이 에치고越後출신이면 에치고야越後屋) 메이지시대에 이르러 신 호적제도가 정비되어 성씨를 정해야 할 상태에 이르자, 그대로 가게이름을 가문으로 정한 집안이 있는가하면, 끝의 야(屋)자를 야(谷)로 고친다거나[예) 카가야加賀屋 → 카가야加賀谷], 아예 야(屋)자를 빼고서 성씨를 정한 가문도 있었습니다. 상가로 유명했던 토야마현의 이미즈시(富山縣 射水市)의 경우에는, 거주민 대부분의 성이 이런 직업성(끝에 야屋자가 들어가는 성씨)이거나, 당시 팔고 있었던 물품, 코메(쌀:米)나 누노(베:布)같은 글자가 들어간 성씨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6. 끝에 토(藤)자가 들어가는 가문 일본에서도 가장 많은 사토(佐藤)씨를 시작으로, 안도(安藤), 이토(伊藤), 카토(加藤), 쿠도(工藤), 고토(後藤), 콘도(近藤), 엔도(遠藤), 사이토(齋藤), 마사토(正藤)씨등의 토(藤)자가 들어가는 가문이 일본 성씨 중에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이들은 대부분이 후지와라(藤原)가문의 후손들입니다. 후지와라씨는, 원래 고대 야마토정권 말기에 등장했던 가문인 나카토미(中臣)씨에서 나온 성씨로, 뒤에 텐치천황(天智天皇)이 되는 나카노오에노 미코(中大兄皇子)를 도와 타이카카이신 (※타이카카이신大化改新 - 645년에, 나카노오에노 미코가 야마토정권의 대세력가였던 소가蘇我씨를 주살하고 황태자가 되어 정권을 잡아 국가체제를 일신한 카이신. 카이신 성공 직후 바뀐 연호인 타이카大化를 따서 타이카카이신이라고 부른다.)을 성공시킨 나카토미노 카마타리(中臣鎌足)가 텐치천황으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받은 성씨입니다. 황족이 아닌 귀족으로서 받은 사성(賜姓)인 셈이죠, 여간에 후지와라씨를 사성받음으로서 후지와라노 카마타리(藤原鎌足)로 이름이 바뀐 시조의 이후, 후지와라노 요시후사(藤原良房)등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가진 후손들이 나타나 셋칸정치(섭관정치 : 攝關政治)체제를 구축하면서 후지와라씨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헤이안시대(794-1192)는 중앙 귀족의 대표격인 후지와라(藤原)가문이 좌지우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후지와라씨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래서 헤이안시대 중기를 후지와라시대(藤原時代)라고도 부를 정도죠. 특히 62대 무라카미천황(村上天皇)때부터 단노우라의 전투[1185]때까지, 후지와라노 카네이에(藤原兼家)와 그 아들 미치나가(道長)의 대에서 셋칸정치체제의 전성기를 맞으며 영화를 누렸습니다. 귀족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한 축이었던만큼, 가인(歌人)이나 문장가, 뛰어난 정치가가 많이 배출되었고, 또 양성해내기 위해 가문에서 사립 학당을 건립할 정도였죠. 그런 이유로, 중앙 관료부터 하급 관료까지 대부분의 관직이 후지와라씨가 역임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이로서 가문의 위계를 정하기 힘들어지자, 후지와라씨 내부에서 분파의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이세(伊勢)에 영지를 가진 후지와라씨는 이토(伊藤), 중앙 조정 관직 중 하나인 사이구노 카미(齋宮頭)를 역임하는 후지와라씨는 사이토(齋藤), 오미(近江)의 후지와라씨나 콘에부의 관직을 역임하는 후지와라씨는 콘도(近藤), 미나모토(源)씨의 황실가계가 섞인 후지와라씨 중에서는 안도(安藤), 에몬노 스케(衛門佐)의 관직을 역임하는 후지와라씨는 사토(佐藤), 타쿠미노 카미(大工頭)를 역임하는 후지와라씨는 쿠도(工藤), 북방의 에조(蝦夷)의 하나였던 하야토(隼人)를 다스렸던 쇼로쿠이노 카미(정육위상 : 正六位上)의 하야토노 카미(隼人正)를 역임하는 후지와라씨는 마사토(正藤)씨등으로 분파되었습니다. ※ 마사토(正藤)씨의 경우 정확한 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무로마치시대때까지의 관직표에 나오는 관직인 하야토노 카미를 역임한 후지와라가문의 후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도(安藤)씨는 미나모토(源)씨의 일족인 의 혈통이 섞인 후지와라씨의 일파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후지와라씨 본가와 함께 일본성씨 100위권 안에 들어가는 큰 가문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 후, 중앙정계의 관직에서 밀려난 후지와라씨들이 지방으로 퍼져나가면서, 각지에 끝에 토(藤)자가 들어가는 후지와라씨들의 후손들이 분포하게 되었습니다. (끝에 토(藤)자가 들어가는 것으로 전부 후지와라가의 일족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7. 승려의 성씨 에도시대(江戶時代 : 1603 - 1867) 이전에, 승적에 들어간 승려들은 세속과의 연을 끊는다는 의미에서 공식적으로 성씨를 버리고 쓰지 않았습니다. 현재 무사 이외에도 성씨를 썼다는 의견이 정설로 되어 있지만, 승려는 공식으로는 성씨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메이지이신으로 모든 국민들이 호적을 갖게 되자, 승려들도 국민의 일인으로서 성씨를 가져야하는 의무를 갖게 되었습니다. 에도시대 이후의 승려는 대부분이 무사가문이나 상인가문출신으로, 각자 원래 가문의 성씨를 가지고 있었지만, 불교용어나 자신이 살고 있는 절 이름을 따서 새로운 성씨를 만들었습니다. 끝에 지(寺)자나 인(院)자가 들어가는 성씨들의 경우가 이 예에 속합니다. 코쿠분지(國分寺)씨같은 경우죠.그로 인해, 승려가문의 성씨는 한자를 읽는 방법이 각자 다양하다거나, 어려운 한자를 사용하는 가문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8. 주군등에게서 받은 성씨 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때까지, 전쟁등에 공을 세웠을 때, 주군등에게서 받은 성씨가 그대로 가문이 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미노의 이기야마죠(美濃伊木山城)를 공략했을 때, 공을 세운 두 명의 부하에게 이기(伊木)라는 성을 내렸던 일의 경우등이 있습니다. 에도시대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막부에 빌려간 돈을 내지 않는 상인등에게 억지로 성씨를 내려서 세금을 부과하는 등의 폐단도 있었습니다. 후다이다이묘(譜代大名)였던 오코우치(大河內)씨나 타키와키(瀧脇)씨처럼 쇼군가인 토쿠가와(德川)씨의 원래 성인 마츠다이라(松平)씨를 제수받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후 막부가 붕괴되고 메이지시대가 되자 다시 마츠다이라 성을 버리고 원래의 성씨로 돌아갔습니다. 이 밖에도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죽을 바친 농민에게 포상과 함께 주어진 시즈오카현(靜岡縣)의 오카유(小粥)씨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 義經)에게서 받았다는 이와테현(巖手縣)의 후로(風呂)씨등이 이 예에 해당됩니다. 이런 성씨의 경우,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내력에 대한 전승이 없는 경우에, 그 연원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 ★ 언급한 성씨들의 정보 [참고한 웹사이트] ① 일본의 성씨 7000걸(日本の苗字7000傑) (http://www.myj7000.jp-biz.net/) (일본성씨의 순위,인구수,가문의 연원,가문의 문장등을 알 수 있습니다.) ② 스자키씨의 웹사이트(http://www2s.biglobe.ne.jp/~suzakihp/index40.html) (일본성씨의 순위,세대수,읽는 방법 검색가능) (1). 사성가문/고대호족/도래인가문/신관가문 항목에서- 미나모토(源) 성씨순위 2,578위 / 인구수 약 5,400명 / 약 1,192세대 타이라(平) 성씨순위 599위 / 약 8,218세대 아리와라(在原) 성씨순위 4,367위 / 약 648세대 타치바나(橘 / 立花) 1. 橘 성씨순위 545위 / 약 8,910세대 2. 立花 성씨순위 612위 / 약 7,992세대 키요하라(淸原) 성씨순위 1,182위 / 약 3,688세대 쿠지(久邇) 성씨순위 88,600위 / 약 1세대 히가시쿠지(東久邇) 성씨순위 80,500위 / 약 2세대 키타시라카와(北白川) 성씨순위 80,500위 / 약 2세대 소가(蘇我) 성씨순위 35,164위 / 약 21세대 모노노베(物部) 성씨순위 5,435위 / 약 469세대
오토모(원 독음은 오오토모. : 大伴) 성씨순위 5,855위 / 약 418세대
키비(吉備) 성씨순위 13,859위 / 약 108세대
카모(賀茂) 성씨순위 16,220위 / 약 83세대
케노(毛野) 성씨순위 30,318위 / 약 28세대
하타(秦) 성씨순위 661위 / 약 7,284세대
아야(현재는 칸으로 읽음. : 漢) 성씨순위 18,234위 / 약 68세대
쿠다라(햐쿠사이라고도 읽음. : 百濟) 성씨순위 10,368위 / 약 173세대
코마(高麗) 성씨순위 5,377위 / 약 475세대
우사(宇佐) 성씨순위 5,959위 / 약 405세대
아소(阿蘇) 성씨순위 4,848위 / 약 549세대
이즈모(出雲) 성씨순위 3,185위 / 약 1,021세대
스와(諏訪) 성씨순위 698위 / 약 6,883세대
(2). 지명에 관한 성씨 항목에서-
야마자키(山崎) 성씨순위 21위 / 약 119,380세대
오카자키(岡崎) 성씨순위 179위 / 약 28,673세대
미야자키(宮崎) 성씨순위 67위 / 약 58,799세대
이시카와(石川) 성씨순위 27위 / 약 101,710세대
(3). 지형에 관한 성씨 항목에서-
나카야마(中山) 성씨순위 58위 / 약 66,721세대
야마시타(山下) 성씨순위 26위 / 약 106,736세대
(4). 방위에 관한 성씨 항목에서-
요모히로(東西南北) 성씨순위 미집계 / 세대 미집계
니시무라(西村) 성씨순위 42위 / 약 78,327세대
히가시(東) 성씨순위 123위 / 약 37,937세대
아즈마(東) 성씨순위 123위 / 약 37,937세대
니시(西) 성씨순위 239위 / 약 22,529세대
미나미(南 / 美波) 1. 南 성씨순위 193위 / 약 26,443세대 2. 美波 성씨순위 34,522위 / 약 22세대
키타(北) 성씨순위 853위 / 약 5,451세대
젠고오쿠(前後奧) 성씨순위 미집계 / 세대 미집계
우사(右左) 성씨순위 80,500위 / 약 2세대
카미나카시타(上中下) 성씨순위 미집계 / 세대 미집계
(5). 직업에 관한 성씨 항목에서-
코노에(近衛) 성씨순위 32,482위 / 약 24세대
다자이(太宰) 성씨순위 9,017위 / 약 217세대
오쿠라(원 독음은 오오쿠라 : 大藏) 성씨순위 2,736위 / 약 1,251세대
쿠란도(독음에 따라 쿠로토, 쿠라우토로도 읽음. 藏人) 성씨순위 43,141위 / 약 14세대
소지(쇼지라고도 읽음. : 莊司) 성씨순위 2,230위 / 약 1,643세대
이누카이(犬養) 성씨순위 18,724위 / 약 65세대
나베야(鍋屋) 성씨순위 20,872위 / 약 54세대
에치고야(越後屋) 성씨순위 12,314위 / 약 131세대
카가야(加賀屋 / 加賀谷) 1. 加賀屋 성씨순위 6,002위 / 약 401세대 2. 加賀谷 성씨순위 1,258위 / 약 3,442세대
(6). 끝에 토(藤)자가 들어가는 가문 항목에서-
후지와라(藤原) 성씨순위 46위 / 인구수 약 305,000명 / 약 75,206세대
나카토미(中臣) 성씨순위 12,433위 / 약 130세대
안도(安藤) 성씨순위 71위 / 인구수 약 226,000명 / 약 55,515세대
마사토(正藤) 성씨순위 17,253위 / 인구수 약 270명 / 약 75세대
이토(伊藤) 성씨순위 6위 / 약 265,902세대
사이토 1. 齋藤 성씨순위 17위 / 약 147,210세대 2. 齊藤 성씨순위 49위 / 약 73,837세대
쿠도(工藤) 성씨순위 65위 / 약 59,005세대
엔도(遠藤) 성씨순위 39위 / 약 81,292세대
콘도(近藤) 성씨순위 36위 / 약 90,170세대
사토(佐藤) 성씨순위 1위 / 약 474,558세대
(7). 승려의 성씨 항목에서-
코쿠분지(國分寺) 성씨순위 50,005위 / 약 10세대
(8). 주군등으로부터 받은 성씨 항목에서-
오다(織田) 성씨순위 576위 / 약 8,497세대
이기(伊木) 성씨순위 6,063위 / 약 395세대
토쿠가와(德川) 성씨순위 5,358위 / 약 478세대
오코우치(원 독음은 오오코우치 / 大河內) 성씨순위 1,349위 / 약 3,130세대
타키와키(瀧脇) 성씨순위 10,040위 / 약 183세대
마츠다이라(松平) 성씨순위 1,841위 / 인구수 약 8,500명 / 약 2,072세대
오카유(小粥) 성씨순위 6,522위 / 약 358세대
후로(風呂) 성씨순위 12,298위 / 약 132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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