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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가 다시 중국을 하나로 만들다.

이번 장에서 다룰 내용은 그동안 길고 길게 다룬 위진남북조를 통일하고, 새로운 통일 국가로 거듭난 중국 수나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수나라는 사실 다룰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혼란기를 통일했다는 내용 외에는 짧은 역사만이 전부이니까요. 실제 중국을 통일한 왕조인 진시황의 진이나, 이 수나라 모두 단명하였습니다. 오히려 다음 왕조인 한나라, 당나라가 몇백년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곤 하죠. 수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요?

1. 북주를 기반으로 중국을 통일하다.

수나라는 어디서 뜸금없이 나왔을까요? 위진남북조를 통털어 수라는 나라는 없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옴? 결론은 위진남북조 후반 북조를 통일했던 북위에서 그 기반을 찾아야 합니다. 북위는 선비족이 통일한 나라로서 북위 후반에 만사추노의 반란 등 많은 이민족 반란이 있었습니다. 이 결과 동위, 서위로 분열되었고, 동위가 북제로, 서위가 북주로 계승되었습니다. 지도를 한 번 보세요. 일단 위진남북조 시대에서 다룬 내용들을 쭈욱 그림으로 다시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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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에서 보면 수나라의 중국 통일은 그 기반이 북주입니다. 북주는 북주 무제라는 왕 때 대부분의 중국을 통일하면서 이것이 수나라로 계승됩니다. 북주의 무제는 철저한 유학위주의 정책으로 국가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특히 북주 지방이 좋은 이유는 중국의 전통적인 군사, 경제적 중심지인 위수분지의 관중, 장안지방을 통치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위수분지는 실제 중국 후한 이래 정치적 중심지인 낙양과는 거리가 좀 있던 지역이였으나, 이것이 오히려 좋은 점으로 작용합니다. 예로, 진시황의 진나라도 이 지역에서 시작했었습니다. 즉, 이 지역은 정치적 중심지와 거리가 있어서 전란이나, 정쟁에 휩싸이지 않고 국력을 꾸준히 키울 수 있는 변방이면서도,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지역이었던 것이지요. 거기에 장안을 중심으로 한 위수분지는 천연의 요새이자, 북방 기마술을 배우고, 군사력을 증강시키기에 딱 좋은 곳이었습니다.

특히 지난 장에서 말했던 서위 우문태 장군 이래, 이 지방은 강력한 중국식 부병제와 균전제도가 있어서 이 제도는 통일의 기반이자, 이후 중국 경제, 군사 제도의 근간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반면 북조의 북제 지방은 압도적인 정치,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호족간의 상호 쟁탈전이 심했습니다. 남조는 귀족세력간의 내분으로 안망하는게 이상했구요.

이러한 상황에서 북주의 무제는 유학을 중심으로 도교와 불교를 철저히 억압합니다. 즉, 귀족적인 성격이 강했고, 자체 평등 교리를 내포하고 있는 불교를 폐불사건으로 탄압하고, 구겸지 이래 유행하던 도교도 국가가 막아 버리면서, 오로지 충 사상을 강조하는 국가주의적 유교로 사회사상을 통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책은 곧 지방 세력들의 반발을 가져오게 됩니다. 북주는 무제가 죽은 뒤, 혼란에 빠져 북주의 총관직에 있던 <양견>에게 선양의 형식으로 국가를 물려주게 되는데, 이 양견이 바로 수의 건국자 <문제>입니다.

2. 수문제의 중앙집권적 통일 국가 체제 정비

수문제는 중국을 통일하면서 중앙집권적 통일 국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우선 중앙체제를 3성 6부제로 정비하였는데, 이 제도는 이후 당나라와 동아시아에 전파되어 동아시아 공통의 중앙체제로 정착합니다. 우리나라도 신라부터 조선까지 이 체제로 국가체제를 정비하였죠.

다음으로 지방제도는 주, 군, 현 제도를 정비하여 주, 현 제도로 정비합니다. 원래 중국의 지방제도는 진시황이 만든 군, 현 제도입니다. 그런데, 지방관으로 파견된 자사의 권한이 커지면서 군, 현을 통제하는 <주>가 생겼습니다. 후한 때의 일이죠. 이 주는 군, 현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조선으로 따지면 관찰사, 안찰사 정도라고 할까요?

수문제는 지방관의 세력을 아예 국가행정체계에 편입하려고 <주>를 국왕권 직속 행정구역으로 개편합니다. 그리고, 중복되는 행정구역인 군은 아예 없애버립니다. 단, 주의 행정관인 자사는 국왕 직속으로서 행정권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군사적인 기능은 국가가 몰수합니다. 그리고, 자사는 지방관이 향품에 따라 관리를 추천하는 9품중정법에서 제외시켜서 관리 임명도 국가가 맡아서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관리 임명법이 필요했는데, 이에 따라 실시된 법이 바로 <과거제도>라는 새로운 관리임명제도입니다. 향론이나, 향품이 관직을 좌지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지방에서 추천은 할 수 있으나, 모든 관직은 시험에 의해 선발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험이라는 것도 면접이 중요한데다가 채점관들이 기존 관료인 관계로, 완전한 능력 위주의 시험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과거제도의 시행으로 종 9품이상 모든 지방관은 자사가 아니라 국가가 직접 임명하는 제도로 바뀌었습니다.

수대의 과거제도는 선거제도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지방 주군에서 추천된 인사를 수도에서 과목에 따라 시험보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 과거제도는 수재, 진사, 명경과로 나누어 실시했고, 당대 이후 청나라까지 중국의 관료등용제도로서 정착됩니다.

자사의 권한이 행정만으로 축소되면서, 이제 군사권은 총관부라는 새로운 부서로 넘어갑니다. 또 자사의 부패를 막기 위해 풍속을 관찰하는 관리들을 계속 지방에 파견합니다. 우리 나라로 따지면 신라시대 외사정 같은 기구이지요.

이러한 중앙, 지방 제도의 개편은 법제적으로 먼저 정비되어야 합니다. 수문제는 이러한 제도들을 법령으로 정해놓았는데, 이것이 율, 령으로서 이 율령제도가 중국 당나라와 동아시아에 전파되는 율령제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3. 조세 제도를 개혁하다.

수문제는 통일 한 뒤 황제권 강화를 위하여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고, 3성 6부제와 율령제를 통해 그것을 완성하려 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중앙집권에는 엄청난 자금이 든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수대에는 남북통일 이후 남방 경제력을 북방 수도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운하를 건설했기 때문에 엄청난 돈이 들 수밖에 없었죠.

수문제는 위진남북조 시대 갈라져있던 남방경제와 북방경제가 통합하는 것만이 국가경제 재건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당시 강남 경제력은 이미 화북의 농업생산력을 앞지르고 있었으니까요.

수문제는 대운하 자금을 고대적 <인두세>로 메우려 하였습니다. 즉, 북위 이래 실시되던 균전제를 통해 조세원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지요. 균전제에서 실시되던 조, 용, 조를 걷고, 이 조세를 걷기 위해 호구조사, 호적정리를 실시합니다. (검색어로 북위 균전제를 검색하면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이 호구조사를 통해 모든 개개 호를 국가가 통제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 <삼장제도>입니다.

삼장제란 다섯 집을 1보로 하여 보장을 뽑고, 다섯 보를 1리로 하여 이장을 뽑고, 네 리를 1당으로 하여 당장을 뽑는데, 이러한 각각의 장들은 책임지고 해당 지역의 조세를 국가에 납부해야 합니다. 또 각각의 보, 이, 당장들은 서로 감시하면서 국가 통제에 따르도록 한 제도입니다. 삼장제는 조세 부과라는 측면에서 균전제와 조용조 제도를 연결해주는 제도입니다.

이 삼장제롤 통해 체계적이 된 향촌 조직은 국가가 토지를 통해 세금을 걷는 균전제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균전제도는 토지와 집, 인구수를 계산하여 군역자를 내야 되므로, 균전제는 곧 부병제도와 연결됩니다. 즉, 쉽게 말해서 <병농일치제>가 확립된 것이지요.

4. 대운하를 건설하다.

수나라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대운하 건설입니다. 요즘 이명박씨가 대선 후보로 한강부터 이어지는 운하건설을 공약으로 하려다가 논란이 되고 있죠. 그 때마다 수나라 대운하란 말이 종종 나옵니다.

대운하는 수문제의 뒤를 이은 수양제 때 본격적으로 이루어 집니다. 대운하를 건설하는 목적인 발달된 강남의 경제력을 북쪽으로 수송하기 위함입니다. 즉, 양자강의 풍부한 쌀을 소비도시인 장안과 낙양으로 옮겨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이 대운하를 지음으로서 오랜 기간 분열된 중국의 남조, 북조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대운하를 한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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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를 보면 대운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운하를 연결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황하와 회수를 연결하고(통제거), 다시 회수에서 양자강을 연결하고(한구), 다음으로 북경을 연결하고(영제거), 항주를 연결하는(강남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운하의 연결점들에는 모두 큰 도시인 항주, 장안, 낙양, 북경 등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도시들이 바로 중국 소비의 중심지들이지요. 이명박 씨가 말하는 한반도 대운하 역시 운하를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주요 거점들을 중심으로 한강, 낙동강 등의 주요 길목을 연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운하는 경제적 목적도 중요하지만, 수나라가 망한 이후에는 조운로, 교통로로 더 많이 이용됩니다.

5. 수나라의 무리한 정책은 멸망을 초래하다.

수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 2대에서 망했다는 점입니다. 진시황의 진나라와 같네요. 망한 이유도, 망국기의 상황도 상당히 흡사합니다. 일단 수 양제는 진시황처럼 무리한 대외원정을 떠났습니다. 특히 중국 통일로 인하여 북방민족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돌궐 원정의 성공으로 극에 이르게 됩니다. 특히 수나라가 고창국을 점령한 사건은 서역 무역로의 개척과 함께 중국식 조공 질서가 확립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수양제는 서역과 북방 정벌 이후 동방 원정을 시도하는데, 이 당시는 광개토 - 장수왕 이후 고구려가 동북아의 패자로서 군림하던 시기였습니다. 수양제는 고구려 원정을 실패하면서 급격히 국내 반대파들에게 압력을 받게 됩니다. 고구려 원정 실패는 대운하 건설로 인한 민심 이반문제도 대두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수나라는 결국 같은 계통의 집단인 이연의 당나라로 넘어가게 됩니다.

보통 역사에서는 수양제를 부정적으로 많이 바라봅니다. 그 이유는 당나라 초기의 업적에 대비하여 수나라가 무리하고도 가혹한 정치를 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진시황의 평가가 좋지 않은 것이 다음 한나라의 정책과 상반되는 것과 같군요. 그러나 실제 진시황, 수양제는 다음 왕조가 롱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 율령제 마련, 과거제 마련, 3성 6부제 확립 등의 모든 기반이 당나라에 고스란히 전해지니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당의 대부분의 제도는 이미 수나라에서 등장한 것들입니다. 당나라의 <세계제국>건설은 이미 수나라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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