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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대원군의 쇄국정책 - 통상수교 거부정책 사료 대원군의 쇄국정책 올해 여름과 가을 이래로 외국 선박이 경상, 전라, 황해, 강원, 함경 5도에 몰래 출몰하매 혹 널리 퍼져서 추적할 수가 없었다. 그중에는 상륙하여 물을 길어가기도 하고 때로 고래를 잡아 양식으로 삼기도 하는데, 그 선박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 현종실록 15권, 현종 14년 12월 - 대원군의 양이보국책 유시 (대원군이 1866년 병인양요 때 철저한 항전의 뜻을 정부 관료에게 내린 유시) 1.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화친을 허락한다면 이는 나라를 파는 것이다. 2. 해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교역을 허락한다면 이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3. 적이 경성에 다다를 때 도성을 버리고 간다면 이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4. 만약 잡술이나 육정육갑(둔갑술 등에 이용되는 신) 따.. 더보기
최익현의 대원군에 대한 반발 상소 최익현의 상소 호조참판 최익헌이 상소하였다. 참고글 : 최익현의 말을 단순히 요약하면, 대원군이 서원 철폐한 것, 원납전 걷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지요. 양반의 기득권을 침해한다는 이 상소를 통해 최익현은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해야 한다는 논리로 까지 나아갑니다. 더보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 관련 사료 대원군의 서원 정리 사족이 있는 곳마다 평민을 못살게 굴지만 가장 심한 곳이 서원이었다. 먹도장을 찍은 다음 편지 한통을 고을에 보내서 서원 제수전을 바치도록 명령하였다. 사족이나 평민을 물론하고 그 편지를 받으면 반드시 주머니를 쏟아야 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서원에 잡혀가 혹독한 형벌로 위협을 받았고 화양동 서원 같은 곳은 그 권위가 더구나 강대하여 그곳에서 보내는 편지를 화양동 묵패지라 하였다. 백성들은 탐학한 아전들에게 시달렸는데 여기에 또 서원 유생에게 침탈을 당하니 모두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원망을 하고 이를 갈아도 하늘만 쳐다볼 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대원군이 영을 내려 나라 안 서원을 죄다 허물고 서원 유생들을 쫒아 버리도록 하였다. 감히 항거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하.. 더보기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사료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대왕대비가 경복궁 중건을 명하고 다음 날 3일 시원임 대신을 회정당에 불러 중건 대사를 대원군에 위임하였다. 경복궁 영건 때의 비용과 백성의 역에 대한 절차를 의논하였는데, 백성의 노역 문제는 신중을 기하고, 안으로 재상 이하 밖으로는 지방 수령 이하가 역량에 따라 보조하며, 선비, 서민층은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자진 납부하는 자는 상을 주기로 하고 이 뜻을 8도에 전달하도록 하였다. 이미 서울의 원납전이 20만량이 되었다. - 승정원일기, 고종 2년 4월 2일, 5일 - 참고글 :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고 원납전, 당백전을 걷었던 이유는 왕권 강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더보기
대원군의 왕권 강화와 인사등용 사료 대원군의 인사등용 대원군이 집권한 뒤 어느 공회 석상에서 음성을 높여 여러 대신을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대저 천리지척이라는 말은 종친을 높인다는 뜻이요, 남대문 3층이라는 말은 남인을 천거하겠다는 뜻이요, 태산을 평지로 만들겠다는 것은 노론을 억압하겠다는 의사이다. - 매천야록, 갑오이전 - 참고글 : 대원군은 집권 직후 권력구조를 개편하여 왕권을 강화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즉, 외척세력으로 권세를 누리는 안동김문을 정계에서 축출하고 당파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려 노력하였습니다. 비변사를 축소하고, 의정부의 기능을 부활한 것들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더보기
대원군의 은결 색출 대원군의 은결 색출 대저 임금이 있으면 나라가 있는데, 금일의 형세는 나라가 있으나 믿을 것이 없다고 합니다. 나라라는 것은 민이 모인 것이고 민을 모으는 것은 재물입니다. 안으로는 왕실과 정부가 모두 텅 비고 밖으로는 창고가 모두 고갈되었으니, 녹봉을 계속 지급하기 어렵고 진휼곡은 내주기도 어려우며 생민이 날로 초췌해지고 온 팔도에 소요가 일어나니 흰수건을 둘러쓰고 몽둥이를 든 자가 걸핏하면 1만명이 넘고 관가를 약탈하고 관원을 살해하고 재변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지난 역사에 없던 일들로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전하의 나라에 백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승정원일기, 고정 1년 정월 27일 - 영의정 조두순이 아뢰기를 라고 말하였다. 대왕대비는 여기에 따라 시행하되 회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