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전 : 누구의 영향력이 더 클까?

칼 포퍼 VS 토마스 쿤 제 2부 : 진보와 다른 관점의 패러다임

- 제 2부 서문 : 칼 포퍼의 위대한 보수 정신

요컨데 칼 포퍼는 자신의 과학이론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회 이론까지 정당화한 인물이다.

과학이란 논리나 실증과 다르게 <검증>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규정한 포퍼는 역사에서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특수한 조건이 성립되면, 법칙적으로 당연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 국왕이 무능이 불안하면 <혁명>이 발생한다는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은 여러 혁명을 통해 증거가 쌓여서 알게 된 것이 아니다. 일단, 하나의 혁명에서 왕정의 무능력, 지배층의 부패, 경제적 불안감, 농민들의 불만 등등 여러 가설들을 주장한 뒤 그것이 진정한 원인이거나 원인이 아니라는 <반증>이 가능한가를 시험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법칙에 다가가는 것이다. 즉, 과학이든 역사든 모든 주장과 이론은 엄격한 비판적 시험에 맡겨져서 검증받아야 한다. 이렇게 <검증> 또는 <반증>이 가능한 것이 과학이며, 역사 또한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검증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나열한 대표적인 저서가 바로 <추측과 논박>이라는 유명한 책이다.)

그럼 이런 검증과 절차를 통해 발전한 역사적 결과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서구 사회의 윤리>였다. 칼 포퍼는 <인간의 정신으로 세상은 진화한다>는 계몽주의적 역사관을 긍정하였다. 또, 다윈의 진화론을 인정하면서 사회 역시 진화한다는 것을 믿었던 인물이다. 역사는 올바른 인물들의 건전한 윤리 정신과 보수의 도덕심으로 발전하고 진화한다. 그 진화의 정점을 찍은 나라는 <미국>이다. 따라서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자본주의 정신에 우호적이고, 사회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 등장하다.

포퍼가 제국주의 시대의 위대함을 보고 자란 보수성향의 인물이라면, 토마스 쿤은 세계대전 속에서 실존주의와 사회주의적 사고 방식을 접하면서 자란 인물이다. 그는 과학적 업적이 계속 쌓여가며, 과학은 진보한다는 포퍼의 이론에 의구심을 보였다.

먼저 그의 초기작인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적 이론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라고 주장한 그의 업적이 얼마나 혁명적이면서도, 또한 보수적인지에 대한 사상 검증을 시도했다. 그리고 과학혁명의 구조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역사라는 것이 연대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때, 그 이미지는 ... 주로 고전적 서적들이나 연구자들 자신에 의해 그려진 것이다. 본 논문은 그것들이 우리의 이해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과학이 객관적 지식이며,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발전하고 있다는 포퍼의 과학관을 부정했다. 과거의 업적들이 쌓이고, 진화한다고 믿는 것, 누군가를 <계몽하고 교육할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기 오류일 뿐이다. 아울려 기존의 것을 지키고 발전시켜 가는 것이 <사명>이라고 믿는 것은, 기득권자들이 가진 가장 위험한 발상의 한 단면인 것이다.

그는 과학의 역사에 <패러디임>이라는 것을 도입했고, 그 후 그의 이론은 과학사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큰 파급을 주었다. 그럼 토마스쿤이 주장한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무엇일까?

원래 패러다임(paradigm)은 <다양한 관념을 묶어주는 체계>를 말하는데, 그리스어로 패턴, 모델, 전형 등을 의미하는 파라테이그마(paradeigma)을 영어로 바꾼 말이다. 토마스 쿤은 이 단어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즉, 문제를 보고, 문제를 접근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모두 묶어 패러다임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쿤은 이 문제풀이 방식이 모든 인문, 사회, 과학에 적용되는 연구 방법이라고 말했다. 만약, 기득권을 가진 하나의 이론에 심각한 오류가 생긴다면 기득권자들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론의 문제점을 더 크게 부각시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는 데 이것이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교대하면서 하나의 과학 혁명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만 과학의 역사란 일관적으로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진보하는 역사가 아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이론이 등장해서 패러다임이 교대한다. 역사로 본다면, 하나의 공동체에 심각한 균열이나 오류가 생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그 새로운 대안은 <혁명적 이론>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시대정신>이나, 사회적 <대세>가 될 수도 있다.

이 이론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꾸어 놓았다. 현대 이전의 모든 역사가들은 역사는 <인과 관계> 속에서 진행된다고 믿었다. 포퍼는 특정한 사건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며, 그 결과는 법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포퍼를 반대하는 역사가들 역시 인과관계는 인정했다. 특정한 역사는 커다란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든 관련을 맺고 있거나, 원인과 결과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었다. 만약 개인의 역사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역사상과 사회성을 무시한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패러다임> 이론은, 지금까지 연속적으로만 여겼던 개인과 사회의 역사를 비연속적인 다양한 문화가 <병렬적으로 묶어서 이루어진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떤 역사적 사건은 법칙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특정한 원인이 전부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이라면 말이 안된다. 그것은 혁명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지, 감옥을 습격하지 않았어도 혁명은 일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구제도의 모순>이 혁명의 원인이라는 점도 혁명을 전부 설명하지 못한다. 귀족과 부르조아의 대립 뿐 아니라, 상인과 농민의 대립, 자본가와 소시민의 대립, 왕권에 대한 불신과 국제 전쟁, 나폴레옹의 등장 등 수많은 크고 작은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즉, 프랑스 혁명은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하며 이런 이유들이 <병렬적>으로 묶여서 발생한 것이다. 어느 이유가 근본적인 이유이며, 어떤 사건이 발단이라는 것은 역사가들이 멋대로 적어놓은 것이다.

이 이론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된 것은, <포스트모던 역사학>과 상호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은 역사를 발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의 어떤 자료를 발견하고 그것을 진리로 여기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텍스트(문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는 그 문서를 가지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역사이다. 역사가가 100명이면 100개의 역사가 나와야 정상이다. 또한 그 100개의 역사를 100명의 독자가 읽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부정하는 것, 또한 저자의 숨은 의도를 알거나,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즉, 역사는 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역사는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과학에서의 패러다임은 역사로 넘어와서 역사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 포퍼의 자본주의적 윤리정신과 맞선 토마스 쿤의 사회주의 이론

포퍼가 계몽주의적 발전과 과학적 진보를 주장했다면, 토마스쿤의 과학적 패러다임은 기존 이론에 대한 새로운 이론의 등장과 또 다른 교체에 대한 변화 과정을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변증법>으로 설명하였다.

어느 한 시대가 존재한다면, 그 시대를 풍미하는 과학이나 역사, 시대정신이 존재한다. 토마스쿤은 기득권을 가진 과학을 <정상과학 Normal Science>이라고 말한다.

원래 초기에는 세계를 보는 방법과 연구방법의 차이 때문에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물이냐, 불이냐, 흙이냐 등으로 학파를 만들었지만 완전히 이질적인 학문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 그 현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이 주류 이론이 되어서 <정상과학>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은 물, 불, 흙, 바람 등 4원소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이 다른 이론을 포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상과학은 100% 완벽하지는 않다. 이것은 당대의 다른 이론을 포괄할 수 있거나 장점이 많기 때문에 주류가 된 것이지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기득권을 가진 정상과학이 되면, 새로운 현상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존의 이론이나 기득권을 옹호하는 데 더욱 힘을 쓰기 마련이다.

기득권이란 퍼즐 풀이와 같다. 어떤 문제라도 기존의 이론에 대입하고 조각을 맞추어서 문제를 풀어 버리면 되기 때문에, 기득권자들은 어떤 문제든지 퍼즐안에 집어넣고 자신들의 규칙 속에서 해결하려고만 한다. 만약 기득권의 패러다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면 그것은 과학자의 실수이거나, 역사학자의 잘못된 연구결과이거나, 종교학자의 이단 발언과 같은 경우로 취급된다.

그런데, 기존 정상과학의 방법, 즉 <패러다임>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나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상하게도 기존 이론과 모순되는 법칙이 계속 나오면, 사람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변칙적인 상황 때문에 패러다임의 역할을 부정하게 된다면 사건은 커지게 된다.

쿤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코페르니쿠스, 뉴턴, 아인슈타인과 같은 혁명적인 이론가들의 이론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낡은 패러다임의 연장선이 아닌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비누적적인 발전과정>이라고 한다. 즉, 패러다임의 변화는 가장 기초적인 이론의 일부까지 변화시켜서 새로운 이론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이론은 낡은 이론에 비해 우월한 것일까? 토마스쿤은 기존의 이론과 새로운 이론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념 사이에 우열을 비교할 기준이 없는 것을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라고 하는데, 이전 기득권과 새로운 기득권은 공약불가능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천주교의 이론에 모순이 많다고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이 있다. 그럼 개신교는 모순이 없을까? 그리고 두 종교간에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즉, 새로운 기득권이란 일종의 종교 개종 행위와 같다. 종교의 다양성처럼 이론의 다양성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의 과학혁명으로 기득권 이론이 바꾸어도 진보는 없는 것일까? 역사로 따진다면, 역사에서의 발전이란 명제는 사라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쿤은 발전이란 특정한 목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전의 기득권은 그 범위 안에서 이루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모순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이루려는 목표가 존재한다. 그 목표는 차분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느 시대의 어느 패러다임이든지 올바른 목표가 설정되는 한 발전이란 가능한 것이다.

- 변증법 패러다임의 역사적 활용

토마스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를 변증법으로 설명하였다. 어느 한 과학이 체계를 잡기 전의 전과학의 단계에서 기득권을 잡은 과학이 정상과학이 된다. 그런데, 정상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과학이 등장한다. 즉, 정상과학(정) - 위기(반) - 새로운 과학(합)의 구조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론도 영원히 완벽하지 않는 한 또 다른 위기에 의해 새로운 과학으로 변하게 된다.

역사에서는 <시대 정신>이라는 것으로 패러다임 이론을 수용하였다.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곤 한다. 그것을 넓게 보면 이념(이데올로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이념은 수많은 이론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또 개인이나 지도자의 신념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 무엇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으며, 악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역사는 항상 연속적으로 발전하며 진보한다는 것도 역사를 이끌어가려는 사람들의 편견에 불과하다. 역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원인과 결과들이 난립해서 구성되었고, 어느 특정한 이론이 완벽하다는 것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단지, 하나의 시대에는 그 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대 정신>이 있고, 그것을 기준점으로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고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중요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판단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특히 정치, 경제, 문화, 민중 등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서 본다면 어느 하나 뒤쳐지는 <시대 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토마스 쿤은 과학과 역사의 유사점을 이렇게 말한다. 정치혁명이 시작될 때 정치 집단 중에서는 기존의 제도로 새로운 사회 상황을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이 대중에서 확산될 때, 사회 변화는 가속한다. 과학 역시 그 느낌은 마찬가지다.

또한 정치나 역사에서의 혁명이란 기존 제도를 금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것은 기존 제도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제도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공백기가 생기며, 그 공백기에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 당파를 만들고 다양한 의견을 만들어간다.

그 결과 혁명에서 혁명에서 승리한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대중을 설득하고 정당성을 계속 광고한 이들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 그들이 바로 역사 혁명의 승리자들이라고 말이다. 과학 역시 최후의 승리자는 역사의 승리자와 마찬가지의 인물들이다.

원래 포퍼와 토마스 쿤의 이론은 과학적으로 논쟁이 되는 부분이다. 그 논쟁은 <현대과학철학 논쟁>이라는 책에 잘 나와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둘의 생각의 차이점과 역사관의 차이를 중심으로 다른 점을 나열해보았다. 역사에서의 법칙을 찾고, 건전한 정신을 강조한 포퍼와 패러다임이라는 관점을 통해 역사의 변화를 강조한 토마스 쿤.... 이 둘은 과학을 넘어 역사철학에서도 큰 영향을 준 인물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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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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