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퀴즈
 

5문제입니다. 즐겁게 풀어보아요!!!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 난이도는 1,2 번 하, 3, 4번 중 구성됩니다.

 


1. (하)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 각 분야의 서작 편찬을 장려하다. *****

- 수양대군의 석보상절 / 김순과 신석조의 의방유취

- 이석형의 치평요람 / 윤회, 신색의 팔도지리지

- 정인지, 김종서의 고려사

- 설순의 삼감행실도

- 정초, 변계량의 농사직설

***** 문화, 예술, 경제 분야를 꽃 피우다 ****

- 관습도감을 만들어 박연이 아악을 정리하도록 지시하다.

- 대간의, 소간의, 혼의, 혼상, 일구,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등 천문 분야에 힘쓰다.

- 농잠 서적을 발행하다.

- 조선통보를 주조하고 환곡법을 철저히 시행하다.

- 전제상정소를 통해 연분, 전분에 의거한 전세제도를 확립하다.


 

1. 위 내용과 관련있는 조선의 국왕은 누구일까요?
① 태종        ② 세종        ③ 세조
④ 성종        ⑤ 정조        

 

 

2. (하)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래 그의 이름은 '새벽'이다. 아버지의 성을 따라 설새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일찍이 출가하여 법명을 얻었는데, 그 법명은 '처음으로 불법이 빛나다' 라는 뜻의 _____였다.

그는 특정 종파에 매이지 않고 모든 교학을 연구했다. 그리하여 법화경종요, 대승기신론소 등 100여종 240여권의 방대한 책일 남겼다.


그는 의상과 당나라에 유학을 가던 중 무덤에서 노숙하다 해골의 물을 마시고, '일체의 현상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된 후 유학을 포기하였다. 또한 요석궁 공주와의 인연을 계기로 승복을 벗고 세속인이 되어 '소성거사'라 칭하며 민중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광대처럼 바가지를 두드리며 민중들 앞에서 화엄경의 정수인 무애가를 불렀다. 음악과 춤으로 불교 교리를 전파했으니, 신라시대의 아이돌 가수라고나 할까?


그는 관념에 치우쳐 이론적 연구만 하는 중국불교의 일부 종파를 '근원만 추구하느라 현실과 백성을 모르는 무리들'이라며 비판했다. 이로서 왕실과 지배층만이 지배하던 불교가 민중 속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가 불교를 전파한 이후 마음으로 부처를 섬기면 신분과 상관없이 누구나 정토에 갈 수 있다는 정토종이 유행하였다.

 

 

 

 

2. 위 인물과 관련있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① 세상이 어지러울 때 다시 내려와 지상에 광명을 뿌리고, 민중을 구원하겠다고 호원장담했다.
② 백성들에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 
③ 대각국사로 불리었으며 천태종을 열었다.
④ 조선의 수도를 정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⑤ 소림사를 만들었다.

 

 

3. (중)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부조리에 관한 시론 : 이방인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갔다. 이튿날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코미디 영화를 보고 실컷 웃는다. 밤에는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며칠 후, 동료 레이몽을 다치게 한 아라비아인을 별 이유없이 총으로 사살한다. 재판장에서 그는 바닷가의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사람을 죽였다고 하였고, 속죄의 기도를 거부한다. 그는 항상 행복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처형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밀려올까를 기대한다.


이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 '부조리'이다. 사회적 관계망이 형성되지 않은 인간이 개인의 욕망 속에서 어떻게 지배받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유럽은 세계 2차 대전의 암울한 상황에서 인간의 목숨은 존엄하지 않았다. 뫼르소의 죽음은 부조리한 현실에 죽음으로 반항하는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3. 위의 '부조리' 이야기와 관련있는 작가는 누구일까요?
① 사르트르
② 알베르 카뮈
③ 니체
④ 헨리 입센
⑤ 안데르센

 

 

4. (중)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19세기 독일 통일을 이룬 그에게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 모두 찬사를 보냈다. 그의 공무원 조직과 막강한 군 조직은 제국의 위상을 높인 1등 공신이었다. 반면, 그 조직들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시대 변화에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특히, 의회마저 장악해 버린 그로서는 개혁과 소통이 필요할 리 없었다.
 

당시 제국의 40%인 가톨릭 신도들은 황제 빌헬름 1세 뿐 아니라 로마 교황에게도 충성을 하고 있었다. 재상이었던 그는 가톨릭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제국의 적으로 규정하였으나, 그마저도 종교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가톨릭 국민들에게 항복하고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였다.
 

이후 그는 주적을 사회주의자들로 삼았다. 산업사회의 변화로 노동자들을 다루기가 어려워지자 사회주의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주의 탄압은 노동자 회유로도 이어졌다. 노동자를 위한 구인구직제, 노인보호법, 질병예방, 문화혜택 등을 국가가 장려한 것이다.
 

그러나, 경직된 공무원, 군대 조직으로 인하여 산업혁명이 늦어지자 독일제국은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식민지 확보전에 들어갔다. 식민지 쟁탈전은 이미 식민지를 확보했던 영국, 프랑스를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독일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 연합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게 되었다.
 

독일의 딱딱한 조직 구조는 훗날 이 대립으로 인해 세계 1차 대전까지 이어지지만,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도 이 군대 조직의 개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4. 위 지문에 나온 독일 재상과 관련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관세혁파
② 자유무역 추진
③ 철혈정책
④ 카르보나리 개혁
⑤ 크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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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