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세계사 3

'원시시대가 석기시대인가요?'

역사를 처음 시작할 때 등장하는 것들이 바로 시대구분이라는 용어다. 그러나 사실 원시시대와 석기시대는 같은 뜻으로 사용하면서도 약간 의미가 다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만 짚고 넘어가보자. 그건 석기시대와 같이 혼돈해서 쓰는 잘못된 용어들이지.

석기시대란.... 말 그대로 石器... 을 도구로 쓴 시대란 뜻이야. 보통 우리가 stone-age 라고 알고 있는 시기이지만, 실제로는 stone implement 라는 말이 정확한 거지.

구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후진 돌... 새 돌.... 반짝거리는 청동.... 무지 강한 철.... 즉...생활 도구를 돌(石器)을 사용했느냐 금속을 사용했느냐로 나누는 기준인 것이야. 원숭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역사시대가 아니라는 말 했었지? 이건 순전히 고고학이라는 학문에서 인류 발전 단계를 나타낼때 쓰는 용어야.

석기시대를 이야기할 때, 선사시대라는 말도 같이 쓰지만 석기와 선사는 달라.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의 반대말이지. 先史란 말이 역사보다 먼저란 뜻이잖아. 먼저 선!!! 따라서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 이전의 모든 시기가 선사시대야.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단군 신화고... 단군의 고조선은 보통 청동기 때 세워졌다고 하니깐, 청동기 이전은 모두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겠네....

한국사에서.... 구석기 + 신석기 + 이른 청동기 = 선사시대

또... 원시인들이 살았던 옛 시대를 원시시대라고 대충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석기시대랑은 다른 개념이지. 원시시대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을 말하는 개념이야.

원시시대는 사회주의자였던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념인데, 마르크스는 제대로 된 정치력을 가진 국가가 생기기 전의 시대를 원시 시대로 불렀어. 마르크스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했지.

공산주의란, 말 그대로 공산(共産).... 공동으로 생산해서 재산을 공동으로 나누는 이상적 사회를 말해. 인류는 원래 <원시사회>라는 시기에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였는데, 국가가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평등이 깨졌다고 생각한거지. 즉, 원시시대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평등사회를 지칭하는 말이야.

원시원시공산사회(부족공동체 사회) - 고대 국가 - 중세 국가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

위에 적은 사회 발전 단계를 보니깐 대충 알겠지? 돌을 사용한 석기시대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원시사회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 원시사회지만, 돌을 안 쓴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석기 사회에서 고대 국가가 생긴 사회도 있을 수 있지.

아메리카의 고대 잉카 문명 같은 경우에는 석기 시대때 이미 찬란한 문명 사회를 이루었고, 아마존 부족들은 원시사회였지만 금속을 사용할 줄 알았다잖아.

자, 그럼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확실히 알았으니깐, 석기시대로 출발해볼까? 끄적끄적...

2. 구석기의 인류란?

보통 역사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류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그냥 상징적인 개념일 뿐야. 오스트랄로가 오스트레일리아 할 때, 그 남쪽이란 뜻이고, 피테쿠스는 <원숭이>란 뜻이지. 한마디로, 걍 남쪽에서 발견된 원숭이란 뜻이야.

근데, 305만년전이라는 까마득한 시절의 원숭이가 역사책에서 인류의 시조로 등장한 이유는 뭘까?

그건 그냥 두 발로 걸어다닐 줄 알았고, 손에 돌을 들고 뭔가를 부실 줄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손에 돌을 들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살았으니 이 때 부터가 이미 <석기> 시대겠지?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조상을 정하면, 여의봉을 들고 킥킥거리며 하늘은 나는 털보원숭이 손오공도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다. 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실 이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원숭이들도 다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어. 400-500만전의 원숭이들 중에서도 <라마피테쿠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원숭이들이 있었거든... 그 이후로 호모 에렉투스니, 호모 사피엔스니... 기타 등등 원숭이들이 많이 발견되었다나봐. 뭐, 우리랑 상관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구...

근데 원숭이들 학명은 대부분 <호모 Homo>가 들어가지? 호모란 원래 고고학 학명으로 <인간 human>이라는 뜻이지. 남성과 여성 할 것 없이 인간 자체를 뜻하는 학명인데, 요즘 사람들은 동성애자나 성정체성이 불명확한 사람들을 호모라고 부르고 있어. 그럼 안된단다... 땍~~~

다음 장에서 할 이야기도 역사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살포시 짚어봐야할 이야기지. 바로 시대구분~~ 이라는 거야. 위에서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원시사회니 고대사회니, 공산주의 사회니 하는 구분을 떡 하니 말했었지? 그런 건 대체 왜 하는건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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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세계사 (3)

석기시대와 원시시대.. 그리고 원숭이들

1. 석기시대가 원시시대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게 있어. 그건 석기시대와 같이 혼돈해서 쓰는 잘못된 용어들이지.

지금 다루는 석기시대란.... 말 그대로 石器... 돌을 도구로 쓴 시대란 뜻이야. 보통 우리가 stone-age 라고 알고 있는 시기이지만, 실제로는 stone implement 라고 쓰고 있지.

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

후진 돌... 새 돌.... 반짝거리는 청동.... 무지 강한 철.... 즉...생활 도구를 돌(石器)을 사용했느냐 금속을 사용했느냐로 나누는 기준이지. 이건 순전히 고고학에서 인류 발전 단계를 나타낼때 쓰는 용어야.

석기시대를 이야기할 때, 선사시대라는 말도 같이 쓰지만 석기와 선사는 달라.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의 반대말이지. 先史란 말이 역사보다 이른 시대란 뜻이잖아. 따라서 선사시대는 문자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 이전의 모든 시기가 선사시대야.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단군 신화고... 단군의 고조선은 보통 청동기 때 세워졌다고 하니깐, 청동기 이전은 모두 역사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야....

한국사에서.... 구석기 + 신석기 + 이른 청동기 = 선사시대

또... 원시인들이 살았던 옛 시대를 원시시대라고 대충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석기시대랑은 다른 개념이지. 원시시대란,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을 말하는 개념이야.

원시시대는 사회주의자였던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념인데, 마르크스는 제대로 된 정치력을 가진 국가가 생기기 전의 시대를 원시 시대로 불렀어. 마르크스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했지.

공산주의란, 말 그대로 공산(共産).... 공동으로 생산해서 재산을 공동으로 나누는 이상적 사회를 말해. 인류는 원래 <원시사회>라는 시기에 모두가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였는데, 국가가 생기고,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평등이 깨졌다고 생각한거지. 즉, 원시시대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평등사회를 지칭하는 말이야.

원시사회(원시 공산사회, 부족공동체 사회) - 고대 국가 - 중세 국가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

위에 적은 사회 발전 단계를 보니깐 대충 알겠지? 돌을 사용한 석기시대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원시사회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 원시사회지만, 돌을 안 쓴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석기 사회에서 고대 국가가 생긴 사회도 있을 수 있지.

아메리카의 고대 잉카 문명 같은 경우에는 석기 시대때 이미 찬란한 문명 사회를 이루었고, 아마존 부족들은 원시사회였지만 금속을 사용할 줄 알았다잖아.

자, 그럼 <석기시대>라는 용어를 확실히 알았으니깐, 석기시대로 출발해볼까? 끄적끄적...

2. 구석기의 인류란?

보통 역사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류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그냥 상징적인 개념일 뿐야. 오스트랄로가 오스트레일리아 할 때, 그 남쪽이란 뜻이고, 피테쿠스는 <원숭이>란 뜻이지. 한마디로, 걍 원숭이란 뜻이야.

근데, 305만년전이라는 까마득한 시절의 원숭이가 역사책에서 인류의 시조로 등장한 이유는?

그건 그냥 두 발로 걸어다닐 줄 알았고, 손에 돌을 들고 뭔가를 부실 줄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손에 돌을 들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살았으니 이 때 부터가 이미 <석기> 시대겠지?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조상을 정하면, 여의봉을 들고 킥킥거리며 하늘은 나는 털보원숭이 손오공도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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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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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실 이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원숭이들도 다 인류의 시조가 될 수 있어. 400-500만전의 원숭이들 중에서도 <라마피테쿠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원숭이들이 있었거든... 그 이후로 호모 에렉투스니, 호모 사피엔스니... 기타 등등 원숭이들이 많이 발견되었다나봐. 뭐, 우리랑 상관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구...

암튼, 세계 곳곳에서 원숭이들이 등장했다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원숭이들이 발견되었겠지? 그럼 고고학의 시대로 들어가서 우리와 관련된 원숭이들의 생활 양식을 간략히 정리해 볼까? (에휴... 원숭이 얘기만 계속하다가 역사 이야기는 언제 시작하지???)

 

딴 나라 원숭이 얘기는 하기도 귀찮다... 그냥 400만년전 이야기는 영상으로 때워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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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대는 낙서 세계사 (2)

석기시대는 역사책에 왜 적어놓나요?

- 구석기는 역사 시대일까?

자.. 그럼 역사교과서와 똑같은 순서로 역사를 한번 적어보려구 한다. 근데 말이지... 역사책을 딱 피자마자 우리는 알송달송한 시대에 직면하게 된다.

T : 자... 그럼 인류의 조상이 살았던 구석기 시대부터 공부해볼까?

S : 저기요... 전 창조론 믿는 크리스찬인데요. 꼭 이거 공부해야 되요?

T : 시꺼... 현실과 이론은 다른거야. 지금은 진화론 믿고 교회가서 아담의 상복부 2차 갈비뼈가 하나 비었다는 그 얘기 공부해... 지금 성경책 읽냐?

S :  저기 근데,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라면서 원숭이의 삶을 배우는 게 역사랑 무슨 상관인데요?

T : 이것들이 머릿속 바탕화면에 빨갱이 로고가 떠다니나... 역사에도 뭔가 시작이 있을거잖어?

S : 그니까요... 구석기는 선사시대라면서요? 역사시대가 아닌데 왜 배우냐구요?

그렇다. 솔직히 구석기니 신석기니 하는 것들을 역사에서 배워야 하는 근거는 전혀 없다. 역사 기록이 없는 먼먼 옛 지구의 이야기를 우리는 선사 시대로 통칭해 부른다. 역사 시대란,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는 시기를 말한다. 단군 신화처럼 삼국 유사같은 책에 옛 일이 기록된 시기가 역사시대란 말이다. 안드로메다로 가는 광년수보다 더 멀리 연대기가 뛰어 버리는 70만년전의 시대를 왜 역사책에 적어놓는 것일까?

그 옛날 이야기를 역사에서 다루고 시작하자니, 종교 논쟁부터 해결해야할 판이다. 진화론을 믿자니 원숭이들의 역사를 배우는 것일 뿐이고.... 창조론을 믿자니 뭐 구석기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기 전 낮잠자던 시기에 활동한 초사이언인들의 이야기로나 취급해야 할 것 같고...

사실 문자가 기록되기 이전의 옛날의 원숭이들을 연구하는 학문은 <고고학>이지 역사학이 아니다.

그런데, <고고학>은 인간의 삶과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학문이 아니다.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은 <역사학>이고, 인간의 삶을 알 수 없었던 시기의 인간 또는 유인원의 생물학적 모습과 생존을 위한 생활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 <고고학>이다.

즉, 고고학은 인간의 삶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생 인류의 조상이 누구이며, 그들이 현생인류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역사학>은 <인문학>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역사교과서는 꿋꿋하게도 이 고고학의 영역을 역사교과서에 떡 하니 적어둔다. 그것은 관행이 되어 모든 역사의 시작을 설명하는 기준이 되었다.

흔히 한국사라고 하면,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사는 민족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우리 민족 국가라고 생각되어지는 고조선 등의 국가가 최소한 청동기 시대 또는 그 이전에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고고학을 역사학에 끌어온 이유는 뜬금없이 시작된 역사시대의 쌩뚱맞은 시작을 보충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고고학이 다루는 수많은 과거 사실들 중에서 역사가 애타게 원하는 것은 <역사시대를 살아간 인류에게도 조상이 있을터인데, 그 놈이 누구인가?> 정도이다.

우리는 서구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기준을 생각해서,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등을 기준으로 인류의 조상을 말한다. 그리고, 서구식 기준에 맞추어 구석기, 신석기 등으로 합리적인 시대 구분을 한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의 첫 시작인 고조선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주 긴고 긴 석기 시대를 따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두개골 형상) 좌-아프리카누스, 우-에티오피쿠스

결국, 우리는 민족의 기원을 설명할 때 2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하나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를 거치면서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진화를 했는가를 따지는 과학적 방식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환인과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신화적 요소들을 간추려보고, 당시 사회상을 살펴보는 방식이다. 교과서에서는 이 두가지 방식을 따로따로... 두루두루 섞어서 사용한다.

일단... 고고학 이야기를 따로 떼어서 이야기하려구 한다. 역사학과 별도로 고고학을 떼어서 다룬 뒤 버리고... 역사에 관련된 <민족>이야기를 역사 시대로 설정해서 다뤄보려구 한다.

결국, 처음의 질문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된다.

S : 그니까요... 구석기는 선사시대라면서요? 역사시대가 아닌데 왜 배우냐구요?

T : 맞다.. 맞다... 그거 역사 시대도 아니고, 역사 이야기도 아니지. 그냥 단군부터 시작하는 역사이야기만 해도 돼. 사실 고고학 이야기는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이야기지. 있으면 걍 참고사항이고, 없어도 뭐 사는데 지장은 없는 이야기인데, 걍 허전해서리....

자...  지금부터 하는 고고학 이야기들은 다 참고사항이다. 걍 흥미있는 이야기만 쭉쭉~ 빨아먹고 버려도 되는 이야기들.... 읽기 귀찮으면 패스하시라~~~ 그럼 시작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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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토지 이야기 (2)

동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신석기 시대가 도래하다....

인류가 땅을 이용하여 생상력을 확보한 시기는 약 1만년 전부터이다. 1만년전을 훌쩍 뛰어넘어 70만년전에 이르는 <구석기 시대>는 토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수십만년 동안 지속된 빙하기와 간빙기 때문이다. 그 오랜 기간 인류의 시조인 <원숭이>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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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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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사진은 직립 보행의 근거인 골반 구조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놓고 보았을 때, 가운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쪽에 훨씬 가깝다. 손과 발의 구조도 인간쪽에 가깝다. 그러나, 인간에게 필요한 문자를 가지지 못하였고, 빙하기를 거치는 수십만년 동안 큰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지구상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1만년 전쯤부터 본격적인 <토지 이용>이 시작되었다. 고고학 연대로 보면 이 시기가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물론, 채집과 수렵 생활은 계속 되었지만, 토지를 이용한 생활도 병행되었다.

이제, 토지를 이용하여 도토리, 수수 등의 작물을 재배하는 초보적인 농경이 이루어졌고, 토기와 같이 작물을 보관하는 기구도 등장하였다. 그러나 최초의 농경은 그 생산력이 너무나 낮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농사도 지을 수 있는 <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인류는 초보적인 <종교>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자연물과 동식물에 대한 경배가 시작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숭배 대상은 <하늘과 태양>이었다. 특히 태양신은 농경이 이루어진 주요 문명 지역에서 빠지지 않는 신이었다.

그럼 동아시아의 사람들은 <신석기 시대>에 어떻게 살았을까?

2. 신석기 시대와 토지 이용

중국의 신석기 시대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전설의 시대>이다. 사기에는 3황 5제의 전설이 나오는데, 이 3황 5제가 바로 농경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황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 지, 인과 같은 개념이다. 사기의 3황은 천황(天皇)·지황(地皇)·태황(泰皇)이라고 나오는데, 후대 역사가들이 복희, 신농, 여와, 수인 등 다양한 개념을 가져다 붙였다. 중요한 것은 3황이 하늘, 땅,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중 <땅의 신>이 농경을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3황 이후 등장한 5제는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황제, 전욱, 제곡(帝嚳),·당요(唐堯),·우순(虞舜) 이다.

삼황의 기록

내용

사기의 진시황본기

천황(天皇),·지황(地皇),·태황(泰皇)

사기의 보삼황본기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풍속통의의 황패편

복희(伏羲), 여와(女臥), 신농(神農)

통감외기

복희(伏羲), 신농(神農), 공공(共工)

예위의 함문가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

백호통

복희(伏羲), 신농(神農), 축융(祝融)

십팔사략의 제왕세기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3황이 하늘, 땅, 사람을 뜻하면서 농경의 전파를 전설로 설명하고 있다면, 5제는 음양오행의 돌고도는 5행을 기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원래 5제는 중국 최초 왕조은 <하> 왕조의 전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탄생했다고 보여졌지만, 한나라 때 동중서가 <추연의 음양오행설>을 받아들여 정리한 것이다.

오제의 기록

내용

사기 오제본기

황제(黃帝), 전욱(颛顼), 제곡(帝喾), 당요(唐堯), 우순(虞舜)

황왕대기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당요(唐堯), 우순(虞舜)

예기 월령

태고(太皋: 복희), 염제(炎帝), 황제(黃帝), 소고(少皋), 전욱(颛顼)

도장의 동신부

황제(黃帝), 소고(少皋), 제곡(帝喾), 제지(帝摯), 제요(帝堯)

십팔사략

소호(少昊), 전욱(颛顼), 고신(高辛), 당요(唐堯), 우순(虞舜)

한반도와 요동지방의 신석기 시대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이다. 그러나, 남겨진 기록이 없기 때문에 어떤 방식의 토지 이용을 했을지는 알 방법이 없다.

일단 빗살무늬 토기와 탄화된 좁쌀 등의 유적으로 미루어 초보적인 농경이 부락단위로 이루어졌다는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만주지방의 칠무늬 토기(채도)는 한반도와 유사하다. 많은 학자들이 요령 지방의 홍산 문화와 같은 신석기 문화가 중국보다는 한반도 계통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링크 : 한반도와 홍산문화는 같은 문화권이다.

한반도의 신석기 농경을 <토기>의 형태로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석기 초기의 토기는 시베리아 계통의 토기와 비슷하며, 신석기 후기로 갈수록 중국식 토기와 비슷한 유물이 많다고 한다.

링크 : 시베리아와 한반도의 유물 비교

반면, 일본의 신석기는 조몬 시대(縄文時代) 후기를 말한다. 일본인의 인종은 고몽골족으로, 1만년전 경부터 한반도 등에서 이동한 이들이 농경 등을 전파하면서 토지 이용을 시작하였다. (일본 국립유전학 연구소에 따르면 약 65% 정도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링크 : 일본 유전학 연구

   

신석기 때의 토기 :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좌), 일본의 조몬토기(우)

동아시아의 신석기인들이 농사를 지으며 먹었던 주식은 도토리와 밤 정도였다. 당시 농사 기술로는 계절에 따라 다른 음식을 먹어야만 했는데, 봄에는 나물류를 채집하고, 여름에는 강이나 바닷가 근처에서 어류를 많이 먹었을 것이다. 가을에는 도토리와 밤 등의 수확물을 먹을 수 있었고, 겨울에는 버섯류와 칡, 마, 겨울 생선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즉, 신석기 때 토지 이용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을 정도에 수확되는 일부 견과류 정도였고, 사냥과 채집이 여전히 큰 비율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초보적인 농경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촌락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식량을 구하는 씨족 단위 체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수견해이다. 씨족들은 한 해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부족의 수호신에게 기원을 했을 것이다.

또, 당시 사회가 모계제인가, 부계제인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인들의 전통 견해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의 생산력은 극히 낮았고, 채집과 수렵 등 여성들의 생산력이 중요시되던 시기였다. 또, 결혼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일부다처제를 시행했다고 가정하면, 아이를 직접 낳은 여자측의 발언권이 강했다는 주장이다. 3황5제의 모계사회가 현재의 부계사회로 넘어온 것은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왕조>가 성립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그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도 일부일처제의 기본적인 가족관계가 성립되었고, 동아시아 사회에 모계 사회는 성립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신석기 시대에도 남성이 힘든 일을 하면서 경제권을 조금 더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누가 경제권을 가지고 있었던지는 열심히 싸우라고 냅두고 토지이야기를 해보자.

신석기라는 1만년전후의 오랜 시간은 토지 사용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다. 누가 토지의 주인일까?

신석기 시대의 토지 이용을 놓고, <원시 공산제 사회>라는 학설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다. 먼저 사회주의자인 <마르크스>부터 사회학자인 <베버>, <뒤르껨>... 지금의 대부분 역사학자들까지 그렇게들 주장한다.

신석기 시대의 생산력이 극히 낮고, 당시 사람들은 절대 빈곤에 처해 있었다. 농경은 초보적이었다. 사람들은 수천년간에 걸쳐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농사기술의 발전보다는 <자연신>에게 좋은 날씨를 부탁하고 있었다.

아마도 토지 소유권을 놓고 일어난 분쟁은 극히 적었을 것이다. 설령 있었다고 해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또,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는 토지 소유가 아닌 <점유> 형태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당시 사회가 부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사회였기 때문에, 토지는 부족민 전체가 <점유>하는 것이었다. 토지를 <점유>하다는 개념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개념으로 바뀐 것은 정복전쟁이 활발해지는 <철기 시대>쯤에 등장한다.

3. 청동기와 토지 이용

동아시아에서 금속 문명이 등장하고, 농경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000년 경이다. 이 시기는 석기 문명과 청동 문명이 공존하던 시기로, 황하 문명을 비롯한 다양한 동아시아 문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 양자강 근처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기원전 2000년경에 공동체를 장악한 종교 제사장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권력을 가진 자가 성장하여 기원전 1600년경 최초의 왕조인 상 왕조(은)를 건설했다고 한다.

만주에서는 기원전 1600년 경에 북방 유목 계통인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청동기가 전파되었고, 한반도에도 기원전 15세기 전후에 청동기가 보급되었다. 일본에는 기원전 1000년경 야오이 시기에 청동기가 전파되었다.

청동기가 전파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각 지역에 벼농사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청동기와 벼농사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청동기는 요즘으로 따지면 <보석>과 같이 귀한 것이었다. 구리와 주석, 아연 등을 합금해야 제조가 가능한 청동은, 희소성 때문에 지배층의 무기나 제사용품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여전히 농기구는 돌이었다.

청동기를 만드는 기술이 전파되면서 농사를 짓는 기술도 같이 전해져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특히 벼농사의 전파경로는 청동기 전파 경로와 유사하다. 만주 계통에서 한반도로, 그리고 일본으로 전래된 경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럼 창동기와 함께 보급된 농사 기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동아시아 사람들이 처음 시도한 농사는 견과류 등을 수확하는 것이었다. 밤을 많이 수확하였고, 깨, 도토리, 박 등이었다.

조금 시기가 지나면서 사람들은 비옥한 땅과 비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화경농법>이다. 화경은 말 그대로 그 자리를 불태워서 비옥한 땅과 비료를 만든 후에 농사짓는 초보적인 방식이었다. 화전 농법으로 보리, 수수, 조, 팥 등을 재배할 수 있었다.

신석기 후기가 되면서 농사 기술은 더욱 발전되었다. 각 지역의 화경 농법이 발달하였고, 중국 강남지방에서 시도되었던 <수경농법>과, 만주지방의 <화경농법>이 유행하였다.  

특히 <수경농법>은 물을 이용한 농법으로 한층 진화된 농사법이었다. 물을 이용함으로서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벼가 동아시아인들의 주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처음 중국식 수경농법은 강가와 저습지를 이용한 농사였으나,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한반도, 일본 등에서 개량을 거치게 된다. 저습지를 찾아다닐 필요없이 직접 <관개시설>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동아시아 각지에 관개 시설이 등장하고, 농사기술은 한층 발전하게 된다.

농사기술을 발전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생산물과 관개시설을 놓고 다툼이 시작되었다. 청동기와 철기 시대는 서로 많은 생산력과 생산물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활발히 진행된 것이다.

즉, 당시의 농업기술 수준으로 볼 때, 당시 생산력을 높이는 주요 수단은 직접적인 생산력보다도, 생산력을 획득하려는 싸움이었다는 점이다. 일정 지역을 확보한 지배자의 출현은 생산 영역을 놓고 벌이는 전쟁에서 시작되었다.

다음 장에서는 금속기 시대의 생활 단위인 <읍>과 중국인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토지제도 <정전제도>에 대해 간략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참조하세요 ...

동아시아 공동체: 신화와 현실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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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토지경제사연구(인문사회과학총서 20)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택민 (고려대학교출판부,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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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와 토지(상)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박시형 (신서원,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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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제도 발달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편집부 (민족문화사,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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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만에 읽는 일본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타케미쓰 마코토 (서울문화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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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0.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고등학교 과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역사의 분야가 아니라 고고학적 분야라 학계의 유행에 맞춰나가지 못하는 면도 없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여러 자료들을 통해 만들고 있음으로 교과서에 큰 개편이 가하지지 않는 이상 특별이 틀린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근현대사 정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만약 제가 서술한 것과 다른 필자분들이 서술한 것이 서로 다르다면, 다른 필자분의 서술을 우선순위로 쳐주시기 바랍니다. 시험볼 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대학 이상에서 '제대로된 공부'로 말하자면, 상식 수준에 머무르는 것들이거나 혹은 전혀 판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 역사 인식

역사는 그 사실을 인식하는데,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또 하나는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말 그대로 역사 자체를 객관적인 사실로 인식한다. 즉, 역사 서술에 있어, 그것을 기록하는 역사학자는 자의적인 해석 등을 함부로 곁들여선 안되며, 역사는 현재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근대 사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랑케에 의해 제창되었다. 여담이지만, ‘근대’라는 것은 ‘과학적, 객관적, 이성적’인 사고와 또 그러한 행동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였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오랫동안 내려온 역사 해석의 방식으로, 현재까지 있었던 사실 중에 역사적 가치 있고, 후세에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 역사가가 선별하여 기록하고,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현재 교육과정에서의 역사도 이러한 견해를 차용하고 있다. 이는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대표되는 견해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장점이 있는 관점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느 정도 역사왜곡을 용인한다는데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Tip.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 역사의 예

나는 오늘 밥을 먹었다. -> 사실로서의 역사

나는 오늘 맛있는 밥을 먹었다 -> 기록으로서의 역사


정보와 통신의 발달많은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사실                         기록


2) 인류의 출현과 구석기 시대

원인(猿人) 화석의 발견은 진화론의 근거로써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우선 최초의 인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남방의 원숭이’라는 이름에서처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프리카 최남단 쪽에서 발견되었다. 약 300만 ~ 150만 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며, 최초로 직립 보행을 하였다. 자갈돌 석기를 사용하였다곤 하지만, 그다지 크게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직립한 인간’이라는 호모 에렉투스는 하이델베르크, 자바, 난티엔, 베이징에서 각각 발견되어 그 지명이 붙여졌다(하이델베르크인, 자바인, 난티엔 인, 베이징 인). 이를 통해 그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활동범위를 넓혔으며, 과 언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구가 발달하여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구석기 시대의 특혜를 받기 시작한 것도 이들부터이다. 이때부터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즉 한반도의 구석기 지도는 일본이나 중국과 연결되어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네안데르탈 인’이라고 불린다. 그런 만큼,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굳혀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들은 양날면 석기와 같은 정교한 도구를 만들 수 있었으며, 종교 관념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였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크로마뇽인’, ‘그리말디인’, ‘산둥인’도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4 ~ 3만년 전에 등장하였으며, 발달된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도구가 다양해졌다. 사냥을 위해 잔석기와, 이음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이 그린 동굴 벽화(쇼베,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 벽화)와, 풍만한 여인상(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조각하여 사냥감의 번성과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나타냐고 있다.


3) 중석기 시대

당연히 세계사 교과서에선 다룬 바가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국사 교과서에선 우리나라의 중석기 시대에 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 이유를 증명할 고고학적 사료가 빈약하기 때문인데, EBS 수능 특강 같은 경우, 국사에서도 중석기 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이 정리하도록 하자.(마침 내용도 많이 없다.)

중석기는 구석기와 신석기 사이의 기간을 뜻한다. 약 1만 년 전 빙하기에서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날씨가 따뜻해짐에 따라, 큰 동물이 사라지고 몸집이 작은 동물이나 어류가 많아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석기를 만들 게 되는데 그것이 잔석기와 잔석기를 활용하기 위한 이음도구이다. 돌창, 돌화살, 슴베찌르게 등이 이에 속한다. 국사 교과서에선 주먹도끼와 슴베찌르게가 같은 크기인 양 사진에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 둘의 크기는 상이하며, 주먹도끼가 훨씬 크다. 슴베찌르게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때 이후로는 한반도와 중국, 일본이 바다로 인해 분리 된다


4) 신석기 시대

 기원전 8000년 경에 일어난 변화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생활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농경과 목축이 시작된 것이다. 농경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였고, 이를 ‘신석기 혁명’ 혹은 ‘농업 혁명’이라고 하며, A. 토플러는 이를 ‘제 1 물결(The First Wave)'라고 하였다. 농경의 시작으로 인해, 인류의 생활양상도 많이 변화하였다. 구석기 시대의 이동, 채집 사회였던 것에서 정착, 농경 사회로 바뀐 것이다. 이들은 간석기를 이용하여 농작물을 수확하였으며, 수확한 농작물들은 토기에 보관하였다. 또한, 농경이 가능하기 위해 강변 등지와 바다에 살면서 이음도구를 통해 사냥과 어로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가락바퀴나 뼈바늘을 통해 의복이나 그물을 제작하였으며, 움집에 살았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씨족으로 된 부족 사회로, 족외혼을 하였으나, 아직은 평등한 사회 계층을 유지(* 주의)하였다. 애니미즘, 영혼, 거석, 조상 숭배나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의 종교의식도 이 때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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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한국사에서의 민족교체론과 민족연결론의 논쟁

1. 청동기 시대의 민족교체론 주장 근거

한국사에서 일단 구석기인들은 현재 우리 민족과 연관성이 없다고 봅니다. 빙하기 대의 이동생활과 이, 모발 등의 형태로 보아 민족일 가능성은 희박하죠. 또, 당시 한반도와 일본이 분리되지 않은 사실도 민족이 아니라는 신빙성을 더해줍니다.

민족교체론은 신석기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신석기인들은 북방계통의 시베리아에서 새로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들을 모체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지요. 이들은 시베리아 지역의 신석기 문화를 이룩하고 내려온 고아시아족이라고 보통 보며,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한 민족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어 청동기 때 내려온 민무늬 토기인들입니다. 민무늬 토기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며, 반달돌칼 등 새로운 도구가 한반도에서 출토됩니다. <민족교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들 청동기인들이 이전의 신석기인들과 다른 민족적 구성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즉, 신석기인들과 청동기인들은 일단 <거주 장소와 생계수단>이 다릅니다. 강가와 구릉지대라는 거주 장소가 다르고, 신석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민족으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즉, 한반도 청동기 문화는 단순히 문화 전파가 아닌 주민들의 이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이들을 다른 민족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죠.

이것은 우리 교과서에서 일부 반영된 논리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빗살무늬토기인은 고아시아족, 민무늬토기인은 예맥족으로 분리해서 봅니다.

2. 청동기 시대의 민족연결론 주장 근거

민족연결론은 민족교체론이 틀렸음을 조목조목 따져서 보여줍니다.

먼저 생계수단의 차이가 주민집단의 차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 생활이 바뀌기 마련이므로, 생계수단이 바뀐 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음을 뜻한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또, 한국의 신석기 문화가 시베리아 고아시아 문화라는 증거도 없고, 그 문화와 뿌리가 같다는 증거도 없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즉, 민족교체론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이들은 빗살무늬인과 민무늬인들은 다른 생업경제를 꾸려갔을 뿐, 결과적으로 같은 계통의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빗살무늬인들이 민무늬 토기로 점진적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며, 신석기인중에 민무늬 토기를 받아들여 청동기 문화를 흡수한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점도 강조됩니다.

이 논쟁은 아직, 한반도에 충분한 유적이 발굴되지 못하여 소모적인 논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3. 실제 민족이 형성된 시기는?

위 논쟁에서 한가지 중요한 점은 민족연결론이든, 교체론이든 간에 우리 청동기 문화는 신석기 시기와는 달리 단일 계통의 주민들이 번영시킨 문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독자적인 집단으로 청동기인은 존재하지 않았고, 청동기인들은 다양한 계통에서 유입되었습니다. 청동기의 기원지가 많은 만큼, 아직 우리나라로 유입된 청동기의 정확한 전파지역도 너무나 다양하여 딱 꼬집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청동기 유이민들이 하나의 우리 민족이라고 여기게 된 시기는 세형동검이라는 동류의 문화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라고 보통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공유하던 우리 민족을 기록에서는 <예맥>족이라고 합니다. 중국기록에는 예맥을 <동이족>이라고도 합니다.

동이족은 은주교체기에 한족과 처절한 싸움을 벌이다가 한반도로 많이 유입된 자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합니다. 또, 이동하지 않고 중국대륙에 남아서 한나라 시기까지도 동이족 문화를 중국에 전파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산둥반도의 <무씨사당벽화>에는 단군 신화와 거의 흡사한 내용의 신화가 벽화로 남아있습니다. 백제가 근초고왕기에 중국에 진출하여 요서, 진평 2군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은 이 무씨사당벽화와 연결하면 아주 허구는 아닌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청동기 시대는 민족의 주류가 형성된 시기일 뿐, 민족이라는 자각을 우리 스스로 느끼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삼국통일기에 같은 민족을 통합하였다는 <일통삼한의식>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싹튼 동류의식은 고려시대 <몽골>과의 항쟁에서 민족적 조상은 <단군>이라는 정확한 개념을 도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에서 <민족>이라는 단어 자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실, 민족이라는 용어 자체가 근현대 이후에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조선시대 국난이 있을 때, 실학자들은 단군, 고구려, 발해 등을 같은 부류로 여기고 국가 개념을 확장하였습니다. 이것도 국가 개념의 확장이지 민족 개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뿌리가 같다는 동류의식의 확인이었지요. 신분제 사회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보다 신분이라는 개념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민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일제시기 민족주의 사학자들이었고, 이 개념은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는 개념입니다. 반제국주의 운동, 반봉건주의 운동이라는 개념 속에 민족이라는 개념이 탄생하였고, 이 민족이라는 개념은 신분차별을 초월한 일치된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그 개념은 해방이후에는 남북통일을 위한 <한민족> 개념으로, 독재시설에는 경제 개발을 위해 뭉친 <민족 전사>의 개념으로 사용되어 지금까지 내려왔죠. 반공헌장을 외운 세대와, 국민교육헌장을 외운 세대, 서태지 노래를 듣던 세대, 월드컵을 보면서 길거리에서 민족의식을 공유하는 세대는 다르지만, 민족개념은 아직까지도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 파티는 민족개념에 대한 파트가 아니라, 민족교체론 논쟁 파트이므로 여기까지만 정리할께요. 민족개념에 대한 정리는 근현대사 할 때 자세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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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1. 원시-선사-석기시대를 구분하자.

원시시대라는 용어는 인류가 고대 이전 공동체 생활을 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흔히 원시 공동체 사회라고 하며, 생산과 분배가 씨족 또는 부족의 공동체 소유로 규정되던 사회를 말합니다. 이 용어는 사회 발전단계상 원시-고대-중세... 등등 시대 구분과 관련된 용어입니다.

선사시대란, 역사시대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전의 문자가 없는 시대를 말합니다. 즉, 어떤 시대이든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면 무조건 선사시대인 셈이죠. 한반도에서는 최초의 기록이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기 때문에 우리 나라 역사에서 선사시대란 기원전 2세기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당시에는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있었으므로, 이 시기가 원시시대는 아닙니다. 즉, 한반도에서 원시시대는 국가가 없는 공동체 사회를 뜻하므로 고조선 이전의 시기를 말합니다.

석기시대는 고고학적으로 볼 때, 도구 사용 기준에 맞춘 시대입니다. 즉, 돌을 이용한 구석기, 신석기 시대가 석기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석기시대 이후가 국가가 발생하는 청동기 시대이므로 우리는 보통 석기시대가 원시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청동기의 사용으로 정복전쟁이 많아서 노예계급과 군장계급이 발생하였고 국가가 건설되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청동기 시대는 원시시대를 넘어가는 시기가 되는 것이죠. 이 논리에 맞추어 최근에서 청동기 국가인 고조선도 한국의 고대사회로 파악하기도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고대시대를 보통 삼국시대가 정립된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단, 석기시대가 꼭 원시시대는 아닙니다. 신석기에서도 생산력이 높아지면 국가와 계급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그 시기가 원시를 넘어 고대 사회가 되기도 하죠.

역사를 공부할 때 꼭 원시, 석기, 선사 시대를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용어 구분를 하고, 이 시대를 교과서나 개론서에서 다루는 이유는 단지 우리 민족의 기원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프롤로그 수준의 내용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신석기 문화가 시작되다.

구석기 시대는 솔직히 우리 민족사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한반도라는 우리 터전이 자리잡은 시기도 아니고, 구석기인들의 문화가 우리와 관련도 별로 없습니다. 실제 우리 민족사는 신석기인들부터라고 보아도 무난합니다.

신석기 문화는 식량 생산을 하던 문화로서 돌을 갈아 도구로 사용하던 간석기인이며, 농사를 통한 음식을 저장히기 위해 토기를 사용한 최초의 문화였습니다. 특히 이 토기는 빗살이 나타나 있는 빗살무늬토기로 이 빗살무늬 토기는 서쪽 핀란드, 러시아,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등 대량으로 출토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빗살무늬 분포로 보아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주인공은 시베리아에서 이주한 고아시아족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시베리아 고아시아족은 조상으로 곰을 숭배한 사실이 있는데, 이러한 요소가 단군신화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신석기 문화는 기원전 5천년전 쯤 시작되었고, 처음에 신석기인들은 농경과 관련하여 강가나 해변에 거주하였습니다. 또한 사냥, 어로 활동도 활발하였으며 부분적으로나마 사회분화도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이 당시 농경으로는 도토리가 주목됩니다. 도토리는 가루로 만들어 물어 타면 훌륭한 식량이 되며, 칼로리도 높았던 만큼 이 도토리를 사용한 흔적이 확실하진 않지만 보인다고 합니다. 도토리, 과일류, 나무열매류, 토란, 마, 칡 등이 식량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신석기인들이 생산한 곡식은 피, 조, 기장, 수수 등 많았는데, 특히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에서는 불에 탄 곡물이 나와서 이러한 농경 생활의 증거를 보여줍니다. 농경은 조 중심의 밭농사였지만, 한강하류 김포지역에서는 볍씨들도 발견되곤 합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시기를 놓고 신석기설과 청동기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3. 마을을 이루고 자연을 숭배하다.

신석기인들은 혈연중심의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하는 이 평등한 사회는 지배자가 없었습니다. 또한 같은 마을 남녀끼리는 결혼할 수 없는 족외혼 사회인 것으로 보아 주변에 결혼을 할 수 있던 다른 씨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씨족 혈연 및 주변 지연관계의 부족사회가 존재하였음을 알수 있으며, 공동체 운영단위는 씨족 중심에서 점차 부족 중심으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석기인들은 숭배된 동물을 믿는 토템시상(토테미즘), 우주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정령신앙(애니미즘),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무당사상(샤머니즘) 등 종교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교는 아마도 농경사회에서 갖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시체 머리를 일부러 동쪽으로 향하게 하는 관습은 동쪽을 해가 뜨는 곳으로 보아 영혼의 소생처로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불멸사상을 의미합니다.

특히 샤먼사상은 단순한 주술사로서의 무당을 믿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판단하는데 근거가 되는 정치적 성격으로서의 무당이었습니다. 무당은 선과 악이라는 이원적 존재를 매개하는 매개자로서의 무격신앙이었는데, 이러한 무격신앙을 보여주는 유물은 조가비 가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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