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관련있는 히스토리아의 글 목록18건

  1. 2011.08.30 블로그세계사(4) : 대체 왜 시대를 구분하는 거야? (1)
  2. 2011.08.30 블로그세계사(3) 원시시대와 석기시대는 같은 말인가요?
  3. 2011.03.03 칼 포퍼 VS 토마스 쿤 : 역사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두 과학자들 이야기 (1) (1)
  4. 2011.02.17 (no 8) 번외편 3 : 마르크스로 <독일철학>과 <사회주의> 이해하기 (3) - 헤겔철학 (4)
  5. 2011.02.14 (no 7) 번외편 2 : 마르크스로 <독일철학>과 <사회주의> 이해하기 (2) (1)
  6. 2011.02.03 (NO. 6) 번외편 1 : 마르크스로 <독일관념론>과 <사회주의> 이해하기 (1) (1)
  7. 2011.01.28 (no 5) 본문4. 원시시대, 선사시대, 석기 시대 라는 말을 구분해보자. (2)
  8. 2011.01.25 (NO 3) 본문2. 근대, 현대라는 시대 구분 알아보기 (4)
  9. 2010.10.06 근대를 보는 창 20 - (03) 아는 것이 힘, 책 속에 길이 있다!(독서 출판 분야)
  10. 2009.08.07 석기시대와 원시시대.. 그리고 원숭이들 (3)
  11. 2008.12.16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3) - 역사학과 사회학이 싸우던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12. 2008.12.07 남한 지폐에 그려져 있는 이황, 북한에서는 질낮은 반동분자로 평가받는다. (8)
  13. 2008.05.31 역사적으로 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길고 긴 대립과정 (1) (2)
  14. 2008.05.09 환타스티아 (6장) : 서구의 신화에 대한 깊은 환상 - 드루이드 (1)
  15. 2007.06.03 14-15세기 : 서유럽 도시와 길드체제에 대한 분석
  16. 2007.01.24 청동기의 사용과 한반도의 변화상을 알아봅시다. (1)
  17. 2007.01.14 러시아사 10 - 러시아 산업혁명 (1)
  18. 2007.01.13 역사라는 말의 어원과 동서양 역사인식의 차이점 (2)

블로그 세계사 4

'대체 왜 시대를 구분하는 거야?'

역사를 공부할 때, 고대니, 중세니 하는 시대 구분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이 시대구분이란 언제 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된 것일까?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자,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시대 구분에 대한 이야기야.

도대체 고대니 근대니 현대니 하는 것은 누가 어떻게 정한걸까? 뭐, 고대가 뭔지 모르고 고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우선 그것부터 끄적거려 봐야겠군.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렇게 시대를 나눠두는 것을 <시대 구분>이라고 한다나 뭐래나.. 이 시대 구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분이 바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이야. 하지만, 이 사람이 처음으로 시대구분을 한 것은 아니고, 그냥 가장 유명한 시대구분일 뿐이지.  

사실, 시대구분이라는 것은 스스로 <근대인>이라고 생각했던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야.  혹시, <르네상스>라는 말은 들어봤어? 미켈란젤로니, 라파엘로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선생이니 하는 분들 나오는 서양 15-16세기 시대를 말하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지. 문화, 예술, 학문이 모두 옛 시대보다 뛰어났고, 신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도 막무가내로 믿사옵니다~~~를 외치던 중세보다 진보했다고 믿었거든.

그래서인지 이전 시대와 자신들의 <자부심>있는 시대를 꼭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시대구분이란 것을 만들어놓은 거야.  뭐, 한자로 봐도 딱 답이 나오네. 고대는 옛 시대, 중세는 중간세상, 근대는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대....

하지만 시대구분이라는 게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야. 역사를 살아가는 건 우리 인간들이니깐, <인간>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지금과 다른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임의로 나누어 놓은 게 바로 <시대>라는 단어거든.

예를 들어, 내가 일기를 쓸 때에도 나의 유아기, 유치원기, 소년기, 청년기... 뭐 이렇게 나누지만, 사실 그건 내 맘대로 기준을 잡고 대충~ 정한 거잖아. 14살까지가 소년기라는 증거 있어???

또 하나 예를 들자면,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창세시대, 아브라함시대, 유대시대, 예수시대... 등등으로 시대를 나누었어. 하지만, 이것도 크리스찬이 아니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꺼 아냐? 반대로, 르네상스인들의 시대구분은 <크리스찬>들이 보기엔 신앙에 맞지 않잖아? 뭐, 이렇게 사람에 따라 임의적이라는 거지.

어쨌든 간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서양의 근대인들은, 근대가 시작된 15세기를 무지 자랑스러워 했어. 솔직히 그 이전 시대인, 중세 시대에는 기사도가 어쩌구, 십자군 원정이 어쩌구, 교황이 어쩌구 말은 많이 했어도 <우물 안 개구리> 시대였거든.

한번 <근대인>들의 눈으로 중세를 바라보자. 

아직... 미국이라는 신대륙도 아직 몰랐고, 아시아 애들이랑은 무역도 제대로 못했고, 종교개혁도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  한마디로, 아시아인들은 각각 무역권을 만들고, 문명간 교류도 활발히 하고 하던 시기에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들끼리 죽자 살자 치고 받고 싸운 시대.... 휴... 우리가 100년전의 시대를 지금보다 덜 발달한 시대라고 생각하듯이 근대인들도 중세 시대가 쫌~ 한심했겠지?

그런데, <근대>라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어. 이제, 짜잔~ 하고 <세계화> 시대가 시작된거야.  콜럼버스가 신대륙도 발견하고, 아시아 무역권에 가서 후추도 얻어 왔어. 와~ 세상이 이렇게 넓고, 신기한 세상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겠지? 이런 새로운 세상을 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어?

야...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항로 개척.... 우리 쫌 잘나가기 시작하는구나...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믿었던 가치관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의 세상이 너무 현실과 달라보이기 시작한 거지. 자, 그럼 이 시대에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몇몇 인물들의 가상 대화를 통해 살펴볼까?

교황 : 야... 니들 라틴어 읽을 줄 모르잖아. 내가 성경책 읽어 줄테니 잘 들어. 하나님께서는 <면죄부>라는 티켓을 사는 사람에게 천국을 예약하셨거든. 무식한 일반인들아, 이해되었니? 자, 줄서... 티켓사세요.. 티켓... 교황한테 돈 바치면 천국가요... 교황믿음 만세천국 교황불신 바루지옥.....

로렌쪼 발라 : 놀구있네. 내가 조사해 봤더니, 교황이랑 황제랑 밀약맺고 둘이 이중장부 만들어서 이 땅, 저 땅 다 나눠먹었던데...  이게 뭐야~ 대체, 교황이 판교지구 투기업자랑 뭐가달라? 교황이랑 프랑크 왕국 황제랑 서로 땅따먹고, 정치자금 대주고 이런 뒷거래 했다메? 내가 자료 다 찾았다. 뭐 지금부터는 성경책 내가 직접 읽을란다. 니가 읽어주는 거 안 믿어.

루터 : 라틴어? 되었구... 지금부터는 모국어로 성경책 번역해줄테니 그거 읽으면 되겠다. 성경 직접 읽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힘으로 종교를 바꿔 보자구요. 일단, 교황 자금줄 좀 끊어놔야겠네. 그래야 존경하는 우리 귀족분들이 힘좀 쓸거 아니겠어? 교황불신 귀족만세~~ 종교개혁 만세~~~

  갈릴레이 : 근데, 교황이 한 말을 반박해도 될까? 내가 망원경 만들어서 보니깐 지구가 돌던데.... 근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내가 안했는데... 어떤 넘이 책 팔아 먹으려고 그런 말을 써 놓았어?

콜롬버스 : 그래? 그럼 난 지구가 돈다는 말도 믿을께. 지구가 둥글다는 말도 믿어볼께. 이제,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서 인도 가봐도 될까? 진짜 간다.. 진짜루.... 지구 반대로 갔다가 낭떠러지 만나서 죽는 거 아니지? 확실... 하지? 후덜덜...

뭐, 점차 이런 분위기가 되가는 거다.

세상이 바뀌고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알았으니, 유럽인들도 이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뭔가가 필요했던거야. 이제, 아시아 애들 노는데도 좀 놀아달라고 애원해보고, 무역도 같이 해보고 싶었겠지.

한마디로!! 유럽애들도 점차 <스팩!>이 마련된 거야. 그래서 서양인들은 지금까지의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점을 만들고, 과거와 다른 <스팩!>을 갖춘 <신유럽인>을 표현할 용어가 필요했던 거지. 

그리하여....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시대인 먼 옛날의 시대를 <고대>라고 규정했어. 그리고, 로마 제국의 유산이 사라진 시대를 <중세>로 표현한 거지. 그리고 르네상스를 겪은 자신들의 위대한~ 시대를 <근대>로 부르게 된 거야.

그런데 말야. 문제가 생겼어. 15-16세기에 살았던 르네상스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가장 가까운 시대인 <근대>라고 표현했는데, 시간이 계속 지나니깐 19세기, 20세기가 온 거야. 헐.... 그럼 이 새로운 시대는 또 뭐라고 불러야하지???

서양의 학자들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지. 아... 산업혁명이 시작되더니, 뭔가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뀌고, <근대>와는 다른 또 다른 <신세계>가 시작되었는데, 이걸 무슨 용어로 표현해야 하냐구....

그래서, 세계 1, 2차 대전이 끝날 때쯤 새로운 용어를 찾게 된 거야. 히틀러가 자살하고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고 난 이후... 새롭게 변화한 세상.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된 세상. 즉, 1945년 이후의 세계를 표현할 새로운 용어를 창작한거야.

그것이 바로 근대보다 더 지금을 표현할 수 있는 시기, 즉 <현대>라는 용어인거지. 그리하여.... <고대-중세-근대-현대>라는 4단계 시대구분법이 드디어 완성된 거야.

아까 위에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 보았지?

마르크스는, 이런 4단계 시대 구분법에다가 자신의 철학을 합쳐서 <마르크스식 시대구분>을 만든 사람이야. 그 사람은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 등을 거치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은 사람이지. 그래서 그 사람을 사회주의자이자, 공산주의 사상의 아버지라고도 표현하곤 해.

마르크스는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구분에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등을 짝~ 리믹스해서 자신만의 시대구분을 만들었지. 물론, 이 사람 말고도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에 자신의 철학을 붙여 시대구분을 한 사람은 많겠지?

그런데, 이 시대구분법은 문제가 있었어. 뭐~ 19세기 이후에 서양 애들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 시대구분법을 널리 애용했거든.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이게 너무나 안 맞는 다는게 큰 문제였지.

생각해봐봐. 한국이나 중국, 일본 역사에다가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런 단어들를 끼워 맞추려고 하니깐 안 맞는게 한두가지겠어? 한국인이 15세기 르네상스를 살았던 사람들이 아닌데, 서양애들이 살았던 시대를 무리해서 적용하기엔 너무 안맞아서 삑사리가 나지 시작한거지.

서양 애들도 골치가 무척~아팠을 거야. 서양식 시대구분이 만능인줄 알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적용이 안되니깐 환장하겠지.

해결책은 뭘까?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주 심플한 해결책을 내놓았어. 심플하다기 보다는 귀찮아서 대충 방법을 마련한거지. 시대구분이 애매한 아시아에다가는 몽땅 다 <중세 수준이네>를 가져다 붙여 버리면... 참~ 쉽죠.. 잉~ 

영국의 스펜서 : 뭐야... 중국, 일본, 한국, 인도, 오스만 제국... 이것들은 나름대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라면서 19세기까지 쭈욱~ 중세 봉건시대 수준이네. 그니깐 니들이 우리 서양한테 정복이나 당하지 ㅋㅋ 찌질이들~

하지만, 그나마 아시아에서는 <메이지 유신>이니 뭐니 하면서, 쫌~ 산다 싶었던 <일본> 이라는 나라가 있었어. 아시아의 다크호스~ 일본이 그 말에 바로 발끈~ 했지.

일본 : 되거든!!! 웃기지도 않네..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대로 발전과정이 있거든! 니네 유럽애들 발전이랑 다른 면도 무지 많거든? 니들이 <천황제도>를 알고, <막부시대>를 알아? 글고... 우리도 <메이지 유신>으로 나름 수준급으로 발전했는데, 몰랐어? 니네 시대 구분이 좀 우리랑 많이 다르네. 아시아에는 근대도 아니고, 현대도 아니지만, 독특하게 발전했다는 걸 왜 몰라주는 거야? 오 좋아.. 우리 아시아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그 시대... 그걸 <근세>라고 부르면 되겠네.

그리하여 일본 학자들의 연구로, 4단계 시대 구분법이 <근세>를 포함한 5단계 시대 구분법으로 정착된거야. 그래서~ 아시아 역사에서는 바로 이 <근세>라는 말도 종종 사용하기 시작했지.  물론 우리 한국사에서도 지금 사용하고 있구.

뭐, 암튼 중요한 것은 서양식 시대 구분이라는 것이 우리랑 너무나 안 맞는다는 거야. 우리식으로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때려 맞추려고는 하는데, 당연히 서양애들이랑은 안 맞는게 너무 많겠지? 도대체, 서양의 고대 국가인 로마 제국이랑 데칼코마니처럼 완전 일치하는 우리 고대 국가가 어디 있겠냐구...

그리고 우리 나라 국사 교과서도 한번 봐봐. 뭐, 고대 사회로의 발전, 근세로의 전환... 이런 거창한 제목들은 많이 나오는데, 왜 고대고, 왜 근세고... 이런 설명들은 살짝 생략되어 있잖아~~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 학자 님들께서 고민해서 만들어놓은 시대구분이 있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교과서에는 없지만) 설명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 지금부터는 그거라도 참조하면서 글을 써야 할 것 같네.

그런데, 이 점은 분명히 해둬야 할 것 같아. 여기서 시대구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는거... 기존의 모든 역사가들이 자기 나름대로 <시대 구분>을 해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시대 구분이라는 걸 다루는 것 뿐이야. 사실, 시대 구분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필요하면 원하는 대로 시대구분을 해 버려도 상관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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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3

'원시시대가 석기시대인가요?'

역사를 처음 시작할 때 등장하는 것들이 바로 시대구분이라는 용어다. 그러나 사실 원시시대와 석기시대는 같은 뜻으로 사용하면서도 약간 의미가 다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짚고 넘어가보자. 그건 석기시대와 같이 혼돈해서 쓰는 잘못된 용어들이지.

석기시대란.... 말 그대로 石器... 을 도구로 쓴 시대란 뜻이야. 보통 우리가 stone-age 라고 알고 있는 시기이지만, 실제로는 stone implement 라는 말이 정확한 거지.

구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후진 돌... 새 돌.... 반짝거리는 청동.... 무지 강한 철.... 즉...생활 도구를 돌(石器)을 사용했느냐 금속을 사용했느냐로 나누는 기준인 것이야. 원숭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역사시대가 아니라는 말 했었지? 이건 순전히 고고학이라는 학문에서 인류 발전 단계를 나타낼때 쓰는 용어야.

석기시대를 이야기할 때, 선사시대라는 말도 같이 쓰지만 석기와 선사는 달라.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의 반대말이지. 先史란 말이 역사보다 먼저란 뜻이잖아. 먼저 선!!! 따라서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 이전의 모든 시기가 선사시대야.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단군 신화고... 단군의 고조선은 보통 청동기 때 세워졌다고 하니깐, 청동기 이전은 모두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겠네....

한국사에서.... 구석기 + 신석기 + 이른 청동기 = 선사시대

또... 원시인들이 살았던 옛 시대를 원시시대라고 대충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석기시대랑은 다른 개념이지. 원시시대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을 말하는 개념이야.

원시시대는 사회주의자였던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념인데, 마르크스는 제대로 된 정치력을 가진 국가가 생기기 전의 시대를 원시 시대로 불렀어. 마르크스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했지.

공산주의란, 말 그대로 공산(共産).... 공동으로 생산해서 재산을 공동으로 나누는 이상적 사회를 말해. 인류는 원래 <원시사회>라는 시기에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였는데, 국가가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평등이 깨졌다고 생각한거지. 즉, 원시시대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평등사회를 지칭하는 말이야.

원시원시공산사회(부족공동체 사회) - 고대 국가 - 중세 국가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

위에 적은 사회 발전 단계를 보니깐 대충 알겠지? 돌을 사용한 석기시대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원시사회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 원시사회지만, 돌을 안 쓴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석기 사회에서 고대 국가가 생긴 사회도 있을 수 있지.

아메리카의 고대 잉카 문명 같은 경우에는 석기 시대때 이미 찬란한 문명 사회를 이루었고, 아마존 부족들은 원시사회였지만 금속을 사용할 줄 알았다잖아.

자, 그럼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확실히 알았으니깐, 석기시대로 출발해볼까? 끄적끄적...

2. 구석기의 인류란?

보통 역사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류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그냥 상징적인 개념일 뿐야. 오스트랄로가 오스트레일리아 할 때, 그 남쪽이란 뜻이고, 피테쿠스는 <원숭이>란 뜻이지. 한마디로, 걍 남쪽에서 발견된 원숭이란 뜻이야.

근데, 305만년전이라는 까마득한 시절의 원숭이가 역사책에서 인류의 시조로 등장한 이유는 뭘까?

그건 그냥 두 발로 걸어다닐 줄 알았고, 손에 돌을 들고 뭔가를 부실 줄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손에 돌을 들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살았으니 이 때 부터가 이미 <석기> 시대겠지?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조상을 정하면, 여의봉을 들고 킥킥거리며 하늘은 나는 털보원숭이 손오공도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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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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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실 이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원숭이들도 다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어. 400-500만전의 원숭이들 중에서도 <라마피테쿠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원숭이들이 있었거든... 그 이후로 호모 에렉투스니, 호모 사피엔스니... 기타 등등 원숭이들이 많이 발견되었다나봐. 뭐, 우리랑 상관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구...

근데 원숭이들 학명은 대부분 <호모 Homo>가 들어가지? 호모란 원래 고고학 학명으로 <인간 human>이라는 뜻이지. 남성과 여성 할 것 없이 인간 자체를 뜻하는 학명인데, 요즘 사람들은 동성애자나 성정체성이 불명확한 사람들을 호모라고 부르고 있어. 그럼 안된단다... 땍~~~

다음 장에서 할 이야기도 역사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살포시 짚어봐야할 이야기지. 바로 시대구분~~ 이라는 거야. 위에서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원시사회니 고대사회니, 공산주의 사회니 하는 구분을 떡 하니 말했었지? 그런 건 대체 왜 하는건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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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전 : 누구의 영향력이 더 클까?

칼 포퍼 VS 토마스 쿤 : 역사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두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자>들의 이야기

오늘 전개할 이야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역사철학에 너무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과학자> 이야기이다.

바로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칼 포퍼>와 과학사 뿐 아니라 모든 인문과학분야에 <패러다임>이라는 명제를 던진 <토마스 쿤> 이야기이다. 그럼 두 인물의 상반된 이론을 이해해보고, 후대 역사학자들이 왜 이들의 이론을 역사에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보자.

칼 포퍼가 1902년, 토마스 쿤이 1922년에 태어났으니까 두 학자는 20년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토마스 쿤이 이미 <유명한 이론가>였던 칼 포퍼의 이론을 반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칼 포퍼가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는 서양의 제국주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칼 포퍼는 관용이나 열린 사상과 같은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서구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두 철학자의 역사관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19세기 사상에 대한 <수용>이라고 볼 수 있다.

토마스 쿤은 학창시절부터 사회주의에 빠진 인물이다. 노동운동이나 자본에 따른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그 학창시절이 바로 <세계 2차대전> 중이었다. 반면, 칼 포퍼는 제국주의를 직접 경험한 세대인 만큼 서구의 미덕과 도덕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유명한 저서에서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반감을 보였던 인물이다.

여기에서 두 철학자의 핵심 이론의 배경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칼 포퍼는 스스로 <계몽주의>자이기를 원한 인물이다. 그는 문명국가인 서구사회가 미개한 <비문명사회>를 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리고 그 서구사회의 길잡이는 <미국>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의 글에는 미국과 서구에 대한 자부심이 많이 들어가있다. 어떤 경우에는 역사가 특정한 법칙과 사회진화사상에 따라 <발전>한다는 담론까지 제시하기도 한다.

반면, 토마스쿤은 <계몽사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예 더 나아가 과학이 우리에게 진리를 제공하고 진보를 준다는 생각자체를 오류라고 말해 버렸다. 그래서 토마스쿤은 기존의 과학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상이 기존의 사상을 대체한다고 말해 버렸고, 그것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19세기 최고의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1850년대 동시에 등장한 혁명적인 이론 2가지였다. 하나는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 포함된 <종의 기원>이라는 과학사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또 하나의 책은 사회주의의 아버지 마르크스의 역작 <자본론>이었다. (마르크스는 종의 기원과 자본론이 같은 시기에 출판된 것을 두고, 최고의 역작들이 동시에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 포퍼는 마르크스는 철저히 비판했고, 진화론은 사회진화론으로 어느 정도 수용했다. 반면, 토마스쿤은 과학이론에서의 진화는 불신했고, 마르크스가 주장한 <변증법>은 어느 정도 인정했다. 토마스 쿤이 주장한 <패러다임 이론>은 사회현상이 일반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혀 새로운 사회나 문화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자 그럼 이 두 과학자를 왜 역사 이야기에서 다루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의 이론이 과학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역사, 사회 전반에 너무나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역사철학에서도 이 두 학자의 이론을 완전히 배재한 채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기가 버겁다.

그럼 먼저 <칼 포퍼>의 이론과 역사철학을 한 번 볼까?

- 칼 포퍼와 <과학적 검증>

19세기 독일의 랑케를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랑케가 <역사학>을 다른 인문과학분야에서 독립시켰기 때문이다. 랑케는 국가의 공적인 자료들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해석해서 과거의 사실을 밝히는 것을 역사학이라고 말했다. 역사학은 역사가의 편견이나 해석이 들어가서는 안된다고도 말했다. 과거의 정치, 제도, 문화를 밝히는데 있어서 편견이 들어간다면 그것은 정치학이나 사회학이 될 것이다. 역사학의 임무는 <과거> 그 자체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다.

그럼 과거 그 자체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가장 명확하게 밝히는 방법은 무엇일까? 20세기 역사학자들은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리고 랑케의 역사학을 넘어서서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아날 사학자들은 인간의 역사를 아주 오랜 기간동안 관찰하면서 일상적인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변화까지도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인간들이 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대처하는지에 대한 법칙을 찾고, 전체적인 역사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지중해의 어떤 섬에 인간이 살게 된다면 그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여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시도와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그 섬의 모든 인간은 낚시를 하거나 사냥을 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게 된다. 결국 그 섬에 사는 인간들은 일정한 패턴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구조사학자들은 인간이 역사 속에서 만들어 온 모든 유산들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만들어서 구조화시키려고 했다. 예를 들어, 머리모양의 역사, 방부제의 역사와 같은 시시한 것들도 하나의 역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의 역사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과거부터 현재까지 밝혀낸 뒤 원인과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무엇을 밝혀야 하고, 어떤 방법을 활용해야 하는지는 역사학자들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칼 포퍼>의 과학 법칙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칼 포퍼>는 <논리주의> 또는 <경험주의>와 과학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면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예를 들면, 근대인들은 점성술을 믿거나 신에 대한 믿음, 별자리와 같은 것을 통해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었다. 칼 포퍼는 말한다. <신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인간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는가? 당연히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신의 존재>는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 되려면 제일 먼저 그것이 아니다라는 <반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은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반증가능성>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신>이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다. 신을 믿는 사람은 그 마음에 따라 행동한다. <교회에서는 불경이 아니라 찬송가를 부른다>는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신>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신의 존재가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논리나 경험만을 따지는 <논리학, 경험주의, 실증주의>에서의 신은 과학도 아니고, 의미도 없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신이 과학은 아니라고 해도 <의미>는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건전한 보수주의자이자, 서구학자인 포퍼의 <도덕적 논리>인 것이다.

반면, <앞으로 비가 올 것이다> 라는 명제가 있다고 하자. 이건 <과학>적인 것일까? <논리주의>에 따르면 이것은 맞는 명제이다. 비는 언젠가 올 것이니까.... 하지만 포퍼는 이것이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첫째, 이것은 과학을 모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도 비온다는 말은 할 수 있다. 단지, 그게 장마철에 올지, 3년 뒤에 올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둘째, 이것은 <반증>이 안된다. 앞으로 천년간 비가 안왔다고 해서 저 명제가 틀릴까? 아니다. 만년 뒤에, 혹은 백만년 뒤에 비가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지구가 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증명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말들은 과학이 안되는 것이다.

즉, 포퍼에게 과학이란 <100% 완벽하게 검증>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럼 검증이란 어떻게 해야 과학이 되는 것일까?

카르납이라는 과학자가 검증이란 <확률>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최고의 투수가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1000개를 던졌다. 그럼 100% 검증은 못하더라도 저 투수는 다음 번에 스트라이크를 던진다는 법칙은 거의 맞을 것이다. 즉, 신뢰도가 무지 높아지기 때문에 검증이 곧 <확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포퍼는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리 만개의 스트라이크를 던져도 반증가능한 확률이 0.00001% 만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에 <확증>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논리를 중요시하는 <햄펠>이라는 실증주의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과학적 명제나 지식을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기호(원자명제)로 바꿔서 번역해 버리면 <확률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이다. 예를 들면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반드시 물이 이루어진다.>는 100% 확증일 수 없지만, <H2 + O = H2O> 라고 과학적으로 바꿔 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퍼는 말한다. 그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어떤 과학적 실험에서 <반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과학인가, 아닌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즉, 포퍼가 생각한 과학이란 <100% 완벽한 검증>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검증의 문제를 놓고 포퍼와 햄펠이 격론을 벌였는데, 여기서 바로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난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 칼 포퍼와 <역사의 법칙>

칼 포퍼는 위에 언급한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의 연구방법이 역사의 핵심을 밝히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랑케처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원문을 번역하듯이 밝혀놓기만 하면 어떤 역사가 중요하며,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어떤 법칙이 숨어있으며, 그것이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포퍼는 역사학을 자연과학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자연과학이 <100% 옳은지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을 밝히는 학문이라면, 역사학은 어떤 과거의 사건들을 전후관계(인과관계)를 따져서 100% 법칙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 그럼, 알기 쉽게 포퍼가 생각한 법칙을 정리해보자.

조건(Control) : 2월 혁명의 원인은 왕정의 무능력함이었다.

법칙(Low) : 지배층이 무능력할 경우 혁명은 발생한다.

결과(Effect) : 2월 혁명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포퍼는 어떤 조건이 제시되었을 때, 그것이 역사법칙과 맞아떨어진다면 100% 결과가 도출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사회과학이 발달하면서 역사를 규칙 속에서 바라보려는 역사학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진 이론이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이와 비슷한 조건이 있었는데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포퍼는 간단히 말한다. 법칙에 해당하는 어떤 조건이 빠진 것이라고.... 한마디로 빠진 걸 알아서 잘 찾아보라는 이야기다.

그러자, 햄펠이 포퍼의 이론에 바로 반박하였다. <미국독립혁명>과 같은 경우에는 프랑스 혁명의 원인과 상관없는 <조세문제, 식민지 문제> 등이 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역사를 설명할 때는 굳이 어떤 법칙이나 증거를 들이대지 않고, 원인과 결과만 나열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 또는 <가장 합리적인 이유> 때문에 움직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2월 혁명에서 지배층들은 왕정의 무능함으로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다. 피지배층들은 왕정의 재정파탄으로 생계가 어려웠다. 그들이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혁명을 일으키는 게 맞다는 것이다.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가만 있다가 피해를 보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에 혁명은 당연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햄펠은 과학적 <기호>를 이용하여 이런 공식을 만들어낸다.

a : 지배층 / b : 피지배층 / c : 왕정의 무능 / d : 혁명

c라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a + b는 아주 은 률로 d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포퍼는 햄펠의 기호논리에 대해 부인한다. 기호를 이용한 수식은 <과학>적이지 못할 뿐더러, 100% 확증이 없이 <확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증명> 하거나 <반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높은 확률>은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느 정도가 높은 확률인지 증명을 할 수 없지 않는가?

위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포퍼의 핵심 주장은 <반증>이 가능한가였다.

하지만 포퍼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었다. 역사라는 학문은 인간의 과거를 다루는 데, 과연 100% 확고한 법칙으로 역사를 설명할 수 있을까?

포퍼는 여기서 한발 물러난다. 모든 역사적 사실을 100% 법칙으로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법칙으로 생각한 것은 누구나 너무나도 당연해서 법칙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거나, 당연히 법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증명하는 과정이 난해해서 대부분 그냥 넘기는 그런 법칙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동설을 주장하는 교회세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았다.> 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빠진 법칙이 있다.

<기득권 세력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면 제재를 받는다> 라는 법칙이 있지만, 너무 당연해서 그냥 원인과 결과만 설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 칼 포퍼의 <계몽주의>

자, 그럼 칼 포퍼의 역사이론을 통해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살펴보자. 포퍼는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하나의 사건은 반드시 하나 이상의 법칙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법칙들은 반드시 선후관계(인과관계)를 가진다고 믿었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것도 러시아에 진격한 것도 반드시 그 원인이 있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사에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칙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다.

20세기 사회는 19세기 서구 문명이 이루어낸 문명 이기의 총합이다. 산업혁명과 계몽주의라는 조건(Control)이 있었고, 진보한 문명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법칙(Low)이 있었다. 그 결과 서구사회는 진보의 정신으로 발전해왔다. 아프리카 등 제 3세계는 같은 조건과 법칙을 적용하여 서구 문명과 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 다윈이 생명체의 세계에서 진화의 법칙을 찾아냈듯이 서구사회는 다른 사회에 그러나 이러한 진화를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주의와 파시즘적 공산주의는 그러한 진보의 과정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칼 포퍼는 자연과학이든,사회과학분야에서든, 역사에서든 변화와 발전에는 법칙이 있으며, 그것의 결과로 사회는 발전해나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포퍼의 과학연구가 <과학이 역사적으로 전개해 온 방식>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 학자가 있다. 그는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았더니 변화나 발전이라는 말보다 <전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에서 법칙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양한 <다른 세계>들이 공존한다고 말하였다.

토마스쿤은  이런 주장들을 묶어 <패러다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 용어는 과학사 뿐 아니라 모든 인문사회과학과 역사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그럼 다음장에서 토마스쿤의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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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이야기 (NO.8)

번외편 : 마르크스로 <독일철학>과 <사회주의> 이해하기 (3)

- 마르크스 이전의 독일 역사 : 헤겔의 인생극장~

18-19세기 독일의 철학을 <관념철학>이라고도 하고, <고전철학>이라고도 부르곤 하지.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두 사람의 영향력 때문이야. 자... 여기서 유명한 말 한마디를 읽으면서 그 2명의 철학자가 누군지 한번 보자.

고대 <로마제국>은 유럽의 호수였다. 모든 고대의 문화를 흡수한 뒤, 유럽문화의 원형을 만들어 곳곳에 흘러들어갔다. 마찬가지로 칸트 이전의 모든 사상은 칸트로 흘러들어와 독일 관념론이라는 호수에 고여있었다. 그 호수는 헤겔을 통해 흘러나가 이후 모든 서양 사상의 원천이 되었다.

바로 이 두사람이다. 칸트 & 헤겔...

그럼 지금부터 칸트의 철학을 종합하여 <방대한 철학>을 완성시킨 헤겔이란 인물의 일생에 대해 알아볼꺼야. 물론, 헤겔 이야가 끝나면 제자인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시작되겠지. 일단, 아이유부터 보면서 안구 정화를 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고고...

헤겔, 이 철학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세무국 재무관이었어. 뭐, 공무원 집안이니 학비 걱정은 없이 학교를 다닐 정도는 되었겠지.... 웃~ 돈 좀 있는 중산층이닷...

처음에, 헤겔은 신학 대학에 진학해서 신을 섬기며 살겠다고 생각했었나봐. 그런데, 신학을 공부하다 보니 오히려 철학이 더 재미있다는 걸 느낀거지. 점점 어렸을 때의 맹세는 사라지고... 이제 이런 자기 합리화를 하겠지?

저기 굳이 신학을 안해도요... 철학을 하면서도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되지 않나요??? 아,, 어쩌나...

그래서 청년 시절 신학할까, 철학할까... 무진장 갈등했다고 하더라구... 아무튼, 이 사람이 철학을 하더라도, 신앙심을 완전 버리지 못했을 거라는 정도는 짐작이 가겠지?

그런데, 철학을 공부하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깐, 정말 당대에 잘나가는 대박~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어. 일단, 동갑내기인 유명한 문학가 <휄더린>.... 또, 음악가 베토벤과도 동갑이었구. 또, 5살 아래인 천재 철학자 <셸링>도 헤겔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었지... 암튼, 잘나가는 친구들은 주변에 무조건 많아야돼.

청년 헤겔은 휄더린이랑 같이 책을 읽고 논쟁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친해졌어. 피끓는 문학을 접하다보니, 자유니, 혁명이니, 세계시민이니.... 이런 말들도 많이 듣게 되었지. 그래서인지 소위 말하는 <좌파동아리>도 가입하고, 거기서 술먹고 토론하고, 노래하고... 했었지. 소위 말하는 낭만적인 대학생? 뭐, 그런 거야.

그런데 어느 날, 아니 어느 1789년.... 프랑스에서 엄청난 대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어. 헤겔은 그 말을 듣고 <굿굿굿~>을 외쳤겠지. 헤겔이 평소에 생각하던 자유니, 평화니, 인간존중이니... 그런 단어들이 <프랑스>에서 막 따끈따근하게 날아왔거든....

헤겔은 프랑스 혁명이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어. 그래서 소년구락부... 아니 아니 정치클럽의 회원이 되서 혁명을 찬양하고 다니기 시작한거야.

음... 보통 서양사 하는 분들 중 나이드신 분들이 <구락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건 그냥 <클럽>이라는 말이니깐 역사 공부하다가 <구락부>라는 말 나오면 걍 <단체, 클럽> 뭐 그런 뜻으로 해석하길 바래... <구락부>는 일본식 표현의 잔재거든...

암튼 말야. 헤겔은 친구들과 모여서 <루소 만세!>, <프랑스 만세!>를 외쳤지.

지가 무슨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주인공도 아닌데, 들판에 자유의 나무를 심어놓고 막 흐뭇해 했던 거야. 또, 프랑스의 혁명가이자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면서 스스로 <자유인>이라는 감상에 젖어 있었겠지. 헤겔은 프랑스 혁명의 자유로운 정신이 곧 <세계정신>이라고 믿었던거야.

 

<프랑스의 국가 : 라 마르세예즈>

헐... 근데 그 <프랑스 자유군>이 헤겔의 청춘에 태클을 걸었어.

프랑스 혁명군이 독일 예나 지역으로 진격하자 헤겔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게 되었거든. 일단 혁명군이 헤겔의 집을 약탈했지. 안그래도 공부한다고 아버지 유산을 다 까먹었는데, 약탈까지 당하니 헤겔은 점점 거지가 되가는 거야. 거기에 문교부 장관인 괴테가 주던 생활보조금도 전시중이라 끊겨 버렸어. 에휴... 그게 헤겔에게 닥친 현실 생활의 <세계정신>이었던거야.

그 와중에 출판사에서는 헤겔을 압박하고 있었어. 포탄이 날아오든, 약탈이 자행되던 간에 쓰고 있던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은 빨랑 완결하라는 거였지. 에구... 헤겔은 그 전쟁 중에도, 본인이 약탈당하면서도 19세기 최고 대작이라고 불리는 <정신현상학>을 완성하고, <세계정신>이 어쩌구... 하는 책을 출판한거야... 그리고나서 출판료 올려달라면서 편집장이랑 대판 싸우고 돌아다녔다나.... 하는 일화가 있지. 뭐, <정신>이 어쩌고 뭐고... 고상한 말도 중요하지만 돈은 받아야 굻어죽지 않고 살기 때문이지.

이런 헤겔의 상황을 불쌍하게 여긴 친구가 헤겔에게 고등학교 교장 자리를 던져 주었어. 이 때부터 헤겔 인생이 역전되기 시작한거지. 일단, 삐까번쩍한 직장이 있으니, 사람들 대우가 달라지지 않겠어?  나이 마흔에 명문가 딸과 결혼해서 행복한 시절이 시작되었구, 몇 년뒤부터 교수직도 얻게 된거야. 인생 역전~ 대박~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하자마자 2년만에 인기 강사가 되었어. 뭐, 대학 강사 이전에 미리 공부 많이하고 준비한 게 있으니 인기가 쑤욱~ 올라가기 시작했지. 거기에 운좋게도 철학자 피히테가 죽게 된거야. 그 후임으로 <베를린 대학>의 교수까지 되면서 최고 철학자 반열에 오르게 된 거지. 나중에 베를린 대학의 총장까지 하게 되니, 뒤로 갈수록 대박 인생이 된 인물인거지.

- 칸트 철학의 정리자 : 헤겔의 <정신현상학>

앞 시간에 정리했던 칸트 알지? <헤겔>은 칸트 철학을 연구해서 논문을 썼던 사람이야. 독일 관념론의 계보는 칸트 - 헤겔로 이어지고, 이 헤겔 철학을 유물론으로 전환시킨 사람이 바로 뒤에 다룰 <마르크스>인거지.

당연히 헤겔은 칸트 철학의 위대함을 몸소 배운 사람이야. 그런데 말야. 헤겔은 칸트 철학의 <핵심> 부분인 <현실세계와 신앙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달랐어.

칸트는 기성 종교인들이 오랜시간동안 쌓아온 종교 교리들을 <도덕>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고 말했지? 다시 한번 칸트가 생각한 현상과 종교에 대한 관점을 정리해볼까나?

칸트 : 솔직히 말하자면 말야. 지상에서 <인간>으로 살았던 예수는 이성적인 사람이였거나, 정이 많은 사람이었을거야. 얼마나 온화하고, 인간에 대한 배려가 많아?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는 참 따뜻한 사람이잖아.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은 그런 면을 쏙~ 빼 버렸어. 예수가 떠난 뒤, 교회가 만든 많은 내용들을 무조건 믿으라고 하고, 교회에 복종하라고 하잖아. 그리고, 그런 절대적인 복종이나 믿음을 <도덕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그것이 도덕이라는 건 <하나님>이 아니면 누구도 증명할 수 없잖아? 교황이 만든 법이 하나님이 만든 법이라는 걸 누가 증명할건데?

생각해봐. 철학은 <지상>에서의 일을 탐구하는 거야. 인간이 알 수 있는 유한한 세계의 것들만을 <지식>이라고 생각해야돼. 인간이 알 수 없는 것들은 하나님이 알려주실 거니, 우리가 고민할 필요도 없어. 한마디로 신앙은 단지 믿음일 뿐이지, 절대적인 지식이 아니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서 알아낸 것들이 <지식>일 뿐이야. 지식은 우리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인 거지.

자,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헤겔은 신학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할만큼, 종교적인 마인드가 강한 인물이었지? 칸트를 아무리 존경했다고 하더라도, 생각이 좀 달랐을거야. 그럼 헤겔의 생각을 한번 볼까?

헤겔 : 칸트 형님의 말이 맞는 말인데 말야. 종교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 버리면, 문제가 하나 생길거야.

인간은 현실을 넘어서서 무한하고 궁극적인 실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하잖아.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런 거 알고 싶지 않아?  내 스스로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탐구하는 것도 <철학>이 해야 할 일이야. 그리고 그렇게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끝에 <종교>가 있는 거구...

인간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잖아? 그니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생각하면서 살 수밖에 없어. 신의 존재를 믿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것들도 생각하기도 하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람들은 이 두가지를 모두 생각하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나 : 자아>를 생각하곤 해. 그런데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철학>이 아닐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건, 인간의 <정신>이야. 현실, 도덕, 종교와 같은 것이 진리라는 것을 판단하는 것도 우리의 <정신>이지.

에구... 너무 심오하다. 헤겔의 말이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 그럼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을 인용해서 좀 체계적으로 이야기해 봐야겠다. 헤겔은 <정신>이 3단계를 거쳐가면서 완벽한 정신, 즉 <절대정신>으로 간다고 말하고 있어.

정신 1단계(무의식적인 도덕성) : 예를 들면 이런거야. 누군가 <사랑>하고 사세요... 라고 말할 때, 어린 아이들은 사랑이 뭔지 구체적으로 모르지? 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부모, 형제, 친구들이 자신을 아낄 때 그냥 그게 사랑이라고 느끼지. 즉, 감각적으로 도덕적인 것들을 판단하는 거야. 이게 원시적인 정신, 즉 <감각적인 정신>이지.

정신 2단계(도덕성의 자각) : 그러다가 학교에 다니고, 공동체 문화를 익히고 하다보면 점점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서 결론을 내리게 되지.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의식적으로 실천하려고 할거야.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랑을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되지. 이 때의 정신은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정신>이 되는 거지.

정신 3단계(종교적 충만함) : 그리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자신의 가슴에 뿌듯함과 충만함이 채워지고, 절대자에게 다가가는 단계, 즉 절대적 진리를 깨닫는 단계를 알게 되지. 그게 바로 <진리>의 단계이며, <정신>이 현실과 통일되는 단계야. 이렇게 절대적 진리를 깨닫게 된 정신를 <절대정신> 이라고 해.

자, 헤겔이 말한 정신인가 뭔가를 3단계로 정리하면 이렇게 되는 거다. 

좀더 압축하면, 인간의 <정신>은 무의식적인 것, 의식적인 것, 절대적인 것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거지. 그럼 헤겔식으로 따지면 역사나 문화, 종교도 <정신이 발달하는 것> 이 되겠지? 이 부분에서 헤겔의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헤겔 :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정신>이 발달해가고 있는 과정이야. 그런데, 인간 <정신>의 최종 3 단계는 <절대자에게 다가가서 절대적 진리를 아는 것> 이라고 했지?

그니깐, 역사의 목적은 결국 <신의 목적>을 따라가는 거야.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발전하면서 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점점 더 잘 알게 되었지. 신이 원하는 건 인간이 <절대적 진리>를 깨닫는 거야. 그 절대적 진리는 도덕일 수도 있고, 자유일 수도 있지.

근데, 아주 옛 사회에서는 그런 걸 몰랐어.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구속해서 자유를 빼앗고 노예로 만들기도 했지. 또, 법이라는 걸 만들어서 인간의 자유를 빼앗기도 했어. 하지만, 인간의 정신이 <신의 섭리>를 알 정도로 발전하면 그런 구속들을 점점 사라지게 되지. 신이 진정 원하는 건 인간의 <자유>일테니까... 그럼 현실 세계에서 필요한 건 뭘까? 바로, 인간이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거야.

그럼 모든 인간이 가장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제도를 가진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그건 모든 개인에게 자유를 허용하고, 국가가 그것을 지켜주는 나라야. 따라서 왕이 있어도, 왕이 국민의 법을 지키는 <제한된 군주제>가 필요해.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국민의 자유를 지켜주어야 하고, 법은 자유민들에게 관대해야 하지. 재판도 다양한 배심원들이 함께 진행해야 하며, 국가의 중요한 일도 의회에 모인 국민대표가 함께 결정해야해.

물론, 역사가 다시 <발전>하면 기존의 제도에 뭔가 더 첨가되고 바뀌어서, 더 좋은 제도들이 등장하겠지.

뭐, 헤겔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역사>와 <국가>를 생각했던거야. 솔직히 프랑스 혁명의 세계정신이나 자유를 이야기하다가, 또 <군주제>를 인정한다는 식으로 말 바꾸기를 하니깐, 이 인간이 좀 이중적으로 보이기도 하겠네.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써 놓은 책이 <법철학강요>라는 책이었어.

- 고전 철학의 종결자 : 변증법적 발전 이론

자, 이번에는 헤겔하면 떠오르는 단어, <변증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변증법이란 이런거야. 하나의 현상이 존재(정명제)하는데 그것에 반대하는 현상(반명제)이 있다면 이 두가지를 절충하여 새로운 또 하나의 해답(합명제)을 찾는 거지. 대체 뭔 소리여? 오늘 아이유 스페셜이라고 했으니, 아래 아이유를 예로 들어 한번 살펴보자.

자, 조금은 이해되겠니...

원스 업펀어 타임 코리아... 쉽게 말해서 한 때... , 까칠, 도도, 블랙, 막말 서인영이 (스스로 우기기로는) 예능의 대세였지. 그게 기존의 대세인 정(正)이야.

근데, 갑자기 귀염둥이 아이유가 가요계를 평정하고 50억 소녀가 되서 대세가 되었어. 헐...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네. 새롭게 등장한 아이유가 반(反)이야.

자! 그럼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서인영의 선택은? 어느 날 신상 도도 까칠녀 서인영이 알록달록 아이유 잠옷을 입고 마시멜로우 춤을 추고 있었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한거지. 이게 바로 합(合)이야.

하지만, 내년, 내후년이 되면 아이유 스타일은 시대흐름에 밀리고 또 다른 컨셉의 가수가 예능의 대세가 되겠지? 그럼 또 반(反)이 나오고, 또.... 합(合)이 나오고... 뭐, 약간 억지스런 예이지만 쉽게 얘기할려고 가져다 붙여본거야...

자 그럼 이제, 진짜로 우아하게 변증법을 정리해보자.

정(正) : 칸트라는 철학자가 <인간의 경험>이 철학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어. 이게 기존의 이론이고, 이게 처음에는 맞는 말 같다고 해봐. 맞다는 걸 한자로 정(正)이라고 하자.

반(反) : 근데, 종교론자들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진리>와 같은 개념은 더 중요하다고 고 생각한거야. 이걸 반대된다는 뜻의 한자인 반(反) 이라고 할께.

이 <정>과 <반>을 어떻게 정리해야 더 나은 철학적 해답이 나올까?

합(合) : 그래서 헤겔은 <정>과 <반>이 합(合)쳐서서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 이 두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단어를 <절대 정신>이라고 표현한거야.

변증법은 이런 거다.

원래 가지고 있던 지식(정)이란, 새로운 상태의 지식(반)을 만나면서 변할 수밖에 없게 되는거지. 그럼 이 정과 반이 논쟁을 하면서 새로운 단계의 해답을 제시(합)하는데 그 속에서 사회는 <발전> 한다는 거야.

사실 변증법은, 서양 고대부터 있었어. 뭐, 소크라테스니 소피스트들이니 하는 사람들도 대화를 풀어나가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중 하나였지. 물론, 서양 중세시대에도 <변증법>이란 건 있었어. 특히, <아벨라르>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중세시대 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하였다고 해.

중세 시대 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알고 싶어 했어. 아니, 안다기 보다는 어떻게든 신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거지. 그래야 교회 활동이 정당하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겠어? 그런데, 그걸 증명하려고 했더니 서로 모순되는 2가지 사상이 있어서 좀 힘들었어. 그 2가지 사상이란 무엇일까?

그중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 진리(이데아)를 강조했던 플라톤의 사상이야. 또 하나는 현실 세계의 경험(중용)을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었지.

이 두 철학자는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구해. 세상에는 <절대적 진리>가 있다... 라고... 

하지만, 그 절대적 진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상세계에 있느냐, 아니면 현실세계이냐... 라는 관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절충하기가 매우 어려웠지.

이런 모순되는 생각들을 종합해서 신의 존재를 합리화 시킨 사람이 중세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였다나 뭐래나... 그가 <신학대전>이란 책에서 써 먹은 변증법의 내용을 한 번 보면서 중세시대 변증법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까나... 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도들에게 써먹기 위해 질문과 답변을 해놓은 말들을 짧은 변증법으로 풀어보자.

질문 1 : 저기... 인간의 경험과 신의 섭리 중에 무엇이 더 현실 세계에서 유용한 것일까요?

1. 정 : 지상에는 감각적인 경험이 있는데 이러한 경험은 중요한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실재론 수용)
   2. 반 : 하늘에는 신의 섭리가 있는데 이것은 지상의 경험보다 중요한 것이다.(신플라톤 학파의 유명론 수용)
   3. 합 : 감각적 경험을 통하여 신의 섭리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으므로 2가지는 모두 중요하다.

질문 2 : 저기... 그럼 자연적인 경험과 신의 은총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닌가요?

1. 정 : 자연적인 경험과 진리는 항상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
   2. 반 : 초자연적인 신의 은총은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플라톤)
   3. 합 : 자연의 진리는 초자연의 진리에 의해 보완되는 것으로, 신의 은총은 자연과 대립(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완성하는 것이다.

질문 3 : 그럼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은 지상에서의 행복인가요, 천국에서의 행복인가요?

1. 정 : 인간의 행복은 지상의 행복으로서 매우 중요하며, <행복>은 인간 삶의 목표이다.(아리스토텔레스)
   2. 반 : 카톨릭에서는 신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플라톤)

   3. 합 : 자연속의 행복도 중요하나 신앙과 자애라는 카톨릭의 덕목은 더욱 중요하다

질문 4 : 그럼 교회는 세속의 일과 영적인 일 중에 어떤 목적을 갖고 운영되는 것일까요?

1. 정 : 국가권력은 세속의 필요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될 문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
   2. 반 : 교회는 영적인 필요에 의해 인간을 신심으로 인도한다. (플라톤)

   3. 합 : 신과의 생활이라는 더 높은 초자연적인 목적이 있으므로, 교회는 초자연적 목적에 더욱 힘써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정, 반, 합을 이용해서 교묘히 교회 이론을 정당화 시킨거지. 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의 변증법에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내용은 없지? 그냥~ 두 철학자의 사상을 박수받을 만큼 논리적으로 햡쳐놓은 것 뿐이잖아.

반대로 생각해보자. 헤겔의 변증법이 다른 사람들의 변증법보다 훨씬 더 유명한 이유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서 <역사는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라는 뉘앙스의 단서를 박아놓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 단서를 바탕으로 역사의 발전 단계를 명확하게 구분해놓은 제자가 바로 <마르크스> 이거든. 그럼 다음 장에서 드디어 마르크스의 <변증법>과 <유물론>을 한번 다루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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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관념론 철학 (양장)
국내도서>인문
저자 :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 박만준역
출판 : 지만지고전천줄(지만지고전선집) 200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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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과 독일관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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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권기철
출판 : 철학과현실사 200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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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주의와 독일 관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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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베르너 바이어발테스 / 조규홍역
출판 : 누멘 201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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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로타 엘라이 / 백훈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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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비판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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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강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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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 이론의 근본구조 - 헤겔의 논리학에 있어서 변증법적 범주발전의 재구성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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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근현대사 이야기 (NO.7)

번외편 : 마르크스로 <독일철학>과 <사회주의> 이해하기 (2)

- 마르크스 이전의 독일 역사 : 칸트, 피히테, 헤겔 -

자, 그럼 이제 <마르크스>가 깊게 감명을 받았다는 <헤겔>의 철학을 한번 살펴볼께요.

마르크스는 <본> 대학에 입학했지만, 헤겔 철학을 배우고 싶어서 헤겔이 몸 담았던 <베를린> 대학에서 두 학기 동안 공부를 할 정도로 헤겔의 광신도였답니다. 학위도 헤겔이 교수였던 <예나> 대학에서 받을 정도였죠.

자, 그럼 이제, <헤겔>을 좀 알아야 마르크스 철학을 좀 쉽게 이해하겠죠? 근데, 말이죠... 이넘의 헤겔철학은 피히테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고... 피히테 철학은 칸트에서 영향을 받았고.... 에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르크스> 철학을 알기 위해, 쫌쫌쫌~ 위로 올라가서 헤겔 - 쉘링 - 피히테 - 칸트... 등등의 독일 철학자 계보를 좀 살펴봐야겠어요. 하지만 <독일>, 당시에는 <프로이센>이라고 불린 이 동네의 심오하고 방대한 모든 철학을 다 이야기할 수 없으니, 간단히 훝고 지나가볼께요.

그럼, 칸트, 헤겔, 마르크스가 살았던 <독일> 동네 이야기를 한번 간단히 해보죠.

이 동네는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분열... 분열... 분열... 의 연속인 지역이였습니다. 도무지, 이 동네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통일국가를 이룬 적이 없었답니다. 19세기 전에는 <독일 제국>이란게 없었죠. 휴....

독일 지방은 고대 시대에는 로마 제국의 영토에 있었답니다. 그리고, 중세 초기에는 중부유럽을 통일했던 <프랑크 왕국>에 속해 있었던 지역이죠. 중세시대, <기사도>니, <장원>이니 하는 말 들어봤나요? 독일 지역이 바로 수많은 영주, 기사들이 각각 내 땅이요~ 라고 영토를 나눠가져서 분열되어 있었던 지역이랍니다.  그 영주들 중에서 그나마 힘이 좀 있는 제후가 나라의 짱 역할을 하면서 리더 역할을 했답니다. 그 리더가 이끄는 독일 지역의 나라가 바로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나라였죠.

하지만 분열은 끝이 없었답니다. 15세기가 되었더니, 루터라는 인물이 짠 하고 나타나서~ 종교개혁을 한답시고 전쟁을 일으켜서 독일 지역의 영토가 풍비박살이 났어요. 에휴... 또 얼마 안되서 칼뱅이 종교개혁한다고 하더니만, 이번엔 30년 짜리 전쟁을 하는거에요. 그것도 유럽에서 잘나가는 국가가 다 건너와서 막장 전쟁을 해버렸으니... 전 유럽이 독일 땅에서 피터지게 전쟁을 하는 <1차 유럽 대전>?... 뭐 이런 걸 해 버렸지요.  그러니 이 땅에 평화란 남의 이야기가 되 버린 거랍니다.

그러고 백년 후... 종교 전쟁을 쫌~ 정리하고, 흩어진 동네 기사들이 쫌쫌 제발~ 뭉쳐야지.. 라고 생각할 무렵 동네에서 힘 좀 쓰는 <프로이센>이라는 국가가 독일 지역의 작은 연방국가들을 통솔해서 짱~을 먹으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죠. 나폴레옹이라는 걸출한 영웅을 배출한 프랑스와 틈틈이 전쟁을 했기 때문이에요.

생각해보세요. 뭉치기만 하면 잘 나갈 것 같은 지역인데도, 맨날 전쟁만 하면서 피곤하게 살고 있으면 짜증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 동네 <지식인>들은 <프로이센>을 무능력한 국가로 생각하기 시작했답니다.

실제로, <프로이센>의 관리들은 상대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했어요. 19세기 프로이센이라는 나라의 관리들은 선진국인 <영국, 프랑스>에 비해서 제도나 법률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수준이 많이 낮았거든요. 나폴레옹이 독일 지역에 있던 <신성로마제국>이란 나라를 멸망시킨 후, <프로이센>이란 국가의 관료들은 개판 5분전 상태였죠.  

그래서인지, 독일 지방의 <지식인>들은 도덕, 양심, 이성, 법률, 국가통일... 이런 단어들을 많이 사용했답니다.  그런 지식인 중에서 <도덕과 이성>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던진 사람은 18세기 <칸트>라는 철학자였죠. 자, 그럼 칸트가 생각한 <도덕, 이성, 양심, 국가>라는 말을 <칸트>의 생각으로 한번 읽어볼까요? 

칸트 : 거참... 왜 <국가의 역사는 위대하다>라는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외워야하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서 무조건 <외워고 믿어라> 라고 말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말을 왜!!! 들어야하지?

무조건 충성해라, 무조건 믿어라... 라고 말하는 건 <도덕적>인 것이 아냐. 그건 그냥 <절대 복종>하는거지.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있잖아? 즉,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이성적>인 존재야. <도덕>이란 것은 우리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걸 지키는 거잖아?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을 믿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민중에게 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계몽주의> 라는 거야.

자, 생각해봐. 우리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잖아? 그리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도덕>적인 사람들이야. 내가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적었는데, 그 핵심도 바로 이거야. <이성>은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거야. 즉, <도덕>이란 말은, <권력이나 신앙> 이라는 말보다 <이성>이라는 말에 더 가까운거야.

한마디로,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천국>의 이야기는 그냥 <신앙>일 뿐이지, 도덕은 아니야. 그리고, <신앙이나 천국>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야기니깐, 이 세상 이야기가 아니지? 따라서 <신앙>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워나가는 <철학>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야.

자, 이런 칸트의 생각에 좀더 살을 붙여볼까요? 

<영혼, 우주, 신의 사랑>과 같은 단어들은 우리가 직접 체험할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그런 고차원적인 것들을 연구하는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하는데, 그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고, 우리의 생각, 즉 <이성>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죠? 그래서 칸트는 이렇게 말한답니다.

우리가 과학적(이성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 되었든 그건 <철학>이 될 수 없다.

그럼, 우리가 직접 알 수 있는, 즉 이성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공간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경험들>이랍니다. 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약속하고, 행동하고, 경험한 것들이 곧 내 <이성>으로 판단한 것들이고, <도덕>적으로 옳은지 판단할 수 있는 행동들이지요.

그래서인지, 칸트는 아주 엄격하게 시간을 지킨 사람으로도 유명하답니다. 그는 항상 매일 아침 정각 5시에 일어났고, 오후 3시 30분이면 산책로를 뛰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해요. 그리고 자신에게 맹세한 것은 꼭 지켜야 했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옳은지 판단하는 시간>이 있었답니다.

그럼, 칸트의 생각대로라면 철학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신에 대한 복종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건 절대 아니겠죠? 칸트가 생각한 철학은, 그의 책에 따르면 최소한 3가지가 있어야 한답니다. 그럼 이 철학자의 이야기를 가상으로 엮어서 들어볼까요?

no 1 :  음... 철학이란 말이지...인간의 생각, 즉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한단다. 우리가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지. 따라서 철학의 첫 번째 조건은 <과학 또는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는 현상을 아는 거야.

no 2 : 그럼 철학의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철학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거야. 그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신의 공간이 아닌 현실의 공간이겠지? 그럼 이 현실 공간에서 우리가 <도덕>이니, <이성>이니 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우리 스스로 <양심적인 것이다> 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말해. 즉, 도덕적 판단은 신이 아닌 인간이 하는 것이지.

no 3 : 마지막으로, 철학은 <천국이나 신앙>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돼. 따라서 현실에 대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판단하는 학문들도 철학의 범위에 들어가는 거지.

그럼 칸트의 말대로 과학적으로 무엇인가를 증명하고, 도덕적 양심을 지키며,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바로 인간 자신이겠죠. 그래서 칸트의 철학에서는 <자아>라는 말이 나온답니다. 자아, 즉 내 자신이 바로 철학적 삶을 살아가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원리가 되는 거죠.

자, 이런 칸트의 철학은 그 이전에 세상을 살았던 <기독교 철학자>들의 주장과는 많이 다르답니다. <신의 은총>이나 <천국과 지상의 조화> 등등의 말들은 칸트 철학에서 빠져 있죠. 그냥 있는 현실을 말하고 비판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계몽주의>, <비판주의> 사상가라고 말한답니다. 또, 이 사람부터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철학의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칸트를 <독일 고전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하죠.

자, 이번에는 칸트 철학을 좀더 확장시킨 철학자를 한번 볼께요. 이 사람의 이름은 <피히테>랍니다.

피히테는 칸트를 너무나 존경해서, 칸트의 관심을 끌어보겠다고 4주일만에 <모든 계시에 대한 비판적 시론>이라는 책을 쓴 사람이랍니다. 요즘 말로 칸트 빠~돌이었죠.

근데 말이죠. 출판업자의 실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저자 이름이 찍히지 않고 출판되었답니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은 책의 내용만 딱~ 읽고 <아~ 칸트가 쓴 책이구나>라고 생각해 버린 거죠. 책을 읽을 사람들은 다 읽고, 이 책이 칸트 책이 아닌 피히테 책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피히테는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 버렸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이거에요. 피히테의 주장을 한번 살펴볼까요?

피히테 : 나는 <종교>는 철학이 아니니깐 일단 빼고, 현실 속에서 인간 스스로 <이성>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는 칸트의 생각을 믿고 있어.

근데 말야.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 대체, 종교라는 건 현실적인 이야기도 아닌데, 어떻게 긴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었을까? 아마도, 죽은 뒤에도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나 계시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럼, 하나님의 계시가 정당하다는 믿음은 어떻게 갖게 된 것일까? 실제로 신을 만났기 때문에? 신은 무조건 옳기 때문에? 아냐. 그건, <하느님의 말씀> 즉, 종교의 내용이 우리 현실에 살아가는 인간의 <윤리>나 <도덕>과도 딱 맞기 때문이야. 신이 아무리 절대적이라고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법칙에도 맞아야만, 우리가 믿을 수 있을 거야. 신이 세상을 법칙을 무시하고,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 준다면 우리는 그것을 신이 아니라 <악마>라고 부르지 않겠어?

결국, 하나님이란 존재를 인간들(자아)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도덕적이고 정의롭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믿고 신의 계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즉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피히테는 칸트보다 더 <현실적>인 사람이었답니다. 피히테는 교회에 대해 칸트보다 더 비판적이었죠. 종교를 순수한 믿음으로 파악하지 않고, 현실 <윤리>라는 틀에 집어넣어 버린거에요.

잘 생각해보세요. 피히테는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종교도 결국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도덕>에 맞아야 한다.... 그거잖아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도덕(윤리)>이고, 인류의 존재 근거나 모든 지식의 근거가 바로 <도덕>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 절대적인 윤리를 실천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자아이기 때문에, 모든 절대적 진리의 출발점은 나 자신, 즉 자아인 것입니다. 즉,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비판>이니, 피히테가 말하는 <이성국가>니 하는 말에서의 <이성>이란 말은 걍... <하늘의 종교>보다는 <현실의 도덕>이란 말 쪽에 훨씬~ 가깝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말이 맞아요~ 라고 믿은 피히테의 제자 한명이 <모든 믿음은 순전히 도덕일 뿐이다>라고 논문을 적어 버린거에요. 그래서 피히테는 제자 덕분에 종교인들에게 비난을 듣게 되죠. 피히테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들었고, 그를 옹호하려고 했던 문교부장관 <괴테> 선생만 <피히테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라고 말하면서 고생을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무렵.... 독일연방을 이끌던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의 군대에게 박살이 났어요.

피히테를 비롯한 독일의 철학자들은 부패한 조국이 전쟁에 진 것을 오히려 환영했답니다. 왜냐면, 부패한 조국 <프로이센>보다도,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으로 무장한 프랑스 혁명군이 좀 더 <도덕적>인 군대라고 생각했거든요. 베토벤이라는 음악가도 나폴레옹을 인류의 자유, 평등을 실현해주는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영웅 교향곡>을 지었다는 일화가 있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인류의 구원자 나폴레옹이 자유와 평등 사상과는 전혀 관계없이, 지가 직접 황제가 되겠다고 왕관을 써 버렸답니다. 독일인들을 분노했죠. 결국,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려는 야심가에 불과한 인간일 뿐이었으니까요. 뭐, 베토벤도 짜증을 내면서 <영웅 교향곡>을 찢어 버렸다나 하는 일화가 있어요.

구체제와 부패한 귀족관리들을 무찌른 줄 알았던 프랑스의 영웅이 사실은, 욕심에 가득차서 조국 프로이센을 침략한 망나니에 불과했던 거죠. 그리하여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고, 부인과 제자들을 이끌고 <프랑스에 대한 해방전쟁>에 참여했답니다.

그러다가 부인이 전쟁중에 장병들 간호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그걸 극진히 간호하던 피히테는 오히려 자신이 병에 전염되서 죽고 말았어요....

이 무렵 피히테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세상의 절대적인 <자아>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 꼭 누려야 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류의 해방을 위해서는 참된 국가가 필요하다는 생각 말이죠. 부패한 프로이센 관리의 국가가 아니라, <도덕>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유토피아 국가말입니다. 칸트와 피히테는 도덕이나 윤리를 인간의 <이성>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피히테는 <이성국가>만이 독일인들의 국권회복과 민족의 영광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랍니다.

그래서 일까요? 피히테는 <자아, 윤리, 이성, 개인해방>이라는 칸트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성국가, 국가주의>라는 이야기도 동시에 하게 되었네요. 모순적인 철학자가 되고 만 거죠.

자, 그럼 이제, 칸트와 피히테의 철학을 받아들였지만, 결국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을 완성시킨 위대한 독일의 철학자 <헤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께요. 다음 장에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철학 이야기를 하다보면, 독일 철학의 계보가 어느 정도 완성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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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이야기 (NO.6)

번외편 : 마르크스로 <독일관념론>과 <사회주의> 이해하기 (1)

번외편은 근현대사의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성된 주변 이야기들입니다. 이 이야기 때문에 중간에 흐름이 끊긴다고 생각한다면, 번외편과 문제편을 뛰어넘고 본문만 계속 읽어주시면 되요~


  - 마르크스 이야기 <시작> -

자, 오늘부터 번외편에서는 <마르크스>에 대해 이야기할거에요. 시대 구분을 이야기하다 보니깐 <마르크스>라는 철학자 이야기가 많이 나왔죠? 잠깐~ 그런데 왜 이 <사회주의자> 이야기를 <번외편>에서 다루는 것일까요?

먼저, 이걸 이해해줘요~ 이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사람이 만들려고 했던 <세상>이나 <이념>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랍니다.

이 사람은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에요. 단지 19세기 혁명의 시대에 태어나 한 시대를 꿰뚫어보려고 노력했던 지성인일 뿐이죠. 이 사람의 철학 역시 다른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답니다. 그냥 놀랍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장점도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이 사람을 다루지 않고서는 <근현대사>의 큰 흐름중에 하나인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독립혁명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답니다. 마르크스는 19세기의 큰 흐름인 <자본주의, 근대화>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거부하고, <인간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이해하려고 했던 사상가에요. 그리고, 이 사람의 사상은 우리 역사에서도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죠. 지금도 우리 민족은 <이념>의 차이 때문에 남북이 갈라져 있잖아요.

하지만, <자본주의>가 정착한 우리 남쪽 대한민국에서는 이 사람의 사상을 쉽게 인정하려들지 않았답니다. 20년전만해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금기된 책이었죠. 또, <마르크스>를 알려고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반정부적인 운동권이나 빨갱이들이라는 누명을 써야 했던 시기가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을 제대로 알아야 우리 <근현대>에 존재했던 다양한 생각과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답니다. 자, 그럼 이 철학자를 통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추구했던 <근현대>의 철학을 알아볼까요?

그럼, 소위 <빨갱이> 철학이라고 불렸던 이 철학자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 청년 시절의 마르크스 -

과거의 혁명은 세계사의 기억에 의존해 왔다. 그 혁명 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각성된 상태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혁명 내용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19세기의 혁명은 죽은 자들의 손으로 죽은 자들의 시신을 묻게 해야 한다. 과거엔 번지르르한 말이 내용을 앞섰지만, 이젠 <내용이 말을 앞서야> 할 때이다.

                               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무월 십팔일>중에서...

자, 그럼 마르크스라는 사람의 인생을 팍팍~ 파해쳐보면서 근대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해봅시다.

마르크스는 독일 라인지방 트리어에서 태어났답니다. 아버지는 유태인이었는데 기독교로 개종한 변호사였죠. 19세기 유럽에서는 낭만주의니, 계몽주의니 하는 생각들이 유행하고 있었어요. 특히, <지식인들이 민중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간다>라는 생각이 많았었는데, 마르크스의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거죠.

그럼, 마르크스는 어떤 교육을 받았을지 대충 감이 잡히죠? 잘 사는 지식인이 되서 <민중>들을 이끌어 가려면 가장 필요한 공부는? 당연히 <법률>공부였죠. 19세기 유럽에서는 <기독교 집안의 법률가> 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아버지도 아들이 <법조인>이 되기를 원했답니다.

그런데, 이 철부지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했답니다. 마르크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본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지만, 입학한 뒤에는 <법학>보다는 <헤겔>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죠. 당시 대학생들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젊은 시절, 인생의 큰 뜻을 펴는데 도움이 많이된다고 생각했답니다. 또, <철학>에는 인생의 낭만이 있다고 생각한 젊은이들도 많았거든요.

이 젊은 청년은 아버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모범생 역할을 하지 못했겠죠? 자, 그럼 이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고 다녔는지 한번 가상의 친구들을 찾아가서 얘기를 들어보죠.

마르크스요? 쫌~ 과감한 친구였죠. 이 인간이 얼마나 잘난 척을 하는지, 이것저것 주워들어서 아는 건 많아 보이더라구요. 근데, 가끔 거만한게 도를 지나쳐서 왕짜증날 때가 있어요. 뭐, 친구들을 확실하게 챙겨주는 것만 아니면, 완전 왕따감이죠....

거기다가 자기 생각이 얼마나 확실한지...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고 친구들과 맞짱을 뜨고 결투 신청해서 얻어터지질 않나.... 뭔 철학얘기를 한다고 술 퍼마시고 소리를 크게 질러서 경찰에 끌려가질 않나... 뭔 넘의 술값은 맨날 지가 내는지.... 또 가방에 사시미칼은 왜 넣어가지고 다녀? 호러 영화 알바하나?

지 개똥철학엔 또 자부심이 있어서 지가 교수인줄 알고 다닌다니깐요. 헤겔 철학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헤겔이 교수를 했던 대학이 지 대학인줄 안다니깐요. 어떤 친구는 그 넘을 천재라고도 부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똥고집도 장난 아니에요.

뭐, 이 정도 이야기를 들을 만한 위인이었던거죠. 심지어 아버지도 아들을 보면서 이렇게 짜증을 내었다고 하네요.

망할 넘의 자식이, 실컷 <법대> 나오라고 뒷바라지 해주었더니 <철학> 나부랭이에 빠져서 뭐하는 거야? 철학이란게, 이것 저것 찌끄레기 학문들을 모아서 뭉쳐놓은 건데, 그런 걸 공부라고 하고 있으니...

거기에 지가 무슨 교수인 줄 알고 이넘 저넘 모아놓고 토론질만 즐기지 않나... 사회발전이니 역사발전이니 헛소리를 하면서 사회 개혁을 하겠다느니, 뭐니 헛소리를 하지 않나... 지 똥고집 때문에 사람들에게 예의도 지키지 않는 미친 놈 아닌가.... 니 집에만 와봐라... 다리 몽둥이를 뿌려뜨려 버릴기다.

하지만, 아버지가 곧 돌아가셔서 마르크스의 다리몽댕이는 멀쩡했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철학의 차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죠.

자, 이렇게 철학에 심취한 마르크스.... 그의 목표는 <헤겔>과 같이 위대한 <철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죠. 그런데 말이죠. 그는 결코 죽을 때까지 교수가 될 수 없었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헤겔 좌파>의 사상을 가졌기 때문이고, 그 사상은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기시하는 사상이었기 때문이에요.

자, 그럼 마르크스의 일생을 바꾸고 그를 가난에 몰아넣었던 <헤겔 좌파>의 사상이란 무엇일까요? 다음 페이지에서 헤겔 좌파의 사상과, 독일 철학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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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이야기 (NO.5)

한국사에서 원시시대란 무엇일까?

- 시대구분 이야기 -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역사의 시대구분 이야기를 달려볼꺼야.  자, 그럼 역사학자들이 우리 역사에서 원시, 고대, 중세와 같은 시대를 어떻게 나눠놓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이번 시간에는 <원시 시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그런데, <원시>라는 말을 하려고 하니깐, 비슷한 말들이 많이 있네? 뭐, <선사시대>, <석기시대> 이런 말들도 있는데, 이런 용어들은 <원시시대>와 같은 뜻일까? 다른 뜻일까?

그럼 그럼 이 3개의 용어를 구분하기 위해 먼저 <원시시대>가 무슨 말인지부터 알아보자.

원시시대란,  <고대>보다도 더 이른 시기를 통털어 말하는 거야. 서양에서는 <국가>가 성립된 그리스, 로마제국과 같은 시기를 <고대 시대>라고 불러. 그럼 반대로 국가도 없었던 더 원시적인 시대를 부르는 말이 있어야겠지? 그래서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원시시대>라는 말을 끼워넣기 한거야.

그럼 원시시대란 말은 언제쓸까? 당연히 <고대시대>라는 말에 뒤따라 오는 패키지 세트 용어인거야. 원시-고대-중세-근대.... 이런 일반적인 시대구분상 맨 앞에 따라오는 시대가 바로 <원시>인 거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국가라는 체계없이 공동체 생활을 하던 시대를 서양애들이 <원시>라고 구분한거야. 근데, 서양학자들은 <원시> 시대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공동체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원시 공동체 사회>라고도 부르기도 해. 국가나 법이라는 것이 없던 시기에 인류가 기초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모여 살던 시대라는 걸 강조하려고 쓰는 말인거지.

지난 시간에 배운 마르크스의 시대구분 기억나지? <원시> 사회에서는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지배자도, 노예도 없었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였어.

함께 생존하기 위해 먹을 것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했겠지.  그러다보니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한 부족(씨족)들도 있었을거구...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어려운 말로 <점유>라고 불러. 마르크스는 모두가 평등하게 생산하고 분배한다고 해서 원시 사회를 <원시 공산제 사회>라고 불렀어.

정리하자면, <원시>란 말은 시대 구분할 때 쓰는 말이야. 즉, <고대>보다 앞서는 시대로 씨족이나 부족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대를 말하는거지.

이번에는 선사시대라는 말을 알아보자. 선사시대라는 말의 뜻은 쉬워. <역사시대>의 반대말이거든.

우리가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은 모두 <역사>에 대한 이야기잖아.  그럼 역사란 단어는 무슨 뜻을 가진 단어일까? <역사(歷史)>란, 시간을 보내다, 전달한다라는 뜻의 歷이라는 단어와 기록된 문서라는 뜻의 史 라는 단어의 합성어야.

자, 합쳐봅세다~ <역사>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기록한다는 뜻이겠네. 

그럼 반대로, <선사(先史)>란, 역사(史)보다 이른 시기(先)를 말하는 거야. 先자는 <먼저>라는 뜻이잖아. 즉, 역사를 기록하기 전의 <문자>가 없는 시기를 선사라고 말하는거지.

만약, 어떤 시대이든지 과거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 시대는 선사 시대라고 부르면 되는거야.

예를 들어, 우리 민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 한나라 때 사람인 사마천이 지은 <사기 - 조선열전>에 나오거든. 그 책은 기원전 2세기에 쓴 책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서 선사시대는 <사기>에 적힌 내용보다 더 옛날인 <기록이 없는 시대>를 말한다고 보면 되겠네. 반대로, <사기>라는 책 이후의 시대는 <역사> 시대가 되는 것이지.

그런데 생각해봐봐.

사마천이 <사기>라는 역사책을 쓰기 이전에도 우리 민족이 세운 <고조선>은 존재했고, 그 이후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삼국시대도 있었잖아. 만약, 고조선과 삼국시대의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면, 그 시대는 <선사시대>라고 불러야 할 거야. 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등등의 국가는 이미 강력한 국가였기 때문에, 원시시대는 아니잖아. 그럼, 그 시대는 <고대시대>라고 불러야 맞을 거야.

결론은 이거야. 문자가 있냐 없냐를 따지는 <선사시대>라는 용어와, 시대구분상 공동체 사회였느냐, 국가 사회였으냐를 따지는 <원시시대>라는 용어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거지.

자, 이제 다음으로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살펴보자.

<석기시대>라는 용어는 역사에서 쓰는 용어가 아니라, <고고학>에서 쓰는 용어야. 고고학자들은 유물들도 발굴하잖아. 일단 석기(石器)라는 말 자체가, <돌 기구>라는 뜻이니깐, 돌을 사용하던 시대의 유물을 발견하는 거지.

즉, 석기시대는 돌을 사용했는지, 다른 금속을 사용했는지를 따져서 시기를 구분하는 용어인거야. 한마디로, <도구 사용>에 따른 시대 구분 용어인거지.

자, 그럼 돌을 사용한 시대들을 한번 보자. 돌을 이용한 시기는 원시적인 돌을 사용했다는 뜻으로 <구석기 시대>가 있어.  좀, 돌을 깔끔하게 갈아서 효율적으로 이용한 시기는 <신석기 시대>라고 부르지.

그런데, 돌을 도구로 사용한 이 시기에 서양에서는 국가가 성립되지 않았어.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석기시대는 <원시시대>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곤 하지.

하지만, 금속을 사용한 <청동기 시대>가 되면, 부족간의 전쟁이 많아지기 시작하지. 전쟁을 통해 이긴 자들은 지배계급이 되고, 패한 자들은 노예가 되는 거야. 그럼 계급이 생기겠지? 계급이 생기면서 지배계급은 점령한 피지배계급을 노예로 삼기 시작했어. 그리고 피지배계급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국가>라는 것을 만들기 시작한거지. 그래서인지, 서양학자들은 청동기 시대 이후가 되야 <국가>가 생기고 <고대 사회>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 서양학자들의 연구를 이유로 해서, 우리 역사학자들도 청동기 때 성립한 국가인 <고조선> 시기가 <고대>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 그리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해. 

하지만, 우리 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이 고대라는 걸 인정하기 않고 있어. 확실하고 강력한 국가 체계가 이루어진 시기가 <삼국 시대>이기 때문에, 법이나 종교, 왕권이라는 개념이 확실한 <삼국시대>를 고대로 파악하고 있는거지. 한마디로, 교과서는 <삼국시대>부터를 고대로 보고 있고, 최근 학자들은 <고조선> 시대부터를 고대로 보기 시작했다.... 이거지 뭐.

그렇다고, <석기시대가 반드시~ 원시시대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신석기 시대에서도 문화가 발달하고 생산력이 높아지면 국가와 계급이 발생할 수도 있잖아.  그렇게 되면 석기시대인데도 <고대시대>인 국가가 있을 수 있어. 고대 아메리카의 잉카나 마야 문명은, 신석기 시대였지만 찬란한 <고대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거든.

자, 이렇게 지금까지 <원시시대, 선사시대,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비교하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았어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 역사에서는 언제까지가 원시시대이고, 언제부터 고대시대로 봐야할지... 그럼 다음 장에서는 원시와 고대를 구분하는 이야기를 해보는거야.... 고고....


-  이 책을 참조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



한국사 따라잡기 1 - 원시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개정판)
국내도서>아동
저자 : 송은명 엮음
출판 : 바른사 200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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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문 1 - 원시시대
국내도서>아동
저자 : 역사신문편집위원회
출판 : 사계절 199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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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렇구나 우리역사 1 - 원시시대
국내도서>아동
저자 : 송호정
출판 : 여유당 200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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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1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강종훈,송호정,윤선태,임기환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1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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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마당 1
국내도서>아동
저자 : 김찬곤
출판 : 웅진주니어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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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 1 - 원시시대에서 통일신라까지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역사문제연구소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0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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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1 - 고조선,삼국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강봉룡,서의식
출판 : 도서출판솔 200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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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이야기 (NO.3)

근대, 현대라는 시대 구분을 해보자!

- 시대구분 이야기 -

자,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시대 구분에 대한 이야기야.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가 바로 <근현대사>잖아. 그럼,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근대, 현대>라는 용어부터 알아야겠지? 

대체, 근대는 뭐고, 현대는 또 뭘까? 대체, 누가 기준을 정한건지... 뭐, 근현대가 뭔지 모르고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우선 그것부터 끄적거려 볼꺼야. 역사책을 보면 흔히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뭐 이런 말들이 나오잖아? 근데 그건 누가 정한 건지 참.... 이런 거 안 정하고 그냥 역사이야기를 하면 참 편할텐데... 

자, 이렇게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렇게 시대를 나눠두는 것을 <시대 구분>이라고 한다나 뭐래나.. 이 시대 구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분이 바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이야. 하지만, 이 사람이 처음으로 시대구분을 한 것은 아니고, 그냥 가장 유명한 시대구분일 뿐이지.  

사실, 시대구분이라는 것은 스스로 <근대인>이라고 생각했던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야.  혹시, <르네상스>라는 말은 들어봤어? 미켈란젤로니, 라파엘로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선생이니 하는 분들 나오는 서양 15-16세기 시대를 말하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전 시대와 자신들의 <자부심>있는 시대를 구분하고 싶어했거든. 그래서 시대구분을 시작한거야. 뭐, 한자로 봐도 딱 답이 나오네. 고대는 옛 시대, 중세는 중간세상, 근대는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대....

하지만 시대구분이라는 게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야. 역사를 살아가는 건 우리 인간들이니깐, <인간>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지금과 다른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임의로 나누어 놓은 게 바로 <시대>라는 단어거든.

예를 들어, 내가 일기를 쓸 때에도 나의 유아기, 유치원기, 소년기, 청년기... 뭐 이렇게 나누지만, 사실 그건 내 맘대로 기준을 잡고 대충~ 정한 거잖아.

또 하나 예를 들자면,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창세시대, 아브라함시대, 유대시대, 예수시대... 등등으로 시대를 나누었어. 하지만, 이것도 크리스찬이 아니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꺼 아냐? 반대로, 르네상스인들의 시대구분은 <크리스찬>들이 보기엔 신앙에 맞지 않잖아? 뭐, 이렇게 임의적이라는 거지.

결국, 자신의 기준과 다른 시대구분은, 그냥 임의로 나눈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시대 구분은,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자기 맘대로... 하는 거니깐.

어쨌든 간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서양의 근대인들은, 근대가 시작된 15세기를 무지 자랑스러워 했어. 솔직히 그 이전 시대인, 중세 시대에는 기사도가 어쩌구, 십자군 원정이 어쩌구, 교황이 어쩌구 말은 많이 했어도 <우물 안 개구리> 시대였거든.

한번 <근대인>들의 눈으로 중세를 바라보자. 

아직... 미국이라는 신대륙도 아직 몰랐고, 아시아 애들이랑은 무역도 제대로 못했고, 종교개혁도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  한마디로, 아시아인들은 각각 무역권을 만들고, 문명간 교류도 활발히 하고 하던 시기에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들끼리 죽자 살자 치고 받고 싸운 시대.... 휴... 우리가 100년전의 시대를 지금보다 덜 발달한 시대라고 생각하듯이 근대인들도 중세 시대가 쫌~ 한심했겠지?

그런데, <근대>라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어. 이제, 짜잔~ 하고 <세계화> 시대가 시작된거야.  콜럼버스가 신대륙도 발견하고, 아시아 무역권에 가서 후추도 얻어 왔어. 와~ 세상이 이렇게 넓고, 신기한 세상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겠지? 이런 새로운 세상을 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어?

야...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항로 개척.... 우리 쫌 잘나가기 시작하는구나...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믿었던 가치관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의 세상이 너무 현실과 달라보이기 시작한 거지. 자, 그럼 이 시대에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몇몇 인물들의 가상 대화를 통해 살펴볼까?

교황 : 야... 니들 라틴어 읽을 줄 모르잖아. 내가 성경책 읽어 줄테니 잘 들어. 하나님께서는 <면죄부>라는 티켓을 사는 사람에게 천국을 예약하셨거든. 무식한 일반인들아, 이해되었니? 자, 줄서... 티켓사세요.. 티켓... 교황한테 돈 바치면 천국가요... 교황믿음 만세천국 교황불신 바루지옥.....

로렌쪼 발라 : 놀구있네. 내가 조사해 봤더니, 교황이랑 황제랑 밀약맺고 둘이 이중장부 만들어서 이 땅, 저 땅 다 나눠먹었던데...  이게 뭐야~ 대체, 교황이 판교지구 투기업자랑 뭐가달라? 교황이랑 프랑크 왕국 황제랑 서로 땅따먹고, 정치자금 대주고 이런 뒷거래 했다메? 내가 자료 다 찾았다. 뭐 지금부터는 성경책 내가 직접 읽을란다. 니가 읽어주는 거 안 믿어.

루터 : 라틴어? 되었구... 지금부터는 모국어로 성경책 번역해줄테니 그거 읽으면 되겠다. 성경 직접 읽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힘으로 종교를 바꿔 보자구요. 일단, 교황 자금줄 좀 끊어놔야겠네. 그래야 존경하는 우리 귀족분들이 힘좀 쓸거 아니겠어? 교황불신 귀족만세~~ 종교개혁 만세~~~

  갈릴레이 : 근데, 교황이 한 말을 반박해도 될까? 내가 망원경 만들어서 보니깐 지구가 돌던데.... 근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내가 안했는데... 어떤 넘이 책 팔아 먹으려고 그런 말을 써 놓았어?

콜롬버스 : 그래? 그럼 난 지구가 돈다는 말도 믿을께. 지구가 둥글다는 말도 믿어볼께. 이제,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서 인도 가봐도 될까? 진짜 간다.. 진짜루.... 지구 반대로 갔다가 낭떠러지 만나서 죽는 거 아니지? 확실... 하지? 후덜덜...

뭐, 점차 이런 분위기가 되가는 거다.

세상이 바뀌고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알았으니, 유럽인들도 이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뭔가가 필요했던거야. 이제, 아시아 애들 노는데도 좀 놀아달라고 애원해보고, 무역도 같이 해보고 싶었겠지.

한마디로!! 유럽애들도 점차 <스팩!>이 마련된 거야. 그래서 서양인들은 지금까지의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점을 만들고, 과거와 다른 <스팩!>을 갖춘 <신유럽인>을 표현할 용어가 필요했던 거지. 

그리하여....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시대를 먼 옛날의 시대, <고대>라고 말하면서 시대를 나누었어. 그리고, 로마 제국의 유산이 사라진 시대를 <중세>로 표현한 거지. 그리고 르네상스를 겪은 자신들의 위대한~ 시대를 <근대>로 부르게 된 거야.

그런데 말야. 문제가 생겼어. 15-16세기에 살았던 르네상스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가장 가까운 시대인 <근대>라고 표현했는데, 시간이 계속 지나니깐 19세기, 20세기가 온 거야. 헐.... 그럼 이 새로운 시대는 또 뭐라고 불러야하지???

서양의 학자들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지. 아... 산업혁명이 시작되더니, 뭔가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뀌고, <근대>와는 다른 또 다른 <신세계>가 시작되었는데, 이걸 무슨 용어로 표현해야 하냐구....

그래서, 세계 1, 2차 대전이 끝날 때쯤 새로운 용어를 찾게 된 거야. 히틀러가 자살하고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고 난 이후... 새롭게 변화한 세상.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된 세상. 즉, 1945년 이후의 세계를 표현할 새로운 용어를 창작한거야.

그것이 바로 근대보다 더 지금을 표현할 수 있는 시기, 즉 <현대>라는 용어인거지. 그리하여.... <고대-중세-근대-현대>라는 4단계 시대구분법이 드디어 완성된 거야.

아까 위에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 보았지?

마르크스는, 이런 4단계 시대 구분법에다가 자신의 철학을 합쳐서 <마르크스식 시대구분>을 만든 사람이야. 그 사람은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 등을 거치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은 사람이지. 그래서 그 사람을 사회주의자이자, 공산주의 사상의 아버지라고도 표현하곤 해.

마르크스는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구분에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등을 짝~ 리믹스해서 자신만의 시대구분을 만들었지. 물론, 이 사람 말고도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에 자신의 철학을 붙여 시대구분을 한 사람은 많겠지?

그런데, 이 시대구분법은 문제가 있었어. 뭐~ 19세기 이후에 서양 애들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 시대구분법을 널리 애용했거든.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이게 너무나 안 맞는 다는게 큰 문제였지.

생각해봐봐. 한국이나 중국, 일본 역사에다가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런 단어들를 끼워 맞추려고 하니깐 안 맞는게 한두가지겠어? 한국인이 15세기 르네상스를 살았던 사람들이 아닌데, 서양애들이 살았던 시대를 무리해서 적용하기엔 너무 안맞아서 삑사리가 나지 시작한거지.

서양 애들도 골치가 무척~아팠을 거야. 서양식 시대구분이 만능인줄 알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적용이 안되니깐 환장하겠지.

해결책은 뭘까?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주 심플한 해결책을 내놓았어. 심플하다기 보다는 귀찮아서 대충 방법을 마련한거지. 시대구분이 애매한 아시아에다가는 몽땅 다 <중세 수준이네>를 가져다 붙여 버리면... 참~ 쉽죠.. 잉~ 

영국의 스펜서 : 뭐야... 중국, 일본, 한국, 뭐 인도, 오스만 제국... 이것들은 나름대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라면서 19세기까지 쭈욱~ 중세 봉건시대 수준이네. 그니깐 니들이 우리 서양한테 정복이나 당하지 ㅋㅋ 찌질이들~

하지만, 그나마 아시아에서는 <메이지 유신>이니 뭐니 하면서, 쫌~ 산다 싶었던 <일본> 이라는 나라가 있었어. 아시아의 다크호스~ 일본이 그 말에 바로 발끈~ 했지.

일본 : 되거든!!! 웃기지도 않네..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대로 발전과정이 있거든! 니네 유럽애들 발전이랑 다른 면도 무지 많거든? 니들이 <천황제도>를 알고, <막부시대>를 알아? 글고... 우리도 <메이지 유신>으로 나름 수준급으로 발전했는데, 몰랐어? 니네 시대 구분이 좀 우리랑 많이 다르네. 아시아에는 근대도 아니고, 현대도 아니지만, 독특하게 발전했다는 걸 왜 몰라주는 거야? 오 좋아.. 우리 아시아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그 시대... 그걸 <근세>라고 부르면 되겠네.

그리하여 일본 학자들의 연구로, 4단계 시대 구분법이 <근세>를 포함한 5단계 시대 구분법으로 정착된거야. 그래서~ 아시아 역사에서는 바로 이 <근세>라는 말도 종종 사용하기 시작했지.  물론 우리 한국사에서도 지금 사용하고 있구.

뭐, 암튼 중요한 것은 서양식 시대 구분이라는 것이 우리랑 너무나 안 맞는다는 거야. 우리식으로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때려 맞추려고는 하는데, 당연히 서양애들이랑은 안 맞는게 너무 많겠지? 도대체, 서양의 고대 국가인 로마 제국이랑 데칼코마니처럼 완전 일치하는 우리 고대 국가가 어디 있겠냐구...

그리고 우리 나라 국사 교과서도 한번 봐봐. 뭐, 고대 사회로의 발전, 근세로의 전환... 이런 거창한 제목들은 많이 나오는데, 왜 고대고, 왜 근세고... 이런 설명들은 살짝 생략되어 있잖아~~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 학자 님들께서 고민해서 만들어놓은 시대구분이 있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교과서에는 없지만) 설명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 지금부터는 그거라도 보면서 이야기 해보자. 다음 이야기에서는 우리 역사에서의 근현대사는 어디서 부터인지 파해쳐보도록 할꺼야. 

그런데, 이 점은 분명히 해둬야 할 것 같아. 여기서 시대구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는거... 기존의 모든 역사가들이 자기 나름대로 <시대 구분>을 해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시대 구분이라는 걸 다루는 것 뿐이지. 시대 구분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필요하면 원하는 대로 시대구분을 해 버려도 상관없거든. 자 그러면 한국사의 시대구분은 어떻게 해 놓았는지.... 출발해볼까?

-  이 책을 참조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


북한학계의 한국근대사 논쟁 - 사회성격과 시대구분 문제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이병천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198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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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차하순
출판 : 소화 199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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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고대사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박노자
출판 : 한겨레출판 201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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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따라잡기 1 - 원시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개정판)
국내도서>아동
저자 : 송은명 엮음
출판 : 바른사 200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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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문 1 - 원시시대
국내도서>아동
저자 : 역사신문편집위원회
출판 : 사계절 199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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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렇구나 우리역사 1 - 원시시대
국내도서>아동
저자 : 송호정
출판 : 여유당 200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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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국내도서>아동
저자 : 프랑수아즈샤팽 / 고선일역
출판 : 보물섬 200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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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세 거장
국내도서>청소년
저자 : 클라우디오 메를로 / 노성두역
출판 : 사계절 200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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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내도서>아동
저자 : 김지혜
출판 : 푸른나무+(푸른나무플러스)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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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시오노 나나미(Nanami Shiono) / 김석희역
출판 : 한길사 200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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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보는 창 20 - (03) 아는 것이 힘, 책 속에 길이 있다!

 

근대를 보는 창 20에 대한 도서퀴즈 2회 문제입니다.

도서퀴즈는 역사와 관련하여 재미있고 유익한 책들을 선정한 뒤
각 단원별로 공부한 내용을 풀어보는 퀴즈입니다.

학교시험처럼 성적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얼마나 꼼꼼하게 읽었는지 확인하고,
무심코 넘어간 중요한 내용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퀴즈랍니다.

70점 이상일 경우, 축하 메시지가, 70점 미만일 경우에는 격려의 메시지가 나온답니다.
다음 회차는 근대를 보는 창 2회차분입니다.
역사도서 <근대를 보는 창 20> 은 제목 그대로 총 20회분으로 퀴즈를 구성했습니다.

만약 문제를 풀어보시는 분이
역사 전공을 하고 있는 대학생, 대학원생이시거나
공무원 또는 교원 준비를 하고 계시는 수험생이시라면
책을 읽지 않고도 충분히 문제를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실력이 되시는 분들은 책을 읽지 않고 도전해 보세요~


**** 도서 정보 ****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최규진
출판 : 서해문집 200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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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보는창20인간을둘러싼여러이야기묶음이곧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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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세계사 (3)

석기시대와 원시시대.. 그리고 원숭이들

1. 석기시대가 원시시대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게 있어. 그건 석기시대와 같이 혼돈해서 쓰는 잘못된 용어들이지.

지금 다루는 석기시대란.... 말 그대로 石器... 돌을 도구로 쓴 시대란 뜻이야. 보통 우리가 stone-age 라고 알고 있는 시기이지만, 실제로는 stone implement 라고 쓰고 있지.

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후진 돌... 새 돌.... 반짝거리는 청동.... 무지 강한 철.... 즉...생활 도구를 돌(石器)을 사용했느냐 금속을 사용했느냐로 나누는 기준이지. 이건 순전히 고고학에서 인류 발전 단계를 나타낼때 쓰는 용어야.

석기시대를 이야기할 때, 선사시대라는 말도 같이 쓰지만 석기와 선사는 달라.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의 반대말이지. 先史란 말이 역사보다 이른 시대란 뜻이잖아. 따라서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 이전의 모든 시기가 선사시대야.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단군 신화고... 단군의 고조선은 보통 청동기 때 세워졌다고 하니깐, 청동기 이전은 모두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야....

한국사에서.... 구석기 + 신석기 + 이른 청동기 = 선사시대

또... 원시인들이 살았던 옛 시대를 원시시대라고 대충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석기시대랑은 다른 개념이지. 원시시대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을 말하는 개념이야.

원시시대는 사회주의자였던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념인데, 마르크스는 제대로 된 정치력을 가진 국가가 생기기 전의 시대를 원시 시대로 불렀어. 마르크스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했지.

공산주의란, 말 그대로 공산(共産).... 공동으로 생산해서 재산을 공동으로 나누는 이상적 사회를 말해. 인류는 원래 <원시사회>라는 시기에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였는데, 국가가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평등이 깨졌다고 생각한거지. 즉, 원시시대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평등사회를 지칭하는 말이야.

원시사회(원시 공산사회, 부족공동체 사회) - 고대 국가 - 중세 국가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

위에 적은 사회 발전 단계를 보니깐 대충 알겠지? 돌을 사용한 석기시대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원시사회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 원시사회지만, 돌을 안 쓴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석기 사회에서 고대 국가가 생긴 사회도 있을 수 있지.

아메리카의 고대 잉카 문명 같은 경우에는 석기 시대때 이미 찬란한 문명 사회를 이루었고, 아마존 부족들은 원시사회였지만 금속을 사용할 줄 알았다잖아.

자, 그럼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확실히 알았으니깐, 석기시대로 출발해볼까? 끄적끄적...

2. 구석기의 인류란?

보통 역사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류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그냥 상징적인 개념일 뿐야. 오스트랄로가 오스트레일리아 할 때, 그 남쪽이란 뜻이고, 피테쿠스는 <원숭이>란 뜻이지. 한마디로, 걍 원숭이란 뜻이야.

근데, 305만년전이라는 까마득한 시절의 원숭이가 역사책에서 인류의 시조로 등장한 이유는?

그건 그냥 두 발로 걸어다닐 줄 알았고, 손에 돌을 들고 뭔가를 부실 줄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손에 돌을 들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살았으니 이 때 부터가 이미 <석기> 시대겠지?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조상을 정하면, 여의봉을 들고 킥킥거리며 하늘은 나는 털보원숭이 손오공도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다. 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실 이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원숭이들도 다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어. 400-500만전의 원숭이들 중에서도 <라마피테쿠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원숭이들이 있었거든... 그 이후로 호모 에렉투스니, 호모 사피엔스니... 기타 등등 원숭이들이 많이 발견되었다나봐. 뭐, 우리랑 상관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구...

암튼, 세계 곳곳에서 원숭이들이 등장했다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원숭이들이 발견되었겠지? 그럼 고고학의 시대로 들어가서 우리와 관련된 원숭이들의 생활 양식을 간략히 정리해 볼까? (에휴... 원숭이 얘기만 계속하다가 역사 이야기는 언제 시작하지???)

 

딴 나라 원숭이 얘기는 하기도 귀찮다... 그냥 400만년전 이야기는 영상으로 때워주마~~


http://histor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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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3)

역사학과 사회학이 싸우던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1. 18c :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다.

익숙한 문화 코드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데, 계속 이론 이야기만 해서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화 이야기는 이 편만 끝나면 시작될 것이니, 좀 참고 견뎌보자. 자, 오늘은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과연 역사학에 가까운지, 사회학에 가까운지 간단히 짚어보자.

역사학과 사회학의 처절한 결투는 18세기 이래 계속되었다. 서양 연대기로 따지자면 프랑스 혁명 전후부터랄까?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는 수많은 학문이 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사>와 <사회>라는 항목이었다.

혁명의 기록은 역사이나,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통계는 <사회학>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후 등장한 철학자들은 모두 역사학자같은 사회학자들 이였으니....

사실 서유럽에서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는 역사라는 독립된 학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크게 인식하지 못한 듯 싶다. 고대라 불리던 사회에서는 과거와 관련된 모든 학문이 다 역사였고, 철학이었다. 중세에는 <신의 역사>가 곧 신학이으로서 역사와 동의어였다.

서구에서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그나마 역사다운 역사물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서유럽의 <절대왕정>이 등장하면서 정치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기록을 현재의 우리가 <역사>로 인식하는 것 뿐이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시민계급의 성장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학, 사회학>을 논의할 뿐이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로크의 시민정부론도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올바른 <정치체제>가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뿐이었다. 밀러의 <신분론>은 사회계급현상을,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은 경제체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역사를 인용할 뿐이었다.

아담스미스가 <중상주의 체제의 발전과정>을 이야기한다 해도, 그것은 중상주의보다 자율적 가격합의에 의한 시장경제질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 뿐이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원시사회부터 상업사회까지의 발전과정을 이야기한 것은 결국 <인구 증가와 자원의 한계>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역사학과 사회학을 구분하지 못한 혁명기 철학자들은 역사는 당연히 <사회>를 연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자체만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이런 말이 어울렸을 것이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2. 19c : 랑케가 뜰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런 현실 속에서 <아마추어 같은 역사>를 독립적인 학문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랑케였다. 랑케는 1편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그의 이론은 생략하고 이야기하자.

그럼 왜 뜬금없이 <역사 독립선언>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각국이 새로운 철학을 지지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기의 사회 철학은 <계몽 사상>이었다.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 철학은 <민중이 혁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긍정하였다. 루소, 로크 등의 시민철학은 왕정을 박살내고 민중의 정부가 가능하다는 가능성까지 제시하였다.

이런 혁명의 시대를 겪은 유럽의 각국은 혁명이 끝나자 새로운 철학을 찾기 시작한다. 이젠 유럽의 각국 스스로가 <국민들에게 일체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등장한 철학이 바로 <낭만주의> 사상이었다.

낭만주의는 <합리적 이성>보다는 <민족적 자긍심, 끓어오르는 열정과 애국심, 폭발적인 사랑의 힘> 등 내면적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사상이었다. 국가는 애국심, 민족의 위대함, 공동체의 단합 같은 것을 강조해야만 수많은 유럽 국가들 안에서 독립국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와 독일 같이 분열된 국가에서는 특히 이 <낭만주의>가 유행하였다. 랑케와 달타이 등은 독일 역사가였고, 크로체는 이탈리아 역사가였다. 이들 분열된 국가에서 <역사학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상가들이 많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훗날 이 두 나라에서 낭만주의적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파시즘 사상이 유행했던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나폴레옹 이래 <국민 교육>과 <시민 교육>을 실시하였고, 역사는 민족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필수교과로 채택되었다. 랑케가 국가 공문서를 바탕으로 한 정치사 교육이 <본질적 역사>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인 것 이다. 사실, 정부와 역사학자가 가장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상호협조했던 지역이 바로 랑케가 살았던 <분열된 독일>이었다.

이제 역사는 연대기를 보면서 과거의 일을 하나 하나 생각해보는 수준의 역사를 벗어나, 국가의 공문서를 바탕으로 기술되었다. <학교>라는 지식주입소는 새시대 인력들의 머릿속에 과거의 정치적 지식을 콸콸 쏟아부었다. 역사는 독립했지만, 그 지식의 선택권은 국가에게 있었다. 역사는 국가에 의해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구성되었지만, 그것이 절대적 진리인지에 대한 판단은 학생들에게 없었다.

역사는 사회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도구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이야기(내러티브)가 되었다. 랑케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역사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랑케의 역사는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였다. 서민들의 이야기는 없었으며, 정작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는 이야기는 없었다.

3. 진화론을 믿었던 사회학자들의 역사 만들기...

19세기 랑케가 역사학의 독립을 부르짖을 때, 한편으로는 사회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콩트가 <사회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연설하고 있었다.

콩트는 과거를 아주 간단히 정의하였다. 과거란 <종교의 시대, 형이상학의 시대, 과학의 시대>로 발전하였다고 말이다. 콩트 이래, 과거를 간단히 정의하는 사회학자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관이 뚜렷한 과학적 근거를 가진 <사관>이라고 생각한 듯 싶다.

이들 사회학자들의 사관은 <진화론>에 의거하고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말한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으며, 우성은 살아남고 열성을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원칙이 자연에 적용된다>는 이론을 사회학과 역사학에 인용한 것이다.

진화론을 사회학에 인용한 대표적인 학자는 스펜서이다. 그는 <노동자는 열성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가난은 자신의 탓이다>라고 말하여 산업 사회의 약자가 무능하다는 것을 진화론으로 증명한다. 또, <강대국이 약소국을 점령한 것은 사자가 배고픔에 양을 잡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법칙이다.>라고 말하여 제국주의를 옹호한다. 그는 제국시대를 살아간 자랑스런 영국인이었으니까... 그가 생각한 역사는 야만적 무력 사회에서 제국의 산업자본사회로 발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을 가진 역사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런데 그 <사관>은 역사가 진화하고 발전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관이었다.

헨리 메인은 역사를 <노예사회에서 신분사회로, 신분사회에서 계약사회로> 이동한다고 말하였다. 새로운 사회로의 진화는 인류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본 것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역사란 원시적 본능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본능을 누르고 문명사회로의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화는 원시적 유전자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명인들 역시 내면 속에는 <성적 본능과 원시적 욕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가장 역사적으로 유용한 <사관>을 뽑으라고 한다면 <마르크스 사관>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발전 과정을 <원시공동체 - 고대노예제 - 중세봉건제 - 근대산업자본주의 - 공산주의 사회>의 단계로 설정하고, 각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의 필연성을 증명하였다. 다음 단계가 전단계가 진화한 결정체라는 것이다.

여기에 딴지를 건 학자들도 있다. 튀니스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의 발전 단계는 퇴보할 수도 있다면서 공동체 사회보다 후진적인 <익명성을 가진 사회>를 말하기도 하였다. 

베버는 아예 죽은 마르크스를 평생 비판하면서 살아간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이란 단순한 대립구조에 불과할 뿐, 실제 사회 안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세분화 된 <계층>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저술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은 기독교 계층의 힘이 근대 사회를 이끌어간 동력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역사적 사관을 바탕으로 아예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체계를 수립한 사람도 있으니, 그가 바로 사회학의 아버지 <뒤르껨>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회 발전 과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사회의 구성 요소를 <기능론> 입장에서 제시한다.

사회는 우리 몸과 같은 유기체이며, 몸의 각 기관은 맡겨진 기능을 담당한다. 머리, 가슴, 손, 발 등이 모여 하나의 몸을 구성하므로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된다. 단, 머리가 손, 발 보다 중요한 기능이므로 그 기관이 우대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머리에 해당하는 엘리트, 손과 발에 해당하는 노동자, 심장에 해당하는 정치인 등등....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다르므로 엘리트와 노동자의 급여가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사회는 그들이 전부 존재해야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역사도 이러한 역할 분담을 통해 과거의 질서를 유지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훗날, 수많은 세부분야의 역사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편에서 이야기 했던 아날 사학의 아버지 <브로델>도 역사 자체를 심층적이고 점진적인 발전 속에 이루어지는 유기체적 결합으로 보았다. 역사란, 사회학에서 말하는 커다란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법칙과 같은 것이다.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우연스러운 행동 역시 그 법칙에 제시한 과정 속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이 있고, 자신의 존재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우리는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진화론을 믿었던 사회학자들의 생각은 다시 18세기로 돌아가게 된다.

역사 자체를 알아서 어디다 쓰려고?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본다. 역사가 마르크스나 브로델이 말한 것처럼 어떤 결말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역사는 어떤 법칙을 가지고 파악해야 하는 과학이 되는 것일까? 역사의 발전 과정 속에 모든 인간들의 삶을 집어넣어 버린다면 수없이 많은 <다양성>을 가진 인간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진화론은 <역사가 가진 위대한 힘>과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 보여주었고, 인간의 미래는 결국 가장 합리적인 결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러나,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주변 이야기가 되어 사라져갔다.

역사는 과거를 살았던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진화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4. 랑케를 넘어 역사를 <인문학>으로 만들어 버린 역사학자들...

진화론이니, 사회학이니 하는 일련의 사회학자들 때문에 <역사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역사가들은 아예 역사를 사회학과 분리시키려는 이론을 만들어 제시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칼을 뽑아든 사람은 <크로체>였다.

도대체 <발전 사관>이라는 것을 만들어 <역사의 동력이니, 역사의 목표니, 역사의 발전과정이니...> 하는 거대한 틀을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사회학자들의 역사관은 역사도, 과학도 아닌 어중간한 발전 법칙이라고 비난하였다. 사이비 역사를 넘어, 사이비 과학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역사학을 사회과학과 다른 <인문학>으로 정립시킨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딜타이>이다.

그는 사회학을 사이비로 몰아세우며 역사학과 분리시켰다. 사회과학은 사회가 발전하고 유지되는 과정을 법칙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자연과학과는 다른 사이비 과학이다. 과학은 외적인 법칙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역사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사회학과는 학문 체계가 다른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라 역사학을 <인문학> 관점에서 서술한 학자가 <콜링우드>였다. 그는 과거의 일들은 법칙이 아닌 <과거인의 사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저가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말하며, 로마로 진군한 것은 법칙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사고방식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한 것 뿐이고, 그 결과는 그의 사상에 비추어 가장 있을 법한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 살았던 시저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역사일 뿐, 그의 행동에서 법칙을 찾아내고 인간 행동 패턴의 일반화를 찾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콜링우드가 생각한 역사는 과거인의 <생각>을 과거의 상황에 비추어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거대한 법칙이나 틀을 찾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사회학에서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로서 역사학과 사회학을 구분할 수 있는 이론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사회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또 다시 역사학의 본질을 놓고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5. 20c : 랑케의 정치사를 깨고 다양성을 찾는 역사학자들...

20세기 사회학자들은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역사의 독립성에 대해 큰 의문을 품게 된다.

사회가 세분화 되면서 역사, 정치, 지리, 인류학, 민속학 등 많은 분야가 제각각 독립을 주장한다. 새롭게 등장한 수많은 학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독립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모든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 학문들은 서로 인접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사회학과 역사학, 그리고 수많은 학문들은 서로 교류하면서도 독자성을 내세우는 모순을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역사학은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맞게 새로운 철학으로 거듭나게 된다.

20세기 역사학의 특징은 랑케가 말한 <국민 공통의 정치사>를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역사는 과거를 다루는 학문인데, 왜 정치사만 다루어야 하는가? 왜 영웅의 일대기만 역사가 되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나라는 랑케의 고향 독일이었다. 세계 1,2차 대전을 패하고, 국가집단의 무서운 광기를 맛본 독일은 의도적으로 정치사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왜 국가는 인간을 억압하는가, 왜 히틀러라는 지도자의 광기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는가 등의 근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독일에서 역사는 랑케가 만든 역사의 독립성을 다시 벗어나기 시작한다. 사회 구조와 변화과정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사건이 발생한 인과관계를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 경향을 묶어 사회구조사 연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쟁은 어떤 원인으로 시작되며, 전쟁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유태인들의 이주와 독일에서의 정착생활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러한 원인을 먼 과거부터 추적하여 <탐문 수사>하듯이 파헤치는 것이다. 이 역사인식론은 랑케를 반발하는 과거 학자들로부터 이어져 세계 대전 이후 급속히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발맞추어 등장한 또 하나의 역사 철학은 프랑스의 <아날 사학>이었다. 1편에서 이야기 말했듯이 역사를 오랜시간 동안 서서히 변하는 <지중해>에서의 삶과 같이 표현하면서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도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학은 랑케 사학의 <정치사> 뿐 아니라 사회 구조와 <인간들의 아주 작은 이야기>들도 역사의 분야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랑케의 역사 보다 훨씬 재미도 없고, 쉽지도 않은 것이었다. 고대부터 이어진 전쟁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 지식을 넘어 군사학과 통계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손을 대야 하기 때문에 전문 역사가나 사회학자, 군사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역사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각종 사회학 이론과 통계학 등을 기초로 만들어낸 역사는, 일반인들이 비판하기 어려웠다. 또, 쉽게 쓴 동화책이나 영상물 등 이야기(내러티브)로 만들어 설명하지 않는 이상 이해조차 쉽지 않았다.

또, <인간들의 작은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미시사>를 쓴다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필연적인 선택을 법칙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불과했다.

<지중해>라는 표본지역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스스로 선택을 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오랜시간 살펴보면, 자신의 자연환경에 맞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른 인간들이 그곳에 살아간다고 해도 아마 비슷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 자체의 고유성을 바라보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사회 구조>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20세기 서구유럽에서 보여준 새로운 역사적 흐름은 역사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인문학자>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사회과학의 법칙>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독자적으로 <인간 자체>를 연구해야 하는가?

6. 이들의 논쟁을 정리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자과 사회학자들이 바라보는 역사에 대한 시각은 <구조냐, 인간이냐>의 차이에서 출발하였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 차이점을 모두 융합하면서 역사의 <세밀한 부분>을 강조하였다.

역사를 <진화론>으로 바라보는 거대한 법칙과 사관은 필요가 없다. 역사가 어떤 형식으로 발전한다고 믿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주관성>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건, 베버건, 뒤르껨이던 간에 그들은 역사와 사회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포스트모던>일 뿐이다.

랑케가 주장한 <정치사>도 허구이다. 영웅이란 것은, 국민교육을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낸 허상일 수도 있다. 더구나 영웅에 대한 과거의 자료들은 <영웅 만들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의 작품일 수도 있다.

포스트모던은 20세기 역사가들이 보여준 <아주 작은 인간들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갖는다. 왜냐면, 역사란 과거를 살아간 하나 하나 인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역사에서 보여준 인간에 대한 관심은 포스트모던과 달랐다.

20세기 역사가들은 인간들이 집단 구조 속에서 살면서 그 구조를 유지하는 <손과 발>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뒤르껨의 유기체론과 기능론에 입각해서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설정하고, 사회 속에서 의의를 갖는 인간을 연구했던 것이다.

포스트모던은 이것을 반박한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사회의 문화에 영향을 받지만, 일률적으로 똑같이 종속되지 않는다. 똑같은 노비가 존재하더라도 신분에 적응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 시대의 이념에 저항하고 새 시대를 지향하는 인물도 있는 것이다.

또, 사회 구조 속에서만 찾는 인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찾아야만 살아있는 역사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아날 사학>은 연역법과 같다. 미리 사회 구조의 특징을 정해놓고, 그 정해진 패턴에 따라 인간들의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 이런 사회였으니,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포스트모던>은 귀납법과 같다. 인간들이 그 사회와 문화의 틀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들을 하나 하나 상상력을 동원해 구성해 나간다. 이미 정해진 사회 구조는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 뿐이다. 내가 생각해보고, 내 관점에서 구축된 작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그 시대에는 이런 삶이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던 역사는 과거인들의 일상 생활에 자신을 집어넣어 보기도 한다. 내가 과거인이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단, 사회 구조 속에 가두어진 과거인이 아닌, 그 시대의 문화와 사상을 공유하는 깨어있는 과거인으로 말이다.

역사에 있어 법칙이란, 누군가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가설>에 불과하다. 과거의 <자료>란 완전한 것도 아니고,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역사 토대로 삼는 일종의 <참고서적>일 뿐이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내 의지와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내가 정치사가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 소수 인종들의 이야기, 이색적인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그 과거에 파고 들어 그들의 삶과 문화를 공유하면 그 뿐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한 포스트모던이 현실에서도 가능한 것일까? 지금부터 그 가능성을 한국 사회 각 분야의 문화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지겹도록 재미없는 이론이야기를 이쯤에서 끝내고 실제 <문화>를 가지고 포스트모던을 이야기해보자.

다음 이야기는 문학에서의 영웅 서사 구조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졌길래 <게임 바람의 나라>와 <드라마 주몽>이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포스트모던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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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에 그려져 있는 이황,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로 평가받는다.

1. 성리학에 대한 북한 주체 사상식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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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주체사상의 이념도 <마르크스 사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철저하게 북한식 공신주의 사관으로 모든 역사를 바라보는 북한 역사학자들은 남한에서 1000원, 5000원권으로 쓰이는 유명한 성리학자인 이황과 이이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우리가 역사와 윤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는 이황, 이이에 대한 평가와 북한의 평가는 상당히 다릅니다. 오히려 북한과 우리의 견해가 상당히 다른 반면, 남한과 일본의 견해가 더 비슷할 정도입니다. 그럼 한번 볼까요?

북한의 역사인식은 소위 말하는 <유물론적 사관>입니다. 유물론적 사관을 간략히 말하면, 모든 현상은 눈에 보이는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마르크스의 견해입니다. 사회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인간의 마음이 만드어 낸 허구라고 말했습니다.

예로, 신의 존재는 증명된 적이 없지만 인간들은 신을 믿죠? 특히 서구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신이란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과 우주에 대한 무지를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의 어처구니 없는 불완전함을 인간식으로 해석하기에는 한계를 느껴 신이란 존재를 창조했다는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는 눈에 보이는 물질, 즉 사회경제적 물질의 소유관계에 따라 발전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토지, 자본 등 눈에 보이는 경제 물질을 놓고,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가 투쟁하면서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했죠.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역사란, 눈에 보이는 물질(유물론)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신과 같은 존재(관념론)가 투쟁하는 역사이자, 물질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투쟁하는 역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결국 완성되는 사회는 모든 물질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소유하는 <공산주의 사회>인 것이죠.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의 철학 이념은 물질과 경제 기반에 대한 <유물론적 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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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황은 유물론자가 아니라.

이러한 유물론 중심의 북한 철학은 역사의 주도층을 2가지로 분석합니다.

첫 번째는 관념론의 이념을 가진 자들로, 신이나 우주 법칙 등을 생각하는 비생산적인 계급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기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구질서를 유지하려는 인물들입니다.

두 번째는 유물론의 이념을 가진 자들로, 현실을 직시하고 경제 문제의 해결과 실제 삶에서의 평등한 가치를 찾으려는 자들이 있씁니다. 이들은 피지배계급인 백성을 생각하고 좀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생산력을 높이는 일에 주력하는 자들입니다. 인간이 생산의 주체이자 사회 변화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주체 사상을 가진 이들로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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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조선 성리학자들을 이 공식으로 이해합니다.

북한은 조선 시대 관념론을 이끌어 간 대표적인 학자는 이황이라고 규정합니다. 이황은 관념적인 주자성리학을 이끌어간 자로 규정합니다. 특히 이황은 아무런 사회적 개선책도 내 놓지 않고 윤리나 지배집단의 도덕정치만을 주장한 지배집단의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이황의 주리론적인 성리학을 관념론으로, 이후 조금 개방적인 주기론적 성리학은 조금 유물론에 근접한 학문으로 분류합니다. 이황에서 좀더 유물론적이고 현실론적으로 생각한 자가 바로 이이 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주의파들이었다고 말하죠.

이러한 관점은 철학을 관념론, 유물론으로 나누어 무리하게 분석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황의 업적이 어떤 것이든, 유물론의 입장에서는 이황의 철학이 물질세계와는 관계없는 나태하고 보수주의적인 철학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북한이 주체사상을 정리하면서 이황의 사상을 가장 반동적인 철학사상으로 규정하여 매도한 것은 북한 정권이 추구하는 핵심 사상이 <유물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이황이 주장한 사상 중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천성이 정해져있다는 <인성론>은 두고 두고 계급차별적 발언으로 매도하였습니다. 사실, 이황이 대표적인 표적이었기 때문에 비판받은 것이지, 북한에서는 성리학 자체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습니다.

성리학의 왕도정치, 국왕과 신하의 공치주의 같은 이념은 백성들의 혁명과 무장봉기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공산주의 혁명 사상과는 맞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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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역시 북한에서 좋은 취급을 받는 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이의 십만양병설이나 현실개혁 주장 등은 유물론적인 성향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이황정도로 처절하게 규탄받지는 않습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완성하였고, 일본에서는 성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황.... 북한에서는 이 성리학자를 가장 반동분자로 생각한다니.... 좀 의외이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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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8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현대사 사료) 김일성 사망 북한방송 보도문(1994)
2007/06/02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 대장 차스차코프의 포고문(1945)
2007/03/17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6. 25 휴전 협정 조약
2007/03/17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한국사 참고 사료 - 해방직후 북한의 토지 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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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I S T O R I A > 
역사적으로 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길고 긴 대립과정

이 이야기에 나온 역사적인 이야기들과 법, 제도, 인물 등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라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해당되는 입장의 내용들만으로 씌여진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프랑스 혁명 : 자유부터인가, 평등부터인가...

서구 역사가들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을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찾곤 한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하면 <자유와 평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에서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실제, 근대 유럽의 자유와 평등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니였다.

프랑스 혁명을 처음 일으킨 것은 <귀족>세력에 반발한 <부르조아> 계급이었다. 그들은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인권선언을 발표하여 자본가들의 <재산권>을 인정받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철저한 <자유주의>를 표방한 첫 번째 혁명은 실패하고 말았다. 국민의회의 자본가들은 1791년 샤플리에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파업을 억누르려 했고, 재산이 있는 자만이 투표할 수 있다는 헌법을 만들었다. 자본가들을 믿고 <자유주의 물결>에 동참한 대중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1년 뒤, 민중들은 8월 봉기를 일으킨다. 민중들은 <자본가>들의 세상을 다시 부수고, 프랑스 제 1공화정(국민공회) 시대를 열었다. 자본가들을 위주로 하는 지롱드파를 몰아내고, 민중적이고 급진적인 자코뱅파가 정권을 잡았으며, 국왕인 루이 16세마저 사형에 처한다. 93년 헌법에서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재산권 위주의 헌법을 폐기하고 <생존권과 노동권>을 기준으로 하는 혁명적인 헌법을 다시 만든다. 또, 모든 사람이 직접 선거할 수 있는 <보통선거>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는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평등파>와 대결하려 하였다. 로베스피에르는 <방토즈>법을 만들어 <재산가>들의 재산을 <혁명군과 애국시민>에게 분배하는 조치를 취한다. 서구의 근대사 최초로 <자유>가 <평등>에 의해 억압당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난 것이다.  <자유파 의원>들은 반혁명을 일으켜 다시 <자유>의 가치를 높이려 하였다. 공포정치로 자유를 탄압한 평등주의자 로베스피에르는 죽었고, 부르조아지들은 다시 <재산권>을 최고의 기치로 삼게 되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이 대립했지만, 최후의 승자는 <자유주의>였다.

평등주의자들은 이 자유주의에 대한 반항을 계속하긴 하였다. 예로 1796년 혁명을 통하여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적> 사회를 추구한 이도 있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사회주의의 아버지 <바베프>이다. 그는 재산권 자체를 부정하고, <자유>는 <평등>의 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총재정부를 타도하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하였고, 자유주의자들은 그를 곧 바로 <사형> 시킨다. 그 이후 자유주의는 <절대적>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자유주의는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나폴레옹은 <몰락한 프랑스 경제의 부활>과 <혁명적 자유>를 인정한다는 발표로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현재 프랑스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 가장 큰 이유는 이 것  때문이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었지만, 오로지 혁명의 성과를 <자유>로만 규정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자유주의 이념을 평등주의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독재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말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성과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부르조아지와 대토지 소유자>들의 권한을 인정하고, 그들을 프랑스의 위대한 국민이라고 광고하였다. 그리고 유럽 정복을 통하여 <재산권과 자유권>을 유럽 대부분에 전파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평등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평등을 주장하는 언론은 바로 군부에 의한 <탄압>에 들어갔다. <나폴레옹 법전>은 위대한 법전으로서 법적인 평등과 신앙, 재산, 직업의 자유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법전의 모든 조항은 개인을 위한 자유보다는 <국가 시민으로서의 자유, 재산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나폴레옹 시대의 이념은 <자유이념>이 모든 이념을 포괄하여 유럽에 전파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초기 <자유주의 이념>이었고, 이 자유주의 이념은 유럽의 진보와 발전을 위한 최초의 이념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근원이 된 혁명에서부터 <자유>가 <평등>을 누르고 세상의 빛을 보았으며, 이 후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겪으면서 서구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절대적 이념으로 부각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부터 <자유주의> 이념에 반기를 들고 노동자 계급의 <평등>이념을 부각하려는 시도는 수없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그 연약한 시도들은 대부분 <자유라는 인간의 절대 기본권>에 반한다는 이유로 모두 좌절되었다. 또한, <자유주의>이념은 <자유주의적 고전 경제학>과 맞물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절대적 지원사격을 받았다. 그 이후, 극단적인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반자유투쟁>이 계속되었으나, 역사는 이러한 투쟁을 모두 실패로 기록하고 만다.

봉건귀족 세력의 역사적 역할 : 자유주의 이념에 반하는 <악마세력>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뒤, 유럽사회에서 <자유주의>는 금기어가 되었다. 유럽의 봉건 왕조들은 빈회의를 통해 혁명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전 유럽을 <보수화>하려고 하였다. 유럽의 왕실이 특히 주목한 것은 평등보다는 <자유>이념이었다. 왕실과 귀족세력은 산업혁명 등을 통해 성장하고 있던 <자본가> 계급을 가장 큰 적으로 보았으며, <자유주의>는 이들 자본가 계급의 무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로서 유럽의 <정통 왕실>과 성장하는 <자본가>들은 서로 적으로서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게 되었다.

그럼 이 때 <지식인과 민중>은 누구 편을 들어야 했을까? 당시의 지식인들은 <평등주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의 대학생들은 <보수적 과거 세력>들인 왕실과 귀족에 대한 대대적인 규탄시위에 들어간다. 독일 대학생들은 부르센샤프트 운동을 벌였고, 나폴리에서는 카르보나리라는 비밀결사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중세적 왕실 질서는 또 다시 프랑스에서 대대적으로 규탄에 들어간다. 나폴레옹 사후의 프랑스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시민계급과 자본가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었으나, 정부는 의회를 해산해 버리는 등 자유주의를 탄압하였다. 티에르 등 <자유주의자>들은 <민중>과 연합하여 1830년 7월. 다시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성공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평등주의자>들을 버린다. 민중이 원한 평등선거는 없었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부도 없었다. 단지, 자본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 선거권을 조금 더 주었을 뿐이었다. 특히 노동자들은 <샤플리에법>에 의해 정치적 발언을 할 수조차 없었다.

결국, 자유주의자와 평등주의자들이 모두 적으로 여긴 봉건귀족은 이 둘의 연합으로 몰락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평등주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자유>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프랑스 공화정 : 계속된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대립

이 이야기는 유럽의 대표적인 혁명을 이끈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혁명은 프랑스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당시 유럽 각지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내걸고 일어난 혁명들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자유주의 혁명을 이끈 선구적인 혁명이 프랑스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예로 든 것이다.

7월 혁명으로 프랑스 민중은 또 다시 <평등>의 기치를 잃어 버렸다. 이 때부터 프랑스 민중들은 <민중이 참여할 수 있는 보통선거>를 요구하게 된다. <자유>가 어느 정도 정착되자 <평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를 주장했던 학생들은 이제 농민의 편이 되어서 평등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1948년 2월. 프랑스에서는 또 한 차례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혁명은 국왕 루이 필립을 폐위시키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을 다시 수립하게 만들었다. 로베스피에르의 프랑스 혁명 공화정에 이은 <제 2 공화정>이었다.

그러나, <제 2 공화정>은 <자유주의>와 극심한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급진 평등파>들은 <자유주의>의 기본 이념인 <재산권>을 제한하려 하였고, 이것은 기득권을 가진 기존 <온건한 공화파>들 조차 놀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립은 다시 극단의 혁명을 몰고왔다.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은 6월 봉기를 일으키고, <평등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주장하였다. 제 2 공화정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폭동은 불법이라면서 강하게 진압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타협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공화정은 <단원제 의회와 대통령제도>를 실시하여 국민투표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에 대한 보완책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을 체제안으로 포섭해야 했다. 특히 <평등>을 주장하면서 <계급>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국내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우애>의 개념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민중과 민족>이라는 개념을 국민에게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족>은 계급을 떠나 하나이다. 모든 계급의 통일체가 민족이고, 민족의 정부가 국민의 정부이다.

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 3세>이다. 그는 이 <민족>개념으로 국민들의 <냄비같은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았다. 물론 노동자들은 계속적으로 평등을 요구했고, 게드의 프랑스 노동당이 창립되기도 하지만 나폴레옹의 강력한 리더쉽 앞에 <평등주의>는 <민족주의>라는 이념에 묻혀 버렸다.

영국 : 자유주의가 제국주의 이념으로 전환되다

프랑스와 함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이끌어갔던 영국의 <자유주의>는 무시할 수가 없다. 영국과 프랑스가 19세기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은 우리나라에까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화기부터 진행된 우리의 <자유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이념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이들 나라의 문물을 먼저 수입한 청과 일본에 의한 것지만 말이다. 이건 다음 회에서 다루면 좋을 것 같다.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철저한 <자유주의>를 표방하였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을 목격한 <조용한 섬나라>는 이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젠트리들에게 수많은 권리를 주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던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혁명이 아니라 조용한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국가이다. 그만큼 자본가들에게 상대적으로 관대한 나라였다. 무론 의회 내에서 귀족과 자본가의 대립이 있었지만, 자본가 위주의 휘그당은 <자유당>으로 명칭까지 개편하면서 <자유주의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귀족들은 <보수당>에 집결하여 정당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19세기 영국은 곡물법을 폐기한다던가, 항해조례를 폐기하면서 자본가들이 해외무역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물론 영국의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19세기 차티스트 운동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주장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자유>의 이념은 <평등>이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영국 노동자들이 산업자본가와 같은 권리를 차츰 인정받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또 하나, 유럽 어느 나라이든 19세기 <여성의 평등>을 거론한 나라는 없다. 여성에게 똑같은 보통선거를 준 것은 선진적인 영국도 <20세기> 들어와서이다.

이러한 영국의 자유주의적 발전은 <자유주의 만능 이념>을 발전시키게 된다. 특히 자본가들의 <자유>를 철저하게 인정했던 분야가 바로 애덤스미스로 대표되는 <경제학> 분야이다. 애덤스미스는 국가가 국민의 자유에 절대 간섭하면 안된다는 이론을 주장하면서, 모든 것은 <가격>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멜더스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이론을 내 놓는다. 그런데,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유>는 주되, <평등>은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빈곤은 노동자 책임이므로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는 없다. 빈민촌에는 소독도 해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이었다.

이것을 이데올로기로 정립한 사람은 <스펜서>이다. 스펜서는 이 모든 이론을 <사회진화론>으로 정립시켰고, 유럽인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사회진화론>이란,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 것은 먹이사슬에 의한 정당한 행위이다. 사자는 강하고, 양은 약하다. 사자는 육식동물이고 양은 초식동물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이것을 사회 법칙에 대응하면?

노동자는 가난한데 그것은 유전자가 불량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빈곤할 수밖에 없다. 멘델의 유전의 법칙에 의하면 열성은 도태되어야 한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경제학자 리카도는 한가지 증명까지 시도하였다. 그것이 유명한 <임금의 철칙>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성경이다. 경제는 지대, 이윤, 임금의 3가지로 유지되는데 지대가 커지면 임금이 줄어든다. 노동력이 늘어나면 임금은 그만큼 준다. 노동력이 없다는 것은 수요가 없다는 것이므로 노동자의 임금이 늘어날 수 없다. 결국 노동자는 항상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 진화론을 국가간에 대입하면 이렇게 된다.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 점령당할 수밖에 없다. 강한 나라는 먹이감을 구하고, 자국의 문제를 해결한 탈출구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식민지를 만둘 수밖에 없다. 강한 나라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과 같은 <사회적 법칙>일 뿐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사상은 윤리나 도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니라 <사회적 당위성>으로 설명해야할 사상이다. 약한 나라는 강한나라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힘을 키워서 사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약자의 변명은 사회 속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로서 참신한 혁명 이념이었던 <자유주의>는 타락과 협상을 거쳐 다양한 사상과 연결된 결과, <제국주의>의 호수까지 흘러들어가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제국주의를 부정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개화기에는 <근대 사상과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으로 <자유주의>를 수용하였고, 그 결과 개화기 지식인들은 <제국주의>도 수용하였다.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이유는 <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우리 역시 강력한 <제국주의>국가로 거듭나서 <제국주의로 제국주의를 물리친다>는 이이제이의 원칙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민족주의자인 신채호 선생도 초기에는 제국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였고, 실제로도 일제시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초기에는 <제국주의적인 군사실력 양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자유에 대한 <평등주의>의 반격...

사회진화론까지 나아간 <극단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평등주의>자들은 수많은 반격을 하고, 저항을 하였다.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 이념을 계승한 이들은 중산계급의 하층민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면 어느 정도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평등주의적 급진주의>를 주장하였다. 생시몽과 같은 이들은 폭력혁명이 아닌 대화와 설득으로 자본가와 협력하여 타협을 이끌어내자는 <공상적 사회주의>를 주장하였다.

푸리에는 한발 나아가 현존 제도를 모두 버리고, 심지어 결혼조차 부정하면서 성적인 자유까지 주장하였다. 여기서 더 나아간 사람들은 <무정부주의>라는 새로운 이상향을 생각하게 된다. 무정부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가 권력은 모두 <평등>을 억압한다고 본다. 경찰, 군대, 학교, 법원 등은 <자유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들 도구는 <평등>을 옹호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의 결론은 <국가의 완전 소멸>이 평등을 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은 국가를 없애고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생산수단을 가진 뒤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하는 일이 없는 평등한 노동의 세상을 말하였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직접 코뮌(자치집단)을 만드는 것이 <평등>사회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더 나가 러시아의 바쿠닌은 아예 폭력 혁명으로 모든 것을 부수자고 말하기도 한다. 크로포티긴은 바쿠닌의 사상을 계승하여 모든 것의 파괴는 새로운 창조를 가져온다고 말하고, 그 새로운 세상은 <평등>에 입각한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크로포트긴의 사상을 계승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부수고 민족의 평등을 이루자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신채호> 선생이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자유주의와 마르크스 주의의 대립

독일의 자유주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비스마르크이다. 비스마르크는 철저한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가 통일과 자본가 계층의 자본주의를 옹호하였지만, <평등주의>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대입장이었다. 비스마르크는 <반사회주의법>을 발표하여 평등주의자들의 모든 활동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 이유는 독일의 현실 때문이다. 독일은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 된 이후 동독일의 토지귀족(융커)들과 서독일의 산업자본가에 의해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더 철저한 단결을 주장하게 된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평등 개념>은 이렇다.

세상은 불평등하다. 누군가 평등함을 추구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또 깨드린다.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현 사회의 모습과 일치한다. 단, 이 변증법은 철학적 개념이 아닌 실제 노동자들의 삶과 관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부조리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이 필요하다.

그런데 계급투쟁을 하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제적 생산력>을 기준으로 한다.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하부구조는 경제력인데, 상부구조인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독식한다. 역사는 그러한 모순(정)에 대한 투쟁(반)이었으며, 그 투쟁은 항상 새로운 결과(합)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역사는 발전하였지만, 아직도 평등하지 않다. 진정한 평등은 자유주의(자본주의 : 정)에 대한 평등주의(반)의 투쟁으로 새로운 세상(공산주의 : 합)을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혁명의 주체인 빈민층(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위해 제 1, 2 인터네셔널을 만들었고 이 국제 평등기구에는 독일계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각국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보다 <의회>에 진출하여 <자본주의>가 붕괴될 대를 기다리자는 이념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적 기구로 단결하여 훗날 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기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1차 대전 후 러시아에 공산주의 국가가 성립됨으로서 이들은 해산하였다.

프랑스.... 왕정과 공화정의 반복 :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대립

프랑스는 제 2공화정이 몰락하면서 나폴레옹 3세가 다시 <자유주의적 가치>를 들고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내세운 것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평등>요구로 기득권과 자본가들이 <재산권>을 빼앗긴다는 우려를 했기 때문에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았고, 나폴레옹은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신헌법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독재권을 용인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학교에서 정치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의 큰 줄기였다. 나폴레옹 3세는 기득권을 위한 <쇼>를 많이한다. <자유주의>의 옹호자라는 말을 듣기 위해 은행설립, 철도 건설, 중공업 산업 육성 계획을 세워 자본주의 국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특히 파리시를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불만은 많았다. 나폴레옹이 실시한 노동자를 위한 <평등> 정책은 실업자 구제책이었다. 실업자가 늘면 사회 불만 세력이 되고, 그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지 모른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평등이란 말 대신 <민족의 영광>이란 말로 모든 국민이 단결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은 점차 불만이 많아졌다. <민족>을 주장하면서도 결국 <부르조아>를 위한 정책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폴레옹의 정책은 간단하였다. 나폴레옹을 소개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자유주의적 발전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민중>을 달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그것은 전쟁이었다. 지금이야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영화, 연예인 등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지만, 이 당시의 확실한 방법은 바로 전쟁이다.

나폴레옹 3세가 국민들에게 전쟁의 이유를 설명한 것을 보면 명확해진다. 바로 <국민적 영광>을 위해 전쟁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크림전쟁, 이탈리아 통일 전쟁(샤르데냐 전쟁), 멕시코 원정, 오스트리아 전쟁 등 도대체 왜 하고 있는지도 불명확한 전쟁을 수많은 이유를 들어 시도하였다. 그러나, 독일 통일 전쟁(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비스마르크의 농간으로 패함으로서 <국민적 영광>은 상처로 돌아왔고, 국민들은 그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역사적인 <파리 자치정부>가 추진된다. 급진적인 자코뱅주의자,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자, 블랑키 주의자들은 <평등주의>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연합하였고, 파리에 <노동자 정부>를 수립하였다고 선언한다.  그들이 진정 원한 건 혁명 자체가 아니였다. 그들은 자유주의에서 <평등주의>로 국가정책을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정부를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피의 일요일 전투>라고 역사는 부른다. 자치정부군은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항쟁하였다. 국가는 그들을 잡아 바로 바로 총살시켰고, 시위는 계속되었다. 정부는 죽이지 못한 이들을 파리 시내에 가뒤 굶겨 죽였다. 쥐를 잡아먹으며 항쟁했던 <자치정부>의 모든 이들은 엄청난 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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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2부에서 다룰 이야기 : 사회주의의 성장 드레퓌스 사건, 카톨릭 세력과 자유주의의 관계, 미국노예해방은 자유주의인가 평등주의인가, 러시아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주의를 버린 제국주의, 세계대전 중 평등사상, 히틀러와 자유주의, 냉전시대와 평등주의, 신자유주의 사상의 등장배경과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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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양장본)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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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 신자유주의는 강력한 사적 소유권, 자유 시장, 자유무역의 특징을 갖는 제도적 틀 내에서 개인의 자유 및 기능을 해방시킴으로써 인간 복지가 가장 잘 개선될 수 있으며, 국가의 역할은 이러한 실행에 적합한 제도적 틀을 창출하고 보호하는 데 있다고 제안하는 정치적ㆍ경제적 실행에 관한 이론이다. 이 책은 세계적 담론과 정책을 주도하는 핵심 용어가 된 신자유주의의 의미를 알아본다. 신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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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과학 이론신서 19번째권. IMF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지 2년이 지난 현실에서 신자유주의의 태동과 전개과정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저서. 1950-60년대 신자유주의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고 신자유주의 등장과 현대자본주의의 특징을 고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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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항소이유서에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를 인용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저자의 정치문화 에세이. '이 땅에서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나는 국론통일이 싫다', '한국적 자유주의의 비극' 등 45여 편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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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진 지음 | 동명사 펴냄
정치의 본질을 다룬 정치철학서. 정치철학의 정의부터 분배의 정의와 평등, 국제사회 정의에 관한 모색 방안 및 자유주의와 한국정치에 관한 내용까지 담았다. 지난 10년간 학술지 및 학회나 학술회의에서 발표했던 논문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한 이해와 일부 현대정치 이론가들의 이론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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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식 지음 | 철학과현실사 펴냄
'자유주의는 진화하고 있는가'란 물음에 깊이 있게 고찰해 본『자유주의는 진화하는가』. 자유민주 이념에 바탕을 둔 교육을 받아 왔고 철학공부를 한 저자는 롤즈의『정의론』을 접하게 되면서 잠재의식적 자유정신을 의식화하고 자유주의를 향한 사회경제적 인프라를 각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자신이 나름대로 구상해 온 자유주의적 입장에 대해 총 5부로 나누어 마음껏 이야기한다. 1부에서는 자유주의와 그 적들, 2부
상상의 공동체(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상세보기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 나남 펴냄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책. 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해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로 보는 필자의 생각을 상상의 공동체라는것을 통해 접급했다.

프랑스혁명과 베르트랑 바래르 상세보기
서정복 지음 | 삼지원 펴냄
근대적 민주시대의 새로운 장을 연 프랑스 대혁명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혁명의 추진자 겸 관찰자 역 할을 했던 베르트랑 바래르의 활동과 증언을 통해 살 핀 책. 혁명 이전 새로운 사상의 흐름과 베르트랑, 자코뱅 시대, 테르미도르 사건 등 6개 장으로 설명했다.

자유주의적 평등(한길그레이트북스 73) 상세보기
로널드 드워킨 지음 | 한길사 펴냄
로널드 드워킨의『Sovereign Virtue』를 번역한 책. 미국의 롤스 이후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드워킨은 이 책을 통해, 자유주의 평등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평등권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한다. 구좌파가 지나친 평등을 추구했다는 기존의 비판과는 달리, 오히려 구좌파가 추구하였던 평등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라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현대 정치철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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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I S T O R I A > 환타스티아 (6장)

서구의 신화에 대한 깊은 환상 - 드루이드

드루이드에 대한 세가지 관심

<드루이드>는 유럽의 신화에서도 특별한 존재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신화 속의 신화>로 자리잡고 있는 존엄한 사제라는 이유 때문이죠. 환타지물과 같은 유럽 중세의 이야기 속에서 드루이드는 유럽 주류와는 다른 <신화 속에서도 신화적인> 이야기로 다루어집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록이 거의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신화를 이야기할 때,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외감이나 공포심을 갖고 이야기를 바라봅니다. 알려지지 않은 그 이야기에는 어떤 숨은 뜻이 숨어있을까 하고... 그러나 고대 신화의 큰 맥락은 인류가 살았던 비슷한 시기의 다른 곳 이야기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드네요.

드루이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최근에는 크게 3부류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첫 번째 사람들은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할 연구자들입니다. 신화와 민속학, 유럽에 대한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드루이드라는 존재와 그 존재가 중세 유럽에 나오는 문건들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겠죠. 특히 문학과 시가에 많이 나오니까요.

두 번째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게임매니아>들입니다. 환타지 소설에 드루이드는 선과 악을 동시에 행하는 이중적인 사제로 등장합니다. 또 <와우>와 같이 대중화된 RPG 게임에서도 드루이드는 자연 속에서 치유의 힘을 갖는 사제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소설과 게임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내용이 역사와 완전히 일치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드루이드의 배경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는 듯 합니다.

세 번째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드루이드라는 단어에 대한 관심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그리스도교가 일반화 되면서 신화적 존재인 드루이드 사제나 고대 종교에 대한 왜곡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중세 교부철학자들은 가톨릭 교리와 다른 모든 신들의 역사를 이교의 역사로 단정했기 때문이죠. 왜곡된 종교적 공포심은 그 종교에 대한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드루이드>에 대해 진실을 알 수 없을까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이 <드루이드>에 대한 관심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초기 사회에서 <신관>의 존재

드루이드가 무엇인가를 정의내리는 부분을 저는 다른 서적들이 접근하는 것처럼 신화, 종교적인 접근이 아닌 역사적인 (개인적인) 생각으로 적어볼까 합니다.

인류 역사 단계상 국가가 성립한 단계는 (대부분이) 청동기 시대였습니다. 청동기 때 금속기 문명이 등장하면서 <금속기는 무기 용도>로 가장 크게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도의 물질 문명이 시작된 것과 달리 초기 금속문명 시대의 정신적 수준은 그다지 높지 못하였습니다. 부족을 다스리고 국가를 세워 나라를 통합하려는 시기에도 여전히 석기시대의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이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남아있었습니다. 실제 유럽에서 크리스트교가, 아시아에서 불교가, 중국에서 유교이념이 등장하기 전까지 석기시대의 종교는 개별적으로 그 지역에서 큰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러한 석기시대의 종교적 이념은 그 지역에 따라 독특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자연환경과 사회구조에 따라 숭배하는 대상이 각기 달랐죠. 그러나, 초기 국가시대에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종교적 특장인 <신관>, 즉 <무당>이 존재하였다는 점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삼한 기록으로 자주 나오는 종교적 제사장 <천군>, 인도 신화의 <신관>, 유럽 신화에서의 <사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초기 국가 시대에는 <종교적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입니다.

초기 국가단계의 사회에서 종교적 지배자가 중요시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인류의 사회발전단계를 설명한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물론자인 마르크스는 <종교>의 근본 원인을 <공포>에서 찾았습니다. 인류는 자신이 알 수 없는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신>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불합리한 문제를 가장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알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무엇인가를 <신의 이름으로>라는 말 한마디면 간단히 해결되니까요. 초기 국가 사회에서는 동북아의 무당(샤먼)이나 인도를 경계로 서부의 사제(신관)계급이 신의 명령을 전달하는 매개체였고, 중세시대에는 <교황>이 신성을 상징하는 매개체였다는 것이죠.

초기 사회에서의 <사제>란 계급은 어느 지역이든 <경외감>과 <공포심>을 동시에 주는 절대자였습니다. 그러고, 그 중 북유럽와 브리튼 지역에서 활동했던 켈트족의 사제가 바로 <드루이드>입니다. 드루이드는 신화적 존재로 격상되었지만, 실제 초기 사회에 볼 수 있었던 <사제> 계급이었을 뿐입니다.

인도 신화에서 유럽, 북유럽 신화로...

학자들은 드루이드의 기원을 인도 문화권의 <사제>의 개념이 전파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초기 국가시대 중화권-만주, 요녕-한반도를 아울러 신관계급이 존재했던 것처럼 인도 문화권에서도 사제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인도 문화권에서의 초기 사제는 하늘과 땅을 중제하는 <무당 : 샤먼>의 개념이었습니다.

초기 인도 신화의 원형으로서 <아그니>라는 신이 있었는데, 이 신은 신과 인간을 중제하는 샤먼이었습니다. 이 신은 신들의 사자로 인간을 방문하고, 인간이 바치는 제물을 하늘의 신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초기 국가시대 각 국의 신관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짐승이나 인간 자체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와 비슷한 <제천행사>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그니는 인간으로서의 샤먼이 아니라 우주의 도처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생활을 지켜보는 절대적인 신으로서의 샤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그니라는 말 자체가 <불>을 뜻하는 단어로서 인류를 지켜주고 문명을 발전시켜준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아그니와 같은 인도의 신은, 아시아 유목계 민족의 이동과 함께 인도-유럽문화권의 사제 개념으로 정착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예로, 동양에서의 힌두교 신은 브라만이 사제 계급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서양 켈트족의 드루이드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제로 발전했다고 보는 관점이죠. (실제 기록은 없고, 단지 고대 민족의 이동경로연구나 종교적 유사성을 근거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갈리아 전기에 등장한 드루이드...

드루이드라는 사제 계급이 역사에 등장하면서 이후 환타지 등 문학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바로 유명한 로마의 정복자 시저(카이사르)의 저서 <갈리아 전기>에 캘트와 게르만의 존재를 적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시저의 기록에 의하면, 고대 캘트족들은 전사계급과 사제 계급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중 자유민들은 <전사단>을 구성하여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 전사단은 국가적 조직을 이루지 못하고 단순한 수준의 <민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민화는 정치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토론하고,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의 단체였다고 합니다. 캘트인 중 하류 계급은 전사계급을 위한 식량 조달이나 일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캘트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계급은 <사제계급>인 드루이드였습니다. 이들은 <신의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샤먼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었으므로 사회적 지위는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의 심판은 절대적이었고, 신의 심판에 불복종하는 사람은 <종교적 자유>를 박탈당하였습니다. 당시 원시 사회에서 종교적 자유의 박탈은 신과의 관계를 끊는 것으로 가장 큰 형벌이었다고 볼 수 있죠. 이들은 영혼불멸 사상을 믿었기 때문에 영혼을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드루이드>는 당시 가장 큰 특권층이었습니다. 삼한의 <소도>와 같이 제정이 분리된 사회에서 자신들만의 성지를 가지고, 신탁을 받았는데 이러한 신탁이나 법적 해석은 당시 사회의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범죄자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도 하였고, 가난한 자들을 산채로 제물로 바치는 풍속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독재적인 풍속은 훗날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이교도>라고 탄압받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드루이드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하면서 신의 명령을 지상에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종교관, 인도의 브라만, 동아시아의 신관이 모두 그런 역할을 하였죠. 이러한 초기 사회 신관들의 특징은 단순히 제사만 지내는 신관이 아니라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식인층이었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드루이드 역시 마찬가지였죠. 세습적인 계급으로서 드루이드는 사제이자, 신의 심판을 맡는 재판관이었고, 신의 명령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교육자이자, 사회적 불만세력을 제거하는 조직체의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천제를 보고 천기를 읽거나, 달력을 제작하는 역할도 하였고 예언가로서의 역할도 했으며, 병자를 고치는 치유술사에서 마법사의 역할까지도 하였습니다. 판타지 소설에 나올만 하죠.

캘트족의 멸망과 드루이드 죽이기의 시작

쇠락한 민족은 그 종교성도 의심받기 마련입니다. 기원전후를 기점으로, 로마가 유럽 북부지방까지 세력을 떨치면서 켈트족의 종교인 드루이드교도 심한 타격을 받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갈리아 지방 통제 정책으로 개별적인 종교를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황제숭배>와 <로마교>가 유럽 북부지방에 들어온 것이죠. 제우스신을 정점으로 한 로마교는 무당역할을 하는 드루이드의 이념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드루이드가 사교도로 규정된 것은 유명한 교부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 때 부터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본질과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종교도 부정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크리스트교를 위한 유명한 저서인 <신국론>에서 <하느님> 이외의 신을 인정하는 이교도의 사제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교도들의 생활에 대해 이전과 다른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교도들은 사람을 산 채로 묻어 죽인다던가, 심장을 먹는다던가, 난잡한 섹스를 즐긴다던가, 야만인같은 행위를 즐긴다던가 하는 내용들이 추가됩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문명인들인 로마인을 자극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공포심>을 이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종교의 근원을 <공포>라고 했듯이 교부 철학자들은 야민인들의 종교가 가진 <무서움>을 극대화하여 그 종교에 대한 반대 개념의 선으로 <크리스트교>를 강조한 것입니다.

특히, 로마 시대의 탄압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아일랜드 지방의 드루이드 사제들 조차 <하늘과 지상의 연결자>로서의 신성한 권한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빼앗기고, 드루이드는 이제 <공포를 낳는 이교도>로 낙인찍혀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들어오면서 원시종교인 샤먼과 토템이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정착되면서 원시 종교인 드루이드 등이 사라지게 된 것이죠.

드루이드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의 양면성

중세시대 캘트의 문학을 미화하는 여러 작품들은 드루이드를 신화적 소재로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드루이드는 아일랜드와 브리튼, 캘트 전설에 종종 등장하는데, 그 신비함은 환타지적인 소재로 딱이었죠. 온라인 게임인 <와우>에 등장하는 드루이드는 자연 속에 은둔하는 판타지 속 신화의 존재로 등장하면서 드루이드의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 환타지 속의 드루이드는 선과 악의 양면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드루이드는 치유의 힘을 사용하여 밝음의 길을 걸으면서도, 반면 강력한 어둠의 힘을 이용하여 반대세력을 굴복시킨다고 표현합니다. 절대 선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설정이라는 것일까요?

반면, 중세이래 그리스도교, 특히 기독교에서는 드루이드를 마녀사냥의 도구로 이용하였습니다. 사탄의 힘을 이용하는 심령술을 행하는 자, 악령을 부르는 제사의식을 행하는 자 등을 드루이드로 설정한 것이지요. 할로윈 행사에 등장하는 각종 기괴한 호박머리와 가면 등은 드루이드의 악마성을 상징하는 물품으로 이용됩니다. 물론 드루이드 뿐 아니라 각종 초기 종교들이 중세 이래 <사탄의 종교>로 낙인이 찍혀 있기도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종교가 사람의 공포심을 극대로 자극한다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 드루이드를 닉인찍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류 종교의 반대 개념으로 역사에 묻힌 종교를 꺼내 <악마의 종교>로 낙인찍어 버리면 주류 종교의 신성함이 돋보이게 된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죠. 실제 <악마의 종교>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중세시대 교황에 대한 믿음과 의존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드루이드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2가지입니다. 게임매니아들이 생각하듯이 재미있는 신화적 존재이자 즐길 수 있는 소재거리로서의 존재, 또 하나의 관점은 <악마의 속삭임>을 전해주는 오컬트 종교... 어느 쪽의 입장이던지 서구적 신화인 드루이드는 그냥 서구 사회 역사 속의 산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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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세기 : 서유럽 도시와 길드체제에 대한 분석

이번 장에서 다룰 내용은 14세기 서유럽에서 장원이 몰락할 당시 서유럽 도시들은 어떤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시 도시들이 중세적인 봉건제도와 대비되는 새로운 경제형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근대적일까요? 아니면 당시 도시들도 중세적인 구제도의 하나였을까요? 이 점에 착안해서 한번 도시들을 다루어보죠.

1. 14세기 큰 혼란 속에서 도시는 계층 분화가 이루어지다.

14세기에는 서유럽 전체의 전반적 경제구조가 위축되고 있었습니다. 백년전쟁으로 유럽 전체 경제구조가 흔들렸고, 흑사병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도시 경제는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12-13세기에 걸쳐 계속된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14세기에도 일부 대상인들은 그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십자군 이후 동방과의 무역은 대상인들의 무역 대상을 서유럽이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세계무역에 후발주자로서 뛰어들게 한 원동력이었죠.

14세기의 도시는 이전 도시와는 조금 달라집니다. 11세기의 도시들은 솔직히 도시라고 말하기에 너무 협소한 면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장사 영역을 <브로그>라고 설정하여 울타리치고, 그 곳을 자치 도시화한 것이 11세기의 도시들입니다. 이 도시들은 영주나 교회세력이 세금을 수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울타리(브로구스)를 견고히 하고, 울타리 안쪽에서의 자치권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자치도시이지요. 이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무역하는 사람들을 <부르조아>라고 합니다. 따라서 초기 도시란 울타리 영역의 규모에 따라 인구 500일 수도 있고, 만명일 수도 있고, 더 성장하여 10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세 도시 중 당대 중국과 비교하여 규모가 비슷한 도시, 즉 10-100만의 도시란 유럽을 통털어 10군데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시아에서 보기에 유럽의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 시골 향도(?)쯤으로 보였겠지요.

그러나, 14세기 도시들은 원거리 무역을 시작하면서 그 규모를 확대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인 이탈리아 도시들이 그 중심이었지요. 물론 16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에는 대서양 앞바다인 포르투갈, 영국의 도시들도 발전하구요.

이러한 새로운 도시들은 그 자본력과 무역 능력에 따라 도시끼리의 수준차가 아주 심해집니다. 더 심한 것은 도시 내부의 빈부격차입니다.

도시에서 대상인들은 상인길드를 형성하여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게 되고, 도시귀족화 합니다. 이들은 봉건제도 내에서의 <길드>라는 체제를 고수하는 보수적인 세력으로서 상층 부르조아지가 됩니다. 상층 부르조아지들은 귀족가문과 혼인이 가능한 계층이었습니다. 이들은 상업의 이익을 금융업, 고리대, 토지사업, 모직물 사업 등으로 재투자하면서 확실한 신분상승을 꾀합니다.

도시내에서 대상인들의 <길드체제>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중소 부르조아지가 됩니다. 이들 중 기술을 가진 자들은 <장인길드>를 조직하기도 하죠. 특히 당시 도시들은 교회나 영주 세력을 배제하고 특허장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왕권과 결탁하였습니다. 즉, 왕에게 세금을 내는 대신 왕의 상비군이 도시를 지켜주는 체제였지요. 도시 중산 부르조아지들은 이들 국왕과 철저히 결탁하여 법관, 궁중관료, 세무사 등으로 성장하면서 <신흥 부르조아지>로 성장합니다. 실제 시민혁명기에 주도계층은 길드체제에 길들여진 상층 부르조아지가 아니라, <상인길드>에 포섭되지 못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이들 중소 부르조아지들입니다. 오히려 <길드체제>는 혁명기에 타파대상이었죠.

마지막으로, 도시내에서 아무런 세력도 가지지 못하고 임금 노동자로서 하루 하루 살아가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농촌에서 농노해방으로 도시에 이주한 농민들, 길드의 폐쇄성으로 인해 기술을 인정받지 못한 직인들, 그리고 도시 빈민들로 구성되어 있었지요. 이들 하층민들을 통털어 <도시 프롤레타리아>라고 합니다.

프롤레타리아란, 고대로마에서 최하층 계급을 뜻하는 proletariat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활을 영위해 가는 무산자(proletaria)로 이루어진 계급을 지칭하기 위하여 독일의 사회학자인 K.마르크스가 1840년대에 사용한 개념입니다. 즉, 유산계급인 부르주아지(Bourgeoisie)에 대비되는 무산계급(無産階級)을 뜻하는 말이지요.

이들 최하층민(프롤레티리아)의 불만사항은 <길드체제의 배타성>이었습니다. 특히 장인길드는 비숙련공 - 숙련공 - 마스터 로 이어지는 계서구조가 있어서 일반인들이 기술을 익혀서 이 구조의 상층부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일반직인들은 전문기술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술노동자로 분류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직인조합>을 결성하고 그들만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지만, 시민혁명이 끝나고, 길드가 완전히 사라지는 18세기까지도 그들의 권익인 인정되지 못하였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심한 노동착취로 인해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을 원한다>는 극단적인 문구가 등장합니다.

2. 상인길드의 성장과 대자본의 축척

당시 중세의 경제체제는 <길드제도>를 통하여 대상인에게 철저하게 유리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예로, 100년 전쟁이 일어나서 대부분의 소규모 무역도시가 파탄나고, 중소 상인이나 하층민들이 생활고를 겪을 때에 대상인들은 전쟁 호황으로 더욱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백년전쟁으로 양모수출이 어려워졌고, 대부분 유통상인들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대자본을 가지고 국가와 결탁한 상인들은 영국 자국산 모직물을 육성하면서 이 것을 기회로 더욱 성장합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양들을 울타리쳐서 기르고, 그것으로 산업을 부흥한다>는 <incloser> 운동이 그것이지요. 인클로저 운동은 단어 그대로 안에 양들을 가둬 키운다(in + closer)는 뜻 입니다.

프랑스에서도 백년전쟁으로 상파뉴 무역권이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중소 상인과 하층민들은 힘들었지요. 그러나, 대상인들은 이것을 기회로 남북 무역로를 연결합니다. 즉, 대자본으로 선단을 만들어 해로를 통한 이탈리아 무역항로를 뚫습니다. 이탈리아는 동방과 무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방물산의 중계무역은 남부 이탈리아와 북부 영국을 이어주면서 큰 차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 이익 속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시들이 대성장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한자동맹으로 대표되는 <도시동맹>들입니다.

즉, 유럽에서 14-15세기 전쟁과 흑사병으로 사회가 문란했다고 하지만, 근대 사회의 기반이 되는 상업자본 자체가 붕괴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 상업자본이 근대사회의 자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의 자본력은 당시 아시아의 인도, 투르크, 중국을 이어주는 무역권에 비하면 10% 규모였으니까요. 문제는 유럽의 상업자본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16세기 신항로 개척 당시 아메리카의 막대한 금을 가져와서 상업혁명을 일으킬 기반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죠. 16세기 아메리카의 금은 유럽의 무역권을 아시아 무역권과 비슷하게, 어떤 면에서는 우월하게 만들어 줍니다.

중요한 것은 유럽의 대상인 자본가가 있었기에 유럽사회가 아시아 무역권과 교류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피렌체 가문 등은 동방 무역으로 막대한 금융 기반을 쌓았고, 이들은 복식장부 등을 이용하는 등 합리적인 기업 경영 기술을 발휘하였습니다.

또 중요한 점은 이러한 대상인의 자본이 중소 상인과 장인들을 압도하였다는 점입니다. 이 당시에는 상업자본이 산업자본을 앞서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상업자본에 의한 <선대제도>가 출현합니다. 선대제도는 <상인길드>에서 원료를 상인이 수입한 다음, <장인길드>의 방적공들에게 원료를 넘겨줍니다. <장인길드>에서는 <임금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 직포공들에게 실을 지급하는데, 이들이 단순노동으로 실을 짜고, 다시 <징인길드>에 제작품을 넘깁니다. <장인길드>는 이 제작된 실로 상인길드가 원한 물품을 생산합니다. 이것은 상업자본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미리 제품의 대금과 원료를 <징인길드>에 넘기고, 제작된 물품을 받아 원거리 무역으로 외국에 파는 방법입니다. 이 선대제도가 있었다는 점 자체가, 당시 <상업자본과 상인길드>의 영향력이 다른 계급, 특히 <장인계급>으로 대표되는 도시 제 2 신분층을 능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더욱 부를 축적하는 대상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왕권과 철저하게 결탁하기 시작합니다. 제 2신분들(장인, 전문즉종인)이 전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왕권가 결탁했다면 이들 대상인들은 자본력으로 왕권에 도움을 줍니다. 예로, 프랑스의 자크퀘르는 백년전쟁비를 프랑스에 부담하였고, 영국의 양모상인길드는 영국 왕실에 장미 전쟁에 대한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영국 양모수출 독점적 지정항구>임을 인정받기도 합니다. 즉, 상업자본이 왕실과 결탁하여 상업발전의 기반을 닦는 동시에, 왕권 역시 절대왕정으로 나아갈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3. 대상인과 상인길드에 대한 도시 반란이 시작되다.

지금까지 적은 대상인들의 특권은 다른 도시계급들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즉, 도시 1신분인 상인길드 소속의 가문들은 상층 부르조아지로서 도시귀족화되었고, 그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도시의 모든 행정과 업무를 독점적으로 지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길도조직의 배타성과 특권성은 일반 도시민들이 장인, 상인으로 나아갈 길을 막아 버리는 것이었고, 도시에서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임금노동자의 증가만을 뜻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대상인들이 많은 도시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의 피렌체, 베네치아, 영국 양모산업의 중심지인 플랑드르 지방이었습니다. 따라서 대대적인 도시 반란은 이 지방에서부터 시작되었죠.

14세기 피렌체 지방에서 일어난 <치옴피의 반란>을 한번 볼까요? 이 반란은 <상인길드와 장인길드>의 배타성에 대한 양모공들의 반란이었습니다. 당시 <징인길드>는 <상인길드>의 배타성에 반발하고 있었고, 일반 기술자들은 <장인길드>의 기술서열제도에 반발하고 있었습니다. 양모공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인정해달라고 외치며, 길드를 결성할 권리, 도시행정에 참여할 권리, 자신들에게도 평등한 사법권을 줄 권리 등을 주장하면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을 기점으로 도시 귀족들에 대한 끊임없는 반란이 일어납니다. <장인길드>들도 <상인길드>가 배타적인 특권으로 자신들을 억누르려고 하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독일에서는 수공업자 조합이 도시행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즉, 이러한 반란들을 살펴볼 때, 도시의 길드체제는 이미 길드체제의 전성기인 13-15세기 무렵부터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13세기 십자군 원정이 끝나면서, 유럽사람들은 동방이라는 새로운 무역로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길드체제와 유럽내 자체 무역으로는 새로운 무역체제를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미 길드에 속하지 않은 수많은 상인들이 등장하고, 모험가가 등장하였으며, 배타적인 길드체제보다는 자유로운 무역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 확립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길드는 이러한 새로운 사회체제를 수용하지 못하였고, 유럽의 도시는 새로운 무역로를 감당하기에 너무 작았습니다. 이러한 모순점은 도시 내 반란으로 이어졌고, 유럽은 새로운 시민의 시대로 도약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길드체제는 계속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과제는 도시 내부에서 해결된 것이 아니라, 대상인과 결탁한 강력한 국왕세력에 의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절대주의 시대의 <중상주의 정책>으로 이 과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신항로 개척이 이루어지고, 유럽이 세계 속으로 뻗어나갈 때, 도시 내부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세력은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18세기에 이르러 권리는 없고, 과도한 세금만 부담해야 했으며, 길드체제의 배타성으로 <구제도의 모순> 속에서 살아온 시민들은 혁명을 일으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하였습니다. 혁명은 어느 순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도시와 농촌 내부에서 곪았던 모순들이 터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해서 중세 말 농촌의 문제점, 도시의 문제점을 차분히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장에서는 이러한 농촌, 도시 문제가 생긴 큰 원인 중의 하나로서 유럽 중세 말기를 파탄으로 몰고간 백년전쟁에 대하여 제 나름대로의 관점대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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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의 사용과 사회의 변화상을 알아보자.

1. 청동기 시대의 특징

청동기 시대는 금속을 도구로 사용한 최초의 시기입니다. 금속을 사용하면서 달라진 점은 이 당시가 잉여생산이 일어난 시기라는 점입니다. 즉,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잉여생산이 발생하였고, 남는 생산력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는 계급을 발생시켰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생산에서 제외된 이들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통한 정복사업에 들어갔고, 정복사업은 결국 지배층(군장, 족장층)과 피지배층(노예, 노비)계급의 분화를 촉진시키게됩니다.

우리는 보통 계층, 계급, 신분 등의 용어를 역사속에서 혼돈해서 씁니다. 청동기 시대는 계급사회입니다. 계급사회란, 생산수단을 가진 지배집단과 그렇지 못한 피지배집단을 나누는 용어로 마르크스 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계층이란 베버가 사용한 용어인데, 자신의 특정한 기준에 맞추어 다양한 집단을 임의적으로 나눌 때 쓰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보통 역사에서 계급을 나눌 때, 귀족, 평민, 노비 등을 일반적인 계층으로 나누기 때문에 그냥 지배계층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신분은 그 사회에서 그 계층이 갖는 지위를 뜻합니다. 신분은 노력으로 얻는 성취지위보다는 일반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얻는 귀속지위인 경우가 많습니다.

청동기 사회에서는 청동이라는 금속을 가지고 전쟁에 승리하여 노비를 획득하거나, 잉여생산을 많이 확보한 자가 지배계급(지배계층)이 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청동기는 기원전 3700년경에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견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0세기 경 정도를 청동기라고 봅니다.

문제는 청동이라는 금속은 아연,구리,주석 등을 합금해야 했고,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청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지배집단위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즉 전쟁과 제사 정도에만 청동이 사용되었고 일반민은 나무, 간석기 등으로 농사를 지었죠. 청동기 시대 가장 유명한 농기구인 반달돌칼도 석기입니다.

당시 농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고랑, 이랑을 파서 농사를 짓는 방법이 있었다는 것만 봐도 밭의 지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또 탄화미의 발견으로 이 당시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도 있구요. 이러한 농법의 발달 속에서 사회분화와 진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2. 우리나라의 청동기

우리나라의 청동기는 시베리아 계통의 북방계 청동기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이 시베리아 계통의 청동기는 중국계 청동기도, 몽골계 청동기도 아닙니다. 유럽과 유라시아, 시베리아를 걸쳐 북쪽에서 청동기가 전파되었음이 유물로서 확인됩니다. 이러한 한국 청동기 문화의 특징은 민무늬 토기 문화와 함께 전파되었고, 또 고인돌(지석묘)가 많이 분포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강화도, 전라도 고창 등등에 분포하는 남방식 고인돌은 전 세계 고인돌의 60%에 육박할 정도로 많이 분포한답니다.

청동기의 사용은 곧 계급사회와 국가의 출현(고조선)을 예고합니다. 보통 교과서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기를 고대로 봅니다. 율령반포, 불교수용 등을 그 근거로 하죠. 그러나 최근에는 고조선 시대를 원시시대가 끝난 고대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파형동검, 세형동검 등을 통한 정복전쟁이 활발하였고, 천신에 대한 제사 등을 지냈다는 점에서 불교문화에 버금가는 문화가 있었으며, 삼국시대에 떨어지지 않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수립되었기 때문이죠.

어느 설이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꼭 유럽식 기준으로 고대를 바라보아서 삼국시대가 고대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대구분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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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산업혁명과 자유주의 운동의 좌절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한 뒤 알렉산드르 3세는 극단적 반동정치의 강화와 자유주의의 탄압을 시도합니다.

알렉산드르 3세기는 러시아의 산업혁명기라는 사실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즉, 석탄지대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석유를 산출하였으며, 강철과 포를 생산하였고, 이러한 자원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함으로서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또 도시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많아져 어느 때보다 파업이 빈발하였구요.

이러한 사회변화를 통하여 러시아에 정당제가 확산됩니다. 즉, 사회민주당이 조직되어 마르크스주의가 확대된 시점이 이 때이며, 또 레닌이 볼세비키당을 만든 때도 이 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의 설립은 러시아의 분열을 초래합니다. 즉, 레닌의 볼세비키당은 중앙의 견고한 소수집단이 당을 지배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소수 멘셰비키 당은 당을 민주적으로 조직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또 입헌민주당(카테츠)가 조직되어 자유주의자들의 온건한 개혁을 대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사회적 변화는 러시아가 근대화에 성공하여, 부강한 국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것인가에 대한 기로에 처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알렉산드르 2세 이후 니콜라이 2세는 본격적인 공업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부르조아지 계층이 성장하고, 노동운동도 발전하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밀린 러시아는 물가고와 함께 급격한 파업확산이 초래되었습니다. 1905년 민중들은 이러한 러시아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아버지>라 부르던 황제에게 진정서를 내러 갑니다. 그러나, 왕은 수도에 없었고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잘못된 명령 전달들로 인해 왕의 친위대는 국민들에게 총을 발포하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결과 도시파업, 농민폭동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계속 진행되고, 자유주의자들은 함께 뭉쳐 전제정치에 대한 개혁을 요구합니다.

결국 <10월 칙령>으로 왕(차르)는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승인하고, 공정한 선거권을 통한 입법의회 창설을 약속하게 됩니다. 그러나, 혁명의 기운이 사그러들고, 폭동이 잠잠해지자 차르는 입헌개혁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스톨리핀을 임명하여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것이 <국가기본법>입니다.

스톨리핀은 혁명파는 탄압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합니다. 먼저, 농업공동체(미르)를 폐지하고 자영농을 육성하려 하였습니다. 즉, 농민의 법적 지위를 시민지위와 동등하게 보장하게 한 것이죠. 또 교육개혁으로 취학률을 높이고, 점진적인 러시아 발전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좌절됩니다. 러시아 사회의 운명은 이렇게 번번이 근대화 기회를 놓쳐가면서 전제정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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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라는 말의 어원

- 한자에서의 <歷>과 독일어에서의 <Geschichite>를 보면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즉, <사실로서의 역사>를 뜻하는 객과적 의미의 역사를 강조한 것이다.

- 반면, 한자의 <史>와 그리스어에서의 <Historia>는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를 강조한 말이다. 이것은 곧,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보다 더 강조하는 주관적 측면의 역사로 볼 수 있다.

----- 동양과 서양의 역사 인식에 있어서 차이점

- 동양에서는 역사를 사관이 기록한 기록물로서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즉, 그 사료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지 못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원전에 충실히 인용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세 유교 사관에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 있었다고 한다.
   1. 역사는 유학에 종속되는 것으로서 이데올로기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에는 정치적 교훈이 있다고 보았다.
   2. 원전은 그대로 인용만 하고, 해석은 밑에 따로 달아 원전과 해석을 달리 적는 형식으로 작성하였다.
   3. 실제 증거가 불충분한 사실은 해석하지 않고 삭제하였다.
   4. 미신, 신화와 같은 이야기는 실제 역사로 간주하지 않았다.

동양의 사관을 보면 고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다.
   1. 감계주의(鑑戒主義) : 역사는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거울로 삼아 인간의 행동을 비추어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역사에서는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을 군주의 통치에 인용할 수 있다고 보아 군주는 덕을 가진 사람이여야 함을 주장하였다.

2. 상고주의(尙古主義) : 옛 날을 이상적인 시대로 생각하여, 옛 날의 아름다운 시대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상이다. 유가사상에서는 특히, 옛 날 태평 시대인 요순시대라던가, 주나라의 주공시대를 이상적인 평화시대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사회로 돌아가기 위하여 옛 시대의 장점을 본받자는 주장이다.

- 서양의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서술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였다. 즉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주관적 의미의 역사>를 보다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1.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반복하듯, 역사 또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행동이 비슷하게 반복되어 간다고 믿었다. 투키디네스라는 역사가는 <역사는 반복되어 비슷한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항상 기록하고 그 의의를 살펴야 한다>라고 믿었다. 즉, 고대 서양의 역사는 순환론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2. 이러한 순환론적인 역사관이 목적성을 가진 목적론적인 역사관으로 바뀌게 된 것은 <신국론>이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로마 제정 시대에 사람들은 로마에 위기가 닥치면 <크리스트교 인>들이 원흉이라고 보고 그들을 원망하였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이라는 책에서, <크리스트교인>들은 잘못이 없으며, 역사는 하느님의 나라로 향해가는 과정이므로 종착역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즉, 역사는 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뚜렸한 목표가 있으며, 그 종말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이 있는 일직선적 사관은 중세 이후 많은 역사가들에게 영향을 준다.

3. 이후 역사가들은 각자 <사관>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게 되었다. 헤겔은 역사란 <이성과 반이성의 상호작용 : 정과 반과 합의 작용>이라고 말하면서 역사의 발전론을 제시하였고, 마르크스는 이러한 역사발전론에 역사종말론을 더하여, 고대에서부터 필연적으로 비롯되어지는 역사의 전개과정을 정리하였다. 마르크스가 정리한 마지막 역사의 종착역은 자본주의가 망하면서 탄생하는 <공산주의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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