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받고 똥을 팔아야했던 선교사들

NO. 007

일본에서는 돈을 주고 받으면서 똥을 팔았다.

*** 배경 : 일본 전국시대(오다 노부나가의 전국 전쟁기)  ***

일본에서 크리스트교가 공인된 최초의 시대는 어느 시대일까? 정답은 일본 전국시대인 <오다 노부나가>의 시대랍니다.

당시 서양에서는 카톨릭을 수호하고 루터교를 견재하기 위해 예수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답니다. 그 창시자 중 한명이 바로 프란시스코 샤비에르라는 인물이었죠. 예수회는 유럽에서 루터나 칼뱅 등 개신교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막고, 전 세계에 카톨릭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선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답니다.

샤비에르는 로욜라 등과 함께 예수회를 창시한 인물이면서도 직접 인도에 진출해서 포교활동을 하다가 일본 포교까지 시작한 헌신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에서는 신도가 급증하였답니다. 그리고 일본의 규수 지역은 크리스찬 지역과의 무역을 위해 아예 크리스찬 영주가 탄생하기도 했죠.

일본의 혼란한 전국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인물들을 이끌던 명장 <노부나가>는 크리스트교를 적극 후원하기로 맘을 먹었답니다. 그 이유는 당시 대항해 시대를 이끌던 에스파냐, 포르투갈의 화포술을 적극 도입하려는 의도가 있었죠. 또, 전통적인 불교세력이나 토착종교세력을 억압해서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새로운 이념의 종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노부나가의 전국시대에 이르자 크리스트교는 막부의 지원으로 교토와 같은 대도시에 큰 교회를 세우고 교세를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청빈한 생활을 하던 선교사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답니다.

그것은 바로, 변소에서 똥을 퍼내는 사람들이 돈을 받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맙다고 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전국시대의 <토지정책> 때문이었답니다. 영주들은 수많은 강적들이 존재하는 전국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토지개간작업을 했답니다. 심지어 산을 허물어서 논과 밭을 만들 정도였죠. 일본은 섬나라이다 보니 원래 평야갸 매우 적습니다. 국가세금을 확보하기 위해 식량 생산을 늘리는 것은 전쟁으로 평야를 불태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죠.

그런데 논밭을 늘리다보니 더 심각한 문제가 생겼답니다. 산을 평야로 바꾸다보니 풀과 나무가 부족해서 비료로 쓸 것들이 없어진 거에요.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비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사람의 똥, 즉 인분이었던 거죠.

인분은 옛날부터 훌륭한 비료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건 자연적인 것이었지 전국시대처럼 <인분>이 거금에 거래될 정도는 아니였죠.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영토에 <공중변소>라는 걸 만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상점과 공공장소, 대로변은 권리금을 내고 공중변소를 만들기도 했죠. 어떤 이들은 변소사업으로 투잡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자... 교회를 만들어 선교를 해야했던 선교사들도 이것을 이용할 수 있었겠죠? 교회에 만든 공중변소는 교회 텃밭에 뿌리는 비료도 될 수 있고, 팔아서 교회 자금으로 쓸 수도 있었겠죠. 신도들이 교회의 공중변소를 오가는 건 신성한 일이었답니다.

그러나, 가까이에 공중변소가 많으면 설교할 때 얼마나 힘들까요? 일본사는 <똥 냄새 때문에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신앙심으로도 참기 힘들었다>라고 말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똥의 거래 가격이 달랐답니다. 부자의 똥은 기름진 음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똥보다 비싼 것이었다고 해요.

그러나, 이런 특이한 역사를 경험한 카톨릭 선교사들의 일본 체류는 길지 않았답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크리스찬 신도가 늘고, 각 영지에 교회의 입김이 세지는 것을 우려해서 선교사 추방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서양 및 동남아와의 무역 때문에 적극적인 추방정책을 펴지는 못했죠.

이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신교국가인 네덜란드와 손을 잡으면서 카톨릭 선교사들을 추방했답니다. 이들을 추방하기 위해 수만명의 농민과 전쟁까지 한 도쿠가와 정권의 혹독한 탄압으로 카톨릭은 일본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신도들은 300년간 어둠 속에서 신앙을 지켜가게 된답니다. 훗날, 메이지 유신 때 일본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공인하자 자신이 카톨릭 신자였다고 밝힌 숫자가 많았다는 사실에서 한번 뿌리내린 종교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알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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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