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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노

온조와 위례성의 우물 설화 온조와 위례성의 우물 설화 온조는 백제건국 초기에 형인 비류와 헤어져서 산 위에 나라를 세운 온조는 동쪽으로 내려가서는 백성들에게 곡식을 키우는 방법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사냥을 다녔으나 밤에는 잠자리에 들어가면은 새벽까지 일체 바깥에 몸을 나타내지를 않았다. 위례성 우물은 온조가 잠자는 움막의 바로 옆에 있었다. 밤이 되면 온조는 움막에서 나와서는 샘으로 들어가서 용이 되어 북쪽으로 뚫린 한강으로 나갔다. 위례성 우물을 중심으로 땅속으로는 한강과 금강으로 통하는 강줄기가 있었다. 북쪽에서 떠나올 때 틀림없이 자기가 나라를 세우면 그들이 침범해 올 것을 예상했었다. 그래서 북쪽으로 올라와서 한강가에 나와서는 북쪽하늘을 살피고는 적의 침범이 없을 것 같으면 곧장 물줄기를 타고 위례성 우물로 돌아왔다가 남쪽.. 더보기
백제의 건국 설화(삼국사기 편) 백제의 건국 설화 백제 시조 온조왕(溫祚王)의 아버지는 추모(鄒牟)로서 주몽(朱蒙)이라고도 하는데, 북부여(北扶餘)로부터 난을 피해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이르렀다. 졸본부여의 왕에게는 아들이 없고 단지 딸만 셋이 있었다. 왕이 주몽을 보더니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둘째 딸을 시집보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졸본부여의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잇고 두 아들을 낳았다. 맏아들을 비류라 하고 둘째 아들을 온조라고 하였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하다가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10명의 신하와 함께 남쪽으로 가니 백성 가운데 따르는 자가 많았다.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살만한 땅을 바라보았는데.. 더보기
이규보의 동명왕편 - 고구려의 건국 이규보의 동명왕편 - 국가의 안정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 흰 사슴을 잡아 해원에 거꾸로 매달아 저주하기를, 라고 하였다. 그 사슴의 슬피 우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니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송양의 도읍은 물바다가 되었다. 왕은 갈대줄로 강을 가로질러 놓고, 오리말을 타고 있었다. 백성들은 모두가 그 줄을 붙들고 있었다. 주몽이 채찍으로 물에 금을 그으니 물이 줄었다. 6월에 송양이 온 나라 백성들을 이끌고 항복하였다고 한다. 7월에 검은 구름이 골령에 일어나서 사람들은 그 산성을 볼 수 없었다. 오직 수천 사람 소리가 토목 공사를 하는 듯이 들렸다. 왕이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이레 만에 운무가 스스로 흩어지니, 성곽과 궁실, 누대 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었다. 왕이 황천을 향해 절을 하고는 나아가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