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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보호 : 블로그 이전글) 단 1표로 운명이 바뀐 역사들

투표의 위력 : 역사를 바꾼 한 표들

 

한 표가 뒤바꾼 역사

 

우리 나라는 '투표합시다' 하는 날은 놀러가는 날, 쉬는 날, 또는 직장이 바빠서 나랑 상관없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얼마전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고는 투표율이 60%를 넘기는 경우가 많지 않거든요.

 

그러나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제도를 완성하기 위해 피눈물나는 투쟁을 했거나, 1표의 차이로 역사가 바뀐 전례가 있다면, 투표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겠죠? 선거 제도를 처음 도입한 선진국들은 1표의 소중함을 역사 속에서 배웠답니다.  물론 지금은 국민직선제이지만 백년전만 해도 대부분이 간접 선거 방식이거나, 여성 또는 노동자를 제외한 투표이기는 했지만 말이죠.

 

그럼 지금부터 역사를 바꾼 투표들, 특히 1표를 살펴볼까요?

 

 

먼저, 민중들이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했던 프랑스!!! 대혁명의 국가이죠.

 

프랑스 대혁명 때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앙투와네트는 오빠가 황제로 있는 오스트리아에게 군사파견의 밀서를 보냈습니다. 프랑스 혁명군은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열세를 보였는데, 그 이유는 왕비가 적군에게 프랑스 전력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기 과격파인 자코뱅파는 국왕 일가를 모두 사형시키자는 안건을 투표에 부쳤습니다. 그러나 내통의 결정적 증거가 없어서 투표 전날까지 국왕이 사형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 문서가 투표 전날 발견되었죠. 721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334대 387로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당시 자코뱅파와 지롱드파의 숫자가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하루 차이가 프랑스 역사를 바꾼 것이죠.

 

최초로 사형을 당한 루이 16세는 민중이 아버지인 '국왕'을 사형시키는 비윤리적인 만행을 허용한 투표제도가 프랑스를 망칠 것이라고 했지만, 프랑스의 투표 사례는 전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후, 프랑스는 왕국을 계속할 것이냐, 공화국을 할 것이냐를 놓고 1875년, 투표가 시행되었습니다. 이 선거는 프랑스의 국가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투표였습니다. 당시 왕당파와 공화파의 국회의원은 똑같이 353명이었답니다. 투표 결과는 알 수 없겠죠?

 

그러나 막상 당일.... 왕당파 의원 한명이 급성 복통으로 투표에 불참하게 되면서 1표 차이로 공화파가 이겼답니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1,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를 이끌었던 제 3 공화국은 이렇게 탄생했답니다. 반면, 1940년에 3 공화국이 몰락한 것도 1표 차이었습니다. 공화당 의원 중 한명이 점점 우월의식에 빠진 공화당에 반기를 들면서 1표 차이로 공화당이 몰락했거든요.

 

 

이제 영국의 경우를 볼까요?

 

투표제도를 전세계에 확산시킨 영국... 영국 역사 역시 1표 차이로 운명이 바뀐 경우가 많았답니다.

 

1645년. 영국은 청교도인이었던 크롬웰이 독재관이 되어 정권을 잡았습니다. 대대로 왕정이었던 영국에서 의회대표가 독재권력을 잡은 일은 충격적이었지요. 크롬웰은 이후 항해조례와 같은 법령으로 북유럽에 자신의 업적과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또, 크롬웰의 독재를 참지 못한 개신교도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해 미국 동부연안 등을 개척하게 되면서 북미의 서부개척시대도 시작된답니다.

 

이렇게 역사에 이름을 남긴 크롬웰의 등장은 극적이었습니다. 성공회와 카톨릭, 청교도, 개신교 등 종교가 다양했던 영국 의회는 크롬웰을 영국 총사령관으로 임명할 지 치열한 논의끝에 투표를 시작했습니다. 투표결과는 91대 90... 한표 차이로 크롬웰이 임명되었고, 영국과 유럽, 미국의 역사가 바뀐 것이지요.

 

크롬웰은 1표 차이의 신임을 토대로 국왕인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영국을 공화정으로 바꿔 버립니다. 또 영국이 해외진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죠. 단지 청교도를 너무 좋아해서 영국 전역을 수도원처럼 만들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술도, 담배도, 자유연애도 엄격히 금지하는 그의 성향 때문에 영국인들은 감옥같은 세월을 보냈으니 말이죠.

 

 

결국, 영국의회는 크롬웰을 추방했습니다. 그리고 급히 독일에서 왕실의 후손인 하누버를 데려와 영국의 왕으로 삼고 영국 왕가를 다시 살리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왕실재건이 급해도 독일핏줄이 섞인 영국인을 왕으로 삼기는 무리겠죠? 영국의회는 독일인 등 타지역 사람들도 영국에서 살 수 있다는 '주거법'을 급히 만들어 투표를 실시하였습니다. 대부분 영국인들은 반대했지만, 주거지가 다른 웨일즈, 스코틀랜드 등 다른 지역 의원들은 주거법을 좋아했지요.

 

이 투표는 영국본토 국회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타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에 1표 차이로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18세기 영국 하노버 왕조가 탄생하면서 영국 왕실의 전통이 이어진 것이지요.

 

1표 차이로 만들어진 이 주거법은 영국 왕실 뿐 아니라 영국 본토(잉글랜드) 외의 타주민들이 영국인들과의 지역 차별을 없애는 1등 공신이 되었답니다. 뭐, 왕도 수입하는데 노동자 이주 쯤이야 문제도 안되는 일이 된거죠.

 

이제.... 민주주의의 지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한번 볼까요?

 

미국의 초기 역사는 극적인 한표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초창기, 미국 대통령을 뽑는 하원의원 선거에 토머스 제퍼슨이 후보로 나왔습니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서 초안을 잡고, 미국의 행정 제도를 구상한  유명한 대통령이죠? 그는 강력한 후보인 아론 버르 후보를 단 1표차이로 이겼답니다.

 

미국 역시 초창기에는 상원, 하원 국회의원들이 간접투표로 중요안건이 결정되었습니다. 아직 국민투표도 없었고, 여성이나 노동자, 흑인은 지역대표를 뽑는 일조차 참여할 수 없었답니다. 따라서 100~300명이 투표했던 미국의 간접선거에서는 유독 1표차이의 결과가 많답니다.

 

잭슨 대톨령, 루서포드 대통령, 루즈벨트 대통령, 코픈비 대통령 등 많은 대통령들이 한표차이로 대통령이 되거나, 동점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회의장의 결정으로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대통령 뿐 아니라 미국의 50개 주도 1표 차이로 운명이 갈렸습니다.

 

1843년. 미국인들은 서부개척으로 얻은 워싱턴, 오리건, 아이다호를 미국의 주로 편입시킬 것이냐, 독자적인 지역으로 분류할 것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사유재산을 주장하는 이들은 개척으로 얻은 땅은 독립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미국을 하나의 연방으로 세울 것을 주장하면서 올-아메리카로 편입해야 한다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관련 국회의원들이 참여한 투표는 51:51로 팽팽했고, 미국의 운명을 가를 시간을 계속 지나고 있었습니다. 끝없는 토론 끝에 결국 상원의원 마티유가 찬성표로 돌아서면서 워싱턴은 미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남부의 텍사스도 마찬가지랍니다. 당시 텍사스 국회의원들은 26:26으로 텍사스의 미국 편입 찬반이 팽팽했습니다. 끝없는 토론이 계속되면서 미국 남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답니다. 결국 헤네가라는 상원의원이 편입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텍사스도 1표차로 미국 영토가 되었습니다.

 

 

자, 이제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운명을 바꾼 1표를 알아볼까요?

 

1939년,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군국주의 국가와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필요한 병력을 의무적으로 징병해서 군인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징병제도법'을 만들었답니다. 그러나, 징병법은 임시법이었습니다. 본토가 공격당한 것도 아니고, 원한다면 미국은 전쟁에서 빠지면 되거든요.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끝없이 내몰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세계 2차대전은 끝날 기미가 없었습니다. 1941년 8월. 미국은 징병제도법을 연장할 것이냐, 끝낼 것이냐를 놓고 전체 연방 의원들과 각 주의 대표들이 모여 투표를 했습니다. 전쟁과 관련이 없었던 주에서는 징병을 반대했고, 미국 참전의 필요성을 인식한 주에서는 징병법 연장에 찬성했습니다.

 

그 결과 단 1표 차이로 징병법의 18개월 연장이 통과되었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통과된지 4개월만에 일본이 미국령인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미국은 세계대전의 중심국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징병법으로 마련된 군수물자와 병력으로 대항하였습니다. 일본은 자살특공대인 가미가제까지 동원하면서 미국의 군수자원과 병력을 감당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답니다. 만약, 징병법이 부결된 채로 미국이 일본에 전쟁을 했다면 좀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전쟁이 되지 않았을까요?

 

 

전국민이 투표에 참여하는 21세기에는 1표로 운명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니, 투표인단이 3000만명이 이르기 때문에 1표차의 역전이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3000만명 중에 '나하나 쯤이야'라고 생각하고 빠지는 사람이 0.3%인 10만명만 되어도 국가의 운명은 바뀔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단 몇천표 차이로 역전되는 지역이 많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몇십만표 차이정도로 운명이 바뀌니까요.

 

역사를 통해 1표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투표가 미래를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표를 뽑는 선거는 대부분 표를 행사하는 투표로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투표가 귀찮다, 혹은 하기싫다고 생각한 40%의 국민들이 투표에 참여한다면 0.3%의 차이로 결정되는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