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몽

블로그세계사(1) 사극이 역사를 대신하잖아! 블로그 세계사 1 '사극이 역사를 대신하잖아!' 사람들은 역사를 진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란 있었던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 과거를 아는 사람은 없다. 역사를 변신로봇처럼 조립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1장. 12년동안 만두만 먹으면서 자란 아이들. 지금부터 일기를 쓰듯이 풀어서 역사를 조잘조잘 써보려고 한다. 그런데 말이지, 책이나 뭔가 보면 그럴듯한 서문들을 앞에 적어 놓잖아. 나도 뭐 그럴 듯한 뭔가를 적어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뭐 폼나는 거 없을까? 생각해보니깐 인터넷으로 역사에 관한 글을 적는다는 건 너무나 자유로운 일이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누구나 기분나쁘면 반박할 수 있는 공간인데, 난 그동안 너무 딱딱하게 샌님처럼 글을 적은 것 같군. 고등학교 때가 생각나는군. .. 더보기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 16화. 고구려의 불교 이야기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16화. 고구려의 불교 이야기 1. 불교가 원시 신앙을 대신하다. 자, 이번 회부터의 불교 이야기는 우리 역사 속의 불교 이야기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한반도의 불교 이야기는 인도나 중국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일화로 구성하기가 힘들다. 특히, 고대 불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 일부 자료와 중국측 기록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불교 이야기를 적더라도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일단, 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왕 부견이 승려 순도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전파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아도화상이라는 스님이 다시 건너오자 성문사에 순도를, 이불란사에 아도를 머물.. 더보기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4) - 주몽도 리니지의 캐릭처럼 레벨업을 해야 살아남는다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4) 주몽도 리니지의 캐릭처럼 레벨업을 해야 살아남는다. 1. 사극의 천국을 찾아낸 작가들... 오늘 이야기할 포스트모던의 주제는 TV 사극이다. 자, 그럼 한 번 시작해볼까? 21세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던 카운트 다운이 있기 전까지 우리 나라의 정통 사극들은 신세대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옛날 사극들의 지루함을 한번 볼까? 국왕이 라고 묻는다. 그러자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신하들이 돌림 노래를 부른다. 영의정 아뢰오... 저는 이렇게 생각하오... 좌의정 아뢰오... 부당하신 말씀이요.... 이조 참판 아뢰오.. 전적으로 동감하오... (대사 무지 많다... 옛날 배우들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5분 동안 이어지는 신하들의 릴레이 토론으로 우리는 역사 교과서 10장.. 더보기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3) - 역사학과 사회학이 싸우던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3) 역사학과 사회학이 싸우던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1. 18c :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다. 익숙한 문화 코드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데, 계속 이론 이야기만 해서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화 이야기는 이 편만 끝나면 시작될 것이니, 좀 참고 견뎌보자. 자, 오늘은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과연 역사학에 가까운지, 사회학에 가까운지 간단히 짚어보자. 역사학과 사회학의 처절한 결투는 18세기 이래 계속되었다. 서양 연대기로 따지자면 프랑스 혁명 전후부터랄까?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는 수많은 학문이 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와 라는 항목이었다. 혁명의 기록은 역사이나,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통계는 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보기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2) - 만약에... 라는 단어 하나로 세계사를 바꿀 수 있는 포스트 모던 역사학 새로운 역사와 문화 코드 (2) 만약에... 라는 단어 하나로 세계사를 바꿀 수 있는 포스트 모던 역사학 1. 기존의 는 모두 버려라~ 자, 그럼 여기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기본 입장을 정리해보자. 포스트 모더니즘의 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일체의 을 부정한다. 무슨 말이냐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누군가가 남긴 에 의존한다. 삼국시대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 김부식 등이 공동편찬한 를 바탕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믿을 수 있는가? 당대 김부식은 서경천도운동을 주도했던 묘청 등과 대립하였다. 묘청이 고구려 중심 사관이라면, 김부식은 신라중심 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신채호는 이것을 이유로, 묘청이 김부식에 패한 것이 이라고 한탄하였다. 신채호는 를 편찬하면서 고조선이 신조선,.. 더보기
드라마 주몽 : 고대 서사 구조 vs 리니지적 게임 구조 - 이들이 결합하다! 주몽이 끝났네요. 주몽 드라마를 다시 생각해보니, 역사를 보았다기 보다는 한편의 대하서사 문학을 본 느낌이 많이 듭니다. 드라마가 역사가 될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뭔가 포스트 하나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글은 말도 안되는 글이지만, 솔직히 보다가 이런 부분들이 눈에 띄어서 그냥 적어봅니다. 1. 주몽의 설정은 고대 서사적 구조의 현대적 해석... 처음부터 주몽을 못봐서 초반 20부 정도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보았습니다. 한 번에 10시간씩 시간을 내서 몰아보았더니, 그 구도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더군요. 초반 주몽의 구조는 고대 서사 구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대 영웅의 구조는 보통 이라는 단계로 나가곤 합니다. 저는.. 더보기
고구려의 정복 전쟁과 영토 확장 사료 고구려의 영토 확장 동명성왕 2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로 삼고 송양을 그 곳의 주로 봉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 부여왕 사촌 동생이 만여명을 데리고 투항해 오니 대무신왕이 왕으로 봉하고 연나부에 안치시켰다. 9년 10월에 왕이 친히 개마국을 정벌하여 왕을 죽이고 백성을 위로하여 노략질을 못하게 하고 군현으로 삼았다. 12월에 구다국왕이 개마가 멸망했다는 말을 듣고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 태조대왕 11년 8월에 갈사왕 손도두가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도두를 우태로 삼았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 - 9월, 왕이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현도군에 침입하여 8천 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 더보기
백제의 건국 설화(삼국사기 편) 백제의 건국 설화 백제 시조 온조왕(溫祚王)의 아버지는 추모(鄒牟)로서 주몽(朱蒙)이라고도 하는데, 북부여(北扶餘)로부터 난을 피해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이르렀다. 졸본부여의 왕에게는 아들이 없고 단지 딸만 셋이 있었다. 왕이 주몽을 보더니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둘째 딸을 시집보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졸본부여의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잇고 두 아들을 낳았다. 맏아들을 비류라 하고 둘째 아들을 온조라고 하였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매,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하다가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10명의 신하와 함께 남쪽으로 가니 백성 가운데 따르는 자가 많았다.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살만한 땅을 바라보았는데.. 더보기
이규보의 동명왕편 - 고구려의 건국 이규보의 동명왕편 - 국가의 안정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 흰 사슴을 잡아 해원에 거꾸로 매달아 저주하기를, 라고 하였다. 그 사슴의 슬피 우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니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송양의 도읍은 물바다가 되었다. 왕은 갈대줄로 강을 가로질러 놓고, 오리말을 타고 있었다. 백성들은 모두가 그 줄을 붙들고 있었다. 주몽이 채찍으로 물에 금을 그으니 물이 줄었다. 6월에 송양이 온 나라 백성들을 이끌고 항복하였다고 한다. 7월에 검은 구름이 골령에 일어나서 사람들은 그 산성을 볼 수 없었다. 오직 수천 사람 소리가 토목 공사를 하는 듯이 들렸다. 왕이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이레 만에 운무가 스스로 흩어지니, 성곽과 궁실, 누대 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었다. 왕이 황천을 향해 절을 하고는 나아가서 .. 더보기
이규보의 동명왕편 - 송양과의 대결 및 고구려의 건국 이규보의 동명왕편 - 건국의 과정 비류왕 송양이 사냥을 나왔다가 왕의 용모가 비상함을 보고 데리고 가서 더불어 앉아 말하기를, 라고 물었다. 왕이 대답하기를 라고 하였다. 송양이 라고 말하였다. 왕은 라고 말하였다. 송양은 왕이 몇 번이나 천손이라고 말하는 데 대해 의심을 품고 재주를 시험해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라고 말하고는 사슴을 그린 과녁을 100보도 못 미치는 거리에서 두고 쏘는데, 살이 사삼의 배꼽을 맞하지 못했으면서도 실지로 맞힌 것처럼 여겼다. 왕은 사람을 시켜 옥지환을 100보밖에 걸게 하고 쏘자 마치 기와장이 부서지듯이 깨지므로 송왕은 크게 놀랐다고 한다. 왕이 말하기를 고 말하였다. 시종하던 신하 부분노가 나와서 말하기를 라고 하메, 왕이 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답하기를 하고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