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1. 원시-선사-석기시대를 구분하자.

원시시대라는 용어는 인류가 고대 이전 공동체 생활을 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흔히 원시 공동체 사회라고 하며, 생산과 분배가 씨족 또는 부족의 공동체 소유로 규정되던 사회를 말합니다. 이 용어는 사회 발전단계상 원시-고대-중세... 등등 시대 구분과 관련된 용어입니다.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전의 문자가 없는 시대를 말합니다. 즉, 어떤 시대이든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면 무조건 선사시대인 셈이죠. 한반도에서는 최초의 기록이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기 때문에 우리 나라 역사에서 선사시대란 기원전 2세기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당시에는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있었으므로, 이 시기가 원시시대는 아닙니다. 즉, 한반도에서 원시시대는 국가가 없는 공동체 사회를 뜻하므로 고조선 이전의 시기를 말합니다.

석기시대는 고고학적으로 볼 때, 도구 사용 기준에 맞춘 시대입니다. 즉, 돌을 이용한 구석기, 신석기 시대가 석기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석기시대 이후가 국가가 발생하는 청동기 시대이므로 우리는 보통 석기시대가 원시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청동기의 사용으로 정복전쟁이 많아서 노예계급과 군장계급이 발생하였고 국가가 건설되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청동기 시대는 원시시대를 넘어가는 시기가 되는 것이죠. 이 논리에 맞추어 최근에서 청동기 국가인 고조선도 한국의 고대사회로 파악하기도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고대시대를 보통 삼국시대가 정립된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단, 석기시대가 꼭 원시시대는 아닙니다. 신석기에서도 생산력이 높아지면 국가와 계급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그 시기가 원시를 넘어 고대 사회가 되기도 하죠.

역사를 공부할 때 꼭 원시, 석기, 선사 시대를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용어 구분를 하고, 이 시대를 교과서나 개론서에서 다루는 이유는 단지 우리 민족의 기원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프롤로그 수준의 내용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신석기 문화가 시작되다.

구석기 시대는 솔직히 우리 민족사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한반도라는 우리 터전이 자리잡은 시기도 아니고, 구석기인들의 문화가 우리와 관련도 별로 없습니다. 실제 우리 민족사는 신석기인들부터라고 보아도 무난합니다.

신석기 문화는 식량 생산을 하던 문화로서 돌을 갈아 도구로 사용하던 간석기인이며, 농사를 통한 음식을 저장히기 위해 토기를 사용한 최초의 문화였습니다. 특히 이 토기는 빗살이 나타나 있는 빗살무늬토기로 이 빗살무늬 토기는 서쪽 핀란드, 러시아,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등 대량으로 출토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빗살무늬 분포로 보아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주인공은 시베리아에서 이주한 고아시아족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시베리아 고아시아족은 조상으로 곰을 숭배한 사실이 있는데, 이러한 요소가 단군신화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신석기 문화는 기원전 5천년전 쯤 시작되었고, 처음에 신석기인들은 농경과 관련하여 강가나 해변에 거주하였습니다. 또한 사냥, 어로 활동도 활발하였으며 부분적으로나마 사회분화도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이 당시 농경으로는 도토리가 주목됩니다. 도토리는 가루로 만들어 물어 타면 훌륭한 식량이 되며, 칼로리도 높았던 만큼 이 도토리를 사용한 흔적이 확실하진 않지만 보인다고 합니다. 도토리, 과일류, 나무열매류, 토란, 마, 칡 등이 식량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신석기인들이 생산한 곡식은 피, 조, 기장, 수수 등 많았는데, 특히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에서는 불에 탄 곡물이 나와서 이러한 농경 생활의 증거를 보여줍니다. 농경은 조 중심의 밭농사였지만, 한강하류 김포지역에서는 볍씨들도 발견되곤 합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시기를 놓고 신석기설과 청동기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3. 마을을 이루고 자연을 숭배하다.

신석기인들은 혈연중심의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하는 이 평등한 사회는 지배자가 없었습니다. 또한 같은 마을 남녀끼리는 결혼할 수 없는 족외혼 사회인 것으로 보아 주변에 결혼을 할 수 있던 다른 씨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씨족 혈연 및 주변 지연관계의 부족사회가 존재하였음을 알수 있으며, 공동체 운영단위는 씨족 중심에서 점차 부족 중심으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석기인들은 숭배된 동물을 믿는 토템시상(토테미즘), 우주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정령신앙(애니미즘),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무당사상(샤머니즘) 등 종교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교는 아마도 농경사회에서 갖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시체 머리를 일부러 동쪽으로 향하게 하는 관습은 동쪽을 해가 뜨는 곳으로 보아 영혼의 소생처로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불멸사상을 의미합니다.

특히 샤먼사상은 단순한 주술사로서의 무당을 믿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판단하는데 근거가 되는 정치적 성격으로서의 무당이었습니다. 무당은 선과 악이라는 이원적 존재를 매개하는 매개자로서의 무격신앙이었는데, 이러한 무격신앙을 보여주는 유물은 조가비 가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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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